Эмпириомонизм · 1904–1906

경험일원론

Empiriomonism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가 1904~1906년 세 권의 『경험일원론』에서 세운 철학. 마흐와 아베나리우스의 경험비판론에서 출발하되 물리적 경험과 심리적 경험의 이원성을 넘어서려 했고, 물리적 세계를 ‘사회적으로 조직된 경험’, 진리를 ‘경험을 조직하는 형식’으로 보았다. 레닌과 플레하노프는 이를 관념론이라고 비판했고, 1909년 보그다노프가 볼셰비키에서 밀려나는 철학적 배경이 되었다. 보그다노프는 뒤에 이 생각을 보편 조직 과학인 텍톨로지로 넓혔다.

상세

보그다노프는 무엇을 하나로 묶으려 했나?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는 의사이자 경제학 교과서 저자였고, 1905년 혁명 무렵에는 볼셰비키 안에서 레닌 다음가는 지도자였다. 그는 1904년부터 1906년까지 『경험일원론』 세 권을 내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에른스트 마흐, 빌헬름 오스트발트,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의 철학과 결합하려 했다. 1937년 소련의 그라나트 백과사전은 이를 두고 보그다노프가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에서 ‘낡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대신하려 한 철학이라고 요약했다. 비판적인 정의이지만 보그다노프의 야심을 정확히 짚는다.

Эмпириомонизм, философия А. А. Богданова, которой он рассчитывал заменить в идеологии рабочего класса „устаревший“ диалектический материализм.

출발점은 경험비판론의 약점이었다. 마흐와 아베나리우스는 세계를 경험의 요소로 설명했지만, 경험에는 여전히 두 영역이 남았다. 바깥의 물리적 경험과 안의 심리적 경험이다. 같은 요소가 어떻게 한쪽에서는 물리 법칙을, 다른 쪽에서는 마음의 법칙을 따르는가? 보그다노프는 이 이원성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는 ‘일원론’을 원했고, 그 열쇠를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인 사회적 노동에서 찾았다. 그래서 이름이 ‘경험’과 ‘일원론’을 합친 경험일원론이다.

‘사회적으로 조직된 경험’이란 무엇인가?

보그다노프의 답은 이렇다. 개인의 경험은 우연하고 들쭉날쭉하다. 꿈, 착각, 개인적 기분이 섞여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말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의 경험이 맞춰지고, 누구에게나 같이 확인되는 부분이 골라진다. 이렇게 집단적으로 조정된 경험이 ‘물리적 세계’이고, 개인에게만 머무는 경험이 ‘심리적 세계’다. 물리적 세계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경험이라는 것이 경험일원론의 중심 명제다.

그러면 ‘객관성’은 무엇인가? 보그다노프는 1910년 『믿음과 과학』에서 자기 생각을 이렇게 다시 정리했다. 우리가 물리적 경험에 인정하는 “‘객관성’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것이 보편타당하다는 것”이며, 이는 그 경험이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집단적으로 조정된 결과다. 그가 든 예는 새 혜성을 처음 관측한 천문학자다. 천문학자는 그 혜성의 위치를 자기 시야가 아니라 물리적 공간 속에서, 운동을 태양의 중력과의 관계 속에서 정확히 정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았는지 따로 묻지 않고도 그것을 “보편타당한” 물리적 물체로 여길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인류가 수천 년 쌓아 온 노동 경험의 형식에 맞게 들어맞기 때문이다.

«объективность», которую мы за ним признаем, есть не что иное, как его общезначимость для людей

진리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된다. 진리는 영원히 고정된 명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을 조직하는 형식”으로, “우리 활동을 어디론가 이끌고 삶의 투쟁에 발판을 준다.” 보그다노프는 여기서 역사적 전망까지 끌어냈다. 원시 공동체에서는 경험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지만 계급 분열이 경험을 조각냈고, 공산주의 사회에서 경험의 일원성이 다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Истина – это живая, организующая форма опыта, она ведет нас куда-нибудь в нашей деятельности, дает точку опоры к жизненной борьбе

‘치환’은 무엇인가?

경험일원론의 다른 절반은 ‘치환’ 이론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표정과 말을 보고 그 뒤에 그 사람의 경험이 있다고 여긴다. 직접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것 아래 ‘치환해 넣는’ 것이다. 보그다노프는 이 조작을 넓혀, 물리적 현상 아래에는 그것과 비슷한 경험의 복합을 치환해 넣을 수 있지만 심리적 현상은 이미 직접 주어진 복합이므로 그 아래에 아무것도 치환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1937년 그라나트 백과사전의 설명으로는 치환은 같은 낱말(‘상징’)에 지식의 성장과 함께 바뀌는 서로 다른 내용을 담는 사유 방식이다. 보그다노프 자신은 1910년에 치환론이 “경험일원론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절반”이라고 썼다.

Конечно, теория подстановки еще не весь эмпириомонизм, но во всяком случае – половина эмпириомонизма

이렇게 해서 보그다노프는 세계를 하나의 사슬로 그렸다. 그가 직접 요약한 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는 발전의 사슬이며 그 낮은 고리는 요소들의 혼돈 속으로 사라지고”, 높은 고리로 올라가며 심리적 경험, 그 위에 물리적 경험, 그리고 거기서 생겨나는 인식이 놓인다.

он рассматривает все существующее, как непрерывную цепь развития, низшие звенья которой теряются в хаосе элементов

레닌과 플레하노프는 왜 이를 관념론이라 했나?

먼저 공격한 것은 플레하노프였다. 그는 1908년부터 《사회민주주의자의 목소리》에 보그다노프와 마흐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고, 뒤에 이 글들을 「전투적 유물론」(Materialismus militans)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의 한 절을 통째로 경험일원론에 바쳤다. 레닌이 보기에 보그다노프의 사슬은 순서가 거꾸로였다. 요소의 혼돈, 그다음 심리적 경험, 그다음 물리적 경험이라는 배열은 정신적인 것을 먼저 놓고 자연을 거기서 끌어내는 관념론의 순서다. 레닌은 이렇게 요약했다. “물리적인 것은 심리적인 것의 치환이라고 보그다노프는 말한다.” 피히테, 헤겔, 쇼펜하우어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관념론이라는 것이다.

Физическое есть подстановка психического, — говорит Богданов.

‘사회적으로 조직된 경험’이 객관성의 기준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레닌은 날카로운 반례를 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수백 년 동안 같은 믿음을 공유해 왔다면, 그것도 사회적으로 조직된 경험이 아닌가? “가톨릭이 사회적으로 조직된 경험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가톨릭이 반영하는 것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특정 계급의 지배다. 집단의 합의와 객관적 실재는 같지 않다는 것이 레닌의 요점이었다. 지구가 인류보다 먼저 있었다는 자연과학의 명제는 누구의 경험이 조직되기 전부터 참이었다.

И несомненно, что католицизм есть социально-организованный опыт

보그다노프는 1910년 『믿음과 과학』에서 반박했지만, 철학 논쟁은 이미 정치 투쟁과 겹쳐 있었다. 1909년 6월 볼셰비키 기관지 《프롤레타리》 편집부가 파리에서 연 회의에서 보그다노프는 레닌에게 지고 볼셰비키에서 축출되었다. 그 뒤 그는 루나차르스키 등과 전진파를 이루었고, 막심 고리키가 머물던 카프리섬에 노동자를 위한 당 학교를 열었다가 1910년 볼로냐로 옮겼다. 루나차르스키의 건신주의도 이 그룹의 철학적 분위기에서 나왔다.

경험일원론은 어디로 이어졌나?

보그다노프는 철학 논쟁에서 물러난 뒤에도 생각을 넓혀 갔다. 경험을 조직하는 문제는 1912~17년의 텍톨로지, 곧 자연과 사회의 모든 체계에 공통된 조직 법칙을 찾는 ‘보편 조직 과학’으로 이어졌다. 혁명 뒤 그는 1918~20년 프롤레트쿨트를 함께 세우고 그 이론가가 되었는데, 노동계급이 자기 경험을 스스로 조직하는 고유한 문화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경험일원론의 연장이었다. 니콜라이 부하린을 비롯한 다음 세대 볼셰비키 이론가들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소련에서 경험일원론의 평판은 레닌의 비판으로 정해졌다. 1937년 그라나트 백과사전은 “오늘날 이 이론은 완전히 과거의 것이 되었다”고 썼다. 그러나 이 평가는 책이 금서처럼 묻힌 결과이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소련의 사이버네틱스 연구자들이 텍톨로지를 재발견하면서 보그다노프의 사유 전체가 다시 읽히기 시작했고, 『경험일원론』은 2003년 모스크바에서 다시 출간되었으며 2019년에는 처음으로 영어 완역본이 나왔다.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теория эта полностью отошла в прошлое.

오늘날 경험일원론은 두 방향에서 읽힌다. 레닌의 비판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객관적 실재를 집단의 합의로 바꿔 놓은 관념론의 사례다. 반대로 지식사회학과 과학기술학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과학적 객관성이 사회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일찍이 밀고 나간 시도로 보인다. 어느 쪽이든 경험일원론은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인식의 사회적 성격’을 가장 급진적으로 밀어붙인 철학이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ru.wikisource.org
  4. libking.ru
  5. leninism.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