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믿음과 과학』

인물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블라디미르 레닌,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프리드리히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 에른스트 마흐,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 요제프 디츠겐, 블라디미르 바자로프,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막심 고리키, 이마누엘 칸트, 데이비드 흄, 조지 버클리,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카를 카우츠키, 프란츠 메링, 아브람 데보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블라디미르 푸리슈케비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용어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반뒤링론, 건신주의, 전진파

믿음과 과학의 투쟁은 수 세기에 걸쳐 더없이 다양하고 때로는 기묘하기까지 한 형태를 취해 왔다. 과거의 정신과 미래의 정신은 둘 다 전술에서 똑같이 교활하고 기발하다. 지극히 복잡한 우회 기동, 보이지 않게 파 들어가는 갱도, 종잡을 수 없는 매복지에서의 기습, 적진에 숨어들어 그곳에 혼란의 씨를 뿌리는 기만술, 교묘한 변장 —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종교적 사유와 과학적 사유의 투쟁의 역사에서 만난다. 이 투쟁은 거대한 동요와 위기의 시대에 특히 복잡해지며, 그때에는 그 곡절의 환상성과 뒤얽힘으로 가장 흥미진진한 모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는 이데올로기 전쟁에서의 전략과 전술을 비교 분석하는 역사가가 나타날 것이고, 어쩌면 서로 싸우는 이념들의 “변신 이야기”를 넓은 사회적 규모로 그려 낼 철학자 겸 시인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앞날의 일이다. 지금 나의 이 작업은 그때가 되면 어쩌면 이 두 주제 모두를 위한 자료의 하나로 들어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좀 더 실천적인 과제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것은 믿음과 과학의 투쟁의 한 에피소드에 바친 소박한 철학 팸플릿이다. 그리 크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극적이고, 그리 복잡하지는 않더라도 몇몇 흥미롭고 심지어 기이하기까지 한 조합을 품고 있으며, 끝으로 어쩌면 꽤나 전형적이기까지 한 에피소드 말이다.

I

나는 종교적 사유와 과학적 사유의 관계를 더할 나위 없이 현재적인 사례를 들어 — Vl. 일린의 책은 1909년에 나왔다 — 예시하려 하며, 그러므로 분석의 출발점 역시 오로지 양자의 차이에 대한 가장 현재적인 이해로만 삼고 긴 역사적 분석에는 들어가지 않겠다. 그리고 이때 생길 수 있는 일면성을 피하기 위해, 우선 더없이 이질적인 출처들에서 가져온 몇 가지 정의를 취하겠다.

반동의 채찍 아래서 철이 든 러시아 자유주의자들의 참회 문집 『이정표』에 실린 G. 프랑크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종교적 견해들이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종교는 언제나 절대적으로 가치 있는 것의 실재성에 대한 믿음, 존재의 실재적 힘들과 정신의 이상적 진리가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 원리에 대한 인정을 뜻한다. 종교적 심성은 바로 최고 가치들의 우주적이고 초인간적인 의의에 대한 의식으로 귀착되며, 이상이 단지 상대적인 인간적 의미만을 지니는 모든 세계관은 비종교적이고 반종교적일 것이다…” (151쪽. 강조는 나의 것. A.B.)

종교적 사유와의 사생결단의 투쟁을 목표로 내건 책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신앙주의란 믿음을 지식의 자리에 놓거나, 일반적으로 믿음에 일정한 의의를 부여하는 학설이다” (2쪽. Vl. 일린에게서 “신앙주의”는 “종교적 사유”라는 용어를 대신하는 말로 쓰인다).

이데올로기가 궁극적으로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며 종교적 사유는 이데올로기의 일정한 유형임을 아는 우리 사적 유물론자들에게는, 이런 식의 규정은 길든 짧든 분명히 불충분하다. 우리에게는 이 유형의 사회적 본질을 해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다른 누구보다 많이 연구했으므로, 이에 관한 나 자신의 결론을 서술해 보겠다.

종교적 사유는 권위주의적 노동 관계(지휘—수행 또는 권력—복종)와 떼려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으며, 그 관계에서 생겨나 그것을 반영한다. 종교적 사유의 특징은 권력적 물신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에게 그 물신에 대한 순종과 복종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이 물신들은 사회생활에서 “권위”가 사람들 위에 실제로 군림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환상이 낳은 이상화된 형상이다. 한마디로, 종교적 사유는 권위주의적 사유이며, 그것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내가 인용한 대목에서 프랑크 씨 같은 관념론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종교적 사유 속 “절대적 가치”의 역할도, Vl. 일린에게서 문제의 전부가 귀착되는 “믿음”의 의의도 이해할 수 있다. “절대적인 것”을 향하는 경향은 모든 권위에 고유하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그 권위에서 나오는 명령과 지시와 주장이 무조건적이고 불변하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궁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에만 굳건하고 믿을 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종교적 사유와 정서가 만들어 내는 이상적 권위는 절대적인 것을 향한 이 경향의 완성태여야 한다. 그런데 “믿음”이란 인간이 자기가 인정하는 권위에 대해 맺는 관계이다. 그것은 권위를 단순히 신뢰하거나 그것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에, 자기 자신의 사유와 비판의 배제에, 탐구의 포기에, 생겨날 수 있는 온갖 의심의 억압에, 인식적 수동성을 지향하는 의지 행위에 바탕을 둔 관계이다.

여기서 종교적 사유의 정태적 성격, 즉 불변하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을 향하고 인식과 실천의 도정에서 정지하려는 그 경향이 아주 명백하게 도출된다. 믿음은 이런저런 삶의 형식, 이런저런 진리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그것들에 절대적 의의를 부여함으로써, 결국 그것들의 발전도, 하물며 근본적 변화나 더 높은 것으로의 대체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종교적 사유의 특히 중요한 특징으로, 이 특징 덕분에 우리는 종교적 사유가 어떤 변장을 하고 있든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과학적 사유가 전례 없는 승리를 거두고 있는 우리 시대에 종교적 사유는 매우 자주 변장에 의지한다.

II

이제 위에서 서술한 기본적인 전제들을 가지고 우리의 일에 착수하겠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위에 제목을 적은 책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무엇을 주려 하는가? 물론 진리이다. 그러나 어떤 진리인가? 바로 이것이 문제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이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라는 관념을 위한 투쟁, 모든 인식의 상대성이라는 원리에 맞선 투쟁은 이 책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며, 책 전체에 걸쳐 되풀이되는 주된 동기를 이룬다. Vl. 일린은 자신의 기본 관점을 나와의 논쟁 속에서 전개한다. 모호함이 생기거나 논적의 생각을 왜곡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 나는 그의 견해를 오로지 그 자신의 말로만 소개하겠다. 그러면 그가 쓴 것은 다음과 같다.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다’라고 엥겔스는 『반뒤링론』(「영원한 진리에 관한 장」)에서 말하면서, 역사과학에서 영원한 진리를 발견했다고 자처하는 자가 무엇에 만족해야 하는지, 어떤 Plattheiten, 즉 “진부한 말”로 만족해야 하는지를 뒤링에게 설명한다. 그런데 보그다노프는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이것이 무슨 “진리”인가? 그리고 그 속에 무엇이 “영원”하다는 것인가? 이는 단 하나의 관계를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관계는 아마 우리 세대에게조차 이미 아무런 실재적 의의도 없고, 어떤 활동의 출발점도 될 수 없으며, 어디로도 이끌지 못한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Plattheiten을 Wahrheiten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진부한 말이 진리인가? 진리란 살아 있는, 경험을 조직하는 형식이며, 우리의 활동 속에서 우리를 어딘가로 이끌고, 삶의 투쟁에 발판을 준다.’”

“이 두 인용문만 보아도 보그다노프가 엥겔스를 반박하는 대신 장광설을 늘어놓는다는 것이 충분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다’는 명제가 틀렸다거나 부정확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면, 너는 그것을 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래에 반박될 수도 있으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너는 이 진리를 영원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는 경험의 살아 있는 조직 형식이다’ 같은 문구를 반론이라 부르는 것은 한낱 말의 나열을 철학이라고 내세우는 일이다. 지구는 지질학이 서술하는 그 역사를 거쳤는가, 아니면 이레 만에 창조되었는가? 이 물음을 어딘가로 ‘이끈다’는 따위의 ‘살아 있는’(이게 무슨 뜻인가?) 진리에 관한 문구로 얼버무리는 것이 정말 허용될 수 있는가?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정말 ‘실재적 의미를 갖지 않는’단 말인가? 이것은 보그다노프가 자신의 후퇴를 가리는 허풍스러운 헛소리일 뿐이다. 엥겔스가 영원한 진리를 인정한 것이 절충주의임을 증명하겠다고 나서 놓고는, 요란하게 울리는 말소리만으로 문제를 피해 가면서, 나폴레옹이 실제로 1821년 5월 5일에 죽었다는 것, 그리고 이 진리를 미래에 반박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일은 터무니없다는 것을 반박하지 못한 채 내버려 두고 있으니, 이것은 후퇴이기 때문이다.”

“엥겔스가 든 예는 아주 초보적인 것이어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영원하고 절대적이며(이 강조는 나의 것이다. A. B.) 오직 미친 사람만이 의심할 수 있는 진리의 비슷한 예를 수십 개는 생각해 낼 것이다(엥겔스가 그런 예를 또 하나 들며 ‘파리는 프랑스에 있다’고 말하듯이).” (145~146쪽).

그러니까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는 존재하며, 그것도 아주 많이 존재한다. 반박되리라고 예상되지 않는 사실이라면 무엇이든 확인할 때마다 우리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만들어 낸다.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다. 볼가강은 카스피해로 흘러든다. 말은 건초와 귀리를 먹는다. V. 일린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라는 책을 썼다. 그 값은 2루블 60코페이카다, 등등, 등등 끝도 없이. 물론 엥겔스가 말한 대로 이 모든 것은 “진부한 소리”지만, 그래도 이것들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이며, 이것들을 의심하는 일은 “오직 미친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게다가 그렇게 진부하지만은 않은 절대적 진리도 있다. 예컨대 “지구는 지질학이 서술하는 그 역사를 거쳤다”는 것이 그렇다. 이것은 분명히 더는 “진부한 소리”가 아니라 아주아주 진지한 문제다. 한 과학 전체의 성과가 절대적 진리로 판명되는 것이니, 누구에게나 분명하듯이 이것은 “실재적 의미를 가지며”, 그것도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Vl. 일린은 말한다. “유물론자가 된다는 것은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열어 보이는 객관적 진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며, 객관적 진리, 즉 인간과 인류에게서 독립된 진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어떻게든 절대적 진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146쪽).

마지막 문장에 들어 있는 “어떻게든”이라는 말은 다른 관점으로 넘어감을 알리는 표지다. 뒤에 가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는 나폴레옹의 죽음과 지구의 역사에 관해 위에서 인용한 논의에서 보기에 따라 나오던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곧바르게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Vl. 일린은 엥겔스를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식에 이른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유는 그 본성상 상대적 진리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절대적 진리를 우리에게 줄 수 있고 또 실제로 준다. 과학 발전의 각 단계는 절대적 진리의 이 총합에 새로운 낟알을 보태지만, 각각의 과학적 명제가 지닌 진리의 한계는 지식이 더 자라남에 따라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므로 상대적이다.” (149쪽).

“…현대 유물론, 즉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객관적·절대적 진리에 우리 지식이 접근하는 한계는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져 있지만, 이 진리의 존재는 무조건적이며, 우리가 그것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도 무조건적이다. 그림의 윤곽은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져 있지만, 이 그림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모델을 그린다는 것은 무조건적이다. 우리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콜타르 속 알리자린의 발견이나 원자 속 전자의 발견에까지 진전시켰는가는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져 있지만, 그러한 발견 하나하나가 ‘무조건적으로 객관적인 인식’의 전진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이다. 한마디로, 모든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져 있지만, 모든 과학적 이데올로기에는 (예컨대 종교적 이데올로기와는 달리) 객관적 진리, 절대적 자연이 대응한다는 것은 무조건적이다.”(151쪽).

Vl. 일린은 위에 인용한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의 정식들을 모두 마르크스, 엥겔스, 디츠겐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정확히 표현한 것으로 여기며, 그 증거로 숱한 인용문을 늘어놓는다. 그가 이 인용문들을 이해하고 해설하는 데서 얼마나 옳은가 하는 문제는 일단 미뤄 두고, 그 자신이 내놓는 것을 몇 마디로 요약해 보자.

1. 절대적 자연에 대응하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

2. 인간의 사유는 그것을 상대적 진리들의 총합의 형태로 우리에게 준다.

3.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은 우리가 절대적 진리에 접근하는 한계뿐이며,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그것에 다가가고 있다.

4. 개별적 성격을 띤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가 많이 있다. 우리가 “장래에 반박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 진리는 모두 그렇다.

둘째 명제가 넷째 명제와 어떻게 양립하는지, 그리고 절대적일 뿐 아니라 영원하기까지 한 진리가 그토록 많이 있는데 왜 절대적 진리가 상대적 진리들의 총합의 형태로 주어지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자. 우리 자신은 문제를 그 본질에 따라, 논지를 단순하게 하는 데 편리한 순서대로 검토해 보겠다.

III

“미친 사람만이 의심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의 전형은 Vl. 일린에게는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다”는 명제이다. 그는 바로 이 예를 난공불락이라 여기고 수없이 되풀이한다. 그렇다면 이 진리가 어떤 방법으로 확립되었는지만 밝히면 우리 세계에 새로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들여앉히는 일반적 방법을 얻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바로 그 방법으로, 그것도 위에서 말한 나폴레옹의 죽음에 관한 진리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엄밀하게 확립해 내는 진리는 모두 그런 진리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대체 어떤 방법인가?

공직자인 세인트헬레나섬의 총독, 전문가인 나폴레옹의 주치의,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몇몇 사람, 곧 건전한 판단력을 갖춘 양심적인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목격했고, 그 사실 자체와 날짜를 한목소리로 증언했다. 이것이 “절대적 진리”가 세상에 와서 그곳에 영원히 군림하게 된 경로이다.

그러니 같은 나폴레옹의 죽음보다 몇백 년 앞서 일어난 어떤 사실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공직자이고 전문가이며 양심적이고 건전한 판단력을 갖춘 사람들이 비교할 수 없이 많이 목격한 사실, 그 진실성을 이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증언한 사실 말이다. 이 사실의 진리야말로 더더욱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나중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런 사실은 실제로 있지도 않았으며 이것은 그저 — 착각일 뿐이라고 감히 주장한다면, —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앞서 말한 모든 것에 비추어 보면 둘 중 하나다. 그가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저 유물론의 토대를 허물려는 것이다 — 이미 인용한 대목 가운데 하나에서 V. 일린이 말하듯 “감각 기관이 우리에게 열어 주는 객관적 진리”라는 토대를. 그런데 이 사람은 아무래도 미친 사람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는 수십 년 동안이나 사제의 직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나중에는 아주 유명한 한 수도사가 그의 주장을 지지했는데, 그 수도사를 아는 사람들 역시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렇게 쓰고 나서야 내가 입을 잘못 놀렸으며, V. 일린이 곧바로 온 힘을 다해 내 실수를 이용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그렇지, — 그는 외칠 것이다, — 사제! 수도사! 유물론에, 객관적 진리에 맞서 싸울 자가 그들 말고 또 누구겠는가?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다!” V. 일린은 성직자 신분에 매우 엄격하기 때문이다. 관념론자 버클리와 논쟁하면서 그는 걸핏하면 버클리의 주교 신분을 강조하며, 그, 일린에게 옳지 않아 보이는 모든 견해를 특징지을 때 “성직자주의”라는 낱말이 주된 역할을 한다. 이번에도 그가 안경 없이도 성직자의 음모를 간파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실제로 이 사제, V. 일린이라면 아마 “신부 나부랭이”라고 부를 이 사람은 현대 상대주의의 시조였다. 그것은 소피스트나 회의론자들에게서처럼 주관적인 상대주의가 아니라 모든 진리의 상대성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인정하는 상대주의이며, 우리는 공공연히 그 지지자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 밝힐 때가 되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사실, 우리 시대보다 수백 년 전에 건전한 상식을 지닌 온갖 수백만 목격자들이 수없이 되풀이해 관찰했고, 그들이 한목소리로 “감각 기관이 우리에게 열어 주는 객관적 진리”라고 증언했던 사실, — 사람의 죽음보다도 더 흔하고 더 쉽게 확인되는 이 사실은 이러했다. 태양이 하늘의 궁창을 따라 지구 둘레를 돈다. “유물론”에 대한 적대감에서 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부정한 “신부 나부랭이”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였다. 그의 신봉자이자 그의 사상을 선전한 수도사는 조르다노 브루노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수호하는 데 열중한 어떤 사람들은 브루노를 화형대에서 불태우기까지 했다. 이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아마도 지나치게 극단적인 “유물론자들”이었으리라…

독자여, 20세기에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에서 그 견해가 논리적으로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부정을 함축하는 사상가가 나타나리라고 예상했는가?

IV

V. 일린이 인용한 내 저작의 대목[1]에서 진리의 상대성 문제를 다루면서, 내가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다”라는 명제를 분석하지 않고 이 명제와 이와 비슷한 사이비 진리들이 공허하고 불모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그쳤다면, 그것은 이 명제가 의심할 바 없이 상대적이라는 점을 특별히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이런 “진부한 소리”를 붙들고 “절대성”, “영원성” 따위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연구하는 일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나는 실천을 진리의 기준으로 인정하는 마르크스주의자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 그런 독자라면 실천에 적용할 수 없고 실천적 검증이 닿지 않는 관념, 즉 진리의 기준 자체 바깥에 놓인 관념을 진리로 여길 수 없다는 것을 곧바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이 관념을 실천에 적용한 독자 — V. 일린 — 가 나타났다. 그는 이 관념을 지상에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의 왕국을 세우는 도구로 썼다. 그러니 이제는 이 관념을 본질적으로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진리는 개념들로 이루어진다. 엥겔스의 예에는 주요 개념이 셋 있다. 하나는 특정한 인물에 관련된 것 — “나폴레옹” — 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한 생리적 과정에 관련된 것 — 죽음 — 이며, 셋째는 역사적 날짜에 관련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개념들을 얼마나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이 개념들이 덧없고 상대적이라면, 그것들을 결합해서 절대적이고 영원한 관념을 얻을 수는 결코 없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폴레옹”이라는 개념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특정한 인물이 그 존재의 여러 시기에 걸쳐 지니는 생명적 통일성에 대한 표상이다. “나폴레옹”이란 1769년 코르시카에서 태어나 포병 중위, 공화국의 장군, 제1통령, 프랑스 황제였고, 이러저러한 승리를 거두고 이러저러한 패배를 겪었으며,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포로로 살았던 등등의 “바로 그” 사람이다. 오늘날의 사유에서 사람의 이름은 “나”의 통일성이라는 개인주의적 환상과 떼려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이 환상은 생리학과 심리학이 완전히 폭로했다. 사람들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과 결부된 이러저러한 이전 사건들에 등장했던 바로 그 사람, 바로 그 “인격”, 바로 그 “나”가 죽었다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실은 이 “나”는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유기체가 살아가는 동안 여러 차례 새로워지며, 그 변화가 끊임없이 점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익숙한 환상이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생리적으로 보면, 죽어 가는 나폴레옹의 “몸”은 마지막 분자 하나까지 아우스터리츠에서 지휘하던 나폴레옹의 “몸”과 이미 다른 것이었다. 심리적으로 보면, 그의 생애 마지막 몇 해의 “나”를 이루던 인상과 감각의 총체는 젊은 공화파 장군의 “나”를 이루던 총체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사람이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다”라는 말로 표현하는 생각에는 이미 의심할 바 없는 오류가 들어 있다. 주어에서는 위대한 사회적·문화적 활동가를 생각하지만, 술어는 역사적으로 보잘것없는 초라한 폐인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다음은 “죽음”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 또한 죽어 가는 과정의 기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만큼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현대 의학에서는 심장 박동과 호흡이 멎는 때를 죽음의 순간으로 보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영원히 유지되리라는 데에는 이미 의심할 근거가 있다. 나는 러시아의 어느 수술학 교과서에서, 인공호흡을 통해 깊은 실신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의식을 되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따금 막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려 낸 일까지 있었다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유물론자 학자의 공허한 허세가 아니라, “죽음”을 오늘날처럼 이해하는 한 실제로 충분히 가능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심장이 이미 멎고 호흡이 없다면 사람은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세포가 심하게 파괴되지 않았다면, 활동을 멈춘 기관들의 기능을 기계적으로 불러일으키기만 해도 생명 과정 전체가 되살아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대체 무슨 “죽음”이란 말인가? 따라서 의학이 더 발전하여 심장과 호흡 기관의 정지가 그것만으로는 지금처럼 생명의 종결에서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이 정지가 아니라 그 시대의 고도로 발달한 방법으로도 생명을 되살리는 것이 전혀 불가능해지는 세포 요소 파괴의 단계를 “죽음”으로 인정하게 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도달할 더 높은 관점에서 보면, 아마도 오늘날 기록된 사람들의 사망일 대부분은 그야말로 틀린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라는 것이 겨우 이렇다!

나폴레옹의 죽음을 확인한 의사가 결코 “절대적” 의사가 아니었으며, 다른 의사들에게 분명히 있었던 일처럼 깊은 실신이나 혼수상태를 죽음으로 여겨 사망 시각을 잘못 판정했을 수도 있다는 점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랬다면 V. 일린의 “영원한 진리”는 … “영원한 오류”가 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 개념, 곧 역사적 날짜로 넘어간다. 여기서는 이미 모든 것이 관습적이다. 기원 자체도, 시간을 헤아리는 방식도 그렇다. 햇수를 세는 기점이 된 사건은, 애초에 그런 사건이 언젠가 있기라도 했다면, 그것이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때 정확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1821년 5월 5일”이라는 날짜는 그레고리력에 따른 것이고, 율리우스력으로는 4월 23일이었다. 물론 율리우스력은 그레고리력보다 덜 정확하다. 그러나 이 그레고리력 역시 엄밀한 천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조금 절뚝거리며, 1821년에 이르러 그 오차는 “이상적 시간”에 비해 이미 약 13시간에 달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폴레옹이 몇 시에 죽었는지 모르고, 그런 시시한 것을 일부러 찾아볼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사건을 5월 5일이 아니라 5월 4일로 보는 편이 더 옳은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지금 다루는 연대기적 명제의 상대적 성격을 가리키는 모든 자료와 모든 가능성을 다 짚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부함”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름에 걸맞은 진리들, 예컨대 지구가 “지질학에서 서술되는 그 역사를 가졌다”는 주장의 경우에는 사정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나쁘다. 찰스 라이엘 이전의 “지질학에서 서술되는 그 역사”는 하나(격변설에 근거한 것)였고, 라이엘부터는 전혀 다른 것(진화론적인 것)이 되었다는 점만 지적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지금도 그것은 이미 여러 면에서 라이엘의 것과 같지 않다. 그런데도 V. 일린이 이제야말로 그것이 영원히 확립되어 더 이상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절대적 확실성을 가지고 안다면, 그러한 앎의 원천은 오직 하나, 곧 믿음, 그것도 맹목적인 믿음일 수밖에 없다.

V

이제 같은 저자가 같은 문제에 대해 취하는 다른 관점을 살펴보자. “절대적 진리는 상대적 진리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상대적 진리들의 길을 통해 “우리는 무조건 그것에 다가간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가 이 관점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칠 년쯤 전에 이 관점을 내세운 것은 — 사실 훨씬 더 넓은 규모에서였지만, 당시 관념론으로 넘어가던 합법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특히 N. 베르댜예프는 그러한 진보 이론을 설교했다. 발전 일반은 절대적 이상들에 다가가는 것이다. 곧 절대적 진리, 절대적 선, 절대적 미에. 인식의 진보는 끊임없이 상대적 진리들을 거쳐 절대적 진리에 다가가는 데 있다.

보다시피 Vl. 일린도 똑같은 말을 한다. 그는 다만 “절대적 선과 미”에 대해서는 침묵할 뿐인데,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직 인식 문제만 다루는 이론철학적 저작을 쓰고 있기 때문일 뿐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침묵을 그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다면, 그는 우리 관념론자들에게서 신성의 공식으로 나타나는 저 삼위일체적 이상의 삼분의 일만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

우리 관념론자들이 이 공식을 서구 관념론자들에게서 빌려 왔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라이프니츠는 이미 유한한 모나드들의 등급 체계 속에서 이 공식을 매우 분명하게 그려 보였다. 그 모나드들은 절대적 모나드를 반영하며, 자신의 제한된 인식 속에서 그 절대적 진리에 점점 더 다가간다. 그리고 V. 일린의 정식화 — 절대적 자연은 절대적 진리 속에 표현되고, 절대적 진리는 일련의 상대적 진리들 속에 구현되며, 이 상대적 진리들은 절대적인 것에 다가가는 등급을 이룬다 — 로 말하자면, 이것은 그야말로 셸링적인 정식화이다.

V. 일린은 이렇게 관념론자들과 싸운다!

이제 우리가 그것과 어떻게 싸웠는지 조금 상기시키겠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절대적인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허구라는 점을 지적했다. 개념의 내용은 오직 경험에서만 얻어지는데, 경험 속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것을 사유한다는 것은 평면적인 논리적 모순(결코 변증법적 모순이 아니다)에 빠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또한 “절대적” 진보 이론이 무의미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상대적인 것을 통해 절대적인 것에, 즉 유한한 것을 통해 무한히 먼 것에 “다가간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무한”은 부정적 의미를 지닌 수학적 기호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양에는 유한한 양을 얼마든지 더하거나 뺄 수 있지만, 그렇게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무한대 양의 수학적 특징이다. 긴 정육면체에 면이나 선이나 점을 얼마든지 더해 보라. 그 부피는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부피는 면에 대해 “무한한 것”이며, 면이 길이에 대해 그러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절대적인 것”까지의 거리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절대적인 것에 “다가간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에 대한 조롱이자 모든 진보적 지향에 대한 조롱이다.

우리는 그때 절대적인 것의 선전에 깔린 성직자적 바탕도 지적했다. 사람들은 이 허구에 길들여지고, 그것은 그들에게 소중한 것이 되며, 익숙한 마약처럼 끊을 수 없는 욕구가 된다. 그러나 차갑고 명징한 과학에서 그들은 이 갈증을 채우지 못한다. 과학은 절대적 진리를 차분하고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러면 그들은 다른 곳으로 그것을 찾아 나선다. 종교와 신비주의가 이미 그들을 노리고 있다가, 그들에게 이미 믿음이 있는 만큼 더욱 쉽게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절대적인 것은 오직 믿을 수 있을 뿐,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험 바깥에 있으니까.

V. 일린의 책을 계기로 이제 그 논쟁 전체를 되풀이해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볼가강은 카스피해로 흐른다”는 말을 남기고 죽은 체호프의 교사가 말하는 “절대적 진리”도, 베르댜예프의 인식론적 절대자도 우리 독자를 딱히 유혹하지는 못할 것이다[2].

VI

그렇다면 대체 누가 Vl. 일린을 유혹했는가? 그는 엥겔스와 디츠겐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Vl. 일린은 『반뒤링론』에서 다음 대목을 인용한다.

“사유의 주권성은 극히 비주권적으로 사유하는 일련의 사람들 속에서 실현되며, 진리에 대한 무조건적 권리를 지닌 인식은 일련의 상대적 오류 속에서 실현된다. 그 어느 쪽도 인류의 삶이 무한히 지속되지 않고서는 완전히 실현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앞에서 이미 마주쳤던 모순을 다시 만난다. 그것은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인간 사유의 성격과, 오직 제한적으로만 사유하는 개별 인간들 속에서의 그 실현 사이의 모순이다. 이 모순은 적어도 실천적으로는 우리에게 무한한, 인간 세대들의 잇따른 계열 속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사유는 주권적인 만큼 비주권적이며, 그 인식 능력은 무제한적인 만큼 제한적이다. 그 성향(Anlage), 사명, 가능성, 역사적 궁극 목적에 비추어 보면 주권적이고 무제한적이며, 개별적 실현과 그때그때 주어진 현실에 비추어 보면 비주권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리고 이어서 “영원한 진리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Vl. 일린이 출발점으로 삼는 저 근본 관념, 곧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관념은 여기 어디에 있는가!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절대적 진리가 무한한 세대를 거쳐서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수학적 가능성, 즉 순전히 상징적인 가능성이 실재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사유가 그 경향에서 “절대적”이라는 것, 곧 무제한적이라는 것(이 낱말은 “절대적”이라는 낱말을 풀이하는 동의어로 쓰였다)이 주장된다. 그러나 이런 맥락에서 “절대적”이라는 낱말이 여기서 무한한 발전만을 뜻할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동시에 역사적으로 주어진 모든 사유는 단호히 제한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인정된다. 거기에는 물론 체호프의 교사의 사유도, N. 베르댜예프의 사유도, 그리고 이 둘의 관점을 천재적으로 결합한 Vl. 일린의 사유도 포함된다.

그런데 Vl. 일린은 바로 자신의 사유만큼은 제한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여기려 들지 않는다. 그에게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가 한 상자 가득, 즉 말 그대로 가장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절대적 진리”가 이미 다 만들어진 조각으로 한 상자 가득 있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여기에 엥겔스가 무슨 상관인가? 존경하는 저자는 그저 엥겔스를 베르댜예프 씨와 혼동한 것이다.

엥겔스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비록 형이상학적 의미로는 아니지만 아무튼 “절대적”이라는 형이상학적 용어를 쓴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진리”를 그토록 조롱하면서도 가망 없는 “Plattheiten”의 형태로나마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자신이 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혼란을 경계하라고 독자에게 성실하게 일러 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역사 전체가 지금까지도 얼마나 젊은지, 그리고 우리의 현대적 견해에 어떤 것이든 절대적 의의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는, 지금까지의 역사 전체가 역학적 운동이 열로 전화한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발견한 때(즉 마찰로 불을 얻은 때. A. B.)부터 열이 역학적 운동으로 전화한다는 것을 발견한 때까지의 시기의 역사로 규정될 수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증기기관. A. B. 인용은 『반뒤링론』 독일어 제3판, 113~114쪽. 강조는 인용자. A. B.).

엥겔스가 “절대적”, “무조건적” 따위의 용어를 쓰는, 헤겔식으로 짜인 정식들을 이해할 때 자각적인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누구나 바로 이런 기본 명제들에서 출발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V. 일린은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엥겔스에게서 신성한 낱말이 들어 있는 문구들을 꼼꼼히 골라내어 거기에 자기 믿음을 기댄다. 예컨대 “진리와 오류는 극적 대립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논리적 범주와 마찬가지로 극히 제한된 영역 안에서만 절대적 의의를 갖는다”는 헤겔식 언급 몇 가지를 가져다 놓고는, 그러니까 진리와 오류는 결국 절대적 의의를 갖는다, 그분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엥겔스가 든 예시야말로 그의 정식을 이처럼 “절대적으로” 이해하는 일을 막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예시는 보일의 법칙, 곧 기체의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는 법칙이다. 더 정확한 판데르발스의 공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일의 법칙이 어떤 범위에서도 절대적으로 옳지, 무조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보일의 법칙은 판데르발스의 방정식과 한두 개의 수학적 점에서만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데르발스의 방정식 역시 유능한 물리학자라면 누구도 해당 현상들에 대한 최종적이고 완결된 법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V. 일린이 차라리 디츠겐에게 현혹되었다면 그편이 더 정당했을 것이다. 디츠겐은 실제로 자기 철학의 중심 개념인 우주, 만유에 대해 “절대적”이라는 용어를 남용하며, 대체로 기회만 있으면 종교적 용어를 남용한다. 그러나 그에게서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체호프의 교사가 말하는 절대자들도, 절대적 지질학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V. 일린은 디츠겐을 비판적으로 본다. 엥겔스를 볼 때와는 다르다. 존경하는 저자는 엥겔스의 인용문이면 과학적 논증 일반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고 여긴다.

플레하노프는 언젠가 마르크스의 화폐 유통 이론이 영원토록 객관적 진리라고 주장했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듯이, 진리의 “영원성”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물론 객관적 진리이지만 오직 우리 시대에 대해서만 그러하며 미래까지 보증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Vl. 일린은 내게 이렇게 반박한다. “이것 또한 혼란이다. 이 이론이 실천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미래의 어떤 사정도 바꿀 수 없다. 나폴레옹이 1821년 5월 5일에 죽었다는 진리가 영원한 것과 똑같이 단순한 이유에서다.” 원시 천문학의 영원성이 또다시 확인되는 셈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그보다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들의 실천과 원시 천문학이 일치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 그런데 Vl. 일린은 더 나아가, 심지어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해서조차 종교적이 아니라 과학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 있는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양보”를 들어 나를 나무라며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공유하는 견해, 곧 마르크스의 이론이 객관적 진리라는 견해에서 나오는 유일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 이론의 길을 따라가면 우리는 객관적 진리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겠지만(결코 그것을 다 길어 내지는 못한다), 그 밖의 다른 어떤 길을 따라가면 혼란과 거짓 말고는 아무것에도 이를 수 없다”(160쪽).

지극히 혼란스러운 표현 형식(마르크스의 이론은 객관적 진리이며, 이는 그것이 객관적 진리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은 제쳐 두더라도, 여기서 우리가 이미 절대적 진리의 세 번째 개념을 마주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셋 가운데 이것이 분명 가장 온건하다.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에 담긴 방법 그 자체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여기서 끌어낸 주된 결론은 다른 관점을 찾지 말라는 형식적인 이데올로기적 금지이다. 다른 어떤 방법도 결코, 그 무엇도 혼란과 거짓 말고는 아무것에도 이를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지하듯이 과학 발전의 커다란 걸음은 모두 바로 새로운 관점, 새로운 길,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데 있다. 예컨대 불과 30년 전쯤만 해도 불변하는 화학 원소라는 개념은 그 시대의 객관적 진리였고, 그 길을 따라가면서 사람들은 사실을 인식의 측면에서 점점 더 많이 장악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소가 분해된다는 생각이라는 새로운 길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그 길은 “혼란과 거짓으로만” 이끈다는 말인가? 게다가 화학은 사회 철학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 과학이어서, 방법론상의 격변을 예상할 근거가 사회 철학보다 훨씬 적었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말이다…

우리 저자가 내놓은 절대적 진리의 세 가지 서로 다른 개념이 뒤엉킨 혼란 전체에서 언제나 똑같은 하나의 동기가 울린다. 과학적 인식을 일정한 지점에서 정지시키라는 요구, 전체에서가 아니라면 적어도 그 부분에서라도, 연구에서가 아니라면 방법에서라도 더 나아갈 수 없음을 포고하는 것이다… 어디에나 정태가 있고, 그것은 믿음에 기대고 있으며, 그 믿음의 대상은 절대적인 것이다.

VII

그러므로 V. 일린 자신과 프랑크 씨가 제시하는 종교적 사유의 두 기준, 즉 믿음과 절대적 가치의 인정이 V. 일린의 세계관에 엄연히 존재하며, 그것도 그의 견해의 토대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이제 남은 것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본질에 관계된 세 번째 기준, 곧 사회역사적 기준을 적용하는 일이다. 검토 중인 저자의 사유는 그 유형상 권위주의적인가!

사실 여기에 새로운 물음은 없다. 믿음이 있는 이상, 그 믿음의 원천인 권위, 사람들이 믿어야 할 권위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절대적인 것은 이 권위의 이름 가운데 하나다. 이 경우 “절대적인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언제 어디서든 한 번이라도 말한 사상들 속에 구현된다. 이들은 절대적 진리의 예언자다. 그리고 예언자인 이상 그들이 무언가 그릇된 것을 말해서는 안 되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들이 정말로 예언자라면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영감에서 나온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오류를 범할 수 있었다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터이니, 그렇다면 절대적 진리는 대체 누가 세운단 말인가? 바로 그 때문에, 우리와 마르크스·엥겔스 사이에 수십 년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고 그 뒤로 거대한 과학적·기술적 변혁이 일어났는데도, V. 일린의 방대한 책에 실린 그들 저작의 인용문 수십, 아니 수백 개 가운데 저자가 그들 중 누구와든 부분적으로나마 의견이 다르다고 밝힌 대목은 하나도 찾을 수 없다. 권위주의적 사유에서 믿음의 문제는 전부냐 전무냐일 뿐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정식화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감각적 세계 밖의” 무언가를 인정하는 것과 이 “무언가”를 단호히 부정하는 것 사이에서 동요하는 중간적 관점들을 두고 Vl. 일린은 이렇게 외친다.

“만일 엥겔스가 언젠가 이와 비슷한 말이라도 했다면,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수치이자 치욕일 것이다”… (127쪽).

종교적으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권위주의적으로가 아니라 자유롭게 사유하는 사람에게 이런 선언은 전대미문의 일이다. 뭐라고! 어떤 이론가가 언젠가 이런저런 거짓이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면, 그가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던 학파에 가담하는 것이 “수치이자 치욕”이라고? 그렇다면 엥겔스가 어딘가에서 그 비슷한 말을 무심코 내뱉은 것으로 드러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때는 끝장이다. Vl. 일린은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한다… 실로 이것이 종교적 감정의 논리다. 예언자가 인간적 약점을 드러냈다. 그만! 그는 예언자가 아니다. 그의 믿음은 거짓이고, 그와 함께 걸어온 다른 예언자들도 거짓 예언자다. 새로운 믿음을 찾아라!

사실 V. 일린 자신도 자기 사유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의식하고 있으며, 사상적으로 정직하기까지 해서 그것을 공공연히 인정한다.

“그리고 마흐주의자 여러분, 내가 ‘권위’를 끌어댄다고 소리치지 마시라. 권위에 반대하는 여러분의 외침은 사회주의적 권위(마르크스, 엥겔스, 라파르그, 메링, 카우츠키)를 부르주아적 권위(마흐, 페촐트, 아베나리우스, 내재론자들)로 바꿔치기하는 것을 가리는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분은 차라리 ‘권위’와 ‘권위주의’ 문제를 꺼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295쪽).

어차피 권위 없이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여러분이 이 권위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다른 권위들을 인정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권위를 권위로서 인정하기를, 다시 말해 그들의 의견을 끌어대는 것이 연구와 논증을 충분히 대신한다고 여기기를 아예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무슨 허황한 이야기를 하는 거요? Vl. 일린은 이렇게 반박한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하단 말이오? 그리고 그를 설득할 수는 없다. 권위주의적 유형의 사유는 가장 자기 안에 갇혀 있고, 다른 유형이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가장 부족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Vl. 일린의 견해는 “권위성”이라는 기준도 완전히 충족한다. 이리하여 그 견해의 종교적 성격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증된다.

VIII

종교적 사유는 결코 정확성으로 이름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 번성기에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명료했다. 쇠퇴기에 놓인 오늘날 종교적 사유는 그 특징마저 잃고 극도로 흐릿하고 불분명해진다. 그 개념들은 모호하고 불안정하며, 그 대신 종교적 사유는 낱말에 매달린다.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낱말의 의미는 언제나 결정적이었다. 낱말이야말로 최고 권위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그러므로 오직 낱말만이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정통 신자는 오직 “신앙고백”, 즉 마땅한 언어 공식을 공공연히 인정하는 것으로만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의 심리와 완전히 일치하게도, Vl. 일린의 책 첫 쪽에서 독자는 그가 전쟁을 선포하는 일련의 저술가들,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한 견해가 서로 매우 다른 저술가들을 열거한 뒤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만나게 된다.

“이 모든 사람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기들의 철학적 견해를 수십 번이나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불렀다(강조는 인용자. A.B.)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리고 정치적 견해의 날카로운 차이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적대감으로 결속된 이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철학에서는 자기들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처한다”!

그가 열거한 저술가들 가운데 상당수(예컨대 나와 바자로프)는 플레하노프와 그 학파의 견해가 반변증법적이고 형이상학적임을 증명함으로써 자기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는 점을 지나가는 길에 지적해 두고, 나는 인용문의 중심 사상에 독자의 주의를 돌리고자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기들을 이러이러하게 “불렀는데” 너희는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서 감히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다니! 종교로 변한 변증법은 여기서 자기의 대립물로 전화했다. 생명과 운동의 과정에서 단정적인 “예, 예”, “아니오, 아니오”를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옛 변증법에게는, 어떤 학파의 사상이 역사적·논리적으로 발전하여 이런저런 영역에서 이전의 결론과 크게 달라서 새 용어로 지칭할 근거가 있는 결론에 이르더라도, 일반적 방법은 본질적으로 예전 그대로이므로 학파 자체의 이름은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고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 예컨대 연구자들은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의 토대 위에 서 있으면서도 철학에서 “유물론”이라는 용어로는 불충분하거나 들어맞지 않는 견해에 이를 수 있다. 종교적 사유는, 설령 그 믿음의 대상이 “변증법”일지라도, 이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 그것은 오직 언어 공식의 통일에만 만족하지만, 그 대신 그것으로는 완전히 만족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플레하노프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이름 아래 반쯤 칸트주의적인 형이상학을 전개했다거나, P. 네즈다노프가 같은 이름 아래 무언가 알아듣기 어려운, 그러나 진짜 변증법적 유물론과는 분명히 닮지 않은 것을 설교했다는 사실에 당황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바로 마땅한 대로 “자기를 부르는데” 무엇을 따지겠는가? 그런데 자기를 달리 “부르는” 자들 — 그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적이며, 여기서 따져 볼 것도 없다. 게다가 그들이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이고 “싶어 한다면”, 즉 철학에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을 적용하고자 한다면 — 그들은 특히 악질적인 적, 사기꾼, 참칭자 등등이다.

사유의 이러한 “언어적 신앙고백” 성격은 Vl. 일린의 책에서 바로 세계관의 근본 문제가 다루어지는 곳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에게 그러한 문제란 “물자체” 또는 “물질”, “우리에 대한 사물” 또는 “현상” 등에 관한 문제들이다.

IX

“물자체”란 무엇인가? 이 말의 껍데기 아래에서 우리는 Vl. 일린의 책 속에 적어도 세 가지 서로 다른 개념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 개념들은 그 사상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세 철학 학파에 각각 대응한다. 세 개념을 모두 차례로 살펴보되, 책 전체에 걸쳐 우세한 것부터 시작하자.

Vl. 일린은 자신이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히면서 포이어바흐와 디츠겐에게서 일련의 대목을 인용한다. 거기서 펼쳐지는 생각은 세계가 감성적 존재이며, 이 점에서 “물자체”와 “우리에 대한 사물” 사이에, “물질”과 “현상”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의 철학적 유심론은,” 하고 L. 포이어바흐는 말한다, “스스로를 관념론이라 부르면서, 유물론에 대해 그것이 보기에 치명적인 다음과 같은 비난을 가한다. 즉 유물론은 독단론이라는 것, 다시 말해 그것은 감성적(sinnlich) 세계를 논란의 여지가 없는(ausgemacht) 객관적 진리로 삼아 거기서 출발하며, 이 세계를 그 자체로서의(in sich) 세계, 즉 우리 없이 존재하는 세계로 간주하는데, 실제로는 세계란 정신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하지 않은가? Vl. 일린은 이렇게 논평한다. — 그 자체로서의 세계란 우리 없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이어서 “포이어바흐에게 물자체란 … 우리 밖에 존재하는 세계, 완전히 인식 가능하며 현상과 원리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없는 세계이다”라고 한다(127~128쪽, passim — 지나치게 긴 인용을 피하기 위해).

“우리 표상의 대상은,” 하고 우리의 저자는 이어서 설명한다, “우리의 표상과 구별되며, 물자체는 우리에 대한 사물과 구별된다. 왜냐하면 후자는 전자의 한 부분 또는 한 측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 자신이 그의 표상 속에 반영되는 자연의 한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129쪽, 강조는 나의 것. A. B.).

“현상은,” 하고 디츠겐이 인용된다, “현상하는 것과 다른데, 그 차이는 10마일의 길이 길 전체와 다른 것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그리고 일린 자신이 덧붙인다. “여기에는 어떠한 원리적 차이도, 어떠한 ‘초월’도, 어떠한 ‘타고난 불일치’도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물론 차이는 있다. 감성적 지각의 한계 너머로, 우리 밖에 있는 사물의 존재로 넘어감이 있는 것이다”(131쪽).

“…오직 감성적인 것만이 존재한다. 물질적 존재 외에 다른 존재는 없다” — V. 일린은 슈베글러의 『간략한 철학사』에서 유물론에 대한 이러한 특징 규정을 끌어오고, 그것에 동의함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초보적인 진리”라고 부른다(144쪽).

내 생각에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다. 오직 감성적 존재만이 인정되고, 그것의 부분 또는 측면으로서 현상, 즉 인간의 경험이 인정된다. 그리고 이것이 “마흐주의자들”의 견해에 대립된다. 그들은 오직 “경험”만을, 오직 “요소들”의 세계만을 인정하는데, 이는 V. 일린의 말에 따르면 관념론이요 형이상학이요 기타 등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V. 일린이 “감성적 존재”의 이름으로 부정하는 이 “경험의 요소들”이란 실제로 무엇인가? 그것은 색, 음, 단단한 것, 부드러운 것, 따뜻한 것, 차가운 것, 냄새, 요소, 형태 또는 공간 등이다. 마흐와 아베나리우스, “마흐주의자들”, 그리고 이 개념을 쓰는 모든 이들이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그대로이다. 색, 음, 단단함, 형태 — 그런데 바로 이것이 감성적 요소, 곧 감성적 존재의 요소가 아닌가? 분명히 그렇다. 그렇다면 이 점에서 V. 일린과 “마흐주의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분명히 없다.

“마흐주의자들”은 감각적 존재, 또는 같은 말이지만 감각적 요소들로 환원되는 존재 말고는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의 감각적 요소들은 V. 일린이 존재를 분해해 얻는 요소들과 다른 것일까? 어쩌면 그는 다른, 더 나은 요소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이는 알 수 없는 채로 남는다. 그는 책 전체에 걸쳐 “물질”, “현상”, “사물” 따위를 감각적 요소들로 분석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진정한 유물론자라면 그런 분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 바로 핵심이 있는 것일까? V. 일린은 어디에서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그가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한, 누구나 그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여겨야 한다.

그러니 이 점에서는 “마흐주의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차이는 다른 데에, 곧 Vl. 일린은 “우리에 대한 사물” 또는 “현상”을 감각적 존재의 일부 또는 측면일 뿐이라고 여기는데 “마흐주의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아뿔싸! 여기에도 차이는 없다. 마흐주의자들은 “우리에 대한 사물들”로, 또는 같은 말이지만 이미 우리의 경험 안에 들어온 복합체들로 요소들의 세계 전체가 다 채워진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들이 그리는 바는 이렇다. 요소들의 여러 복합체는 때로는 이런 부분이나 측면으로, 때로는 저런 부분이나 측면으로, 때로는 덜, 때로는 더 많이 사람들의 경험 안에 들어오며,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 점점 더 온전하게 그 경험 안에 편입된다. 다시 말해 V. 일린에게 익숙한 용어를 쓰자면, 이 복합체들은 감각적인 물자체에서 감각적인 우리에 대한 사물이 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다투는가?

V. 일린은 “대상”과 “대상에 대한 우리의 표상” 사이의 차이를 “감각적 지각의 한계를 넘어 우리 밖에 있는 사물들의 존재로 나아가는 것”에서 본다. 그런데 마흐주의자들은 이 “우리 밖의 존재”를 더 정확하게 규정할 뿐이다. 그들은 “우리 밖에”라는 공간적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 환각 또한 “우리에게 외적인 어떤 것”으로 지각되기 때문이다 — “사물” 또는 물리적 복합체를 이루는 요소들의 독립적인 또는 객관적인 연관을 가리킨다.

그러니 여기서 V. 일린은 그토록 미워하는 “마흐주의적” 관점에 서 있다. “물자체의 일부 또는 측면”인 “우리에 대한 사물”에 관해 논하면서, 그것도 둘 다 전적으로 “감각적” 성격을 띤다고 하면서, 그는 마흐주의자들이 옹호하는 바로 그 생각들을 다른 말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견해를 “마흐주의자들”이 아니라 포이어바흐, 엥겔스, 디츠겐에게서 빌려 오지 않았는가? 그렇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요점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 용어 말고는 조금이라도 진지한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흐주의자들”은, 예컨대 바자로프는, 포이어바흐나 디츠겐과 논쟁하지 않고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플레하노프와 논쟁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V. 일린은 그들이 이 훌륭한 유물론자들을 모른다느니, 그들 앞에서 비겁하다느니 하며 여러 차례 비난한다… 여기에는 정말로 무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V. 일린의 “마흐주의”에 대한 무지이며, 또한 한편으로는 “마흐주의자들”과 옛 경험론적 유물론자들 사이에, 다른 한편으로는 “마흐주의자들”과 플레하노프 같은 반쯤 칸트주의적인 “유물론자들” 사이에 놓인 관계에 대한 그의 무지이다.

X

우리가 V. 일린의 책 대부분, 대략 3분의 2가량이 바로 “마흐주의자들”을 관념론으로 고발하는 데 바쳐져 있으며, 그 증거로 “마흐주의자들” 자신의 저작과 그들에게 공감하는 철학자들, 공감하지 않는 철학자들의 저작에서 끝없이 많은 인용이 제시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 우리 앞에는 심리적 수수께끼, 즉 우리 저자가 본질적으로 자기 반대자들과 똑같은 관점을 표명하면서 어떻게 이 모든 논쟁을 지어낼 수 있었는가 하는 수수께끼 말고도 논리적 수수께끼가 또 하나 나타난다. 이 논쟁이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자신의 견해와 형식적으로 결합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첫째 수수께끼를 풀 열쇠는 이미 우리 손에 있다. 말로 하는 신앙 고백에서는 확고하지만 개념에서는 흐릿한 종교적 사유가 그것이다. 둘째 수수께끼는 우리 저자가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극히 독특한 철학 비판 방법에서 해명되는데, 가장 부드러운 표현을 고르자면 나는 이 방법을 “개념 대체” 방법이라고 부르겠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마흐주의자들”은 모든 실재를 “경험 요소”로 환원한다. 이 “요소”란 무엇인가? 색, 형태, 음, 냄새, 단단함 따위다. 그런데 흄은 이 모든 것 — 색, 음 등 — 을 감각으로 여겼다! 따라서 — “요소”는 — 곧 감각이다. 그런데 버클리는 바로 그 색, 형태 따위를 관념으로 인정했다! 따라서 감각은 곧 “관념”이다! 그러므로 “요소”는 곧 관념이고, “마흐주의”는 가장 순수한 관념론, 즉 “신앙주의”, “성직자주의” 등등이다.

마흐와 경험비판론자들에게서 경험에 대한 이해는 실재론적이다. 경험이란 사물과 상, 물리적 복합체와 심리적 복합체다. 요소는 두 경우 모두 같은 것이다. 어떤 복합체에서는 그것이 사물의 요소이고, 다른 복합체에서는 상의 요소, 즉 감각이다. 사물(또는 “환경”)의 요소는 개인과 독립된 객관적 연관 속에서 취해진 색, 형태, 단단함, 부드러움 등이다. “장미 꽃잎”이라는 복합체에서 붉은색은 부드러움, 타원형, 은은한 향기 등과 객관적으로 또는 “대상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즉 “내”가 꽃잎을 보든 안 보든, 색을 정상적으로 구별하든 못 하든 따위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결합되어 있다. “꽃잎의 지각”이라는 복합체에서 붉은색은 “내”가 눈을 감으면 사라지고, “내”가 색맹이면 다른 색으로 바뀌며, “내”가 꽃잎을 보는 동시에 만질 경우에만 “부드러움”의 감각을 동반한다. 여기서는 붉은색도, 부드러움도, 냄새도 “나의” 감각이다

흄, 칸트주의자들, 플레하노프 등에게서 경험에 대한 이해는 개인 심리적이다. 경험이란 “나의” 심리적 상들이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라는 것은 경험 요소들의 독립적 연관이란 말할 나위도 없다는 뜻이다. 이 연관은 언제나 주관적이며, 경험의 모든 구성 부분은 언제나 오직 “감각”, 개인적인 “나의” 감각일 뿐이다. 예컨대 플레하노프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장미가 어떤 색을 지니는지, 아무도 냄새 맡지 않을 때 어떤 냄새를 지니는지…”를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한다(「Materialiamus militans」, 둘째 편지). 즉 이 경우 장미는 색도 냄새도 지니지 않는다. 어떤 “주체”도 그것을 “감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버클리에게서 경험에 대한 이해는 관념론적이며, 그래서 그에게는 경험의 모든 구성 부분이 기본적인 “관념”으로 여겨진다.

달리 말하면, 경험 일반을 달리 이해하면 당연히 그 구성 부분, 즉 경험을 분해한 최종 결과에 대한 개념도 달라진다.

Vl. 일린의 결론: 그러므로 이 서로 다른 개념들은 거리낌 없이 하나를 다른 것으로, 그 다른 것을 셋째 것으로, 등등 바꿔 놓을 수 있다[3].

이 전혀 새로운 방법은, 내 기억으로는, 쇼펜하우어가 온갖 무례하고 허용될 수 없는 논쟁 수법을 무척 공들여 모아 보려 했던 『논쟁술』에서조차 언급되지 않는다(어쩌면 대놓고 터무니없는 수법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새로운 방법을 더 적용해 나가면 매우 흥미롭고 독창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방법을 그 발명자 자신에게 적용해 보자. 그는 오직 “감각적 존재”만이 존재하며 그 밖의 어떤 존재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감각적 존재란 무엇인가? 분명히 감각적 요소들, 즉 색, 소리, 형태, 단단함 따위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러나 이 요소들은 다름 아닌 “바로 그 감각들”이고, 감각은 다름 아닌 “관념들”이다. V. 일린의 철학이 관념론, 교권주의, 성직자주의 따위라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하기야 이미 보았듯이 이 결론이 진실에서 그리 멀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방법이 옳다는 뜻이 아닌가?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다만 판단할 때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고려를 저울에 올려놓기 바란다. 이 물음에 부정적으로 답한다면, 독자는 Vl. 일린의 철학 논고 가운데 적어도 3분의 2를 아예 쓰이지 않은 것처럼 여길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철학자가 즐겨 쓰는 저자 “바꿔치기”는 같은 방법의 한 변주다. 한스 코르넬리우스는 스스로 “아베나리우스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자신의 지향을 밝히고” 있으며, 마흐는 그를 “같은 길은 아니더라도 매우 가까운 길을 걷는” 연구자로 “추천한다”(256쪽). 그런데 코르넬리우스는 이러저러한 관념론적 생각을 피력한다. “이것을, 마흐(강조는 나의 것. A. B.)의 철학에는 그가 모든 ‘물자체’를 부정하는 이상 신, 자유의지, 영혼 불멸의 관념이 들어설 자리가 절대로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A. 보그다노프의 주장과 견주어 보라”(257쪽).

두 쪽 뒤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마흐가 클라인페터로 바꿔치기되고, 몇 개의 인용 끝에 의기양양하게 결론이 내려진다. “마흐 자신이 클라인페터 같은 위인을 추천하는(강조는 나의 것. A. B.) 판에, 마흐의 철학에는 자유의지가 들어설 자리가 절대로 없다는 보그다노프의 주장이 얼마나 대담한지 이제 판단해 보라! (261쪽).

참으로 풍요로운 결실을 낳는 방법이다. A가 B를 추천한다면 굳이 A를 비판할 필요가 있겠는가. B를 고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B가 C를 추천한다면 아예 A를 곧바로 C의 소행으로 고발하는 편이 더 낫다. 이런 식으로 철학적 “연줄”의 사슬은 분명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아베나리우스가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코르넬리우스의 모든 견해에 책임이 있다면, 엥겔스 역시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Vl. 일린의 모든 발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엥겔스가 헤겔을 “추천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Vl. 일린이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관념론자라는 것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독자여, 그대에게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황당하게 보일 수 있는 이것도 권위주의적 사유의 습관으로 쉽게 설명된다. 아무 권위주의적 조직이나, 하다못해 오늘날의 관료제를 보라. 거기서 상관은 부하의 소행에 책임을 지지 않는가? 그리고 부하는 상관의 뜻을 정확히 표현해야 하지 않는가? 이 관점을 철학 논쟁의 영역으로 옮겨 놓으면, 그대 앞에 Vl. 일린의 새로운 “방법”이 나타난다.

XI

앞서 말했듯이, Vl. 일린에게서 “물자체”와 “우리에 대한 사물”에 대한 통상적-경험적 또는 실재론적 이해는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플레하노프의 너무나 충실한 제자여서 때때로 스승의 관점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플레하노프에게 “물자체”는 결코 “우리에 대한 사물”과 원리적으로 동질적인 “감각적 존재”가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플레하노프는 칸트주의의 영향에 굴복하여, 처음에는 “물자체”에 우리가 아무런 개념도 형성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본성”, “속성”, “형태”가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경험에서 다루는 것은 오직 “현상” 또는 “우리에 대한 사물”뿐인데, 이것들은 그 “물자체”의 “기호”, “상형문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뒤 플레하노프는 이런 견해를 버리고, 물자체는 물론 존재하지만 그 “발현”, 곧 “우리의 감각기관에 대한 작용”에서 드러나는 것 말고는 어떤 “모습”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두 견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예컨대 지구는 그 위에 생명이 생겨나기 전에도 물론 존재했다. 그러나 첫째 견해에서 보면 지구는 우리가 자신의 감각적 지각에 근거하여 떠올리기 쉬운 모습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 “모습”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고 우리에게는 원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 둘째 견해에 따르면 지구는 도무지 아무것과도 “닮지” 않았고 어떤 “모습”도 갖지 않았으며, 감각기관을 지닌 생물이 나타나 “지구 자체”가 “그들에게 작용하기” 시작했을 때에야 비로소 모습을 얻었다.

두 견해 모두 철저히 형이상학적이며 철학적으로 불모하다. 첫째 견해는 과학의 근본 요구에 어긋나게, 우리에게 알려진 것, 곧 “현상”을 알려지지 않은 것, 곧 현상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만 알려진 “물자체”로 설명하려 한다. 둘째 견해는 “자체로서의” 사물에 일체의 감각적 성격을 빼앗긴 앙상한 “존재”를 부여하는데, 이미 헤겔이 (자신의 『논리학』에서) 보여 주었듯이 그런 존재는 논리적으로 비존재와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존재”에서 모든 실재적·경험적 내용, 곧 그 모든 감각적 요소를 떼어 내어 “순수 존재”만 남게 하면, 실제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모든 개념은 경험에서 생겨나며, 어떤 개념이 경험의 요소를 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공허하여 아무런 존재도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이 발생하기 전의 지구가 그저 “있었을” 뿐 어떤 “모습”도, 어떤 “속성”도, 어떤 감각적 요소도 갖지 않았다면, 이는 곧 지구가 없었다는 뜻이다. 경험론자들은 언제나 정당하게 “감각적인 것만이 존재한다”고 지적해 왔다.

나아가 플레하노프 자신도 (모든 형이상학이 그렇듯) 내적으로 모순된 이 두 견해 가운데 어느 쪽에도 굳건히 서 있지 못하고, 더 안정된 다른 입장을 찾지 못한 채 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리하여 그는 1905년까지는 물자체에 대한 첫째 이해(“상형문자”설)를 옹호했고, 1905년에는(엥겔스의 『L. 포이어바흐』 신판에 붙인 주석에서) 그것을 버렸으며, 1906년에는(『우리 비평가들에 대한 비판』에 실린 글 「유물론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시 되풀이했다가, 지금은 또다시 그것을 열심히 부정하고 있다. 어쨌든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물자체”는 감각적 존재의 성격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포이어바흐, 엥겔스, 그 밖의 경험론자들의 “사물”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바자로프는 플레하노프의 두 번째 관점을 검토하면서(논문집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관한 개요』에 실린 글, 11쪽 이하), 사물이 감각기관을 통해 살아 있는 유기체에게 띠게 되는 모습 말고는 다른 모습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테면 제2기 지층 형성 시대의 세계의 “모습”을 그 시대의 고등동물인 어룡과 시조새의 직관 형식으로 표상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고 정당하게 지적했다. 그것을 우리의 직관 형식으로 표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사물이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논쟁에 Vl. 일린이 끼어든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 편에 서는가? “감각적” 존재 말고는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바자로프 편인가, 아니면 “모습”을 갖지 않는, 그리고 분명히 형태도 단단함도 냄새 따위도 갖지 않는 비감각적 존재를 인정하는 플레하노프 편인가? 아아!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첫 번째, “마흐주의적” 견해와는 반대로, 그는 더없이 단호하게 플레하노프 편에 선다.

“바자로프는 플레하노프의 말꼬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물자체가 우리 감각기관에 작용하는 것과 별개로는 아무런 모습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물자체가 제2기에는 어룡의 감각기관의 ‘모습’으로서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유물론자의 추론이란 말인가?! ‘모습’이 ‘물자체’가 감각기관에 작용한 결과라면, 이로부터 사물이 어떤 감각기관과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단 말인가?”(84쪽).

묻건대, 이 고결한 분노는 합당한가? 누구에게나 — 아마 Vl. 일린 자신에게조차 — 플레하노프도 바자로프도 “모습”이라는 낱말을 특별히 시각적인 성격이 아니라 사물의 감각적 성격 일반을 가리키는 데 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감각 바깥에 있는 것의 존재는 도무지 어떤 방법으로도 표상할 수 없고 오직 감각적인 것만 표상할 수 있는데, 플레하노프는 그 감각적인 것을 현존하는 “감각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이 관점에서는 쥐라기, 백악기 따위 지층의 “사물”을 바로 당시 도마뱀들의 지각 형식으로 표상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플레하노프라면 어쩌면 그래도 해낼지 모른다.

그렇다면 Vl. 일린은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가? 그리고 왜 하필 바자로프에게?

만일 Vl. 일린이 앞에서 우리가 서술한 자신의 첫 번째 입장에 서 있었다면, 그는 플레하노프에게 화를 내며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해야 했을 것이다. “존경하는 스승님! 모습을 갖지 않는 사물에 대해 하시는 말씀은 순전한 헛소리입니다. 감각적인 사물, 즉 “모습”, 부피, 단단함, 냄새를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또는 부분적으로 지닌 사물,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지각은 포착하지 못하지만 다른 존재의 지각은 포착할 수 있는 그 밖의 많은 것을 지닌 사물 말고는 다른 사물은 없습니다. 우리에 대한 사물의 “모습”은 물자체가 지닌, 비할 바 없이 더 풍부한 “모습”의 “일부 또는 한 측면”일 뿐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유물론이라는 이름 아래 그런 형이상학을 설파하시지만 헛된 일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이 문제에서 저와 생각을 같이하는 바자로프가 스승님을 아주 정당하게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는커녕 V. 일린은 바자로프에게 고함을 친다. “‘곡마단식 묘기’!… 무지는 논거가 아니다!… 뻔뻔한 혼란!… 문필상의 무례!…” 등등(이 모두가 84~85쪽에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생겼는가?

설명은 두 가지로 귀결된다. 종교적 사유가 모호하고 그 사유에서 신앙 고백의 언어적 형식이 압도적인 의미를 지니는 탓에, V. 일린은 자기의 근본 입장을 플레하노프의 입장과 구별하지 못한다. 플레하노프도 “스스로를 변증법적 유물론자라고 부르고”, 바자로프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 권위를 지켜야 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아무 바자로프나 자유사상가 같은 비판을 감히 하게 내버려 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 그것도 누구에게? 다름 아닌 플레하노프에게. 그것도 어떤 비판을? 더없이 불경스럽게 조롱하는 비판을. 아니다, 독자여, 여기서 고함을 지르지 않고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는 것을 당신도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 V. 일린이 자기 책의 대부분에서 바로 자신이 열렬히 옹호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물” 개념으로 넘어가 버렸다는 것 — 그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트집을 잡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에게는 같은 문제에 대해 이 두 번째 견해 말고도 세 번째 견해까지 있으니 말이다.

XII

어떤 사물의 반영을 그 사물의 “부분”이나 그 한 “측면”으로 여길 수 있는가? 분명히 그럴 수 없다. 이것들은 전혀 다른 개념이며, 예컨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자기 몸의 일부나 몸의 “측면”으로 여긴다면 이상할 것이다. 여기서 관계는 다른 것, 즉 인과적 연관이다. 반영은 “반영되는 것”에 의해 제약되며, 동시에 “반영하는 것”에 의해서도 제약된다. 이를테면 온도계 속 수은 높이의 변동은 대기 중 온도 변화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변동은 한편으로는 물론 공기의 열 상태(“반영되는 것”)에 의해 규정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 결코 그보다 덜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큰 정도로 — 온도계 자체의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 예컨대 수은이 담긴 보통의 그릇에서는 온도 변동이 온도계에서와 같은 크기도, 같은 규칙성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온도계의 변동을 대기 온도 변화의 “부분”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물론 어처구니없는 일일 것이다.

엥겔스에게는 사물에 대한 인간의 지각과 표상을 사물의 “사진”이나 “사본”(Abbild)으로, 사물의 “반영”으로 규정하는 정식들이 나온다. V. 일린은 엥겔스가 말하는 모든 것에 그러듯이 당연히 이 정식들에도 서명한다. 일린은 전적인 동의를 표하며 알브레히트 라우에게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인용한다.

“사물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감각은 이 사물들의 본질을 그려 낸 상이다”(278쪽).

“엥겔스의 관점에서 변함없는 것은 — 하고 V. 일린은 다른 곳에서 말한다 —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인간 의식에 독립하여 존재하고 발전하는 외부 세계를 인간 의식이 (인간 의식이 존재할 때) 반영한다는 것이다”(312쪽).

Vl. 일린은 헬름홀츠에게서 이렇게 인용한다.

“우리의 개념과 표상은 우리가 보거나 머릿속에 떠올리는 대상들이 우리의 신경계와 의식에 미치는 작용이다”(275쪽). 그리고 V. 일린은 여기에 자기 말로 “이것은 유물론이다”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반영” 이론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얼핏 보면 우리 앞에 있는 것은 그저 플레하노프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플레하노프 역시 “현상”이란 물자체가 감각기관에 “작용한 결과”, 다시 말해 인간의 감각적 조직 안에 그 사물들이 반영된 것이라고 늘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플레하노프와 일린 사이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큰 차이가 있다. 플레하노프에게 물자체는 결코 감각적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이 성격은 오직 물자체의 “현상”에만 고유하며, 따라서 물자체는 현상과 원리적으로 구별된다. 반면 일린에게는, 그 자신이 여러 차례 강조하듯이, “감각적 존재 외에 다른 존재는 없으며”, 물자체는 현상과 원리적으로 동질적이다. 이것은 플레하노프의 경우처럼 형이상학적인 반영론이 아니라 경험적인 반영론이다. 이 이론이 앞에서 우리가 지적한 “물자체”에 관한 일린의 두 견해 어느 쪽과도 맞지 않으며,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세 번째 구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구상은 좀 더 자세히 살펴볼 만하다.

이 구상에서는 “반영되는 것”과 반영 사이의 완전하고 정확한 닮음을 뜻하는가? “모사”, “사진”, “거울상” 같은 용어는 그렇게 해석할 빌미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나란히 쓰이는, 더 정확하고 덜 비유적인 정식들, 즉 “물자체가 우리에게 작용한 결과” 따위는 그런 해석에 반대된다. 어떤 사물이 “작용한 결과”가 왜 그 사물과 “거울처럼” 닮아야 한단 말인가? 경험에서는 그런 닮음이 없는 경우가 비할 수 없이 더 자주 나타난다. 예컨대 음파가 바늘에 작용하고 그 바늘을 통해 축음기의 원통에 작용한다면, 그 작용의 결과는 그 안에 “반영되는” 선율과 “닮았는가”? 물론 전혀 닮지 않았다. 그러나 첫째, 그 결과는 선율과 “원리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것은 선율과 같은 “감각적 존재”, 같은 “요소들의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결과는 일반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이 그 조건들에 의해 규정되듯이 선율에 의해 “규정된다”. 같은 하나의 “물자체”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반영”은 때로 너무나 달라서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핏방울은 평소 관찰되는 모습 그대로의 “우리에 대한 사물”로 보면 균질하고 불투명한 붉은 구슬이다. 그러나 현미경 아래에서는, 즉 이 역시 “우리에 대한 사물”이지만 다른 관찰 조건에서는, 핏방울이 투명한 액체의 흐름으로 나타나며, 그 안에는 수백만 개의 옅은 누르스름한 빛을 띤, 양면이 오목한 투명한 소체들과 수만 개의 무색의 아메바 모양 살아 있는 세포들이 떠다닌다. 이 “반영”도 저 “반영”도 “반영되는 것”, 즉 “그 자체로서의” 핏방울의 정확한 닮은꼴로 여겨질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둘 다 “반영되는 것”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 또는 “마흐주의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에 대해 함수적 의존 관계에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비판 대상인 저자를, 불명확한 경우에는 언제나 그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다는 규칙을 따른다면, 우리는 그가 “반영”을 말할 때 직접적 닮음이라는 조잡한 개념이 아니라, “작용하는” “원인”에 대한 “결과”의 의존이라는 과학적 구상을 뜻한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사물”과 “현상”에 관한 그의 이 세 번째 견해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물자체”는 감각적 존재로, 즉 경험의 감각적 요소들과 비슷한 요소들의 복합체로 받아들여진다. 이 복합체들은 서로 “작용하고” 서로의 안에 “반영되며”, 그중에서도 인간의 의식 안에 반영된다. 이 후자의 “반영”도 역시 감각적인 요소 복합체이며, 우리가 사물의 “지각”과 사물에 관한 표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룬다.

내 저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앞서 서술한 V. 일린의 견해에서 어렵지 않게, 그러나 아마도 놀라움 없이는 아니게 — 경험일원론적 치환 이론을 알아볼 것이다. 그 놀라움은 더욱 정당하다. V. 일린은 치환 이론을 맹렬하게 비판하며 거기서 “철학적 관념론의 헛소리”, “자연과학에 대한 조롱”, “신”에 대한 믿음 따위를 보기 때문이다(270쪽).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Vl. 일린은 자기 책의 몇몇 부분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험일원론자로 등장하여 보편적 치환 이론을 설파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새로운 추종자가 자랑스럽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실 자체에 나에게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도, 수수께끼 같은 것도 전혀 없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나는 이를 3년도 더 전에 했던 나의 오래된 예언 하나가 거의 실현된 것으로 볼 권리가 있다. 바로 이것이다. 나는 그때[4] 플레하노프에게, 만약 그가 자신의 “반영 이론”에서 명백히 형이상학적인 특징을 제거하고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는 칸트주의적 누메논이 아니라 감각적 존재로 이해하려 한다면, 논리적 필연성이 그를 보편적 치환 이론으로 이끌 것이라고 설득했다. 작년에 나는 경험일원론으로 가는 바로 그 논리적 길을 다시 끈질기고 상세하게 지적하며 그쪽의 직접적인 대답을 얻어 내려 했다[5]. 그러나 나는 플레하노프에게서 대답을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쪽을 택했다. 그 대신 Vl. 일린은 내가 플레하노프에게 제안했던 것을 실제로 수행함으로써 나에게 완전한 도덕적 만족을 안겨 주었다. 분명히 내 저작의 앞서 언급한 쪽들이 적어도 V. 일린에게는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치환 이론이 아직 경험일원론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경험일원론의 절반이며, 그것도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 V. 일린도 그중 하나다 — 특히 공격하는 절반이다.

XIII

우리는 Vl. 일린 자신의 견해를 어느 정도 살펴보았는데, 두 가지 근본 문제에 대해 그의 견해는 여섯 가지나 되었다. 철학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상의 풍부함이다. 이제 그의 작업의 부정적인 측면, 즉 본래의 비판적 측면으로 넘어가면서, 나는 경험일원론에 대한 그의 논박을 살펴보고자 한다.

경험일원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경험비판론자들이, 그리고 그들보다 한층 더 심하게 우리나라의 플레하노프 유물론 학파가 a priori 배제하는 몇몇 문제를 감히 제기하고 풀어 보려 한다는 데 있다.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문제, 경험의 물리적 연관과 심리적 연관의 발생을 연구하는 문제가 그러하다. 경험비판론자들은 이 연관과 저 연관,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철학의 과제는 거기서 끝나고,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니 그 기원을 물을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플레하노프 학파는 이 문제들에서 한층 더 절제한다. 이 학파는 늘 “자연”과 “정신”,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작업하는데, 이는 누구에게나 아주 익숙한 개념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매우 모호하며, 아주 다양한 뉘앙스와 의미로 쓰이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학파는 “자연” 또는 “물질”은 일차적인 것이고 “정신”은 이차적인 것이라는 점 말고는 이 두 개념에 아무런 정의도 내리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 학파는 두 기본 개념에 다른 정의를 내리기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며, “물질” 또는 “자연”이 일차적인 것인 이상 그것은 어떤 정의의 대상도 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이, “정신”까지 포함하여, 그것을 통해 정의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을 취한 것은 정통파, 데보린, 라흐메토프였고, 그들의 스승인 벨토프와 플레하노프는 신중하게 침묵을 지켰는데, 물질을 정신을 통해, 또 거꾸로 정신을 물질을 통해 정의하는 그 유명한 상호 정의는 바로 이 스승들의 것이다.

이 논쟁의 결과는 그것을 지켜볼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아마 이미 아주 분명해져 있었을 것이다 — Vl. 일린이 무대에 나서서 저울 접시 위에 자신의 권위 있는 의견을 던져 놓았을 때에는 말이다 — 이번에는 다행히도 단 하나의 의견이었지만, 그 대신 아주 확고한 의견이었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어진 개념을 더 넓은 다른 개념 아래에 포섭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내가 당나귀는 동물이다라고 정의할 때, 나는 ‘당나귀’라는 개념을 더 넓은 개념 아래에 포섭한다. 이제 묻건대, 인식론이 다룰 수 있는 개념 가운데 존재와 사유, 물질과 감각,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라는 개념보다 더 넓은 개념이 있는가? 없다. 이것들은 극도로 넓은, 가장 넓은 개념들이며, 인식론은 사실상(언제나 가능한 명칭 변경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이것들 너머로 나아가지 못했다. 오직 협잡이나 극도의 우둔함만이 이 두 ‘계열’에 대해 ‘단순한 반복’, 즉 이것 또는 저것을 일차적인 것으로 삼는다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정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물질, 자연, 존재, 물리적인 것은 일차적인 것이고 정신, 의식, 감각, 심리적인 것은 이차적인 것이라는 말의 반복으로 귀착되지 않는 그런 물질의 정의를 마흐주의자들이 유물론자들에게 요구할 때, 그들이 얼마나 엄청난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하기만 하면 충분하다”(164쪽).

“마흐주의자들”의 처지가 딱하다. 그래도 어떨까? 우리가 “더 넓은 개념”을 찾아보고, 그것으로 “물질”과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을 “정의”해 본다면 말이다. Vl. 일린의 말에 따르면 이것도 그와 똑같이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더 편리하다. 이 개념들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것도 심리적인 것도 인식된다. 즉 인식의 재료를 이룬다. 또는 같은 생각을 달리 표현하자면, 둘 다 똑같이 경험의 세계에 속한다. 자, 벌써 “더 일반적인 개념”이 하나 나왔다.

더 나아가 보자. 경험, 곧 인식의 재료를 우리는 분석할 수 있다. 분석을 될 수 있는 한 꼼꼼하게 수행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밀고 나가 보자. 그러면 우리는 “경험의 요소”에 이른다. 마흐주의자들은 색, 음, 형태, 냄새 등을 그러한 요소로 인정한다. 경험일원론은 색, 음, 형태 따위가 경험 속에서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과정이 경험의 요소라고 본다. 곧 “마흐주의적” 정적인 요소의 자리에 동적인 요소를 놓는다. 이 차이에 머무르지는 말자. 중요한 것은 분석이 우리를 이런저런 요소로 이끌 것이며, 그것을 더 분해하지 못하는 동안에는 우리가 그 요소들로 만족해야 하리라는 점이다.

이렇게 우리는 경험의 요소를 얻었다. 묻건대, 그것은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에 대해 같은 것인가, 서로 다른 것인가? “마흐주의적” 구상을 취하든 경험일원론적 구상을 취하든, 같은 것임이 드러난다. “물리적” 현상이든 “심리적” 현상이든, “환경의 과정”이든 “지각”, “표상” 따위든, 모두 경험 속에서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색, 음, 단단함, 무름, 형태 등의 요소로 분해된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더 일반적인 개념”을 얻는다. 경험의 요소가 그것이다.

한 걸음 더 내딛자. 경험의 요소들은 어떤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가? 이런저런 일정한 연관 속에서 나타난다. 여기에 세 번째의 더 일반적인 개념이 있다. 요소들의 연관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에서 요소들이 맺는 연관의 성격을 탐구한다. 그 성격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제 분명해진다. 두 경우에 그 연관이 각각 어떤 연관인지를 밝히면, 우리는 더 일반적인 개념들, 곧 경험, 요소, 연관을 통해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의 정의를 얻게 된다. 서술을 복잡하게 하지 않으려고 나는 여기서 그 정의들을 마흐주의적인 것이든 경험일원론적인 것이든 끌어오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 정의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정확한 분석과 특수한 것을 일반적인 것 아래 포섭하는 일을 통해 더없이 정당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엄청난 난센스”와 “협잡 아니면 극도의 우둔함”의 죄는 대체 누구에게 있는가? 보아하니 논리학의 법칙에 있는 모양이다.

Vl. 일린은 이어서 이렇게 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천재성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새로운 말마디, 난해한 용어, 교묘한 ‘이즘’을 가지고 노는 현학자들의 놀이를 경멸하고, 철학에는 유물론적 노선과 관념론적 노선이 있으며 그 사이에 갖가지 색조의 불가지론이 있다고 단순하고 솔직하게 말했다는 데서 드러났다”(164~165쪽).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이즘”을 경멸하고, 그저 단순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유물론, 관념론, 불가지론이라고. 아니, 어떻게 이 지경까지 말이 헛나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여기서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우리 저자의 최종 결론이다.

“철학에서 ‘새로운’ 관점을 찾으려는 안간힘은 ‘새로운’ 가치론, ‘새로운’ 지대론 등을 만들어 내려는 안간힘과 똑같은 정신의 빈곤을 드러낸다”(165쪽).

그러니까 과학은 제 흐름을 멈춘 것이다…

그런데 Vl. 일린이 60년 전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은 마르크스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60년 전에 마르크스는 뻔뻔하게도 이 모든 영역에서 당대로서는 “새로운” 관점들을 열어젖혔으니 말이다!

권위주의적 사유의 보수주의는 언제 어디서나 본질적으로 똑같기 때문이다.

XIV

경험일원론의 두 번째 특징이자 마흐-아베나리우스 학파와 다른 점은, 경험의 요소들 사이의 연관을 요소들이 일정한 법칙성을 띠고 복합체와 계열로 단순히 결합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요소들의 조직으로 이해한다는 데 있다.

“조직”이라는 개념이 “결합”이라는 개념과 다른 점은, 조직된 복합체가 외부 작용으로 인해 그 안에 일어나는 모든 분리, 또는 일반적으로 모든 변화에 저항한다는 생각을 포함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것은 주어진 연결이 그 형태들의 투쟁 속에서 생겨나고 파괴되고 변형된다는 역사적 발전의 관념도 포함한다. 바로 경험일원론적 구상의 이러한 측면 덕분에 물리적 경험과 심리적 경험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문제, 즉 양자의 기원과 발전, 그 발생적 상호관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여기서 내 연구의 방법과 결과를 조금이라도 자세히 서술할 여유가 없다. 그것은 다른 저작들에서 했다[6]. 결론은 물리적 복합체와 심리적 복합체가 조직의 유형과 단계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심리적 복합체의 특징은 더 낮은, 연상적 조직 형태, 달리 말하면 “주관적” 조직 형태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조직된 경험이다. 반면 물리적 복합체, 즉 우리가 우리의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여기는 “물체”와 “과정”은 더 높은 조직 형태, 곧 “객관적 법칙성”을 지닌다. 그 배후에는 요소들을 점점 더 정연하고 복잡하게 묶어 내는 노동과 인식의 집단적 과정이 숨어 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조직된 경험이다.

더 나아가 나는 경험의 연상적 조직, 즉 심리적 조직이 이미 상당히 높은 단계이며, 요소들을 잇는 연결 형태가 오랜 역사를 거쳐 복잡해지고 완성되어야만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온갖 낮은 단계들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단계들은 요소들의 자연발생적 혼돈에서부터, 아무리 미약하고 불완전하더라도 경험이 조직된 상태에 이르기까지 걸쳐 있다. 이러한 낮은 복합체들이 바로 인간과 다른 생물이 없는, 개인적 주체나 집단적 주체와의 관계가 없는 자연, 곧 “무기적 물자체”에 관한 유물론적 개념에 대응한다. 우리가 자신의 경험 속에서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안의 사물”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조직 활동의 결과이며, 요소들의 세계를 우리가 노동과 인식으로 가공한 결과다. 그러나 “물자체”, 또는 내가 즐겨 부른 이름으로는 직접적 복합체는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자신의 “반영”인 경험의 물리적 복합체보다 내용이 비할 데 없이 풍부하지만, 조직된 정도는 비할 데 없이 낮다. 그 안에서 요소들의 연결은 더 단순하고, 덜 안정적이며, 덜 확정적이다.

이리하여 경험일원론은 우주를 무한히 펼쳐지는 요소들의 세계로 본다. 이 요소들은 점점 더 복잡하고 정연한 복합체로 조직된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에 “무기적 자연”으로 반영되는 가장 불안정하고 취약한 묶음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심리를 부여받은 생물”로 지각하는 연상적 결합을 거쳐, 개인적이자 사회적인 인간의 경험 조직에 이르고, 어쩌면 더 완전한 다음 형태와 유형으로까지 나아간다.

경험일원론은 그 일반적인 세계상에 맞게, 사람들의 노동 활동 일반과 특히 인식을 하나의 투쟁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환경의 낮고 자연발생적인 복합체들을 사회적 존재에 속하거나 사회적 존재를 떠받치는 형태로 조직하려는 투쟁이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존재의 조직 형태가 되고, 특히 모든 “진리”는 경험의 조직 형태가 된다.

경험일원론의 이 측면, 즉 사회생활에서 이데올로기가 하는 조직적 역할에 관한 학설과 “진리”(“오류”도 마찬가지로)의 역사적·사회적 성격과 의의에 관한 학설을 나는 그 밖의 측면들보다 먼저 정식화했다[7]. 바로 그 때문에 Vl. 일린이 무엇보다 먼저 이 측면에 공격을 퍼붓는 것인지도 모른다.

XV

진리가 인간 경험의 조직 형식이라는 생각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Vl. 일린은 이렇게 증명한다.

“자연과학은 인류 이전에 지구가 존재했다는 자신의 주장이 진리임을 의심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물론적 인식론과 완전히 양립한다. 반영하는 것들로부터 독립된 반영되는 것의 존재(외부 세계가 의식으로부터 독립해 있음)는 유물론의 기본 전제이다. 지구가 인류 이전에 존재했다는 자연과학의 주장은 객관적 진리이다. 자연과학의 이 명제는 마흐주의자들의 철학과도, 그들의 진리론과도 화해할 수 없다. 만약 진리가 인간 경험의 조직 형식이라면, 모든 인간 경험 바깥에 지구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참일 수 없다”(134~135쪽).

“반영되는 것”의 인정은, 독자도 알다시피, 경험일원론의 기본 명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보편적 치환 이론). 그러니 이를 근거로 Vl. 일린은 당장 나를 유물론자로 선언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는 한사코 나를 “마흐주의자”라고 부를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인식에 관한 나의 견해를 마흐주의자 일반에게 덮어씌우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왜곡은 제쳐 두자. 어차피 다 셀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 대신 이렇게 물어보자. 대체 왜 “모든 인간 경험 바깥에 지구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바로 그 경험의 조직 형식일 수 없다는 것인가?

세상만사는 놀랍게도 되풀이된다. 몇 해 전에는 베르댜예프 씨가 나에 맞서 자연과학을 “옹호”했고, 이제는 V. 일린이 그 일을 한다. 둘 다 “절대적인 것”의 깃발 아래서다. 그리고 둘은 이 옹호를 하면서, 그토록 용감하게 나로부터 구해 내겠다고 나선 바로 그 자연과학에 대한 “절대적” 무지를 드러내는 데 똑같이 성공했다. 베르댜예프 씨는 당시 16~18세기의 이론을 현대 자연과학의 것으로 돌렸고, V. 일린은 이제 오늘날의 지질학을 절대적이고 영원한 크기로 선포하면서, 동시에 지구의 과거에 관한 그 학설은 우리 경험의 조직 형식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이 학설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쓸모 있는 금속과 광물을 찾아 지각을 파헤쳤고, 노동 경험 속에서 여러 지층의 배열과 상호 관계를 연구했다. 산의 절벽과 틈에서 그들은 이 지층들이 서로 얽힌 복잡한 모습을 발견했는데, 이는 땅속에 숨은 부를 채굴하는 데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동시에 사람들은 지각의 구조를 바꾸는 여러 자연발생적 과정을 관찰했고, 때로는 그것을 몸소 겪기도 했다. 경험의 이 모든 재료는 자연스럽게 지각의 현재 상태가 오랜 발전의 결과라는 통일적 관념으로 조직되었다.

나아가 지각의 여러 층에서는 여러 식물과 동물 유기체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나중에 쌓인 층에는 인간 존재와 인간 노동의 흔적이 있다. 더 깊은 층에는 그런 흔적이 없고, 더 낮은 유형의 동물 뼈만 있다. 더 깊이 내려가면,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는 유기적 생명의 징후가 더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 고생물학적 재료는 현대 생물학의 재료와 연관 지을 때, “지구는 인간 이전에, 심지어 모든 생명 일반 이전에 존재했다”는 관념으로만 조화롭게 통일할 수 있고, 그런 관념으로만 조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관념이 바로 경험을 조직하는 형식이라는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러나 Vl. 일린은 “경험을 조직한다”는 정식 자체가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법칙은 경험 속에 완성된 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식이 경험을 조직하는 수단, 즉 경험을 “조화로운 통일로 일치시키는” 수단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에 대해 우리의 저자는 재치 있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가을 다음에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에 봄이 온다는 법칙은 경험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유가 만들어 낸 것이며, 조직하고 조화시키고 일치시키는 수단이라는 것인데… 무엇을 무엇과 말인가, 보그다노프 동지?”(192쪽)

존경하는 저자에게 감히 말하건대, “가을”, “겨울”, “봄”처럼 복잡하고 일반화하는 개념은 실제로 경험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경험 속에 주어진 것은, 예컨대 “눈”, “얼음”이라는 복합체를 이루는 요소들과 결합하고, “어둠”의 요소(긴 밤)가 늘어난 상태에서 나타나는 대량의 “추위” 요소 따위였다. 그리고 이 감각적 재료 전체가 “겨울”이라는 개념으로 조직되었다. 이와 다르지만 역시 방대하고 복잡한 감각적 재료(“따뜻한 것”, “축축한 것”, “푸른 것”, “밝은 것” 등의 요소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는 “봄”이라는 개념으로 조직되었다. 끝으로, 이런저런 체험의 총합이 비교적 작은 변화만을 동반한 채 되풀이된 것이 겨울 다음에 봄이 온다는, 조직하는 “관념” 또는 “법칙”의 재료가 되었다. 두 개념에도, 그것들을 통합하는 법칙에도 절대적인 것은 전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경험은 우리에게 5월의 눈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는 “봄”이라는 개념에 어떤 모순을 들여오지만, 그 모순은 개념 자체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조직 형식을 만들어 내게 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적도 지방에 정착한다면 경험은 우리에게 아주 많은 모순을 가져다줄 것이고, 이전의 조직 형식들 — “겨울”, “봄”이라는 개념 — 은 그 모순을 전혀 견뎌 내지 못할 것이며, 예컨대 “건기 다음에 우기가 온다” 따위의 새로운 형식이 불가피하게 만들어질 것이다.

이제는 V. 일린이 인간의 개념과 관념 속에서 “무엇이 무엇과 조직되는지” 깨달을지 지금 궁금하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라고 V. 일린은 분개한다. “진리가 인간 경험을 조직하는 형식일 뿐이라면, 이를테면 가톨릭의 교리도 진리라는 말이 된다. 가톨릭이 인간 경험을 ‘조직하는 형식’이라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135쪽).

가톨릭이 현대 인류의 경험을 모순 없이 조화롭고 정연하게 조직할 수 있다면 가톨릭은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이 경험을 그렇게 조직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가톨릭은 “기적”이라는 관념,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라는 관념 따위처럼 오늘날의 경험과 날카롭게 모순되는 관념을 수없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톨릭은 자신이 그 경험을 성공적이고 온전하게 조직했던 시대에는 진리였다. 이 사실은 어떤 V. 일린도 그 덕성스러운 분개로 없애 버리지 못할 것이다.

가톨릭은 인간 체험의 가장 큰 총합을 정연하고 조화롭게 하나로 묶어 냈던 시대, 곧 봉건 시대에는 진리였다. 그 당시에는 자연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다듬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경험의 많은 개별적 사실들, 예컨대 지진, 역병, 암시에 의한 히스테리 환자의 치유, 집단 정신병, 드문 천문 현상, 신기루 따위는 확립된 자연 질서에 어떤 권세 있는 힘이 개입하여 그 질서를 깨뜨린 것으로 지각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사실들을 하나로 조직한 “기적”이라는 관념은 진리였을 뿐 아니라 자명한 진리였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의 사회생활 전반을 권위주의적 관계가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우주의 권위주의적 구조에 관한 관념, 곧 우주가 하급 신들의 온전한 위계와 그 모두 위에 군림하는 최고 지배자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관념이 그 관계들을 지극히 논리적이고 조화롭게 보완하는 것, 그 관계들의 사유상의 완결이었다 — 중세 가톨릭에서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그 당시에는 삶과 인식의 형태가 전반적으로 보수적이었으므로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라는 관념 또한 역사적으로 참이었다; — 그 관념은 당시에는 형태들의 끊임없는 혁명이 급속히 전개되는 우리 시대에서와 같은 모순에 부딪치지 않았다.

그러나 Vl. 일린에게 이 모든 것은 “절대적 오류”일 뿐, 그 이상이 아니다… 아니, 미안하다, 그게 아니다: 가톨릭의 기본 관념 가운데 하나인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만큼은 그가 손끝 하나 대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으며, 참으로 종교적인 열성으로 옹호한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의 글에서 출발하면, 가톨릭이 단지 자기 시대의 진리였을 뿐 아니라 아예 진리 그 자체였음을 증명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V. 일린이 마흐와 논쟁하면서 내놓는 저 기상천외한 해석이다. 마흐는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에 관한 뉴턴의 표상을 두고, 우리에게는 이미 전적으로 잘못된 이 견해가 오랫동안 실천에서 무해했고, 그 때문에 비판받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V. 일린은 즉시 여기서 마흐의 꼬리를 잡는다:

“…자기가 반박하는 유물론적 견해들의 ‘무해함’을 인정함으로써, 마흐는 사실상 바로 그것으로 그 견해들의 올바름을 인정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잘못된 것이 어떻게 수 세기 동안 무해할 수 있었겠는가? 마흐가 집적거려 보려 했던 실천의 기준은 어디로 갔는가?” (206쪽).

가톨릭에 관해서라면,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라면 누구라도 V. 일린에게, 이 관념 체계가 “수 세기 동안” “무해했을” 뿐 아니라 사회를 조직하는 힘으로서 유익했고 필요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런데 — 그러한 “수 세기 동안의 무해함”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상” 가톨릭의 “올바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V. 일린 자신은 적어도 그 교리의 대부분을 부정하는가?

마르크스가 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라고 말할 때, 그는 이로써 무엇보다도 바로 진리의 상대성이라는 관점을 표현한다. 사람들의 실천 내용이 변하면 그들의 진리도 변한다. 더 좁은 실천의 범위 안에서 진리였던 것은 더 넓은 실천에서는 진리이기를 그친다. 그런데 V. 일린에게 “실천의 기준”이란 일종의 시험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치르고 나면 진리에게 최종 졸업장이 발급된다: 몇 세기를 견뎌 냈고 무해했다면 — 훌륭하다, 그 진리는 “객관적”이고 영원한 것 등등으로 인정된다; 견뎌 내지 못했다면 — 오류이며, 그것 역시 객관적이고 영원한 것 따위다.

실천에서 이 시험을 가장 훌륭하게 통과한 것은 분명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우주론이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해가 없었으니”, 다시 말해 “올발랐던” 것이다. 독자는 앞에서 이미 Vl. 일린의 철학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유난히 적대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은 그 이론에 대한 두 번째 반박이며, 다만 살짝 위장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 저자에게 가톨릭교는 물론 그래도 오류이며, 그것도 절대적 오류이다. 논리와 가벼운 충돌이 좀 생기는 것쯤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V. 일린은 역사적 관점 따위로 몸을 낮추지 않는다. 그는 지나간 과거의 모든 진리를 지금 자신이 가진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의 관점에서 심판한다. 어떤 선교사가 미개인의 풍습을 자신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도덕의 관점에서 심판하는 것과 같다. “기적을 믿었다고? 절대적 오류다. 옷을 입지 않고 다닌다고? 절대적 파렴치다!”

그토록… 꾸밈없이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XVI

“물리적 경험”의 성격에 관한 나의 연구가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그 경험에 인정하는 “객관성”이란 사람들에 대한 그 경험의 보편타당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보편타당성은 다시 그 경험이 사회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 집단적으로 조율되어 있다는 것의 결과이자 표현이다. 이러한 조직성 또는 조율은 사람들의 공동 노동과 교류의 과정에서 달성되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공통되고 동질적인 체험이 질서 있게 통합된다. 이때 물리적 경험의 “객관적 법칙성”이 형성되는데, 이 법칙성은 물리적 경험의 복합체들을 연속적이고 동질적인 공간 속에, 연속적이고 동질적인 시간 속에, 인과성의 사슬 속에 놓는다. 이미 형성된 객관적 법칙성이 존재하는 덕분에, 사람은 이 형식들에 온전히 들어맞는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된다. 그때마다 자기 체험을 직접 특별히 검증하거나, 그 체험이 정말로 “보편타당한지”, 즉 다른 사람들의 체험과 일치하는지를 밝혀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혜성을 처음 관측한 천문학자는, 그 혜성의 위치를 (자기 개인의 시야에서만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에서 정확히 확정하고, 시간 속에서 그 운동이 이어지는 순서, 그 운동이 태양의 인력에 의존하는 관계 등을 정확히 확정해 낸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 혜성을 보는지 따로 알아보지 않고도 그것을 “보편타당한” 물리적 물체로 여길 충분한 근거를 갖는다. 다른 한편, 다른 사람들이 “물리적인 것”으로, 같은 말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이런저런 복합체가 객관적 법칙성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사람이 정확히 확정해 낸다면, 그는 그러한 복합체의 “실재성”, 즉 그것의 “물리적” 존재를 부정할 충분한 근거를 갖는다. 예를 들어 숲 귀신이나 집 귀신 같은 “유기체”에게 발전의 계통적 사슬 속에서 자리를 찾아 줄 수 없고, 그것들의 “속성”에서 물리학 법칙들과의 모순을 발견한다면, 그는 그러한 복합체의 “객관성” 또는 보편타당성을 부정하는 데서 전적으로 옳다. 물리학 법칙들이야말로 수천 년에 걸쳐 쌓여 온 인류의 정확한 노동 경험을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를 둘러싼 사람들 대다수가, 아니 그와 같은 시대를 사는 인류의 압도적 다수가 달리 생각하고 그런 존재를 “제 눈으로 보았다”고 주장하더라도, 그의 편에는 “객관성”, 즉 인류의 조직된 경험이 있고, 그에 맞서는 것은 조직되지 않은, 모순투성이 경험이다.

왜냐하면 경험의 사회적 조직화는 결코 표를 세는 일이 아니라 발전하는 집단적 실천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떤 도구의 사회적 가치는 생산자 가운데 다수가 그것을 쓰느냐 소수가 쓰느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집단 노동의 진보가 요구하는 바에 부합하느냐로 정해진다.

그런데 이 모든 결론과 고찰에 대해 이제 Vl. 일린은 이렇게 말한다:

객관성과 물리적 세계에 대한 보그다노프의 정의는 무조건 무너진다. 종교의 교의가 과학의 교의보다 더 “보편타당”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대다수는 오늘날까지도 앞의 교의를 붙들고 있다. 가톨릭은 수백 년에 걸친 발전을 통해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조화되고, 합치되어” 있다. “인과성의 사슬”에도 더없이 반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들어맞는다”. 종교는 원인 없이 생겨나지 않았고, 현대의 조건에서 종교가 민중 대중 속에 유지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며, 철학 교수들이 종교에 비위를 맞추는 것도 전적으로 “법칙적”이기 때문이다(136-137쪽).

분명히 Vl. 일린은 “보편타당성”이나 “사회적 조직성”을 진리와 실재의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형태로밖에는 상상하지 못한다. 그 바로 앞쪽에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밝히는 인용문을 손수 끌어다 놓고서도 말이다. 못 하는 것이다 — 그것으로 끝이다. 이를 어쩌겠는가? 그러니 나는 그가 나의 관점에서 가톨릭 교의의 참됨으로 넘어가는 데 쓴, 놀랍도록 새로운 논리적 수법만 짚어 두겠다. 가톨릭은 역사적 사실로서 “원인 없이 생겨나지 않았으므로” 등등의 이유로 “인과성의 사슬에 들어맞는다”. 여기서 무엇이 나오는가? 분명히 단 하나, 가톨릭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Vl. 일린도 부정하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다른 데 있다. 가톨릭의 교의에 담긴 사실 이해가 “객관적”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답은 아주 분명하다. 가톨릭의 교의가 그려 보이는 사실들은 현대의 “인과성의 사슬”에 명백히 들어맞지 않으며, “기적”과 “자유의지”라는 관념은 그 사슬과 날카롭게 모순되고, 그러므로 우리 20세기 사람들에게 이 교의는 “보편타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냥 거짓이다. 그렇다면 존경하는 저자는 역사적 현상으로서 가톨릭이 지닌 객관성을 그 교의의 객관적 참됨으로 독자의 눈앞에서 바꿔치기하여, 대체 무엇을 증명한 것인가?

가톨릭교와 Vl. 일린의 가르침과는 달리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절대적이고 영원한” 오류 또한 없다. 하다못해 “기적”이라는 관념만이라도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라. 그것은 권위주의 시대에 지배적이던 “인과성” 개념에 부합했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이제 막 싹트고 있던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발전에도 인식상 유익했다. 실제로 그것은 모든 사물의 작용을 그 안에 숨은 “영혼들”의 의지 탓으로 돌리던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애니미즘을 부분적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어느 정도 발전하고, 적어도 주변 환경의 가장 일상적인 사물들은 다룰 줄 알게 되면서, 이 사물들 대부분이 “영혼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작용의 원인을 사물 자체의 바깥에서 찾는 데 익숙해졌다. 이것은 인식의 거대한 진보였다. 세계는 수없이 많은 독립적인 “정령들”의 사소한 개인적 자의가 빚어내는 혼돈이기를 그쳤고, “사물”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싹텄다. 그러나 인식은 여전히 극히 미약했고, 이따금 일상적인 사물조차 뜻밖의 이해할 수 없는 작용으로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던 산이 갑자기 불길과 재와 돌과 용암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죽은 땅이 떨리고 요동쳤으며, 역병이 돌 때면 흔한 물건들이 손에 닿기만 해도 사람들에게 병과 죽음을 가져다주었다. 사물들의 물리적 연관에 대한 불완전하고 아직 굳건하지 못한 표상은 이런 사실들 앞에서 쉽게 무너져, 예전의 조야한 애니미즘에, 즉 비상한 작용을 산이나 땅이나 다른 사물들의 독립적인 “영혼”의 자의로 설명하는 방식에 자리를 내주었을 것이다 — 만약 “기적”이라는 개념이 이런 사실들을 모두 다른, 외적인 물신들의 개인적 개입에 돌림으로써 치워 버리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이렇게 사물에 다시 영혼을 불어넣는 일은 피할 수 있었고, “물리적” 세계 이해의 요소들은 계속해서 방해받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다.

우주를 다스리는 최고 물신이라는 개념도 절대적 오류는 아니다. 그 안에는 세계 과정의 통일성이라는 관념이 원시적이고 형상적으로 윤곽 지어져 있다. 이 관념은 발전하고 형태를 바꾸면서 구체적·종교적 공준에서 추상적·형이상학적 공준으로, 다시 거기서 과학적 원리로 변해 가며, 언제나 인간 사유의 영혼이자 그 최고의 조직 형식이다.

그러나 V. 일린은 물론 생각이 다르다:

“…성직자주의가 만들어 내고 무지하고 짓눌린 인류 대중의 상상력이 떠받치는, 시간과 공간 바깥의 존재들은 병든 환상이요, 철학적 관념론의 억지 궤변이요, 쓸모없는 사회 체제의 쓸모없는 산물이다”(214쪽).

그러니까 고차적인 종교적 관념들의 기원은 이런 것이다. 그것은 “병든 환상”, “억지 궤변” 등등이다. 그것은 “성직자주의가”, 그리고 “쓸모없는 사회 체제가” 만들어 낸 것이다. 독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관점에 선 사람이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그것도 온갖 가짜와 대립되는 참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르려면 얼마나 대담해야 하겠는가?

종교의 기원을 병든 환상으로, 성직자들의 기만으로, 종교를 낳은, 당대에는 역사적으로 필연적이었던 그 사회 체제의 쓸모없음으로 설명하는 마르크스를 상상해 보라! 이런 터무니없음에 몸이 다 아파 온다.

하기야 마르크스 자신이 말하게 하자.

마르크스는 『자본』 제1권 제1장에서 자신이 폭로하는 물신숭배적 “부르주아 경제학의 범주들”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이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생산양식, 즉 상품생산의 생산관계에 대해 사회적으로 타당한, 따라서 — 객관적인 사유 형태이다. 상품 세계의 모든 신비주의, 상품생산 아래에서 노동 생산물을 둘러싸는 모든 기적과 유령은 우리가 다른 생산 형태로 넘어가자마자 즉시 사라져 버린다[8].

요컨대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타당한 것이 곧 객관적인 것이다. 상품생산의 관계에 대해서는 물신숭배적 형태들이 객관적이다. 우리가 그 틀 밖으로 나가면, 즉 경제적 경험의 내용이 달라지면, 그 형태들은 더 이상 객관적이지 않게 된다. 보다시피 마르크스는 이 문제에서 엄격한 “경험일원론자”이다.

마르크스의 철학을 옹호하려면 그것을 … 아는 것이 유익하다.

XVII

앞의 여러 장에서 서술한 것만 보고도 독자는, “물자체”의 총체로서의 유물론적 “자연” 개념에 대체로 대응하는 것은 바로 그 경험일원론적 개념,

즉 “조직성의 낮은 단계들의 직접적 복합체”라는 말로 표시되는 개념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물리적 경험”이라는 개념은 전혀 다른 것을 표현한다. 그것은 “자체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조직된 경험 속에 반영된 자연, 달리 말하면 “우리에 대해 나타나는” 대로의 “사물”, 즉 우리의 노동적·인식적 가공 속에 있는 사물이다.

플레하노프 학파는, V. 일린도 포함해서, 대체로 “물리적 경험”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별도의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보았듯이, 이 학파는 사실상 모든 경험을 심리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 때문에 “우리에 대한 사물”, 즉 경험의 물리적 복합체를 늘 “표상”이나 “감각”과 혼동한다[9]. 그래서 우리 동포 “유물론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공들여 설명한다. “물리적 경험”이란 그들이 “자연”이나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 즉 인간 없이, 인간과 무관하게 취해진 세계가 아니라 “경험의 사물들”의 세계, 즉 물리적 성격을 띤 “현상들”의 세계라고.

이제 독자는 물리적 경험에 관한 나의 학설에 대한 V. 일린의 논박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쉽게 짐작할 것이다. 존경하는 저자는 물론 개념 “대체”라는 자기 방법을 써서, 나의 “물리적 경험” 개념을 자기의 “자연” 개념으로, 또 그 반대로 그냥 체계적으로 바꿔치기한다. 나머지는 더 이상 어려울 것이 없다.

존경하는 저자의 “대체”를 전선 전체에 걸쳐 따라가자니 내게는 지면도 의욕도 모자란다. 두 가지 예만 들겠다.

『경험일원론』 제3부의 서문에서 나는, 정신에 대한 자연의 일차성을 인정하는 이론을 유물론적이라고 부른다면, 내가 이 말을 경험일원론에 쓸 필요를 느끼지는 않지만 경험일원론은 그 경우 완전히 “유물론적”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이렇게 썼다. “바로, 경험일원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끊임없는 발전의 사슬로 보는데, 그 낮은 고리들은 요소들의 혼돈 속으로 사라지고, 우리에게 알려진 높은 고리들은 인간의 경험 — 심리적 경험, 그리고 더 높이는 물리적 경험 — 을 이루며, 이때 이 경험과 거기서 생겨나는 인식이 보통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응한다”(XII쪽).

“물리적 경험”이라는 말에는 그 쪽 아래에 이런 각주를 달았다. “물리적 경험은 인간의 체험을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가공한 결과이며 과학의 발전에 따라 그 내용과 형태가 끊임없이 변하는 것으로서, 벨토프가 말하는 ‘자연’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경험일원론적 세계상에서 이 ‘자연’에 대응하는 것은… 낮은 직접적 복합체이다” … 등등.

그러면 우리의 비평가는 무엇을 하는가?

이 주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그는 곧바로 물리적 경험을 그가 이해하는 대로의 자연과 동일시하고, 이어서 감탄사를 우박처럼 쏟아 낸다:

“물리적 세계가 사람들의 경험이라 불리고, 물리적 경험이 발전의 사슬에서 심리적 경험보다 더 높다고 선언된다. 아니, 이건 정말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그것도 바로 모든 관념론 철학, 어떤 관념론 철학에나 고유한 그런 헛소리다” 등등(266쪽).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논쟁 방식으로는 아주 믿음직하다. 주어진 개념 하나하나를 멋대로 고른 다른 개념으로 바꿔치기하면 언제나 무엇이든 증명하거나 반박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V. 일린은 거리낌 없이 같은 투로 계속한다.

그는 『경험일원론』 제1부에서 다음 대목을 인용한다: “…우리는 ‘물리적 자연’ 자체가 직접적 성격을 띤 복합체들(심리적 조정들도 여기에 속한다)에서 파생된 것이며, 그것은 그런 복합체들이 그것들과 유사하되 다만 가장 복잡한 유형인 다른 복합체들 속에(살아 있는 존재들의 사회적으로 조직된 경험 속에) 반영된 것이라고 인정했다.” (『경험일원론』 제1부, 제2판, 146쪽; V. 일린, 269쪽.)

이 문장에서 나는 ‘물리적 자연’이라는 말에 따옴표를 쳐 두었는데, 그 말을 내가 정하지 않은 특수한 의미로, 즉 바로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원론이 거기에 부여하는 의미로 쓴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이원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원론은 모든 ‘물체’가 하나의 연속된 공통의 장, 즉 ‘물리적 자연’ 속에 있다고 받아들이며, 그러니 그것들이 거기서 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등등.

이원론이 ‘물리적 자연’을 물리적 경험의 의미로 말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 뒤에서 이 용어에 따옴표를 침으로써 바로 그 점을 가리켰다. 그런데 V. 일린은 개념을 바꿔치기하면서, 더 안전을 기하려고 인용문에서 이 따옴표까지 없애 버렸다. 따옴표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독자의 주의를 바로 그 용어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에 돌리게 했을 테니까. — 그다음에는 물론 “따뜻한 말”로 넘어가는 일만 남는다:

“물리적 자연 자체가 파생된 것이라고 가르치는 철학은 — 순전한 성직자주의 철학이다” 등등.

Vl. 일린이 성직자주의 철학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나보다 훨씬 더 잘 알 가능성은 아주 높다. 나로 말하자면, 15~20년쯤 전에 대학에서 정교회 호교론 시험을 치러야 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 논쟁 방법은 대단히 자유분방하다. 그러나 V. 일린이 체계적으로 쓰는 그런 방법은 거기서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XVIII

나는 그가 자기 책에서 공격한 내 동지들을 대신해 Vl. 일린과 논쟁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그 일을 더 잘 해낼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벌인 그의 논쟁에서 한두 가지 일화만은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데, 오로지 그의 방법에 대한 심리적 그림을 마저 그려 내기 위해서다.

논문집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관한 개요』에 실린 글 가운데 하나에서 바자로프는 플레하노프의 유물론이 엥겔스의 유물론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따지면서, 엥겔스의 글 「사적 유물론에 대하여」에서 이런저런 사물에 대한 우리 표상이 얼마나 올바른지는 실천에서만 알 수 있다고 설명하는 대목을 인용한다:

“…만약 그것이 우리가 정해 둔 용도에 쓸모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이는 이 한계 안에서 사물과 그 속성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과 일치한다는 긍정적 증거가 된다”…

바자로프는 엥겔스의 정식화에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우리가 실천에서 사물을 다루는 경계 안에서는 사물과 그 속성에 대한 표상이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과 일치한다. ‘일치한다’는 것은 ‘상형문자’라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일치한다는 것은, 주어진 경계 안에서 감각적 표상이 곧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이다라는 뜻이다”(『마르크스주의 철학에 관한 개요』, 65쪽).

바자로프가 이 글을 쓸 당시 그는 대체로 순전히 “마흐주의적” 관점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인용한 대목에 바로 마흐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오류가 담겨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바자로프는 사물, 곧 현실에 대해 말하면서 “표상”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를 쓴다. 사물의 물리적 연관과 “표상”의 심리적 연관을 언제나 엄격히 구별하는 마흐주의는 이런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현실”, 곧 물리적 경험을 감각적 표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본질적으로 플레하노프와 Vl. 일린이 늘 빠지는 혼동에 빠지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경험을 “심리적인 것”으로, 모든 경험 요소를 감각으로 여기는 식이다. 그러나 이 문장을 바자로프의 글 전체와 맞대어 보면, 이것이 오류라기보다는 차라리 말실수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다른 모든 경우에 그는 사물의 연관과 표상의 연관을 엄격히 구별하고 있으며, 마흐가 하는 방식 그대로이기 때문이다[10].

이제 Vl. 일린이 이 말실수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보라.

두 쪽이 넘도록 그는 호텐토트식으로 그야말로 승리의 춤판을 벌이는데, 물론 나는 여기서 그것을 다 재현할 수는 없다. 이 춤의 기본 주제는 이렇다. “V. 바자로프가 아무리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아무리 꾀를 부리고, 아무리 아슬아슬한 대목을 피해 가며 외교적 술수를 부려도, 결국에는 말실수를 해서 자신의 마흐주의적 본성을 송두리째 드러내고 말았다!”(122쪽). 마흐주의에 어긋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드러냈다는 것인가? 한편 춤의 장식들은 실로 훌륭하다. 견본으로 몇 가지를 들어 보겠다.

“근본적인 터무니없음, 허위, 헛소리, 악명 높은 반동가들과 성직자주의의 설교자들이 그것 때문에 마흐에게 입을 맞추는 그것, 거짓 또는 발뺌, 마흐주의적 왜곡의 진주, 강단 학자풍 잔장식의 더미” 등등, 기타 등등.

환희에 숨이 막힌 Vl. 일린은 제 말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런 말까지 하기 시작한다.

“묻노니,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온전한 정신과 확실한 기억으로, 마치 …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등등(123쪽).

분명 Vl. 일린은 미친 사람들만이 “온전한 정신과 확실한 기억으로” 바자로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의 존경스러운 저자는 대체 어떤 “정신과 기억”으로 이토록 센세이셔널한 발견을 했단 말인가?

Vl. 일린은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바자로프 동지여, 당신에게 영광을! 우리는 당신이 살아 있을 때 기념비를 세워 주겠다. 한쪽 면에는 당신의 금언을 새기고, 다른 쪽 면에는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마흐주의를 매장한 러시아 마흐주의자에게!’라고 새기겠다!”(124쪽).

이 모든 것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두 정치 분파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한 일화를 강하게 떠올리게 한다. 볼셰비키 N. 레닌은 언젠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노동계급은 사회주의 인텔리겐치아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는 트레이드 유니언주의의 사상을 넘어서 사회주의적 이상에 이를 능력이 없다고 무심코 말했다. 이 문구는 “경제주의자들”과 논쟁하던 열기 속에서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온 것이었고, 저자의 기본 견해와는 아무런 유기적 연관도 없었다. 그런데도 멘셰비키 저술가들은 세 해 동안 레닌의 이 문구에 의기양양한 논박을 집중했다. 그 문구로 레닌이 볼셰비즘의 반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단번에 영원히 증명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 기억으로는 — 어쩌면 내가 잘못 기억하는지도 모르지만 — 그들은 레닌이 러시아 노동자들 사이에서 볼셰비즘을 “매장했다”는 공로로 그에게 기념비를 세워 주려 했던 것 같다…

Vl. 일린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어느 분파에 속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바자로프에게 세워 줄 기념비를 놓기에 멘셰비키가 N. 레닌에게 세운 기념비가 서 있는 그 광장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찾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Vl. 일린이 루나차르스키와 벌이는 논쟁은 이보다 더 기묘하다.

루나차르스키는 종교적 용어를 여러 차례 남용했다. 그는 종교를 열광적 세계감정과 뒤섞으면서 과학적 사회주의를 곧잘 최고의 종교라고 불렀다. 그는 신성이라는 관념에서 자연에 대한 무한한 지배력의 형상만을 보았기 때문에, 미래의 사회주의적 인류를 그 발전 속에서,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끝없이 넓히고 깊혀 가는 모습 속에서 파악하여 그것을 “신성”이라고 불렀다. 이런 은유는 결코 찬성할 수 없다. 이런 은유는 언제나 무엇보다 먼저 권위주의적이었던 역사적 종교들을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며, 게다가 독자들의 머릿속에 마땅히 청산해야 할 개념들에 대한 무의식적 존경의 잔재를 붙들어 둘 수도 있다.

루나차르스키는 결국 이 용어가 부적절하고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것을 실제로 깨닫고 그것을 버렸다. 그가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엥겔스가 포이어바흐의 똑같은 용어에 맞서 논박했듯이 그 용어에 맞서 논박하는 것은 정당했다. 엥겔스는 비종교적이고 반종교적인 개념들을 종교적 용어로 덮어씌우는 것은 옳지 않고 해로우며, 그것은 그 개념들의 해명을 늦추고 낡은 개념들의 파괴를 어렵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엥겔스는 무엇보다 먼저 포이어바흐 견해의 실제 내용을 성실하게 서술했으며, 물론 그의 견해를 진짜 역사적 종교들, 곧 “신앙주의”와 뒤섞는 일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Vl. 일린이 루나차르스키에 맞서 벌이는 논쟁은 이와 정반대의 성격을 띤다. 그 논쟁은 전부 상대 견해의 참뜻을 흐려 독자에게 감추고, 루나차르스키가 종교를 일상적이고 전통적인 의미로 말한다는 생각을 독자에게 불어넣으려는 노력 위에 세워져 있다. 루나차르스키는 매번 한두 줄로 언급될 뿐인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 몇 줄에서 그의 견해에 대해 아무런 표상도 얻지 못하거나, 아니면 가장 왜곡된 표상을 얻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서문에서는 루나차르스키가(“가장 분명하게”라는 말이 덧붙어 있다 — 바로 그가 가장 분명하다는 것이지, 결코 그 혼자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거리낌 없이 노골적인 신앙주의에까지 말을 밀고 나간다”(2쪽)고 알린다. 이것은 — 새빨간 거짓이다. 루나차르스키에게는 지식을 믿음에 종속시킨다거나 지식을 믿음으로 대체한다는 이야기가 어디에도 없다. 그의 “믿음” 또는 “종교”는 대체로 미적 성격을 띠는 것이지 인식적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물론 “신앙주의”를 들먹일 사람은 다른 누군가였어야지,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에 대한 믿음, — 그것도 이미 낱말의 가장 본래적인, — 인식적 의미에서의 믿음을 요구하는 Vl. 일린은 아니었어야 마땅하다.

다른 곳(80쪽)에서 Vl. 일린은 “지옥, 숲귀신, 그리고 루나차르스키의 ‘덧붙인 생각들’”이라는 구절을 지나가는 말로 내던진다. 독자는 루나차르스키가 어딘가에서 “숲귀신” 따위의 무언가를 설교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통일된 미래 인류의 생산력 발전에 대한 열광적 태도를 두고 하는 말임을 짐작할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의 견해가 “숲귀신”과 어떤 논리적 연관을 갖는다면, 그것은 Vl. 일린의 견해다. 왜냐하면 그는 목격자들이 확인한 사실, 즉 나폴레옹이 몇 년 며칠에 죽었다는 사실을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로 여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는데, — 옛날에는 숲귀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그에 못지않게, 게다가 여러 차례나, 마찬가지로 목격자들에 의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11]. Vl. 일린은 차라리 자기 책에서 신앙주의니 숲귀신이니 하는 말을 꺼내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루나차르스키처럼 이따금 종교적 용어를 남용했던 디츠겐에 대해서는 Vl. 일린의 태도가 전혀 다르다 — 정중하다. 실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몸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를 프롤레타리아 철학자로 인정했으니 말이다.

포이어바흐로 말하자면, 그에게서는 종교적 용어가 루나차르스키에게서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한다. 루나차르스키는 대체로 바로 그에게서 자신의 서투른 표현 방식을 빌려 왔다. 그러나 — 어찌할 것인가? 포이어바흐는 여러 면에서 “그분들 몸소”의 공인된 선구자이자 스승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서는 더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예컨대 우리의 저자는 포이어바흐에게서 이런 구절을 인용하고는

“감각이 복음, 곧 객관적 구세주에게서 온 소식이라는 것을 감각에게서 부정하다니 이 얼마나 저속한가”, — 이번에는 이렇게 논평한다.

“보다시피 기이하고 괴상한 용어지만, 철학적 노선은 아주 분명하다. 감각은 인간에게 객관적 진리를 열어 준다” 등등(143쪽)[12].

자기보다 지위가 낮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무례와 오만, 자기보다 높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중함, — 이것은 현대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 심리의 흔한 특징이다.

XIX

내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Vl. 일린의 “철학적” 전술에 끈질기게 떠밀려, 나는 앞의 문제들과의 관련이 독자에게는 아마 뜻밖이고 이상하게 보일 문제로 넘어간다. 직업적 학식과 직업적 무지의 문제로.

존경하는 저자는 수십 번이나 더없이 도발적인 어조로 이 문제를 제기한다. 수십 번이나 그는 자기 논적들을, 모두 한꺼번에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따로따로, 조잡한 철학적 무지로 비난한다. 수십 번이나 그는 모든 “마흐주의자”와 경험일원론자에게 철학의 “초보적인” 문제들을 강의하는 교수의 자세를 취한다.

이런 자세는 Vl. 일린이 속한 철학 학파 전체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다. 우리 문헌에서 이런 어조를 단번에 영원히 끝장내기 위해, 나는 Vl. 일린 자신의 학식을 검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스승이자 본보기 — 플레하노프를 여기에 함께 다루겠다.

Vl. 일린의 책에 붙은 학식의 외적 장치는 엄청나다. 수천 개의 이름과 인용이 독자 앞을 광란의 춤을 추며 지나가고, 경험 없는 사람에게는 저자의 심오한 사유가 파고든 지식의 심연 앞에서 불안한 당혹감을 남긴다.

독자는 압도당한다. 자기에게 제시되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들의 철학적 지혜를 정복하려면 평생을 공부해도 모자랄 것만 같다. 비판이라니 — 그런 건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아니, 일은 분명하다. 진정한 전문가들더러 우리 대신 철학을 하게 하고 그들의 고매한 사색이 맺은 열매를 완성된 채로 우리에게 건네게 하자. 실생활에 매인 가련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수천 권의 철학 논고를 읽을 처지는 못 된다. “그들”을 믿자. “그들”이 더 잘 안다.

“인용으로 얼을 빼놓는” 방법은 바로 이런 심리적 결과를 노린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분명 때때로 달성된다.

실제로 진지하고 온전한 철학적 사유는 수천 개의 인용 조각으로 쪼개질 수 없다. 그것은 자기 시대의 경험을 총괄하면서 그 경험에 정연하고 일관된 형식을 부여하려 한다. 수많은 문헌적 예시와 전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것들을 서술의 기본 줄기에서 공들여 떼어 놓는다(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숱한 인용을 각주로 돌렸듯이). 그런데 Vl. 일린의 책과 같은 학파의 몇몇 다른 저작에서처럼 모든 것이 인용과 그에 대한 감탄으로 귀결되는 곳에는 — 사실상 철학이 없다. 사유의 기본적으로 필요한 통일성조차 없기 때문이다. — 우리는 같은 문제들에 대한 Vl. 일린의, 그리고 플레하노프의 갖가지 의견을 분석하면서 그런 예를 이미 충분히 보았다.

이제 나는 존경하는 저자들의 압도적인 학식에 숨은 몇 가지 작은 비밀을 밝혀 보려 한다. 일부러 바로 그들이 더없이 권위 있는 표정을 짓고 반대자들의 “무지”, “몰지각” 따위를 운운하는 경우들만 골라 보겠다.

독자여, 예컨대 당신은 누군가 특정 저자들을 인용해 보이면 그 저자들을 읽었고 연구했으며, 적어도 대체로는 잘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틀렸다. 여기 실례가 있다.

“엥겔스가 속류 유물론자들, 즉 포크트, 뷔히너, 몰레스호트와 선을 그은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그들이, 뇌는 간이 담즙을 분비하는 것과 똑같이(저자의 강조), 사유를 분비한다는 견해로 빠졌기 때문이다”(Vl. 일린, 39쪽).

이 인용은 Vl. 일린이 자기가 거명한 부르주아 유물론의 대표자 세 사람 가운데 적어도 두 사람을 근본적으로 모른다는 것을 확실하게, 의심의 여지 없이 보여 준다.

실제로 “뇌는 간이 담즙을 분비하듯 사유를 분비한다”는 유명한 공식은, — 본래 생리학자 카바니스의 것인데, 세 사람 가운데 오직 카를 포크트만이 받아들여 되풀이했다. 몰레스호트는 신중하고 정식화가 섬세한 사상가로서 이런 속류성에는 전혀 책임이 없다. 그리고 뷔히너는 바로 그 공식을 겨냥해 따로 논박을 펼쳤다. 그것도 어디서? 바로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 『물질과 힘』에서다[13].

그러나 이름은 거명되었고 학식의 인상은 만들어졌으니, 이제 걸음마다 반대자들을 향해 “무지는 논거가 아니다” 따위의 훈계를 되풀이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는 Vl. 일린 교수가 어떤 A. 보그다노프에게 베푸는 철학사 강의다. 10년인가 12년 전에 『자연에 대한 역사적 견해』라는 책에서 보그다노프는 이렇게 썼다.

“현상들의 보편적 인과 연관은 인간 인식이 낳은 마지막이자 가장 훌륭한 자식이다. 그것은 보편적 법칙이며, 한 철학자의 말을 빌리면 인간 이성이 자연에 지시하는 법칙들 가운데 최고의 법칙이다.”

이 대목을 인용하고 나서 Vl. 일린은 위엄 있게 논평한다.

“보그다노프가 그때 자기 인용을 누구 손에서 얻어 왔는지는 알라만이 아실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마르크스주의자’가 곧이곧대로 되풀이한 ‘철학자의 말’이 바로 칸트의 말이라는 것이다. 불쾌한 사건이로다!” (192쪽).

얼마나 깊은 학식인가, 그렇지 않은가? Vl. 일린은 수천, 수만 번 인용된 그 더없이 유명한 정식이 칸트의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보그다노프는 분명 이것을 몰랐고, 누구 손에서 얻었는지 모르게 그것을 가져왔으며, 그래서 그의 이름을 대지 않고 “철학자의 말”이라고만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깊고 참된 정통성인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칸트의 말을 “곧이곧대로” 되풀이했으니, Vl. 일린은 우스워한다: “불쾌한 사건”. 물론 그 자신은 결코 이런 일에 걸려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옛 저작에서 개진한 자연법칙에 대한 이해를 칸트의 견해와 비교해 보는 독자라면, 내가 칸트의 말을 그 자신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했으므로 나의 독자를 칸트에게로 안내하지 않을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초학식적인 입장을 차지하고서 V. 일린이 바로 그 한 문장에서 칸트의 저작에 대해서도, 그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칸트 철학에 대한 자기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조차도 실로 놀라운 무지를 드러내는 재주를 부렸다는 점이다.

“칸트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 이것은 그 자체로 “마르크스주의자”에게 “불쾌한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독자여, 한번 생각해 보라.

주지하듯이 마르크스주의는 독일 고전철학의 상속자로 등장했다. 그 철학의 시조는 누구였던가? 칸트다.

칸트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불쾌한 사건이다! 예컨대 과학이 받아들인 칸트의 천재적인 세계 기원론을 이야기하는 것 — 어느 참된 “마르크스주의자”가 감히 그런 짓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예컨대 신학자들의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칸트의 천재적인 반박을 “곧이곧대로 되풀이하는 것” — 불쾌한 사건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적” 엄격함 앞에서 나는 다만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머리를 숙이며, 칸트의 말이 적절해 보일 때마다 그것을 “되풀이”해 왔다는 나의 크나큰 죄와 이단을 공공연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죄를 덜어 줄 한 가지 정상을 지적해 두겠다. 그것은 두 명의 참되고 권위 있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내게 보여 준 유혹적인 본보기로서, 그들은 바로 여러 “마흐주의자”와의 논쟁에서 칸트의 말을 수십 번이나, 그것도 “곧이곧대로” “되풀이”했다. 이 두 마르크스주의자는 G. 플레하노프와 Vl. 일린이다. “물자체” 문제에서 그들은 언제나 칸트에게서 출발하고 언제나 그의 말로 이야기하며, 그런 다음에야 이런저런 단서와 반쯤의 단서를 단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이 우리의 감각기관에 작용하는가? 이 물음에 나는 칸트와 함께 답한다: 물자체라고.” 플레하노프는 이렇게 이르신다(『우리 비평가들에 대한 비판』, 233쪽).

“칸트가 우리의 표상에 우리 바깥의 무언가, 어떤 물자체가 대응한다고 인정할 때, 거기서 칸트는 유물론자다.” 이것이 유물론자 Vl. 일린의 말씀이다(230쪽). 사실 이 말씀은 근거가 없다는 정도를 넘어선다. 물자체가 정확히 어떤 종류의 것인지 — 예컨대 그것이 신이 아닌지 — 밝혀지지 않은 한, 무슨 유물론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이 말씀은 “칸트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향한 온갖 본능의 고삐를 풀어 놓을 만한 것이다.

존경하는 저자의 학식의 샘 바닥까지 닿아 보기 위해, 일화 하나를 더 들어 보자 — 아베나리우스에 관한 것이다.

『순수경험 비판』 전체는 인간 경험의 생활적 발전을 추적하려는 시도다. 그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며, 나 자신도 그 개념과 가설 가운데 많은 것에 반대하여 충분히 논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흐와 아베나리우스 이전의 최신 실증주의는 순수 경험의 철학이 되고자 했다. 특히 내재학파가 그러하다. 이 학파는 “순수 경험”이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은 뜻으로 쓴다 — 오직 경험만, 오직 “직접 주어진 것”만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토대로 생겨나는 갖가지 추론, 일반화, 가설과 대립시켜 쓰는 것이다. 아베나리우스는 이 개념에 만족하지 않고, 그 위에 경험의 진화론적 이론을 세울 수 있다고 보지 않으며, 자기 나름으로 순수 경험의 비판을 내놓는다. 그는 경험의 발전을 인간 유기체가 그 환경에 적응하는 것으로 보며, 이를 근거로 “순수 경험”에 대한 다른 개념에 이른다. 그에게 순수 경험이란 인간의 체험과 환경 사이의 완전한 상응을 특징으로 하는 경험, —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해롭거나 불필요한 요소가 없는 경험이다. 아베나리우스에게서 경험의 발전이란 바로 그러한 순수 경험으로 나아가는 점진적 변형, 곧 경험에서 쓸모없고 생활상 합목적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제거해 가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아베나리우스는 순수 경험에 대한 전통적 개념과 자신의 진화론적 개념을 대비하는 것으로 자기 저작을 시작한다. 그는 앞의 것을 “분석적” 개념이라 부르고, 뒤의 것을 — “종합적” 개념이라 부른다. 아베나리우스는 자신의 연구에서 역사적으로 두 개념이 서로 어긋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사람들이 오직 경험이라고, 경험 속에서 자기에게 직접 주어진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이 모두 실제로 그러한 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 모두가 생활 발전의 요구에 상응하는 것도 결코 아니고, 직접 주어진 것으로 인정되던 많은 것이 나중에 착각, 지각의 오류, 공상의 산물 따위로서 인간의 경험에서 제거된다는 것이다. 결국 경험이 그와 같은 구성 부분들을 떨쳐 내고 정화되면, 순수 경험에 대한 전통적 개념과 과학적·진화론적 개념 사이의 차이 자체도 사라지고, 낱말의 가장 완전하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순수 경험”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경험”과 “순수 경험”이라는 개념이 결코 같은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뒤의 것은 앞의 것에 대해 극한 개념이며, 그 자신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뜻,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매우 다른 두 가지 뜻을 지닌다. 그리고 이 세 개념을 모두 뒤섞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것만으로 곧바로 내재학파의 경험관도, 아베나리우스의 견해도, 특히 『순수 경험 비판』도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는 셈이 될 것이다. 『순수 경험 비판』은 본질적으로 통째로 앞서 말한 세 개념의 연관과 차이, 그 역사적 형태와 변환을 생물발생학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바쳐진 책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Vl. 일린이 하는 말을 인용해 보자(다만 그가 서툴고 썩 정확하지도 않은 번역에 기대어 아베나리우스를 인용하는 대목에서는 실례를 무릅쓰고 그 번역을 바로잡겠다):

“이제 경험비판론 철학에서 경험이라는 낱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자. 『순수경험 비판』의 첫 절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내세운다. ‘우리 환경의 어떤 부분이든 인간 개체들과 다음과 같은 관계에 놓일 수 있다. 즉 그 부분이 주어지면 그들 쪽에서 어떤 경험에 관한 언명이 뒤따르는 관계다. “무언가가 (경험으로) 알려진다”, 또는 “무언가가 경험이다”, 또는 “경험에서 생겨났다”, 또는 “경험에 의존한다” 따위’(1쪽). 이렇게 경험은 여전히 똑같은 개념들, 즉 자아와 환경을 통해 정의되며, 둘의 ‘불가분의’ 연결에 관한 ‘학설’은 당분간 덮어 숨겨 둔다. 다음으로, ‘순수경험의 종합적 개념’: ‘즉 그 모든 구성 부분에서 오로지 환경의 부분들만을 전제로 하는 언명 내용(Ausgesagten)으로서의 경험’(2쪽). 환경이 인간의 ‘진술’과 ‘언명’과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받아들인다면, 경험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열린다! ‘순수경험의 분석적 개념’: ‘즉 그 자신이 다시 경험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았고, 따라서 그 자체 안에 경험 말고는 아무것도 담지 않은 경험으로서’(2쪽). 경험은 경험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이비 학문적 헛소리를 참된 심오함으로 받드는 사람들이 있다니.”(Vl. 일린, 166쪽)

인용한 대목 전체에서 다음이 분명해진다.

1) Vl. 일린은 아베나리우스가 자기 저작의 이 대목에서 경험 일반을 정의하고 있다고 여긴다는 것 — 거기서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데도 말이다.

2) Vl. 일린은 순수경험의 “종합적” 개념과 “분석적” 개념을 다름 아닌 경험 일반의 정의로 여긴다는 것 — 즉 이 세 개념을 뒤섞는다는 것.

3) 따라서 Vl. 일린은 내재학파와 경험비판론 학파의 기본 구상도, 특히 자신이 인용하는 아베나리우스의 그 저작도 전체로서는 알지 못한다는 것.

『순수경험 비판』을 공부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부한 척할 수는 있다. 첫 몇 쪽에서 인용문을 뽑고 다른 곳에서 용어 몇 개를 골라 오면 된다. 독자는 알아채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V. 일린에게 장담한다. 전문가라면 누구든 — 알아챌 것이고, 개중에는 들추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전공을 참으로 잘 아는 학자 경제학자 Vl. 일린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가? 그의 경제학 저작에서는 그의 “철학”에서와 같은 겉치레 박식의 전시도, 그토록 거만한 교수 투의 어조도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거기서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그러나 이 이유 말고도, Vl. 일린에게는 그가 본보기로 삼은 인물, 곧 그 학파의 철학적 지도자 G. 플레하노프가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이제 그에게로 넘어가겠다.

XX

다른 계기로 나는 앞에서 이미 물자체에 관한 플레하노프의 서로 다른 두 견해를 지적했다. 그는 어떤 때는 물자체에 우리가 알 수 없는 “형식”과 “관계”를 부여했는데, 이것들은 우리 경험의 형식과 관계 속에 반영되며 우리 경험의 형식과 관계는 말하자면 그것들의 상징, 상형문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또 어떤 때는 물자체가 아무런 “모습”도 지니지 않으며 지닐 수도 없고, 그것의 “모습”이란 바로 그것의 반영, 즉 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감각기관에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나는 이 진술들 사이의 모순을 지적했다. “모습”, 즉 여기서 문제가 되는 감각적 성질 일반을 지니지 않고서 “형식”을 지닐 수는 없다.

플레하노프는 나에게 반박하면서, 무엇보다도 “형식”과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므로 여기에는 모순이 없다고 증명하기 시작한다.

“…‘모습’이라는 개념은 결코 ‘형식’이라는 개념의 동의어가 아니다. 앞의 것은 뒤의 것을 결코 다 덮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헤겔이 『논리학』에서 아주 잘 보여 주었듯이, 대상의 ‘형식’이 그 ‘모습’과 동일한 것은 특정한, 그것도 피상적인 의미에서, 곧 외적 형식이라는 의미에서뿐이다. 더 깊이 분석하면 우리는 형식을 대상의 ‘법칙’으로, 더 잘 말하자면 대상의 구조로 이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형식에 관한 논리학 학설에 헤겔이 보탠 이 중요한 공헌은(강조는 나의 것. A.B.) 우리나라에서 철학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미 지난 세기 20년대에 알려져 있었다. 이를 확인시켜 드리기 위해, 이를테면 베네비티노프가 NN 백작 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다음 구절을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이제 보시다시피,’ 베네비티노프는 학문의 개념을 정의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형식이라는 낱말은 학문의 겉모습이 아니라 학문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일반 법칙을 표현합니다’(『베네비티노프 작품집』, 상트페테르부르크, 1855, 125쪽). 보그다노프 씨, 베네비티노프 덕분에 이미 80년 전에 적어도 몇몇 러시아 사교계 부인들에게는 알려져 있던 것이 당신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니, 참으로,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플레하노프는 다시 한번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형식’이라는 낱말을 쓸 때, 나는 그 낱말을 무엇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당신은 그것을 알지 못했고, 철학사에 대한 당신의 놀라운 무지 때문에 거기에 연구하고 숙고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조차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Materialismus militans, 두 번째 편지, 《사회민주주의자의 목소리》, 8-9).

그렇지 않은가, 베네비티노프와 NN 백작 부인에 이르기까지 철학사를 꿰고 있는 진짜 전문가가 감히 자기 의견을 내놓는 무식한 자에게 보내는 이 얼마나 훌륭한 경멸인가!

그러나 먼저 문제의 본질에 관해 두어 마디 하자. ‘모습’, 곧 감각적 속성을 갖지 않은 대상의 ‘구조’를 여러분은 떠올릴 수 있는가? 한번 해 보라. 요컨대 ‘구조’는 ‘형식’이나 ‘모습’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경험에서 생겨나는 추상이다. 구조는 대상의 여러 부분과 그것들 사이의 상호 연관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아무런 모습 없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은가?

이제 진짜 전문가의 학식에 관해서… 나는 나 자신을 철학사 전문가로 여기지 않지만, 스무 해 가까이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 발전의 중요한 계기들을 곁들여 알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플레하노프의 “철학사” 강의를 읽었을 때, 고백하건대 나는 내 눈을 곧바로 믿을 결심이 서지 않았다. 대상의 법칙 또는 구조로서의 형식 개념이 형식에 관한 논리학 학설에 헤겔이 보탠 공헌이라니!

하기야 많은 철학사가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위대한 표절자로 여기기는 하지만, 그가 ‘헤겔의 공헌’까지 훔쳐 내는 재주를 부렸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앞서 말한 형식 개념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형이상학』에서, 그리고 그보다 앞서 『자연학』에서 분명하게 표명했다.

예시를 위해 두 저작에서 몇 대목을 인용하겠다(이런 대목은 얼마든지 들 수 있을 것이다).

“형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무조건 하나이며, 주체처럼 두 요소로 분해되지 않는다. 형식이란 이를테면 집을 이루는 재료들에 부여되는 질서다…” (곧 분명히 이 집의 법칙 또는 구조가 아닌가? A.B. 이것은 프랑스 아카데미판 『자연학』 I, 30에서 가져온 것이다).

“…형식은 사물의 원인이자 궁극 목적이다” (원문에서는 “αίrία ή ού έυεχα”, 곧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해하는 바의 법칙성 전체다. 『자연학』 II, 8, 8).

“다른 의미에서 원인은 사물의 형상이자 본보기, 즉 사물을 그것이 보여 주는 온갖 변종과 더불어 지금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현대 언어로 말하면 그것들의 구조를 규정하는 법칙. A.B.). 예컨대 옥타브를 옥타브로 만드는 것은 2 대 1의 비이다(법칙이다! A.B.).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것은 부분들의 상호 관계와 결합된 수이다(구조다! A.B.).” 이 인용은 원인의 네 종류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 질료, 형상, 운동, 궁극 목적(『형이상학』, V, 2, 2).

“예술 작품은 그 형상이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사물이다(여기서 ‘형상’은 작품의 예술적 이념, 즉 그 구조의 법칙을 뜻한다). 그리고 나는 형상을, 각 사물을 그것인 바의 것으로 만드는 본질로 이해한다 — 그리고 사물의 제1실체로. 왜냐하면 어떤 관점에서는 반대되는 것들조차 동일한 형상을 가지기 때문이다(이것이 ‘외관’이란 말인가? A.B.). 반대되는 존재란 주어진 것의 결여에 기초한 존재이다. 예컨대 건강은 질병의 반대인데, 건강의 부재가 질병을 이루기 때문이다(『형이상학』, VII, 7, 5).

형상으로서의 “건강”과 “질병”: 이것이 “겉모습”이다, 그렇지 않은가? 형상을 다른, “피상적”이지 않은 의미로 이해하려면 헤겔이 필요했단 말인가?

묵직한 인용으로 독자를 괴롭힌 데 대해 사과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언어는 칸트의 가장 나쁜 대목들을 연상시킨다. 그 대신 충분히 정확하여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헤겔의 표절은 너무도 명백하며, 베네비티노프와 백작 부인 NN에 기대어 정의를 회복하려면 플레하노프 같은 철학사가가 필요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른다고? 무슨 하찮은 소리인가! 그 대신 우리는 진짜 전문가답게 베네비티노프를 안다.

이에 못지않게 특징적인 일화가 하나 더 있다.

플레하노프 씨는 알다시피 스피노자주의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엥겔스 자신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피노자 영감이 사유와 연장은 동일한 하나의 실체의 두 속성일 뿐이라고 말한 것은 옳았다”(『우리 비평가들에 대한 비판』, 137쪽). “만일 우리가 스피노자와 함께 사유와 물질이 동일한 하나의 실체의 서로 다른 두 속성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이 속성들 가운데 첫째 것은 오직 둘째 것 덕분에만 드러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현대 과학의 결론과 단연코 아무것도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20년간』, 137쪽). 왜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하는가? 플레하노프가 앞에서 설명하듯이 “경험은 심리적 현상이 신경계 안의 일정한 물리·화학적(생리학적) 현상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136쪽). 플레하노프의 생각으로는 이 모든 것에 의해 “물리적 힘과 심리적 삶의 관계에 대한 유물론자들의 견해”가 해명된다(같은 곳, 136쪽).

다른 곳에서 플레하노프는 이렇게 지적한다.

“엄밀히 말하면, 사유가 존재에서 나오는 것이지 존재가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마르크스주의의) 명제는 스피노자의 학설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그 ‘사유’는 인간의 의식, 즉 ‘사유’의 최고 형태이며, 이 사유의 존재를 전제한다고 해서 물질의 ‘영혼 있음’이 결코 배제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이렇게 덧붙인다. “당분간 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들의 발전의 유물론적 시기에 스피노자의 관점을 결코 떠난 적이 없다고 확신을 가지고 주장한다”(『우리 비평가들에 대한 비판』, 165~166쪽).

인용한 대목들과, 독자의 시간을 아끼느라 인용하지 않는 다른 대목들에서 다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1) 플레하노프가 보편적 심리-물리 평행론의 지지자라는 것, 즉 모든 물질적 현상이 복잡성의 정도가 저마다 다른 심리적 현상과 떼려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으며 심리가 물질 일반에 내재한다는 학설의 지지자라는 것;

2) 플레하노프가 이 관점을 스피노자의 것으로 여기고, 스피노자에 대한 이와 똑같은 이해를 엥겔스에게도 돌린다는 것.

이 “범심론적” 이론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옳은지 따지는 것은 지금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Vl. 일린과 플레하노프의 발의에 따라 철학적 학식과 무지에 관한 “고상한” 문제들에 매달려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룰 것은 다른 문제다. 정말로 스피노자의 견해는 우리 국산 스피노자주의자 G. 플레하노프가 — 그것도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엥겔스를 대신하여, 심지어 마르크스까지 대신하여 — 생각하는 그대로인가?

“심리적 현상”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물론 감각, 지각, 표상, 즉 사물의 상(像)이나 그러한 상의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연장과 대비하며 말하는 그 사유(cogitatio 또는 mens)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스피노자 자신이 마치 플레하노프의 “스피노자주의”를 예감이라도 한 듯, 이런 혼동에 단호하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에티카』 제2부, 그 마지막의 긴 주석에서 이렇게 썼다.

“무엇보다도 나는 독자들이 관념, 즉 정신의 개념(mentis conceptum)을 표상의 상(imagines rerum quae imaginantur)과 주의 깊게 구별하기를 당부한다.” 이어서 그는 관념과 말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다음 첫 번째 차이를 더 자세히 설명한다.

“관념이 물체들의 작용(corporum occursu)에서 우리 안에 생겨나는 상으로 환원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와 비슷한 상을 재현해 낼 수 없는 사물들의 관념은 결코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제멋대로 지어낸 허구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그들은 관념을 그림 속의 일종의 생기 없는(mutas, 글자 그대로는 ‘말 없는’) 형상처럼 보며, 이 편견에 사로잡혀 관념이 관념인 한 긍정이나 부정을 자기 안에 담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연장된 것의 개념을 조금도 자기 안에 담고 있지 않은 사유의 본성에 주목하여, 관념이 사유의 양태로서 어떤 사물의 상에도, 말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이런 편견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말과 의식의 상의 본질은 전적으로 물질적 운동으로(corporeis — ‘물체적’ 운동으로) 환원되며, 그러한 운동은 사유의 개념을 결코 자기 안에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4].

그러니 스피노자가 “심리적 현상”의 적어도 대부분, 곧 “사물의 상”, 다시 말해 표상과 지각을 물체들의 충돌, 상호작용에서 생겨난다고 말하면서 연장의 속성에 귀속시킨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그는 사유의 양태를 오직 무엇인가에 대한 긍정이나 부정으로만 인정한다. 이를테면 그에게 “영혼”은 살아 있는 신체의 관념이다. 이것은 영혼이 그 신체의 모든 속성과 함께 그 신체의 삶에 대한 긍정을 자기 안에 담고 있다는 뜻이다.

스피노자에게 물체와 상은 연장의 세계다. 즉 여기에는 모든 경험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모든 경험적인 것이 속한다. 따라서 사유와 연장이라는 “속성”들의 평행론은 관념-경험 평행론이다.

그런데 플레하노프는 스피노자에게 심리물리적 평행론을 덮어씌웠다. 그것도 자기 몫으로만이 아니라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몫으로도 덮어씌웠다. 이 두 사람은 아마 스피노자를 높이 평가했겠지만, 틀림없이 그를 잘 알기도 했으니, 플레하노프 식의… “스피노자주의자”였을 리는 거의 없다.

베네비티노프와 NN 백작부인을 아는 진정한 전문가, 그렇지 않은가?[15].

독자여, 이것은 우리 나라 토박이 “전문가” 하나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완전한 목록을 만들었다네,
중요한 누락도 큰 오기도 없이.
프랑스 시인이 쓴 『자이르』인가 뭔가를
셰익스피어에게 돌리고, 『햄릿』을 빠뜨렸을 뿐…

XXI

이것이 Vl. 일린이 스스로 고른 본보기이며, 그는 이 본보기를 맹목적으로 — 지나치게 맹목적으로 — 따르려 애쓴다.

이제 나는 이 “본보기”를 끝까지 폭로하기로 마음먹고, 그 다른 측면으로 넘어간다. 플레하노프 씨는 문필계에서 철학의 진정한 전문가로서만이 아니라 문필 윤리의 교수로서도 나선다. 사정은 이러하다.

“물자체” 문제에서 플레하노프는, 내가 이미 지적했듯이, 서로 다른 두 견해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어떤 때는 이 사물들이 우리 감각기관에 작용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모습도 지니지 않는다고 하고, 어떤 때는 그것들에 모습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없으며 우리의 감각은 말하자면 그 모습의 “상형문자”라고 한다. 플레하노프는 이 뒤의 견해를 1905년 포이어바흐에 관한 엥겔스의 소책자 번역에 붙인 주석에서 철회했다가, 1906년 자신의 논문집 『우리 비판자들에 대한 비판』에서 다시 그리로 돌아갔다. 나는 논쟁에서 이 이중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플레하노프에게서 고결한 감정의 폭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내가 1906년에 나온 논문집에 실린 그의 논문을 인용할 도덕적 권리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 콘라트 슈미트를 겨냥하여 「다시 한번 유물론」이라는 제목을 단 논문 말이다.

“당신은 — 하고 그는 쓴다 — 그 논쟁적 논문이 어느 시기의 것인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미 그것이 1899년 초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논쟁적 논문의 용어를 고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는데, 이는 내가 이미 『일원론적 역사관』 제2판 서문에서 밝힌 고려 때문입니다. 나는 거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초판에 끼어든 오기와 오식만을 바로잡았다. 나는 나의 논거를 조금이라도 바꿀 권리가 내게 있다고 여기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간단하다. 이 책이 논쟁적 저작이기 때문이다. 논쟁적 저작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고치는 것은, 상대에게는 낡은 무기로 싸우도록 강요하면서 자신은 새 무기를 들고 상대에게 맞서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허용될 수 없는 수법이다(마지막 강조는 나의 것. A.B.).’ 당신은 — 하고 플레하노프는 계속한다 — 또다시 크게 낭패를 보셨습니다, 보그다노프 씨. 그러나 이번에는 당신의 문필적 양심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에 낭패를 본 것입니다. 그 목소리는 내가 이미 버린 용어를 꼬투리 잡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 우화의 교훈은 이렇습니다. 문필적 양심의 가책이란 때로는 무시하면 매우 곤란해지는 그런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해 두시라고 충고합니다, 보그다노프 씨.” (「Materialiamus militans」, 두 번째 편지, 《사회민주주의자의 목소리》, 1908).

훌륭한 문필 윤리 강의가 아닌가? 그런데 독자여, 생각해 보라. 나는 처음에 바로 1906년 논문집에 실린, 콘라트 슈미트를 반박한 논문들의 러시아어 번역을 플레하노프의 후기 견해의 표현으로 간주할 권리가 내게 있는지 의심했다. 어쩌면 그가 이 논문들의 내용을 전혀 손보지 않고 1899년 《Neue Zeit》에 실렸던 그대로 두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일어 원문과 러시아어 번역을 대조해 보았고, 이 번역이 내용에서 근본적으로 손질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논문들 가운데 첫 번째 논문에서부터 대단히 중요한 내용의 삽입과 삭제가 여럿 발견되었다.

이를테면 러시아어 번역에서는 콘라트 슈미트의 저작을 총평한 6행짜리 첫 번째 각주(《N.2.》, 1899, 5, 139쪽)가 빠졌고, 끝부분(145쪽)에서는 베른슈타인과 슈미트에 관한 10행의 논쟁적 대목이 빠졌다(러시아어 번역본 184쪽). 큰 삽입은 두 군데이다. 하나는 칸트주의자들과 그들이 발전 이론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다룬 14행짜리 각주로, 저자가 삽입이라고 밝혀 두었다. 다른 하나는 콘라트 슈미트가 칸트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관한 것으로, 논쟁의 목적에 특히 중요한 이 삽입 역시 14행 분량인데, 전혀 밝혀 두지 않았다(175쪽). 171쪽에는 사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두 문장이 삽입되었다. 즉 독일어 원문에서는 유물론적 사상으로 인용되던 것(바로 “우리는 사물의 껍데기만을 인식한다”는 것)이 “잘못된 사상”이자 “유물론적 인식론에 대한 배신”으로 선언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찾아낸 변경의 전부와는 거리가 멀지만, 독자의 주의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 모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때 비로소 나는 K. 슈미트를 반박한 논문들의 최근 판본을 그 당시로서는 최근의 플레하노프의 견해의 표현으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자신이 해 놓은 손질을 “허용될 수 없는 수법”이라고 선언하면서 나에게 문필적 양심의 가책을 짊어지운다! 독자여, 이것은 “souffre douleur”라는 귀족 제도, 곧 지체 높은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를 가르치기 위해 그가 보는 앞에서 평민 아이를 엄하게 벌하던 관습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콘라트 슈미트를 반박한 논문들의 독일어 원문과 러시아어 번역을 다시 살펴보다가, 나는 그보다 더 놀라운, 아니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사실에 맞닥뜨렸다.

경험비판론자 V. 체르노프는 플레하노프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마르크스의 테제 가운데 하나, 바로 진리의 실천적 기준을 확립하는 테제를 수수께끼처럼 틀리게 번역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원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인간은 실천을 통해 자기 사유의 진리성, 즉 현실성, 힘, 차안성을 증명해야 한다.” 플레하노프의 번역에서는 마지막 말들 대신에 이렇게 되어 있다. “자신의 사유가 현상의 이쪽 편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번역은 명백히 원문과 정반대이며, 마르크스에게 칸트적·플레하노프적 의미에서의 물자체의 인정을 덮어씌운다[16]. 바로 이 잘못된 번역이 플레하노프의 제자들이 온갖 “마흐주의자”들에 맞서 즐겨 내세우던 논거였다.

사태는 아주 명백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르크스를 번역하면서 그의 말에 부정어 “않는다”를 덧붙인다면, 나오는 것은 비-마르크스, 곧 반-마르크스이다. 물론 V. 일린은 V. 체르노프가 플레하노프의 “자유로운 의역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서 “무지”, “한없는 엉성함”, “무식”, “무뢰배식 습격”을 보고는 그의 폭로를 두고 그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여기에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었다. 실수는 인간에게, 플레하노프처럼 권위 있는 사람에게도 따르기 마련이니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

플레하노프는 콘라트 슈미트를 반박한 첫 번째 글(N.2., 1899, 5)에서 포이어바흐에 관한 마르크스의 둘째 테제를 인용하면서 “차안성”에 관한 말 앞에서 인용을 끊었다. 이 대목의 러시아어 번역(『우리 비평가들에 대한 비판』, 168쪽)에서는 인용이 이어지며, 바로 잘못 번역된 문장이 덧붙어 있다. 이로써 다음 사실이 완전히 확정된다:

1) 플레하노프는 마르크스의 원래 말이 자기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마르크스를 원문으로 인용해야 했던 독일어 글에서는 그 말을 잘라 버렸다;

2) 플레하노프는 자기 번역이 자기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마르크스를 번역으로 인용할 수 있었던 러시아어 글에서는 자신의 잘못된 번역으로 인용을 끝맺었다.

문필 윤리학 교수 플레하노프에게 이러한 투쟁 수법에 걸맞은 평가를 내려 주기를 제안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철학자를 Vl. 일린이 자신의 본보기로 삼았다. 그는 아마도 아주 젊은 철학자인 모양이다. 적어도 나는 이전에 전문 문헌에서 그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에게서는 모든 것이 한층 더 순진하고 조잡하게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학식을 연출하는 그의 솜씨에 대해서는 독자가 앞서 든 예들로 이미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필 윤리적” 방법으로 말하자면, 그에게서 그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너그럽게 만드는 데에나 이바지할 수 있는 모습을 띤다. 예컨대 그는 내가 18세기 유물론자들에 대해 말한 것을 독자의 눈에 “혼란”으로 보이게 해야 했는데, 그래서 답변에서 그들을 17세기 유물론자들로 바꿔 놓는다. 그러나 나에게서 가져온 인용문과 그의 답변 사이에는 단 한 줄밖에 없으므로, 숫자를 바꿔 놓은 것은 당연히 누구의 눈에나 띈다[17]. 여기서 화를 내거나 분개할 수 있겠는가?

“힘은 모자랄지라도 의도만은 칭찬할 만하다”는 라틴어 속담이 있다. Vl. 일린에게 적용하자면 이 속담은 뒤집어야 한다. 의도는 칭찬할 만하지 않지만, 그 대신 힘이 모자란다. 그것만 해도 다행이다.

XXII

Vl. 일린과 그의 스승 G. 플레하노프의 전문가적 학식을 검토하면서 나는 이 문제의 긍정적 측면, 즉 전문가적 학식, 특히 철학 분야에서의 전문가적 학식이 지닌 실제 가치와 실제 의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이제 이를 검토하는 일이 특히 필요한 까닭은, 어떤 경험 없는 독자가 앞서 폭로한 사실들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매우 서글프고 크게 그릇된 결론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천 개의 인용문을 갖춘 Vl. 일린 자신과 이론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지닌 G. 플레하노프조차 실은 자기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모른다면, 대체 누가 철학적 진리와 오류를 판단할 권리를 갖는가? 철학적 전문화의 맨 밑바닥까지 파고들 시간과 기회가 있었고, 끝없이 많은 철학 논저를 철저히 연구했으며, 누가 무엇을 언제 인식론, 형이상학 따위에 대해 썼는지 정확히 아는 소수의 선택된 자들, 인식의 귀족들뿐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전문적 학식의 가치가 얼마나 상대적인지 보여 주기 위해 나는 두세 가지 역사적 예증부터 들겠다.

천재적인 독일 시인 볼프강 괴테는 백과사전적 교양을 갖추었음에도 동물학, 식물학, 일반 생물학의 전문가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이 분야들에서 위대한 발견이 그의 것이다. 식물의 여러 기관이 발생적으로 하나라는 학설과 두개골의 척추설이 그것이다. 게다가 그는 생물학 전문가들의 압도적 다수가, 그중에서도 가장 박식하고 가장 권위 있는 자들까지 종의 불변성을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로 여기던 시대에 생명 일반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를 지지했다.

이 문제에 대해 그와 똑같은, 혁명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취한 이가 그보다 젊은 동시대인인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였다. 그는 재기 넘치는 문학적 형식으로 당시 지배하던 학설의 지지자들을, 특히 그 시대 권위 있는 전문가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인 천재 퀴비에를 조롱했던 것 같다. 덧붙여 말하자면 계급 심리에 관한 학설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마르크스의 선구자이자 스승이었던 이 발자크는, 가장 박식한 전문가들에 맞서서도 자기 판단을 갖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라마르크의 사상이 조롱당하고 조프루아 생틸레르가 퀴비에와의 논쟁에서 패배했을 때, 이 대담한 작가는 유쾌한 팸플릿으로 그들의 실패에 복수했다. 그 팸플릿에서 그는 낡은 세계관만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편협함과 맹목성까지도 비웃었다[18].

그리고 여기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견인 에너지 보존 법칙의 역사에 관한 사실이 있다.

독일 의사 로베르트 마이어는 열대 지방에서 의료 활동을 하며 얻은 몇몇 관찰에서 출발하여, 여기서 내가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꽤 복잡하고 대단히 흥미로운 일련의 추론을 거쳐, 여러 에너지 형태들의 등가성과 상호 전환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의 결론을 논문으로 써서 해당 분야의 전문 학술지인 포겐도르프의 《물리학 연보》에 보냈다. 편집자는 그 기초조차 모르는 일에는 손대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논평과 함께 원고를 그에게 돌려보냈다. 그리고 실제로 마이어의 논문에는 초보적인 역학에 어긋나는 아주 조잡한 오류가 있었다. 그는 “운동량”을 “활력”과 혼동했는데, 이것은 물론 전문가라면 있을 수 없었을 실수였다. 그렇다고 그의 생각이 위대한 발견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에른스트 마흐가 정당하게 지적하듯이, 대단히 박식한 인물 포겐도르프와 같은 Fachphilister에게, 즉 “전문 분야의 속물”에게 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천재적인 사상을 스스로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예시들은 충분히 선명한 것 같다. 그러나 물론 내가 이것들을 든 것은 전문 지식이 쓸모없다거나 해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것들은 전문 분야의 속물근성에 관한 문제,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권리에 관한 문제, 특히 마르크스주의가 전문화에 대해 갖는 관계에 관한 문제를 해명하는 데 편리할 뿐이다.

XXIII

전문화는 기술 분야에서든 과학 분야에서든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회적 관계, 곧 분업의 일정한 형태이다. 그 의미는, 한편으로 그것이 인간 활동의 장을 좁히고, 다른 한편으로 이 제한된 장에 그의 힘을 집중시킨다는 데 있다. 첫 번째 사정은 인간을 앞으로 밀어 주는 외부 영향의 총량을 줄이고 그의 발전이 출발하는 재료를 빼앗음으로써, 인간 활동의 보수성을 증대시킨다. 두 번째 사정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며, 그럼으로써 보통의 조건에서는 노동의 진보성도 높인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어느 경향이 더 강한가? 이것은 사실의 문제이며 역사의 문제이다. 오랫동안 기술과 과학의 진보는 전문화와 나란히, 그것과 손을 맞잡고 나아갔다. 그러나 집단적 노동의 영역이 끝없이 넓어지자, 개인적 노동의 협소화는 개인을 집단에서 점점 더 떼어 놓았고, 그럼으로써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전문화에 깃든 근본 모순, 곧 그 경향의 이중성은 실천에서 점점 더 날카롭게 드러났다. 그것은 기술에서는 기본적인 노동 작업 하나로 환원된 옛 매뉴팩처 노동자라는 생기 없는 유형을, 과학에서, 특히 철학에서는 그에 못지않게 생기 없는 유형, 곧 책상물림 학식의 만다린을 낳았다. 물론 이것들은 극단적인 유형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덜 극단적이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생명력이 약해진 많은 유형들이 생겨났고 지금도 존재한다.

실천적으로 전문화는 아직 매 걸음마다 필요하며, 언제나 사유의 지나친 보수성으로 이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 존경할 만한 전문가 포겐도르프가 R. 마이어의 생각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에 못지않게 학식 있는 또 다른 전문가 레오나르 사디 카르노는 마이어보다 10년이나 앞서 바로 그 위대한 발견을 했으나, 뜻밖의 이른 죽음 탓에 그것을 발표하지 못했을 뿐이다[19]. 세 번째의 대전문가 클라우지우스는 뒤에 같은 생각을 훌륭하게 발전시켜 그것에 가장 뛰어난 수학적 정식을 부여했다. 인류의 사유 발전에서 전문화가 그 부정적 작용을 드러내는 것은 대개 바로 무언가 중요하고 큰 한 걸음이 내디뎌질 때이다. 그러다가 그 걸음이 내디뎌지고 길드식 학식의 저항이 꺾이고 나면, 전문화는 큰 열의를 가지고 새 발견이나 발명을 다듬는 일에 착수하며, 큰 성공을 거두며 그것을 완성한다.

그러나 인류의 진보는 전문화처럼 불완전하고 모순된 분업 형태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진보는 그것을 극복해 간다. 기술과 과학에서 보편적이고 통일하는 방법이 만들어진다. 기술에서는 기계제 생산이, 과학에서는 일원론적 이론들, 곧 에너지론, 다윈주의, 마르크스의 학설이 그 방법을 만들어 낸다. 어느 한 기계에 붙은 노동자는 다른 기계에 붙은 노동자와 노동의 성격과 내용에서, 서로 다른 업종의 두 수공업자나 매뉴팩처의 두 전문 노동자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덜 다르다. 마찬가지로 과학의 여러 분야 연구자들이 자기 작업에서 의지해야 하는 수법과 사유 구조도 점점 더 가까워지고 점점 더 비슷해진다. 사회주의적 사회 체제에서는 이미 기술의 방법과 과학의 방법이 통일되어, 노동이나 인식의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옮겨 가는 데 비교적 보잘것없는 수고만 필요할 것이며, 일을 바꾸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아직 앞날의 일이며, 현실에서 그것은 현실의 경향으로서만 존재한다. 전문 분야들의 경계는 아직 뚜렷하게 그어져 있고, 아주 조금씩 흐려질 뿐이다. 전문화의 긍정적 역할은 아직 결코 다하지 않았고, 그것의 속물적·길드적 형태 또한 매우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형태들을 평가하는 데에서 철학은 그 작업의 본질 자체로 말미암아 특별하고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각각의 과학은 경험의 어떤 개별 영역을 체계화하거나 “조직”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문 분야”이다. 철학은 그런 특별한 영역을 갖지 않는다. 철학은 경험과 인식을 그 전체에서 포괄하려 한다. 철학은 인간 사유의 일원론적 욕구를 표현한다. 따라서 철학은 전문화와 대립하는 무엇이다.

전문화가 낳은 인간의 분열은 수많은 삶의 모순을 만들어 냈고, 개개인에게 세계를 좁혀 놓았으며, 사람들 사이의 상호 이해를 무너뜨렸고, 개인의 이해관계를 집단의 이해관계에서 떼어 내어 다른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맞세웠다. 여기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생겨났고, 이 투쟁은 인간을 사회적·자연발생적 힘들의 지배에 내맡겼다. 그 힘들은 인간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이겨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철학은 찢긴 것을 다시 잇고, 사람들에게 세계를 보는 온전하고 통일된 시각을 주고, 인간의 경험을 닫힌 칸들로 갈라놓은 칸막이를 허물고, 사유의 심연을 메우고, 사유로부터 그 끝없는 복잡성 때문에 수수께끼 같고 위협적인 존재에게로 다리를 놓고자 했다. 이 모든 일은 분명 어떤 전문 분야의 틀 안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위대한 거장들의 철학은 언제나 백과사전적 토대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철학 역시 자신의 거대한 과제를 풀기에는 무력했다. 현실에서 흩어져 있는 것을 관념의 힘으로 통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것은 인간 사유가 앞으로 해 나갈 통일 작업에 길을 닦은 중요하고 값진 시도였다. 마침내 전문화의 힘이 철학 작업 자체에서도 승리를 거두어 그 의미를 왜곡하고, 철학을 그 과제 전체와 근본적으로 정반대되는 무언가로 만들어 버린 때가 왔다.

철학은 동업조합의 전문 분야가 되었고, 그 안에서는 직업적 편협성, 동업조합적 속물근성이 빠르게 꽃피었다. 무궁무진하게 풍부하고 복잡하며 모순에 찬 전 인류적 경험을 통일하는 과제는, 대개 그 지식이 남들이 쓴 철학 책들, 즉 남들이 해 놓은 통일 시도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다. 정작 이 경험의 내용 자체, 곧 발전해 가는 노동 실천과 인식은 그들에게 대부분 낯설고 생소한 것, 심지어 흥미 없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이것은 철학이 공허한 스콜라 철학으로 퇴화한 것이었고, 그런 스콜라 철학은 기껏해야 논리적 능력을 단련하는 연습으로서나 쓸모가 있을 뿐이다.

현존하는 모든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읽고 개념의 비판적 분석에 능란해졌으나, 자기 시대의 실천적 삶도, 인간의 노동이 의지하는 온갖 과학의 방법과 성과도, 동시대 문학과 예술의 상태도 알지 못하는 사람 — 이런 사람은 철학에 대한 살아 있는 조롱이다. 그의 “철학”이 무슨 값어치가 있겠으며, 그것이 어떤 경험을 통일하고 조직하겠는가? 그의 서재의 경험과 남들이 늘어놓은 논의 수천 권의 경험이란 말인가? 그런데 철학적 “achphilister”라는 이 희화적 유형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성공을 거두며, 순진한 사람들은 바로 이런 자가 철학적 사유의 진정한 담지자라고 믿는다.

이런 전문가, 말하자면 공인받은 사상가이자 이런저런 해당 학회의 회원이요 해당 잡지들의 기고자인 어떤 사람의 글에서, 나는 언젠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자연 속 에너지의 양은 불변으로 남지 않느냐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말에 드러난, 우리 시대의 기술적·과학적 발전 전체에 대한 무지의 심연을, 생산과 인식에서 “에너지”라는 상징, 즉 현대의 노동 조직과 정밀과학 전체의 중심 개념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더없이 깊은 무지를 말로 규정하기란 어렵다. 이 존경스러운 사상가는 에너지란 자연이라 불리는 다른 사물 안에 들어 있는 그런 사물이어서 늘어나거나 부풀거나 “발전”할 수도 있을 터인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그것에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는 “에너지”란 그저 생산과 인식에서 마주치는 더없이 다양한 현상에 대한 인간의 일원론적 관계라는 것, 그것이 생산과 인식 양쪽을 통합하는 방법이며 이 방법이 우리 눈앞에서 점점 더 발전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예는 결코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철학 연구란 철학책을 읽는 것이고 철학적 작업이란 읽은 책을 바탕으로 그와 똑같은 새 책을 쓰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형적인 경우이다. 이런 소박한 이해에서 가장 쉽게 벗어나야 할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철학이 이데올로기, 즉 “상부구조”, 즉 파생된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철학을 철학 자체로부터 세우는 것은 우스운 일이고 “토대”를 밝히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즉 기술과학과 자연과학이 하는 일인 생산력 연구에서 출발하여 다음으로 사회과학이 하는 일인 경제와 기본적인 이데올로기 영역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보면, 폭넓은 교양을 갖추고 삶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먼지 쌓인 인식론 전문가보다 철학적 작업에 비할 데 없이 더 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분명해야 한다.

여기서, 다른 어떤 영역에서보다도 더, 충분한 삶의 경험과 과학적 경험을 갖춘 “문외한”이 철학 사조들의 투쟁에서 “자기 판단을 가질” 수 있는 논란의 여지 없는 권리가 나온다.

그런데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철학 문제에 손을 대면서 진짜 동업조합 속물 같은 행세를 하려 애쓰고, 독자가 자기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도록 학식으로 겁을 주려 드는 것을 보는 일은 특히 서글프다. 실제로 학식을 갖춘 사람들조차, 고등한 전문 지식을 지닌 선택된 자들의 지적 귀족주의 앞에 노예적으로 엎드리도록 부추기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가 할 일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급히 뜯어 오고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았으며 서로 허술하게 엮였고 게다가 때로는 왜곡되기까지 한 수천 개의 인용문으로 독자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은 그야말로 고약한, 반사회적인 짓이다.

철학을 특별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다만 그것이 과학적이고 실천적인 진지한 지식에 기대고 있을 때에 그렇다. 과거와 현재의 여러 철학자의 견해를 탐구하고 비판하는 것은 유익하지만, 그때 그들이 자신의 철학적 견해 속에서 조직한 생활의 재료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같은 문제에 대해 버클리, 칸트, 마흐를 인용하면서, 그들이 살았던 역사적 상황 전체가 다르고 그들이 다룬 경험의 총량이 다르고 그들을 이끈 사회적 동기가 다르기에 그들의 개념이 담은 내용 전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 것, — 심지어 똑같은 낱말과 정식조차 그들에게서는 전혀 같은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는 일이 그 누구에게보다도 더 의무적이다. 인용된 사상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분석과 결합되지 않은 채 여러 학파와 시대에서 끌어모은 인용문 모음보다 더 비역사적이고 더 반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은 없다.

우리가 검토한 책은 그 어조 전체와 구성 전체로써 전문가들의 직업적 학식을 믿으라고 가르치는데, 마르크스를 믿으라고 가르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첫째 믿음은 해롭고 우스우며, 둘째 믿음은 해롭고 수치스럽다.

XXIV

Vl. 일린의 철학 논고를 결산해 보자.

우리는 그 안에서 숱한 모순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변증법적” 모순일까?

더없이 깊은 학식의 겉모습 — 그리고 실제로는 그에 못지않게 깊은 무지.

논적들을 “무례함”이니 “문필상의 기습질”이니 하며 끊임없이 비난하는 것, — 그리고 우리 조국의 풍습에 비추어 보아도 유별난 욕설 어휘[20].

모든 반대자를 “철학적 반동가”로 규정하는 것, 그리고 가장 정체된 경향, 온갖 “새것”을 가리지 않고 향하는 가장 악의적인 증오.

날카로운 반종교적 어조, 상대편에게 “성직자주의”를 향한 지향을 덮어씌우는 것, — 그리고 “절대적인 것”을 숭배하는 깊이 종교적인 사유.

이 마지막 모순이 물론 나머지 모든 모순의 토대이다.

종교적으로 사유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모든 “신앙주의”에 깊이 적대적인 학설을 받아들인 사람을 상상해 보라.

그러면 그는 첫째로 자신의 반종교성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드는데, 이것 자체는 아직 그리 나쁘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서 그는, — 둘째로, — 자기가 동의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온갖 견해를 적대적인 종파의 사상으로, 적대적인 종교로 여기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의 종교성이 그에게는 주관적으로 그의 반대자들에게 투사된다.

독자여, 당신은 어쩌면 한 알코올 중독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친구들의 슬픈 책망에, — “여보게, 기어이 꼬마 악마들이 보일 지경까지 마셨구먼?” —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아니, 나는 아직 그 지경까지 안 마셨어. 그런데 저 사람은(환자는 의료보조원을 가리켰다), 저 사람은 정말 그 지경까지 마셨다고. 저 사람 몸 위로 꼬마 악마들이 막 뛰어다녀, 막 뛰어다닌다니까. 내가 직접 봤어.”

Vl. 일린 역시 자신의 “절대적 진리”에 종교적으로 취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고말고, 다만 그는 성직자주의의 꼬마 악마들이 여러 “마흐주의자들” 몸 위로 뛰어다니는 것을 직접 보았을 뿐이다.

XXV

Vl. 일린의 책이 나온 지 다섯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에게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그것도 그를 완전히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추종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내 앞에는 N. 레닌의 공식 「해외 마르크스주의 학교 수강생들에게 보내는 편지」[21]가 있다. 이 매우 공로 많은 정치가는, 그가 어떤 새로운 분파의 이론적 토대로 여기는 철학적 이단을 들어 — 플레하노프가 그것을 볼셰비즘의 이론적 토대로 여겼듯이 — 앞서 말한 학교를 고발하면서 이렇게 쓴다:

“끝으로 이 학교의 교과 과정을 보라. 네 부문 가운데 하나, 곧 셋째 부문에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철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국제 마르크스주의 문헌에는 이와 같은 유형의 교과 과정이 수천은 아니더라도 수십, 수백 개는 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철학’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철학적 유물론은 있지만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철학’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누구도 이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스타니슬라프 A. 볼스키, 보그다노프, 바자로프, 루나차르스키의 저작을 아는 사람들뿐이다.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철학’을 가르치기에 앞서 그런 철학을 지어내야 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에서 멀어질수록 ‘프롤레타리아적’이라는 말을 더 자주 걸고 맹세하는 이 특별한 철학을 지어내는 일에 매달려 왔고 지금도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앞서 말한 그룹뿐이다…”

그러니까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철학이란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철학적 유물론”은 결코 그런 철학이 아니며, 대체로 그런 철학을 지어낼 수 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세계관은 자기 안에 철학을 품을 수 있는가? 보아하니 존경하는 정치가께서도 이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철학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적인 것이 될 것인가? 아무래도 달리 될 수는 없을 듯하다. 그 철학은 능동적인 것, 즉 투쟁의 철학이 될 것인가?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서도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철학은 결국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철학”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적 유물론이야말로 본질적으로 바로 그런 철학이 아닌가? N. 레닌은 동의하지 않지만,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두 동의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다면 이 철학을 더 다듬고 더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그것이 철학을 지어낸다는 뜻이다”라고 Vl. 일린 겸 N. 레닌은 말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정말로 몹시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모든 것이 이미 밝혀지고 말해졌으며 인간의 사유가 더 나아갈 곳도, 더 찾을 것도 없다는 그토록 따뜻한 믿음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앞서 말한 “국외 학교 교과 과정”으로 돌아가 보자. 그 셋째 부문의 총제목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철학” 아래에는 여러 세부 소제목이 있다. “사회적 세계관의 발전”, “예술과 문학의 발전”,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발전”, “사회주의 문화”. 이 모든 것이 프롤레타리아 세계관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것들인가? 일부러 “지어내야” 하는 것들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은가?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누구도 이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N. 레닌은 단언한다. 그런데 문제는 카를 카우츠키가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에 속하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국외 러시아 학교에 보내는 편지」[22]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교과 과정을 받아 보고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철학이 무슨 뜻인지를 두고 전혀 어리둥절해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아주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는 교과 과정이 “대체로 훌륭하다고 본다”고 밝히고, 바로 이 부문을 보충할 것, 곧 “사회 이론의 역사”를 덧붙일 것을 제안했다. 사실이 존경하는 러시아 정치가의 주장을 참으로 빨리도 반박해 준 셈이다!

같은 「편지」에서 N. 레닌은 이렇게 쓴다.

“러시아의 모든 언론은 오래전부터… 루나차르스키가 건신주의를 설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지적해 왔다. 러시아에서는 바자로프가 그를 도왔다. 보그다노프는 러시아에서 낸 열 권 남짓한 책과 글에서, 그리고 국외에서 한 열 차례 남짓한 강연에서 같은 종류의 철학적 견해를 옹호했다”…

바자로프의 비판적 논문 「구신주의와 건신주의에 대하여」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고 내 저작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이 현실을 얼마나 조잡하게 왜곡한 것인지 금세 알아본다. 바자로프는 그 글에서 앞의 두 조류 모두에 논쟁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지극히 정당하게 그 둘을 똑같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N. 레닌은 일린의 뒤를 따라 모든 것을 믿기 어려울 만큼 비트는 무슨 안경을 쓰고서, 그것을 통해 체계적으로 — 유감스럽게도 꽤 계획적으로까지 — 있지도 않은 것을 보아낸다[23].

Vl. 일린의 지지자들은 철학적 문제들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혼란을 용케 만들어 내고, 그것을 이용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좌파 내부의 실천적 모순을 첨예하게 하고 깊게 한다. 대의에 이롭지도 않고 고상하지도 못한 작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상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이런 태도를 자기 반대자들에게 덮어씌우려 하고, 철학적 견해차를 실천적 견해차로 바꿔치기한 죄를 반대자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법은 단 하나, 사실을 조잡하게 왜곡하는 것뿐이다.

같은 「편지」에서 N.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1908년 4월에 나는 이 세 동지 모두에게(그는 그 앞에서 바자로프, 보그다노프, 루나차르스키를 거명했는데, 수수께끼같이 M. 고리키는 빠뜨렸다. A. B.) 철학에서 그들과 무조건 갈라선다고 선언했으며, 그때 나는 멘셰비키-청산파의 역사에 맞서 혁명의 볼셰비키 역사에 공동의 수단과 힘을 쓰자고 그들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제안을 거절했다…”

이는 참으로 괘씸한 거짓말이다. 나는 내 이름으로, 그리고 위임을 받아 M. 고리키와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문필가들의 이름으로 밝혀 둔다. 그 제안은 거절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거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 점에서는 완전한 만장일치였다.

그리고 뒤에 이 계획을 실현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 계획된 출판물 편집부의 공식 대표로 정해진 사람이 바로 막심 고리키였고, 그는 신문에 자료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싣기까지 했다. 나 역시 예정된 필진에 들어 있었다. 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우리 탓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철학적 견해차를 이유로 중요한 사회사적 작업에 협력하기를 거부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온전한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을 다듬어 내는 어려운 일은 집단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이론적 색조들 사이의 투쟁이 위대한 실천적 대의의 통일을 우리 의식에서 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보여 주듯이, 모든 관념 체계는 — 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법적이든, 정치적이든 — 그것이 생겨나고 지배를 위해 투쟁하던 시기에 아무리 혁명적이었더라도, 조만간 더 나아간 발전을 붙잡는 제동이자 장애물, 곧 사회적으로 반동적인 힘이 되고 만다. 이 숙명적인 퇴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인식의 면에서 그 퇴화 위로 올라서서 그것을 설명하고 그 원인을 밝혀낼 수 있었던 이론뿐이었다. 그러한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관념 체계가 일정한 사회적·노동적 관계의 유기적 결과이자 파생물이며, 그 관계를 벗어나면 그 체계의 생생한 의미는 불가피하게 사라지고 이어서 왜곡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데올로기의 운명을 푸는 열쇠는 사회적·노동적 형태의 교체에 있다. 일정한 생산관계가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는 그 토대 위에서 형성되는 이데올로기도 진보적이다. 그 이데올로기가 그 관계에 봉사하고 그 발전을 도우며 그것을 공고히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관계의 발전이 완결되고 그 자리에 새롭고 더 완전한 형태가 나서기 시작하면, 같은 이데올로기는 낡고 낮은 형태를 계속 지탱하고 공고히 하면서 보수적인 것이 되고, 이어서 반동적인 것이 된다. 자신의 사회적·노동적 토대보다 오래 살아남은 이데올로기는 “산 자를 붙잡는 죽은 자”로 변한다. 그때에는 사회 발전을 위해 그것을 파괴해야 한다.

이것을 인정한 이상, 가장 진보적인 계급의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관념 체계에도, 자기 자신의 체계에조차 절대적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변화하는 생활 관계에 맞추어 끊임없이 발전하라는 요구를 자기 자신에게 내걸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는 이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낡은 세계는 자기 안에서 한 학설이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타협할 수 없었다. 그 학설은 낡은 세계의 숙명에 지배되지 않고 이데올로기적 퇴화라는 그 법칙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낡은 세계에는 정해진 기한이 되어도 그 살아 있는 밝은 유기체를 흐리멍덩하고 악의에 찬 흡혈귀로 바꿔 놓을 힘이 없었다. 오랜 헛된 투쟁 끝에 낡은 세계는 최후의 수단에 호소했다. 자기 적의 겉모습의 형상과 모양대로 흡혈귀를 창조하여 젊은 생명에 맞서 싸우도록 보낸 것이다. 이 유령의 이름은 “절대적 마르크스주의”이다.

흡혈귀는 제 일을 해낸다. 그것은 투사들의 대열에 스며들어, 그 껍데기 아래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들러붙어 피를 빨고, 때로는 목적을 이룬다. 어제까지 유익한 일꾼이었던 이들을 프롤레타리아 사상의 필연적 발전에 독기를 품은 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우리 조국은 — 젊은 노동운동의 나라, 아직 굳건해지지 못한 문화의 나라, 고통스럽게 기력을 소진시키는 투쟁의 나라는 — 이 유령에게 아마도 가장 훌륭한 제물들을 바쳤다. 얼마 전에는 G. 플레하노프를, 지금은 Vl. 일린을. 그보다 덜 크지만 한때는 공동의 대의에 역시 매우 유익했던 다른 힘들은 셈에 넣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악한 유령의 손아귀에 떨어진 동지들은 가엾게 여겨, 달리 방도가 없다면 가혹한 수단을 써서라도 고쳐 주려 애쓸 것이다. 그러나 흡혈귀는 모든 흡혈귀를 다루는 법도대로 다룰 것이다. 목을 베고, 심장에 사시나무 말뚝을!

우리 계급과 우리 앞에 놓인 것은 — 위대한 과업, 곧 새로운 문화의 창조이다. 이 문화에게 모든 과거와 현재는 — 재료일 뿐이며, 그 형식은 아직 어렴풋하게만 그려지고 있다. 끝없이 발전하는 집단적 내용을 끝없이 유연하고 가소적인 틀 속에 담아내는 것 — 이것이 이 문화의 과제이며, 집단의 조화로운 협력이 그 도구다! 우리는 준비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것을 투쟁과 모순 가운데서 수행하고 있다. — 이것이 우리의 역사적 운명이며, 우리는 그것을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 힘이 닿는 한 — 우리는 이미 지금부터 우리 계급의 범위 안에서, 그 문화적 작업 속에서, 우리의 사회적 이상인 노동의 조화를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생겨나고 있는 우리 집단 안에서 이 작업에 따르는 내부 투쟁을 우리는 그 객관적 결과의 관점에서 — 무의식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그 때문에 아직은 조화롭지 못한 협력으로 보아야 한다. 이 길에서 우리는 세대들 사이의 노동적 연관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이상은 전 인류의 과거와 현재에서 나오는 확고부동한 결론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주석

  1. 『경험일원론』, 제3부, 서문. ↩
  2. 혹시 몰라 밝혀 둔다. 내 책 『사회 심리학에서』에서는 상당수의 글이 이 문제들을 다룬다. 「관념론이란 무엇인가?」(베르댜예프 씨에 관하여), 「관념론의 문제들에 관하여」, 「지나간 것의 메아리」(불가코프 씨에 관하여) 등. ↩
  3.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독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일로 보일 수 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동시에 지면의 부족과 서술의 사정 때문에 인용을 많이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독자에게 원본을 직접 확인해 보시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 6~10쪽, 30~32쪽, 36쪽, 47쪽, 48쪽, 49쪽, 53쪽 등. ↩
  4. 『경험일원론』, 제3부, 서문, xxxv~xxxvi쪽. ↩
  5. 『어느 철학 학파의 모험』, 상트페테르부르크, 1908. ↩
  6. 주로 『경험일원론』 제1부, 제2부, 제3부, 「현대 자연과학자의 철학」(논문집 『집단주의 철학 개요』 수록), 『철학 학파의 모험』. ↩
  7. 『사회 심리학에서』(제2판 — 상트페테르부르크, 1906). ↩
  8. 강조는 내가 한 것이다. 독일어로는 “gesellschaftlich gültige, also objective Gedankenformen”. 바자로프와 스테파노프는 “타당성”, “Gültigkeit”의 두 가지 뉘앙스를 모두 표현하려고 이것을 “사회적으로 유효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사유 형식”이라고 옮겼다. 『자본』, 독일어 제5판, 42쪽; 바자로프와 스테파노프 번역본, 42쪽 참조. ↩
  9. 플레하노프는 이따금 물리적 현상을 심리적 현상과 대립시키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양자의 바탕에 놓인 “물질”과 구별한다(예컨대 『20년 동안』, 136~237쪽). 그러나 그는 어디에서도 이 두 계열의 현상이 지닌 법칙성 사이의 관계, 즉 한쪽의 “객관적” 연관과 다른 쪽의 “주관적” 연관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그것도 훨씬 더 자주, 그는 모든 현상, 모든 경험을 “감각”과 “표상” 또는 “대상의 상”으로 환원한다(포이어바흐에 관한 엥겔스의 소책자에 붙인 주, 1905, 97쪽). 그의 제자들 — 정통파, 데보린, 라흐메토프 — 도 체계적으로 똑같은 일을 한다. ↩
  10. 바자로프의 이 글은 1907년에 쓰였다. 그 뒤로 그는 경험의 연관이라는 문제에서 마흐의 관점을 떠나 내 관점으로 옮겨 왔다(경험의 개인적 조직과 집단적 조직의 구별 — 논문집 『집단주의 철학 개요』에 실린 글). ↩
  11. 예를 하나 들겠다. 마녀가 하늘을 나는 일에 관하여 슈프렝거 교수와 인스티토르 교수는 저 유명한 『마녀의 망치』에 이렇게 썼다. “이에 관해서는 스스로 그런 식으로 날아 본 적이 있거나, 악마들이 사람을 낚아채 가는 것을 제 눈으로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증언이 수없이 많다. 우리 자신도 슈트라스부르크와 쾰른 사이에서 이런 사례를 꽤 많이 수집했다. 끝으로, 평범한 백성들 사이에서조차 이런 이야기를 날마다 들을 수 있는 터에, 무엇 하러 쓸데없는 논증에 시간을 허비하겠는가?”(스페란스키, 『마녀와 마술』, 150쪽에서 재인용). 바로 이것이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열어 보여 주는 객관적 진리”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유물론자가 된다는 것”이다… ↩
  12. 이 경우에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Vl. 일린은 플레하노프의 충실한 제자다. 플레하노프는 포이어바흐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무엇보다 먼저, 인간 본성의 속성들이 신적이라는 말이 포이어바흐에게서는 전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 주목하자. 지난 세기의 프랑스 유물론자들이라면 이 속성들을 논하면서 물론 포이어바흐의 용어법을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상의 의견 차이는 아무런 본질적 의미도 갖지 않았을 것이며, 순전히 실천적인 고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강조는 플레하노프. 『20년 동안』, 272쪽). 그런데 이와 나란히 루나차르스키에 대해서는 그의 견해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무시하고, 그의 용어법을 두고 값싼 재담을 늘어놓아 그 본질을 덮어 버리려 애쓴다… ↩
  13. 포크트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뷔히너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사유, 정신, 영혼은 무언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힘이 통일된 총체이며, 힘과 성질을 부여받은 몇몇 물질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그리고 그는 영혼을 증기기관의 힘에 비유하는데, 그 힘은 그 자체로는 물질적이지 않은 반면 그 원천인 증기는 온전히 물질적이다. ↩
  14. 이 대목은 1677년판(opera posthuma) 87~88쪽에서 옮긴 것이다. “양태”는 글자 그대로는 방식, 모양이며, 여기서 가장 가까운 뜻은 “개별적 발현”이다. ↩
  15. 18세기에는 “사유”와 “의식”을 혼동하는 일이 완전히 뿌리를 내렸고, 그래서 당시의 신스피노자주의자들은 자연히 심리물리적 평행론, 즉 “물질의 영혼 부여”의 입장을 취했다. 이는 무엇보다 디드로가 『백과전서』에서 그들에게 내린 규정이 증언해 주며, 그 규정은 다름 아닌 플레하노프 자신이 인용한 바 있다(『우리 비판자들에 대한 비판』, 161쪽). 이 규정을 인용한 뒤 플레하노프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것만으로는 디드로가 보기에 새로운 스피노자주의가 낡은 스피노자주의보다 어디에서 우월한지가 아직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분명하지 않다, 낡은 스피노자주의를 모른다면. ↩
  16. L. 포이어바흐에 관한 엥겔스의 팸플릿을 플레하노프가 번역한 것을 보라. ↩
  17. Vl. 일린, 112쪽. ↩
  18. 1840년 무렵 나와 러시아어로도 번역된 선집 『동물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에 실린 동화 「당나귀의 모험」. ↩
  19. 사실 카르노는 장교였으니, 자기 과학의 그렇게까지 순전한 전문가는 아니었던 셈이다… ↩
  20. 나는 그것들 가운데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일부만을 인용할 수 있을 뿐이다. 독자는 스스로 배울 수 있다… 칸트 이론을 비판하는 것과 같은 계기에서조차 Vl. 일린은 용케도 자신의 논적들을 “푸리시케비치들”이라고 부른다(231쪽). ↩
  21. 누군가 친절하게도 내게 보내 준 인쇄 교정쇄에서 인용한다. ↩
  22. 인쇄된 문서(편지의 러시아어 번역)에서 인용한다. ↩
  23. 특히 용납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은 “보그다노프의 해외 강연 십여 차례”를 끌어대는 일인데, 이는 그 강연들을 직접 듣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인용이다. 한편 그 강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라면 N. 레닌에게, 이 강연들을 공식적으로 인용해도 되겠다고 여길 만큼 완전한 정보를 대체 어떤 출처에서 얻었는지 물어봄 직도 하다. 문제는 그가 그 강연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참석한 적이 없다는 데 있다. 그는 특별히 초대받았던 강연에조차 오지 않았다 — 여기서 다루는 Vl. 일린의 책을 두고 열린 논쟁 강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