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 française de l'Internationale ouvrière (SFIO) · 1905–1969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French Section of the Workers' International

1905년 쥘 게드의 프랑스 사회당(PSdF)과 장 조레스의 프랑스 사회당(PSF)이 제2인터내셔널의 압력으로 합쳐 만든 프랑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1920년 투르 대회에서 다수파가 공산당으로 떨어져 나간 뒤에도 남았고, 1936년 인민전선 정부를 이끌었다. 1969년 오늘날의 사회당으로 재창당되었다.

상세

통합은 1905년 파리 글로브 대회에서 이루어졌다. 당은 다른 유럽 사회주의 정당과 달리 분권적이었고, 노동총동맹(CGT)이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을 내세운 탓에 노동조합에 기댈 수도 없었다. 사무총장 루이 뒤브뢰유는 행정을 맡았을 뿐이고, 의원단 대표이자 기관지 『뤼마니테』 주간인 조레스가 실질적 지도자였다. 득표율은 1906년 10%에서 1914년 17%로 올랐고, 프랑스어 출처에 따르면 당원은 통합 대회 때 3만 4,688명에서 1914년 9만 3,218명으로 늘었다.

1914년 7월 28일 당은 「전쟁 반대」 선언을 냈으나, 7월 31일 조레스가 암살된 뒤 8월 4일 전쟁공채에 찬성했고 게드파와 블랑키파가 「신성한 단결」 정부에 들어갔다. 1920년 12월 투르 대회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가입안이 3,028표 대 1,022표(기권 327)로 통과되자 다수파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뒷날의 프랑스 공산당)를 세웠고, 레옹 블룸이 이끈 소수파는 「낡은 집」을 지키며 SFIO로 남았다. 『뤼마니테』는 공산당 쪽으로 넘어갔다.

1934년 2월 6일 극우 폭동 뒤 당은 공산당·급진당과 인민전선을 이루었고, 1936년 선거에서 처음으로 급진당보다 많은 표와 의석을 얻어 블룸이 첫 사회당 출신 총리가 되었다. 블룸 정부는 마티뇽 협정으로 단체교섭, 임금 인상, 2주 유급휴가, 주 40시간제를 도입했다. 1940년 패전 뒤 일부 당원은 페탱에게 전권을 주는 데 반대했고 많은 당원이 레지스탕스에 참여했지만, 전 사무총장 폴 포르처럼 협력한 이들도 있어 전전 장관 17명 가운데 14명이 1944년 재건된 당에서 제명되었다.

해방 뒤 당은 공산당·인민공화운동과 3당 연립으로 사회보장 확대와 국유화를 추진했으나, 공산당에 득표에서 계속 뒤졌다. 1946년 기 몰레가 사무총장이 되었고, 1956~1957년 총리로서 알제리에서 강경 정책을 폈다. 1969년 대선에서 가스통 드페르가 5%에 그친 뒤, 그해 7월 이시레물리노 대회에서 당은 다른 단체와 합쳐 사회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fr.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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