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Kritik des Hegelschen Staatsrechts, 1843; Einleitung, 1844) · 1843.03–1844

헤겔 법철학 비판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

카를 마르크스가 1843년 3~8월, 주로 여름의 크로이츠나흐에서 헤겔 『법철학 강요』의 국가론을 한 절씩 따져 쓴 원고와, 1843년 말부터 1844년 1월까지 쓰고 1844년 파리의 『독불연보』에 발표한 「서설」을 함께 이르는 이름. 원고는 헤겔이 이념을 주어로, 가족과 시민사회 같은 현실의 주체를 술어로 뒤바꿨다고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모든 헌법의 풀린 수수께끼”라고 불렀다. 「서설」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구절과 함께, 철학이 머리이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심장인 인간 해방을 처음으로 선언했다. 원고는 마르크스 생전에 출간되지 않았고 1927년에야 처음 활자로 나왔다.

상세

왜 마르크스는 헤겔의 국가론부터 비판했나?

마르크스는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 자기 사상의 출발점을 이렇게 돌아보았다. 1842~1843년 《라인 신문》 편집자로 일하며 산림 절도에 관한 라인 주의회 토론과 모젤 농민의 처지 같은 이른바 ‘물질적 이해관계’에 대해 말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고, 신문이 폐간 선고를 받자 그는 공적 무대에서 서재로 물러났다. “나를 덮친 의문을 풀기 위해 착수한 첫 작업은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였다. 그 작업의 서설은 1844년 파리에서 나온 『독불연보』에 실렸다.”

그 결과도 같은 글에 요약되어 있다. 법적 관계와 국가 형태는 그 자체로도, 이른바 인간 정신의 일반적 발전으로도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물질적 생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헤겔은 그 생활 관계의 총체를 18세기 영국인과 프랑스인을 따라 ‘시민사회’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그런데 시민사회의 해부는 정치경제학에서 찾아야 한다.”

Meine Untersuchung mündete in dem Ergebnis, daß Rechtsverhältnisse wie Staatsformen weder aus sich selbst zu begreifen sind noch aus der sogenannten allgemeinen Entwicklung des menschlichen Geistes, sondern vielmehr in den materiellen Lebensverhältnissen wurzeln, … daß aber die Anatomie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in der politischen Ökonomie zu suchen sei.

이 짧은 회고가 이 원고의 자리를 정확히 알려 준다. 헤겔 국가론과의 씨름은 마르크스를 시민사회로, 시민사회에서 다시 정치경제학으로 이끌었고, 그 길의 다음 정거장이 이듬해의 『경제학-철학 수고』다.

1843년 원고는 헤겔의 무엇을 뒤집었나?

크로이츠나흐 원고는 39장의 원고지로 남았고 첫 장은 사라졌다. 남은 부분은 헤겔 『법철학 강요』의 국가 대목(§261 이하)을 한 절씩 옮겨 적고 그 밑에 논평을 다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마르크스가 겨냥한 것은 헤겔이 현실을 이념의 산물로 서술하는 방식, 그가 “논리적·범신론적 신비주의”라고 부른 것이다. 헤겔에게 가족과 시민사회는 현실적 이념이 자기 유한성 속으로 나누어 놓은 영역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정반대로 읽는다. “가족과 시민사회가 스스로를 국가로 만든다. 그들이 움직이는 힘이다.” 그런데 헤겔에게서는 조건이 조건 지어진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규정되는 것으로 둔갑한다.

Wichtig ist, daß Hegel überall die Idee zum Subjekt macht und das eigentliche, wirkliche Subjekt, wie die »politische Gesinnung«, zum Prädikat.

“중요한 것은 헤겔이 어디서나 이념을 주어로 만들고, 본래의 현실적 주어를 술어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것은 포이어바흐가 『기독교의 본질』에서 신학에 쓴 방법, 곧 주어와 술어를 뒤집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방법을 국가 철학에 옮긴 것이다. 원고는 이어서 군주권, 관료제, 신분제 의회를 차례로 다루며, 헤겔이 이성적 국가의 필연적 계기로 정당화한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의 제도들을 하나씩 해체한다.

민주주의는 왜 “모든 헌법의 풀린 수수께끼”인가?

원고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은 군주정과 민주주의를 비교하는 부분이다. “군주정에서 우리는 헌법의 인민을 갖고, 민주주의에서는 인민의 헌법을 갖는다. 민주주의는 모든 헌법의 풀린 수수께끼다.” 민주주의에서는 헌법이 현실의 인간, 현실의 인민이라는 자기 근거로 늘 되돌아가 인민 자신의 작품으로 놓인다. 마르크스는 여기서도 종교 비판과 나란히 논증한다.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만들듯, 헌법이 인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헌법을 만든다.”

Die Demokratie ist das aufgelöste Rätsel aller Verfassungen.

다만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의회 정체 하나를 가리키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공화국 역시 특수한 국가 형태일 뿐이며 그 안에서 정치적 인간은 비정치적인 사인(私人)과 나란히 따로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새로운 프랑스인들은 참된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적 국가가 사라진다고 이해했다”는 말을 덧붙인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자체를 넘어서는 방향이 이미 비치는 셈이다. 이 원고는 마르크스 생전에 출간되지 않았고, 1927년 모스크바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의 첫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 권에서 처음 활자로 나왔다.

「서설」은 어떤 글이고 왜 그렇게 유명한가?

1843년 가을 마르크스는 아르놀트 루게와 함께 파리에서 『독불연보』를 내기로 하고 이주했다. 1844년 2월 한 번 나오고 끝난 이 잡지(두 호를 합친 한 권)에 마르크스는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와 함께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을 실었다. 크로이츠나흐 원고의 서론으로 쓰였지만 내용은 그보다 훨씬 멀리 나간다.

글은 “독일에서 종교 비판은 본질적으로 끝났고, 종교 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종교를 만든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 밖에 웅크린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국가이고 사회이며, 이 국가와 사회가 뒤집힌 세계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뒤집힌 세계의식을 낳는다. 그다음이 유명한 대목이다. “종교적 비참은 현실의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의 비참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고, 심장 없는 세계의 심정이며,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Die Religion ist der Seufzer der bedrängten Kreatur, das Gemüt einer herzlosen Welt, wie sie der Geist geistloser Zustände ist. Sie ist das Opium des Volkes.

이 구절은 흔히 종교를 깔보는 말로 인용되지만 앞뒤를 보면 결이 다르다. 종교는 거짓말이기 전에 고통의 표현이고 항의이며, 그래서 종교를 없애는 길은 종교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필요한 상태를 없애는 것이다. “비판은 사슬에 달린 상상의 꽃을 뜯어냈다. 인간이 환상도 위안도 없는 사슬을 차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사슬을 벗어던지고 살아 있는 꽃을 꺾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비판은 땅의 비판으로,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으로, 신학의 비판은 정치의 비판으로” 바뀐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아편’이라는 표현이 하인리히 하이네의 말을 날카롭게 다듬은 것이라고 적는다.

「서설」은 왜 프롤레타리아트를 불러냈나?

「서설」의 후반부는 철학 비판이 어떻게 실천이 되는가를 묻는다. “비판의 무기는 물론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으로 무너뜨려야 한다. 그러나 이론도 대중을 사로잡는 순간 물질적 힘이 된다.” 이론은 근본적일 때, 곧 사태를 뿌리에서 붙잡을 때 대중을 사로잡는데, “인간에게 뿌리는 인간 자신이다.” 종교 비판은 인간이 인간에게 최고의 존재라는 가르침으로 끝나고, 그래서 인간을 비천하고 예속되고 버림받고 경멸당하는 존재로 만드는 모든 관계를 뒤엎으라는 정언명령으로 끝난다.

Die Waffe der Kritik kann allerdings die Kritik der Waffen nicht ersetzen, die materielle Gewalt muß gestürzt werden durch materielle Gewalt, allein auch die Theorie wird zur materiellen Gewalt, sobald sie die Massen ergreift.

그렇다면 뒤처진 독일에서 해방의 가능성은 어디 있는가? 마르크스의 답은 “근본적 사슬에 묶인 계급, 시민사회의 계급이면서 시민사회의 어떤 계급도 아닌 계급”, 특수한 부당함이 아니라 부당함 그 자체를 당하기에 특수한 권리를 내세우지 않는 계급, 인간의 완전한 상실이기에 인간을 완전히 되찾아야만 자기를 얻을 수 있는 계급이다. “사회의 이 해체가 하나의 특수한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 프롤레타리아트다.” 그리고 결론. “이 해방의 머리는 철학이고 심장은 프롤레타리아트다. 철학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양하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을 실현하지 않고는 자기를 지양할 수 없다.”

Der Kopf dieser Emanzipation ist die Philosophie, ihr Herz das Proletariat.

이것은 마르크스의 글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의 주체로 처음 등장한 장면이다. 아직 경제학적 분석이 아니라 철학적 논증이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이 빌려 쓰는 ‘물질적 무기’로 그려진다. 이 관계가 뒤집히는 것, 곧 계급의 현실적 처지에서 그 역사적 역할을 끌어내는 것은 1844년의 수고와 『신성가족』, 그리고 1845~1846년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다. 글의 끝 문장 “안팎의 모든 조건이 채워지면 독일의 부활의 날은 갈리아 수탉의 울음으로 알려질 것이다”는, 독일어 위키백과의 설명대로 철학을 해 질 녘에야 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견준 헤겔에 맞세운 이미지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web.archive.org
  4. web.archive.org
  5. web.archiv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