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
Dialectics
사물과 생각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모순과 대립을 통해 움직이고 발전하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사고 방법. 고대 그리스에서는 대화로 진리를 찾는 기술이었으나 헤겔이 모순을 모든 운동의 원동력으로 보는 철학으로 바꾸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이 “머리로 서 있다”며 이를 뒤집어 “신비한 껍질 속의 합리적 핵심”을 살려 냈고, 레닌은 변증법을 마르크스주의가 독일 고전철학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상세
‘변증법’이라는 말은 어디서 왔나?
변증법의 그리스어 원어 디알렉티케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왔다. 플라톤이 그린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에서처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말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리에 다가가는 기술이 변증법이었다. 한쪽의 주장(정립)에 맞서 반대 주장(반정립)이 나오고, 이것이 처음 주장을 제한하거나 바로잡아 잘되면 두 견해를 아우르는 종합에 이른다. 흔히 ‘정·반·합’이라고 하는 도식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근대에 와서 칸트는 이성이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 할 때 빠져드는 풀 수 없는 모순(이율배반)을 ‘변증론’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었다. 피히테는 이를 적극적인 방법으로 돌려, ‘나’가 스스로를 세우고(정립) ‘나 아닌 것’과 맞서며(반정립) 그 긴장을 종합으로 푸는 세 단계로 현실이 구성된다고 보았다.
헤겔의 변증법은 무엇이 새로웠나?
헤겔은 변증법을 대화의 기술에서 개념과 세계 자체가 움직이는 원리로 바꾸었다. 그에게 모순은 생각의 실수가 아니라 모든 운동과 생명의 뿌리다. 어떤 개념이나 존재의 형태도 따져 보면 한쪽으로 치우쳐 있음이 드러나 자기 반대로 넘어가고, 그 모순이 풀리면서 앞 단계를 품은 더 높은 단계가 나온다. 헤겔은 이 과정을 ‘지양’(아우프헤붕)이라 불렀는데, 이 독일어 낱말은 ‘없애다’, ‘보존하다’, ‘들어 올리다’라는 세 뜻을 함께 지닌다. 헤겔은 만물이 대립의 투쟁 속에 있다고 본 고대의 헤라클레이토스를 자기 뜻에서의 이른 변증법가로 여겼다.
헤겔은 1807년 『정신현상학』 머리말에서 식물의 비유로 이를 보여 주었다. “꽃봉오리는 꽃이 피어나면서 사라지며, 꽃봉오리가 꽃에게 반박당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열매에 의해 꽃은 식물의 그릇된 존재라고 선언되고, 열매가 꽃 대신 식물의 진리로 들어선다.” 이 형태들은 서로 밀어내지만 “그 유동적 본성 때문에 동시에 유기적 통일의 계기”가 되며, 하나하나가 똑같이 필요하다는 데서 비로소 전체의 생명이 이루어진다.
Die Knospe verschwindet in dem Hervorbrechen der Blüte, und man könnte sagen, daß Jene von dieser widerlegt wird; ebenso wird durch die Frucht die Blüte für ein falsches Dasein der Pflanze erklärt, und als ihre Wahrheit tritt jene an die Stelle von dieser.
한 가지 오해는 바로잡아 둘 필요가 있다. ‘정·반·합’은 헤겔 변증법의 공식처럼 널리 퍼졌고 카를 포퍼 같은 비판자들도 그렇게 소개했지만, 헤겔 자신은 이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정신현상학』 머리말에서 칸트가 되살린 삼분법을 형식적으로 적용하면 그것이 “생기 없는 도식”이 되고 학문의 조직이 “표”로 떨어진다고 경계했다.
durch den wir sie zum leblosen Schema, zu einem eigentlichen Schemen, und die wissenschaftliche Organisation zur Tabelle herabgebracht sehen
마르크스는 무엇을 ‘뒤집었나’?
마르크스는 1873년 1월 『자본론』 제2판 후기에서 자신의 방법을 헤겔과 대비해 밝혔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그 근본에서 헤겔의 방법과 다를 뿐 아니라 그것과 정반대다.” 헤겔에게는 그가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독립된 주체로까지 만든 사유 과정이 현실을 만들어 내는 조물주이고 현실은 그 겉모습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거꾸로 관념적인 것이란 사람의 머릿속에 옮겨지고 번역된 물질적인 것일 뿐이다.”
Meine dialektische Methode ist der Grundlage nach von der Hegelschen nicht nur verschieden, sondern ihr direktes Gegenteil.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헤겔을 버린 것은 아니다. 당시 독일 교양층이 헤겔을 “죽은 개”로 취급할 때 그는 오히려 “그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임을 공공연히 밝혔다. 헤겔의 손에서 변증법이 신비화되었어도, 헤겔이 변증법의 일반적인 운동 형태를 처음으로 포괄적이고 의식적으로 서술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문장이 이어진다. “변증법은 그에게서 머리로 서 있다. 신비한 껍질 속의 합리적 핵심을 찾아내려면 그것을 뒤집어야 한다.”
Sie steht bei ihm auf dem Kopf. Man muß sie umstülpen, um den rationellen Kern in der mystischen Hülle zu entdecken.
신비화된 형태의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미화하는 듯했기에 독일에서 유행했다. 그러나 합리적 형태의 변증법은 부르주아지에게 골칫거리다. 그것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부정, 그것의 필연적 몰락까지 이해하며, “생겨난 모든 형태를 운동의 흐름 속에서, 따라서 그 덧없는 측면에서도 파악하고, 무엇에도 위압당하지 않으며, 그 본질상 비판적이고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같은 생각을, 세계를 “완성된 사물들의 복합체가 아니라 과정들의 복합체”로 보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마르크스가 이 방법을 실제로 쓴 곳이 『자본론』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세포 형태’인 상품에서 출발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내적 모순을 찾아내고, 그 모순이 화폐, 자본, 잉여가치로 형태를 바꾸어 가며 펼쳐지는 과정을 추적했다.
엥겔스의 ‘변증법의 세 법칙’은 무엇인가?
엥겔스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역사에서 변증법의 법칙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보고, 미완성 원고 『자연변증법』에서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 양이 질로, 질이 양으로 바뀌는 법칙
- 대립물이 서로 침투하는 법칙
- 부정의 부정의 법칙
das Gesetz des Umschlagens von Quantität in Qualität und umgekehrt;
das Gesetz von der Durchdringung der Gegensätze;
das Gesetz von der Negation der Negation.
엥겔스에 따르면 이 셋은 모두 헤겔이 이미 『논리학』에서 관념론적 방식으로, 곧 순수한 사유의 법칙으로 펼쳐 놓았다. 헤겔의 잘못은 “이 법칙들을 사유의 법칙으로서 자연과 역사에 덮어씌웠을 뿐 자연과 역사에서 끌어내지 않은 데” 있다는 것이다. 변증법을 자연에까지 넓힌 엥겔스의 이 시도는 오랜 ‘엥겔스 논쟁’을 불렀다. 비판자들은 그가 마르크스의 역사적 방법을 경직된 형이상학 체계로 바꾸었다고 보았고, 옹호자들은 두 사람이 공유한 유물론적 세계관을 일관되게 넓힌 것이라고 보았다.
변증법과 변증법적 유물론은 어떻게 다른가?
변증법은 고대의 대화술에서 헤겔과 마르크스, 20세기의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이르기까지 여러 철학이 저마다 다르게 쓴 방법과 개념의 이름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 가운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비판적으로 결합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가리키며, 이 이름은 마르크스가 죽은 뒤 플레하노프가 정착시켰다. 소련에서 ‘디아마트’로 제도화된 과정과 스탈린의 1938년 정식화가 부정의 부정을 뺀 문제는 변증법적 유물론 항목에서 다룬다.
레닌은 1913년 변증법을 “가장 완전하고 깊으며 일면성에서 벗어난 형태의 발전에 관한 학설”이자 “끝없이 발전하는 물질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는 인간 지식의 상대성에 관한 학설”이라고 규정했다. 이 사전에서 변증법을 따로 다루는 것은, 헤겔에서 마르크스로 건너가는 이 방법의 역사 자체가 마르크스주의의 계보를 이해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учение об относительности человеческого знания, дающего нам отражение вечно развивающейся матери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