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재
Dasein
마르틴 하이데거가 1927년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가리키려고 쓴 핵심 용어. 독일어 Dasein은 원래 ‘존재·생존’을 뜻하는 일상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말에 붙은 전통적 선입견을 피하려고 ‘거기에(da) 있음(sein)’이라는 이 말을 골랐다. 현존재는 자기 존재가 언제나 문제가 되는 존재다. 이미 세계 속에 던져진 채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기획하며, 평소에는 익명의 ‘세상 사람’에 묻혀 살다가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본래적 삶을 붙잡을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이 분석을 그는 ‘기초존재론’이라 불렀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이를 마르크스주의와 잇는 ‘하이데거적 마르크스주의’를 시도했다.
상세
하이데거는 무엇을 물었나?
“하늘은 파랗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파랗다'의 뜻은 안다. 그런데 하늘이 '있다', 무엇이 무엇'이다'라고 할 때의 '있음', 곧 존재는 무엇일까?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묻지 않는 이 물음을 마르틴 하이데거는 철학의 첫 물음으로 되살렸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전통 형이상학이 늘 '존재하는 것들'(존재자)만 물으면서 존재 자체는 잊어 왔다고 보았다. 그는 이것을 '존재 망각'이라 불렀다. 그래서 1927년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 일반의 의미'를 묻는 존재 물음(Seinsfrage)을 다시 제기했다.
『존재와 시간』은 에드문트 후설이 펴내던 현상학 연보에 실렸고, 후설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나 계획한 2부는 나오지 않아 미완의 단편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20세기 철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왜 ‘인간’ 대신 ‘현존재’인가?
하이데거는 존재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그 물음을 던지는 존재자를 살펴야 한다고 보았다. 존재의 뜻을 묻고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라는 말을 피했다. 이성적 동물, 영혼과 육체, 인식하는 주체처럼 그 말에는 이미 수많은 이론적 선입견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독일어 일상어 Dasein을 골랐다. Dasein은 원래 ‘존재’, ‘생존’을 뜻하며, 글자 그대로는 ‘거기에(da) 있음(sein)’이다. 한국어로는 ‘현존재’로 옮긴다.
하이데거에게 현존재는 “그때마다 나 자신인” 존재자다. 다른 존재자와 달리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에서 바로 그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는” 존재다. 돌은 자기가 돌이라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사는 게 맞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존재는 언제나 이미 존재에 대한 막연한 이해를 갖고 있다. 하이데거의 분석은 바로 그 이해에서 출발한다.
같은 Dasein이라는 말을 헤겔은 전혀 다르게 썼다. 헤겔의 논리학에서 Dasein은 존재와 무의 통일로서 ‘규정된 존재’, 곧 다른 것과의 경계로 무엇이 되는 모든 ‘어떤 것’의 기본 규정이다.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가리킨다. 그러니 두 쓰임을 구별해야 한다.
세계-내-존재란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인간이 먼저 세계와 떨어진 ‘주체’로 있다가 나중에 대상을 인식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현존재는 처음부터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다. 망치로 못을 박는 목수를 생각해 보자. 그는 망치를 ‘무게 몇 그램의 쇳덩이’로 관찰하지 않는다. 망치는 못과 판자와 지으려는 집과 연결된 쓰임새의 그물 속에서 ‘손에 쥐어진 것’(zuhanden)으로 있다. 망치가 부러져서야 비로소 그것은 그냥 ‘눈앞에 있는 것’(vorhanden)으로 눈에 들어온다.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세계와 맺는 이런 근본 관계를 ‘마음씀’(Sorge)이라 불렀다. 이 말은 걱정이라는 일상적 뜻과는 겉으로만 닿아 있다. 현존재가 늘 이미 세계 속에서 사물과 사람에게 관여하고 있다는 존재 구조를 가리킨다. 그는 이 개념으로 후설의 이론적인 지향성 개념에도 맞섰다. 인간은 세계를 바라보며 인식하기 전에, 먼저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다루며 산다는 것이다.
피투성과 기획은 무엇인가?
하이데거의 분석에 따르면 현존재에게는 세 가지 계기가 있다. 첫째, 현존재는 늘 ‘이미 세계 안에’ 있다. 우리는 태어날 나라도 언어도 시대도 고르지 않았다. 이렇게 이미 주어진 상황에 던져져 있음을 ‘피투성’(Geworfenheit)이라 한다. 둘째, 현존재는 ‘자기를 앞질러’ 있다. 주어진 세계를 이해하면서 가능성을 붙잡거나 버리며 자신을 미래로 던진다. 이것이 ‘기획’(Entwurf)이다. 셋째, 현존재는 늘 눈앞의 사물과 사람들 ‘곁에’ 있으며 거기에 빠져 있다. 이것이 ‘빠져 있음’(Verfallenheit)이다.
‘세상 사람’(das Man)이란 무엇인가?
“요즘 다들 그렇게 해”,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라는 말을 떠올려 보자. 하이데거에 따르면 우리는 평소 ‘남들’처럼 즐기고, 남들이 판단하는 대로 책과 예술을 판단하며, 남들이 물러서는 데서 물러선다. 여기서 ‘남들’은 특정한 누구도 아니다. 하이데거는 이 익명의 주체를 ‘세상 사람’(das Man)이라 불렀다. 세상 사람은 남다른 것을 평평하게 깎아 낸다. 하이데거는 이 기능을 ‘공공성’(Öffentlichkeit)이라 불렀다. 그의 짧은 표현으로 하면 “누구나 타인이고, 아무도 자기 자신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세상 사람에게 내맡겨진 상태를 ‘비본래적’ 실존이라 불렀다. 그것이 인간의 평균적인 출발 상태라고 보았다. 반대로 자기 삶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것이 ‘본래적’ 실존이다. 같은 독일어 Öffentlichkeit를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성적 토론의 공간인 ‘공론장’으로 썼으니, 두 사람의 평가는 정반대인 셈이다.
죽음을 향한 존재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을 세상 사람에게서 끌어내는가? 하이데거는 불안과 죽음을 든다. 불안 속에서 세상의 익숙한 의미들은 갑자기 무너지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던져진다. 죽음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언제나 ‘나의’ 죽음이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를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라고 규정한다. 죽음을 미리 앞당겨 마주할 때, 현존재는 자기 삶이 과거와 미래를 가진 하나의 전체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남들이 정한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결단하는 ‘본래적’ 삶을 붙잡을 수 있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 의미를 ‘시간성’에서 찾았다. 그러나 거기서 시간 일반의 개념을 끌어내려던 지점에서 책은 끊긴다.
왜 ‘기초존재론’이라 부르나?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 구조를 분석하는 이 작업을 ‘기초존재론’(Fundamentalontologie)이라 불렀다. 존재의 의미를 묻는 모든 존재론에 바탕을 마련해 준다는 뜻이다. 이론을 덧씌우지 않으려고 그는 일상 속의 현존재에서 출발하고, 현상학적 기술에 해석학적 해석을 결합했다.
그러나 그는 이 길을 끝까지 걷지 않았다. 이른바 ‘전회’(Kehre) 뒤에 하이데거는 모든 존재를 현존재로 되돌리는 방식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라고 보았다. 그 대신 존재를 존재 자체에서 생각하려 했고, 이것이 ‘존재의 역사’라는 구상으로 이어졌다.
마르쿠제는 왜 하이데거에게서 마르크스주의의 토대를 찾았나?
『존재와 시간』이 나온 이듬해인 1928년,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프라이부르크로 가서 후설과 하이데거에게 배웠다. 그는 하이데거의 조교로 일하며 그의 가까운 제자 무리에 들었다. 1928~1932년 그가 밀고 나간 작업은 ‘하이데거적 마르크스주의’ 또는 ‘현상학적 마르크스주의’라 불린다.
배경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있었다. 20세기 초 마르크스가 예견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지 않았고, 유럽 곳곳의 혁명 시도는 실패했다. 마르쿠제는 혁명이 왜 일어나지 않는지, 혁명적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할 철학적 토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하이데거의 ‘구체적 철학’에서 그 실마리를 보았다. 역사성을 현존재의 근본 규정으로 보는 하이데거의 생각이 기존 역사의 ‘해체’를 요구한다는 점도 그를 끌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마르쿠제를 ‘최초의 하이데거 마르크스주의자’라 불렀다.
하지만 마르쿠제는 처음부터 하이데거의 개인주의와, 역사를 물질적으로 구성하지 못하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하이데거 밑에서 헤겔의 존재론과 역사성 이론으로 교수 자격을 얻으려 했지만, 하이데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32년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가 처음 출간되자 마르쿠제는 이를 곧바로 분석했다. 이후 ‘소외된 노동’은 그의 마르크스 해석의 출발점이 되었다. 같은 1932년 그는 하이데거의 민족사회주의 쪽 기울어짐 때문에 그와 갈라섰다. 하이데거가 민족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에 공식 입당한 것은 1933년 5월 1일이다.
마르쿠제는 하이데거를 어떻게 비판했나?
훗날 마르쿠제는 하이데거의 현존재가 ‘사회학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중립적인’ 범주라고 비판했다. 1977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한 개인이 자본주의의 어떤 단계에서, 혹은 사회주의 아래에서, 어느 계급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하는 차원이 하이데거에게는 통째로 빠져 있다. 하이데거의 개인들은 계급과 노동과 여가가 남긴 상처에서 깨끗이 씻겨 있고, 날마다의 저항이나 해방을 향한 노력의 흔적도 없다. ‘세상 사람’은 사회 현실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이데거의 구체성이 상당 부분 “가짜, 거짓 구체성”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 비판은 현상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잇는 시도 전체에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인간의 실존 구조를 분석하면서 그 인간이 처한 계급과 노동의 조건을 빼 버리면, 분석은 다시 추상으로 돌아간다. 체코의 카렐 코시크가 『구체성의 변증법』(1963)에서 하이데거와 마르크스를 다시 맞물리게 하려 한 것도 이 문제와 씨름한 결과다.
다른 비판은 무엇이었나?
『존재와 시간』은 문체부터 공격받았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는 하이데거 식 문체를 『본래성이라는 은어』(Jargon der Eigentlichkeit, 국내 미번역)라고 불렀다. 그는 ‘마음씀’ 같은 일상어를 암시적으로 바꿔 써서 특정한 사고방식을 퍼뜨린다고 비판했다. 한스 에벨링은 현존재와 세상 사람을 날카롭게 맞세운 데서 반사회적 경향을 읽었다. 무라트 아테스는 다른 점을 지적했다. 세상 사람이 익명의 ‘아무도 아닌 자’라고 해서 사회적 차이와 권력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세상 사람 안에서도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해석은 더 날카롭게 갈린다. 세상 사람과 일상의 ‘잡담’에 대한 경멸, 본래성에 대한 호소를 근대 비판, 대중 사회의 익명성 비판, 자유민주주의 비판이라는 정치적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에마뉘엘 파예 등은 『존재와 시간』이 나치즘과 반유대주의의 개념을 존재론으로 포장했다고 주장했다. 토머스 시핸은 이를 “명백히 틀린 주장”이라고 거세게 반박했다. 하이데거가 1933년 민족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에 입당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일한 것은 기록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와 시간』의 개념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해석의 문제로 남아 있다. 이 논쟁은 하이데거의 「검은 노트」 항목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