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액지대와 절대지대
Differential rent and absolute rent
마르크스가 『자본』 제3권 제6편에서 전개한 자본주의적 지대 이론의 두 범주. 자본주의 농업에서 지대는 차지농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짜낸 잉여가치 가운데 평균이윤을 넘는 초과이윤이 토지 소유자에게 넘어간 것이다. 차액지대는 토지의 비옥도나 위치, 같은 땅에 거듭 투하한 자본의 생산성 차이에서 생긴다. 시장가격은 가장 나쁜 땅의 생산가격으로 정해지므로 더 나은 땅에서는 초과이윤이 생기고 그것이 지대가 된다. 절대지대는 가장 나쁜 땅도 공짜로 빌려주지 않는 토지 소유의 독점 때문에 생긴다. 마르크스는 농업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사회 평균보다 낮아 농산물의 가치가 생산가격보다 높고, 토지 소유가 이윤율 균등화를 가로막아 그 차이의 전부나 일부가 지대로 남는다고 설명했다.
상세
지대는 누가 누구에게 내는 돈인가?
마르크스가 다루는 것은 자본주의 농업이다. 땅 주인은 땅을 차지농 자본가에게 빌려주고, 차지농은 농업 노동자를 고용해 이윤을 얻으려 경작한다. 차지농은 계약 기간 동안 땅을 쓰는 대가로 땅 주인에게 돈을 내는데, 이것이 지대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쓴다. “그러므로 여기서 지대는 토지 소유가 경제적으로 실현되고 가치를 낳는 형태다.” 그리고 여기서 근대 사회의 틀을 이루는 세 계급, 곧 임금노동자, 산업자본가, 토지 소유자가 함께 서로 마주 선다.
Die Grundrente ist also hier die Form, worin sich das Grundeigentum ökonomisch realisiert, verwertet.
땅 자체는 노동의 산물이 아니어서 가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땅 주인이 돈을 받는가? 마르크스의 답은 지대가 농업에서 생산된 잉여가치 가운데 평균이윤을 넘는 부분, 곧 초과이윤이라는 것이다. 차지농은 다른 산업처럼 평균이윤만 챙기고 나머지를 땅 주인에게 넘긴다. 그러므로 지대론은 생산가격과 평균이윤의 이론 위에 서 있다.
차액지대는 어떻게 생기나?
마르크스는 먼저 공업의 예로 원리를 보인다. 대부분의 공장은 증기기관을 쓰고 몇몇 공장만 자연 폭포의 수력을 쓴다고 하자. 증기를 쓰는 공장에서 자본 100을 들여 만든 상품의 생산가격이 115이고, 이것이 시장가격을 정한다. 폭포를 쓰는 공장은 연료가 들지 않아 같은 상품을 비용 90에 만든다. 그러면 이 공장은 115에 팔아 25의 이윤을 얻는데, 평균이윤 15를 넘는 10은 초과이윤이다. 이 초과이윤은 공장주의 솜씨가 아니라 독점할 수 있는 자연 조건에서 나오므로 결국 폭포 주인의 몫이 된다. “이런 사정에서 초과이윤은 지대로 바뀐다. 곧 폭포의 소유자에게 돌아간다.”
Unter diesen Umständen verwandelt sich der Surplusprofit in Grundrente, d.h. er fällt dem Eigentümer des Wasserfalls zu.
땅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의 예에서 비옥도가 다른 네 땅 A, B, C, D가 있고 밀 1쿼터 값이 60실링이다(숫자는 마르크스의 설명용 가정이다). 가장 나쁜 땅 A는 50실링을 들여 1쿼터 = 60실링을 거두니 이윤은 10실링, 곧 20%다. 같은 50실링을 들여 B는 2쿼터 = 120실링을 거두어 초과이윤이 60실링, C는 3쿼터 = 180실링으로 초과이윤이 120실링, D는 4쿼터 = 240실링으로 초과이윤이 180실링이다. 밀값은 가장 나쁜 땅 A의 생산가격으로 정해지므로 A는 지대를 내지 못하고, B, C, D의 초과이윤이 각각 지대가 된다. 이것이 비옥도나 위치의 차이에서 생기는 차액지대 I이다. 같은 땅에 자본을 거듭 투하해 생산성이 달라지는 데서 생기는 지대를 마르크스는 차액지대 II라 불렀다.
D gebe 4 qrs. = 240 sh. = 180 sh. Surplusprofit.
고전파 경제학은 지대를 어떻게 보았나?
차액지대의 원리는 마르크스가 처음 찾아낸 것이 아니다. 토머스 맬서스, 데이비드 리카도, 로버트 토런스, 에드워드 웨스트가 1815년 2월 잇따라 낸 팸플릿에서 처음 분명하게 분석했고, 그보다 앞서 제임스 앤더슨이 있었다. 리카도는 웨스트와 맬서스를 지대론의 발견자로 보았고, 마르크스는 앤더슨의 1777년 글을 지목했다. 리카도는 지대가 농산물 가격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언제나 지대를 내지 않는 경작지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이론을 토대로 받아들이되, 가장 나쁜 땅에도 지대가 붙는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는 또 노동지대(부역), 생산물지대, 화폐지대를 거쳐 자본주의적 지대에 이르는 지대의 역사적 형태도 구별했다.
절대지대는 무엇인가?
현실에서는 가장 나쁜 땅의 주인도 땅을 공짜로 빌려주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비옥도 차이와도, 같은 땅에 거듭 투하한 자본과도 상관없는 지대, “차액지대와 개념상 구별되는 지대, 그러므로 우리가 절대지대라고 부를 수 있는 지대”로 설명한다.
einer von der Differentialrente begrifflich unterschiednen Rente, die wir daher als absolute Rente bezeichnen können.
그의 숫자 예는 이렇다(마르크스의 설명용 가정이다). 비농업 사회자본의 평균 구성이 85c+15v이고 잉여가치율이 100%라면 생산가격은 115다. 농업 자본의 구성이 75c+25v라면 같은 잉여가치율에서 농산물의 가치는 125다. 농업은 기계보다 손노동을 많이 써서 같은 자본으로 더 많은 잉여가치를 만들기 때문이다. 공업이라면 이 차이 10은 이윤율 균등화를 통해 다른 부문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땅에 자본을 투하하려면 먼저 땅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토지 소유는 바로 그 존재 때문에 자본의 투하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그래서 농산물은 생산가격 115가 아니라 가치 125 가까이에서 팔릴 수 있고, 그 차이의 전부나 일부가 절대지대가 된다. 거꾸로 마르크스는 농업 자본의 구성이 사회 평균과 같거나 더 높아지면 이런 의미의 절대지대는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농산물이 가치보다 높은 독점가격으로 팔려서 생기는 지대는 이와 구별되는 독점지대다.
Wäre die Durchschnittszusammensetzung des agrikolen Kapitals dieselbe oder höher als die des gesellschaftlichen Durchschnittskapitals, so fiele die absolute Rente, immer in dem entwickelten Sinn, fort
이 이론은 어떤 의미가 있나?
지대론은 자본주의에서 잉여가치가 산업이윤, 이자, 지대로 나뉘는 방식을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땅 주인은 생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잉여가치 일부를 가져가고, 그 몫은 토지 소유라는 법적 권리에 기댄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토지 국유화나 지대 문제를 농업 문제, 도시 문제와 연결해 다루어 왔다. 다만 절대지대 이론은 농업의 유기적 구성이 공업보다 낮다는 역사적 전제에 기대므로, 농업 기계화가 진행된 뒤에는 그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