Herrn Eugen Dührings Umwälzung der Wissenschaft · 1877–1878

반뒤링론

Anti-Dühring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독일 사회민주당 안에서 세력을 얻던 베를린의 철학자·경제학자 오이겐 뒤링을 반박해 1877~1878년 『포어베르츠』에 연재하고 1878년 책으로 낸 논쟁서. 정식 제목은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이다.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의 세 편에 걸쳐 뒤링을 따라가며 변증법과 유물론적 역사관, 잉여가치론, 과학적 사회주의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처음 체계적으로 서술했다. 마르크스는 원고 전체를 미리 들었고 경제학 편의 한 장을 직접 썼으며, 세 장을 뽑은 『공상에서 과학으로』와 함께 마르크스주의를 가장 널리 퍼뜨린 책이 되었다.

상세

왜 한 사람을 반박한 논쟁서가 마르크스주의의 교과서가 되었나?

오이겐 뒤링은 오늘날 이 책 덕분에 이름이 남은 사람이다. 그런데 엥겔스가 그를 반박하며 쓴 책은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입문서가 되었다. 뒤링이 철학에서 경제학, 사회주의까지 모든 것을 다루는 「체계」를 내세웠기에, 엥겔스도 그를 따라 모든 분야에서 자기 견해를 맞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1885년 제2판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부정적인 비판은 이로써 긍정적인 것이 되었다. 논쟁은 마르크스와 내가 대변하는 변증법적 방법과 공산주의 세계관을 꽤 넓은 영역에 걸쳐 어느 정도 연관된 모습으로 서술하는 일로 바뀌었다.”

Die negative Kritik wurde damit positiv; die Polemik schlug um in eine mehr oder minder zusammenhängende Darstellung der von Marx und mir vertretenen dialektischen Methode und kommunistischen Weltanschauung …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어렵고 길었던 반면 이 책은 철학과 역사와 경제학과 사회주의를 한 권에 담아 비교적 쉽게 풀었다. 영어 위키백과는 아우구스트 베벨,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카를 카우츠키가 모두 이 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한다. 카우츠키는 『반뒤링론』을 통해서야 『자본론』을 제대로 읽는 법을 배웠다고 회고했고, 다비트 랴자노프는 이 책을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책이라 불렀다.

뒤링은 누구였고 엥겔스는 왜 펜을 들었나?

뒤링은 베를린 대학의 시각장애인 강사로, 철학·경제학·사회주의에 관한 두꺼운 책을 잇달아 냈다. 1875년 고타 대회에서 라살레파와 아이제나흐파가 합쳐 독일 사회민주당이 생긴 뒤, 그의 사상은 당 안에서 빠르게 지지를 얻었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경제 결정론을 거부하고 파업과 자치적 「경제 코뮌」으로 노동자의 처지를 당장 개선하자는 그의 실용적 주장에 젊은 베른슈타인도 끌렸다. 뒤링은 마르크스를 「과학계의 웃음거리」라 부르고 엥겔스를 공장주라고 조롱했다.

빌헬름 리프크네히트가 거듭 반박을 청하자 엥겔스는 처음엔 시각장애인을 공격하기를 망설였지만 결국 1876년 가을 펜을 들었다. 그는 쓰던 『자연변증법』 원고를 밀어 두었다. 글은 1877년 1월 3일부터 1878년 7월 7일까지 당 기관지 『포어베르츠』에 연재되었고, 1877년과 1878년 라이프치히에서 두 부분으로 책이 되었다. 제목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은 뒤링이 미국 경제학자 헨리 캐리를 치켜세운 책 제목을 비꼰 것이다. 1878년 10월 반사회주의자법이 시행되자 이 책도 금지되었는데, 엥겔스는 제2판 서문에서 금지 덕분에 판매가 두세 배 늘었다고 적었다. 제2판은 1886년 취리히에서, 엥겔스가 손본 마지막 제3판은 1894년 슈투트가르트에서 나왔다.

세 편은 무엇을 다루나?

서론은 변증법적 사고와 「형이상학적」 사고를 대비한다. “형이상학자에게 사물과 그 사고상의 모사인 개념은 하나하나 따로, 다른 것 없이 고찰해야 할, 고정되고 굳어 버린, 단번에 주어진 연구 대상이다. 그는 매개 없는 대립 속에서만 생각한다. 그의 말은 ‘예, 예, 아니오, 아니오’이고, 그 밖의 것은 악에서 나온다.” 반대로 변증법은 사물을 그 연관과 운동과 생성과 소멸 속에서 파악한다. 엥겔스는 “자연은 변증법의 시금석”이라며 근대 자연과학의 성과를 끌어온다.

Er denkt in lauter unvermittelten Gegensätzen: seine Rede ist ja, ja, nein, nein, was darüber ist, ist vom Übel.

제1편 「철학」은 세계 도식론, 시간과 공간, 생명, 도덕과 법을 다루고 변증법의 이른바 법칙들(양과 질, 부정의 부정)을 설명한다. 자유와 필연을 다룬 장에서 엥겔스는 헤겔을 따른다. “헤겔에게 자유는 필연성에 대한 통찰이다.” 자유는 자연법칙에서 벗어나 있다는 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법칙을 알고 계획적으로 부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제2편 「정치경제학」은 정치가 경제를 결정한다는 뒤링의 「폭력론」을 반박하고 가치와 잉여가치를 설명한다. 제10장 「『비판적 역사』에서」는 마르크스가 썼다.

Für ihn ist die Freiheit die Einsicht in die Notwendigkeit.

제3편 「사회주의」는 공상적 사회주의의 역사, 자본주의의 모순, 생산과 분배, 국가·가족·교육을 다룬다. 사회가 생산수단을 장악하면 국가가 필요 없어지는 과정이 여기서 서술된다. “사람에 대한 통치는 사물의 관리와 생산 과정의 지휘로 바뀐다. 국가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멸한다.” 그리고 이것을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인류가 도약하는 것”이라 부른다. 1880년 엥겔스는 폴 라파르그의 요청으로 서론과 제3편의 세 장을 엮어 소책자 『공상에서 과학으로』를 만들었다. 국가 사멸론은 「국가의 사멸」 항목에서 레닌의 『국가와 혁명』과 함께 다룬다.

Der Staat wird nicht „abgeschafft“, er stirbt ab.

마르크스는 얼마나 관여했고, 무엇이 논쟁거리인가?

엥겔스는 1885년 서문에서 이 책이 마르크스 모르게 쓰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나는 인쇄하기 전에 원고 전체를 그에게 읽어 주었고, 경제학 편의 제10장은 마르크스가 썼다.” 이 견해는 대부분 마르크스가 세우고 발전시킨 것이며 자기 몫은 아주 적다는 것이 엥겔스의 설명이다.

Ich habe ihm das ganze Manuskript vor dem Druck vorgelesen, und das zehnte Kapitel des Abschnitts über Ökonomie („Aus der ‚Kritischen Geschichte‘“) ist von Marx geschrieben …

그러나 20세기에 이 책은 논쟁의 한가운데 섰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레닌은 『공산당 선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과 함께 이 책을 모든 계급의식 있는 노동자의 필독서로 꼽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 책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틀을 가져왔다. 반면 영어 위키백과가 정리하듯 죄르지 루카치에서 시작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일부는 엥겔스가 변증법을 자연에까지 넓혀 마르크스의 사상을 굳은 과학주의 교조로 바꾸었다고 비판했다. 엥겔스의 전기 작가들은 반대로 마르크스가 이 책에 깊이 관여했고 공동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 인정했다는 점을 든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mlclassic.netlify.app
  4. mlclassic.netlify.app
  5. mlclassic.netlify.app
  6. mlclassic.netlify.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