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heilige Familie, oder Kritik der kritischen Kritik. Gegen Bruno Bauer & Consorten · 1844.09–1845.02

신성가족

The Holy Family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44년 9~11월 파리에서 쓰고 1845년 2월 프랑크푸르트에서 펴낸 첫 공동 저작. 마르크스의 옛 스승 격인 브루노 바우어와 그 아우 에드가 등 청년헤겔파가 『일반 문예 신문』에서 펼친 ‘비판적 비판’을 조롱하며, 대중과 역사를 정신의 재료로만 보는 사변적 관념론에 맞서 현실의 인간과 계급에서 출발하는 ‘현실적 휴머니즘’을 내세웠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며 그 존재에 따라 역사적으로 무엇을 하도록 강제되느냐가 문제라는 명제가 여기서 나왔다. 제목 『신성가족』은 바우어 형제와 그 무리를 성가족에 빗댄 출판사의 제안이었다.

상세

왜 이런 제목이 붙었고 누구를 겨냥했나?

1844년 8월 말 엥겔스는 영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파리에 들러 마르크스와 처음으로 제대로 만났다. 두 사람은 이 만남에서 함께 책을 쓰기로 했고, 그 결과가 둘의 첫 공동 저작이다. 겨냥한 상대는 브루노 바우어였다. 베를린 시절 마르크스의 선배이자 스승 격이던 바우어는 아우 에드가 바우어 등과 함께 샤를로텐부르크에서 『일반 문예 신문』을 내며, 자기들의 ‘순수한 비판’만이 역사를 움직이고 ‘대중’은 정신의 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바우어가 ‘순수 비판’이라 부른 것을 ‘비판적 비판’이라는 말로 비꼬았다. 원래 원고의 제목은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이었고, 독일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1844년 12월 27일 출판사의 차하리아스 뢰벤탈이 『신성가족, 또는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 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당을 반박하여』라는 최종 제목을 제안했다. 바우어 형제와 추종자들을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족에 빗대어, 스스로를 구세주처럼 여기는 태도를 조롱한 것이다. 책은 1845년 2월 24일 프랑크푸르트의 문예출판사(J. 뤼텐)에서 나왔다.

엥겔스는 파리를 떠나기 전 자기 몫의 짧은 장들을 끝냈고, 나머지는 마르크스가 11월 말까지 썼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본문의 약 90%가 마르크스의 것이라고 적는다. 엥겔스는 자기가 “거의 아무것도” 쓰지 않았는데 저자로 이름이 올라간 것이 “기묘하다”고 하면서도, 책이 “훌륭하게 쓰였고 배꼽을 잡게 한다”고 평했다. 다만 너무 두껍고 일반 독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했다.

사변 철학의 ‘열매’ 비유는 무엇을 폭로하나?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제5장의 「사변적 구성의 비밀」이다. 마르크스는 사변 철학의 수법을 과일로 설명한다. 사과, 배, 딸기, 아몬드에서 나는 ‘과일’이라는 일반 관념을 만든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 추상 관념 ‘과일’이 내 밖에 존재하는 본질, 배와 사과의 참된 본질이라고 상상하면, 배가 배인 것, 사과가 사과인 것은 비본질적인 일이 되어 버린다.

Wenn ich mir aus den wirklichen Äpfeln, Birnen, Erdbeeren, Mandeln die allgemeine Vorstellung “Frucht” bilde, wenn ich weitergehe und mir einbilde, daß meine aus den wirklichen Früchten gewonnene abstrakte Vorstellung “die Frucht” ein außer mir existierendes Wesen, ja das wahre Wesen der Birne, des Apfels etc. sei, so erkläre ich – spekulativ ausgedrückt – “die Frucht” für die “Substanz” der Birne, des Apfels, der Mandel etc.

어려운 것은 그다음이다. 현실의 과일에서 추상 관념을 만들기는 쉽지만, 추상 관념에서 현실의 과일을 다시 만들어 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변 철학자는 ‘과일’이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별하며 움직이는 살아 있는 본질이어서, 사과에서는 사과다운 존재를, 배에서는 배다운 존재를 스스로 취한다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은 사과와 배가 있다고 말할 뿐이지만, 철학자는 같은 말을 사변적으로 하면서 자기의 추상적 지성으로 과일들을 창조하는 기적을 행한 셈이 된다. 이 장은 원래 바우어파의 셀리가가 외젠 쉬의 소설 『파리의 비밀』을 ‘비판적’으로 떠받든 서평을 비꼬는 대목인데, 마르크스는 그 수법이 헤겔 방법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1843년 원고에서 이념을 주어로, 현실을 술어로 만든다고 비판했던 것을 누구나 알아들을 비유로 바꾼 것이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정신인가 대중인가?

바우어는 지금까지의 역사적 행동이 실패한 것은 대중이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열광했기 때문이며, 참된 이념은 대중의 이해관계와 섞일 때 더럽혀진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이념’은 ‘이해관계’와 구별되는 한 언제나 망신을 당했다.” 역사 속에서 관철된 대중적 이해관계는 처음 세계 무대에 오를 때 이념 속에서 제 현실적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법이며, 역사적 행동이 철저해질수록 그것을 떠맡는 대중의 범위도 넓어진다.

Die “Idee” blamierte sich immer, soweit sie von dem “Interesse” unterschieden war.

같은 장에서 마르크스는 역사를 사람처럼 다루는 사고를 겨냥한다. “역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역사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지’ 않고 ‘싸움을 싸우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하고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오히려 인간,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 역사는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제 목적을 이루는 별개의 인격이 아니라 “자기 목적을 추구하는 인간의 활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장에는 프랑스 혁명을 둘러싼 논쟁과, 영국과 프랑스 유물론의 역사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그린 「프랑스 유물론에 대한 비판적 전투」도 들어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무엇을 말했나?

제4장에서 마르크스는 피에르조제프 프루동의 『재산이란 무엇인가』를 바우어파의 왜곡에서 옹호하며,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를 같은 사적 소유 세계의 두 형태로 분석한다. 사적 소유는 자기와 그 대립물인 프롤레타리아트를 함께 유지하도록 강제되는 긍정적 측면이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를 프롤레타리아트로 만드는 조건인 사적 소유를 지양하도록 강제되는 부정적 측면이다. 유산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는 같은 인간적 자기소외를 나타내지만, 앞의 계급은 그 소외 속에서 편안함과 확인을 느끼고, 뒤의 계급은 그 속에서 자기가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사회주의 저술가들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세계사적 역할을 맡기는 것은 프롤레타리아를 신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완성된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모든 인간다움이 실제로 벗겨져 있고, 현재 사회의 모든 생활 조건이 그 처지에 가장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집약되어 있으며, 그래서 절박한 궁핍에 떠밀려 이 비인간성에 맞서 일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명한 문장이 이어진다. “문제는 이런저런 프롤레타리아, 또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당장 무엇을 목표로 떠올리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이며, 그 존재에 따라 역사적으로 무엇을 하도록 강제될 것이냐다.”

Es handelt sich nicht darum, was dieser oder jener Proletarier oder selbst das ganze Proletariat als Ziel sich einstweilen vorstellt. Es handelt sich darum, was es ist und was es diesem Sein gemäß geschichtlich zu tun gezwungen sein wird.

1844년 초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의 ‘물질적 무기’였다. 여기서는 그 역할이 계급의 현실적 처지와 사적 소유의 운동 자체에서 도출된다. 영어 위키백과는 이 책이 뒷날 ‘허위의식’이라 불리게 될 개념을 일찍 다룬 저작이라고 소개한다.

계보 속에서 이 책은 어디에 있나?

머리말은 책의 목적을 이렇게 밝힌다. “독일에서 현실적 휴머니즘에게 정신주의, 곧 사변적 관념론보다 더 위험한 적은 없다. 그것은 현실의 개별적 인간 대신 ‘자기의식’이나 ‘정신’을 들어앉힌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바우어의 비판을 캐리커처로 재생산된 사변이자 독일 사변 철학의 넌센스가 정점에 이른 모습으로 보았고, 이 논쟁서를 앞세운 다음 각자 자기의 긍정적 견해를 독자적인 저술로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Der reale Humanismus hat in Deutschland keinen gefährlicheren Feind als den Spiritualismus oder den spekulativen Idealismus, der an die Stelle des wirklichen individuellen Menschen das “Selbstbewußtsein” oder den “Geist” setzt.

‘현실적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보여 주듯 이 책은 아직 포이어바흐의 그늘 안에 있다. 엥겔스는 1886년에 마르크스가 비판적 유보에도 불구하고 포이어바흐에게서 얼마나 깊이 영향을 받았는지는 『신성가족』에서 읽을 수 있다고 썼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이 책을 이행기의 저작으로 본다. 출간 직후인 1845년 봄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포이어바흐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는데, 이 전환에는 1844년 10월에 나온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가 던진 포이어바흐 비판이 작용했다. 흥미롭게도 『신성가족』은 바우어의 가까운 동료였던 슈티르너를 ‘일당’에 넣지 않고 비판에서 뺐다. 바우어는 1845년 비간트의 『계간지』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기를 오해했다고 반박했고, 마르크스는 짧은 반론을 낸 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바우어와 슈티르너를 ‘성 브루노’, ‘성 막스’라 부르며 이 논쟁을 이어 갔다. 레닌은 뒷날 이 책을 꼼꼼히 발췌하고 논평한 노트를 남겼고, 그것은 『철학 노트』에 실려 있다.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web.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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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lclassic.netlify.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