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Party of Great Britain (CPGB) · 1920–1991

영국 공산당

Communist Party of Great Britain

1920년 7월 31일 런던에서 영국 사회당 등 여러 마르크스주의 단체가 통합해 세운 공산당. 코민테른 영국 지부로서 노동조합 운동에 영향력을 넓혔으나 의회 진출은 소수 의석에 그쳤다. 1991년 지도부가 당명을 「민주좌파」로 바꾸고 당을 해산했다.

상세

영국 공산당은 1920년 7월 31일 런던 캐넌 스트리트 호텔에서 열린 공산주의 통일 대회에서 영국 사회당, 사회주의 노동당의 공산주의 통일 그룹, 남웨일스 사회주의 협회 등이 합쳐 창당했다. 1921년 1월 리즈 대회에서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공산당(제3인터내셔널 영국 지부)과 스코틀랜드 공산주의 노동당의 다수가 합류했다. 의회 참여와 노동당 가입 문제를 두고 팽크허스트와 윌리 갤러커 등 좌익 공산주의자가 반대했으나, 레닌이 『공산주의의 「좌익」 소아병』에서 개량주의 조직 안에서 활동하라고 주장한 노선이 채택되었다. 노동당은 1921년 공산당의 가입을 거부했고, 1924년 지노비예프 편지 사건 뒤 공산당원을 당에서 내보냈다.

당은 1926년 총파업과 이어진 광부 파업에서 파업을 지지해 탄광 지역에서 당원을 크게 늘렸다. 1929~1932년 코민테른의 「제3기」 노선에 따라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사회 파시스트」로 규정하고 별도의 혁명적 노동조합을 세우려 했으나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35년 인민전선 노선으로 바뀐 뒤 갤러커가 웨스트파이프에서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당원들은 오즈월드 모즐리의 영국 파시스트 연합에 맞선 거리 투쟁에 앞장섰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국제여단 영국 대대를 조직했다.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 뒤 코민테른이 전쟁을 양쪽 모두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자 당 중앙위원회도 반전 노선으로 돌아섰고, 이에 반대한 서기장 해리 폴릿은 물러나고 라자니 팔메 더트가 그 자리를 이었다.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당은 전쟁 지지로 돌아섰고 폴릿이 복귀했다. 당원 수는 1943년 약 6만 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1945년 총선에서 영어 출처는 10만 3천 표, 러시아어 출처는 9만 7945표를 얻었다고 적으며, 2명이 당선되었으나 1950년 총선에서 모두 의석을 잃었다. 1951년 평화적 이행을 내세운 강령 『영국의 사회주의 길』을 내놓았다.

1956년 소련의 헝가리 혁명 진압을 지지한 뒤 당은 큰 손실을 입었다. 영어 출처는 당원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을, 러시아어 출처는 7천 명 이상을 잃었다고 적는다. 『데일리 워커』 특파원 피터 프라이어는 기사가 실리지 않자 사직했고 당에서 제명되었다. 이후 당은 노동조합 내 기반을 이용해 노동당을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압력 단체처럼 활동했다. 1970년대 유로코뮤니즘 세력과 친소 세력의 갈등 속에 1977년 신공산당, 1988년 영국 공산당(Communist Party of Britain)이 갈라져 나갔다. 소련 해체 뒤인 1991년 11월 제42차 대회에서 당명을 민주좌파로 바꾸었고, 니나 템플이 이끈 지도부가 당을 해산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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