Теория стакана воды

물 한 잔 이론

Glass of water theory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성욕을 채우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단순하고 사소해진다는 견해. 사랑과 혼인을 「부르주아적 관습」 없이 본능적 욕구의 충족으로 환원했고, 혁명 직후 소련 청년 사이에 널리 퍼졌다. 흔히 콜론타이의 주장으로 알려졌으나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 레닌과 루나차르스키가 비판했고 1920년대 말 사라졌다.

상세

「물 한 잔」이라는 비유는 1852년 리스트가 쓴 쇼팽 전기에서 조르주 상드가 했다는 「사랑은 물 한 잔처럼 청하는 이에게 주어진다」는 말에서 처음 보인다. 사회주의가 부르주아 가족을 없앨 것이라는 생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가족을 경제적 토대의 상부구조로, 일부일처제를 재산을 친자식에게 물려주는 방식으로 보았고, 사회주의에서는 가사와 육아가 사회적 노동이 되어 부르주아적 가족이 사멸한다고 했다. 혁명 직후 소련 사회는 이유 없는 이혼과 민사 혼인만을 인정한 법령, 「수치 타도 협회」 같은 실험 속에서 성을 갈증 해소 같은 생리 행위로 보는 생각이 192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고, 언론과 콤소몰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이 이론은 흔히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나 클라라 체트킨의 것으로 여겨졌으나 근거가 없다. 콜론타이는 자유연애를 옹호했지만 남녀가 아직 불평등한 조건에서의 가벼운 관계는 여성을 착취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를 이 이론의 주창자로 보는 것은 단편 「세 세대의 사랑」(1923)에서 젊은 콤소몰 여성이 성관계를 「목마를 때 보드카(또는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의미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비틀린 것으로 보인다. 그가 「공산주의 도덕에 관한 테제」에서 쓴 것은 성이 「배고픔이나 목마름처럼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말이었다. 같은 해 그는 《젊은 근위대》에 「날개 달린 에로스에게 길을!」을 실었다. 체트킨의 회고에 따르면 레닌은 이 이론을 「완전히 비마르크스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이라 부르며, 정상적인 사람이 길바닥의 웅덩이 물이나 수십 명이 입을 댄 잔으로 마시겠느냐고 했다. 루나차르스키는 1926년 12월 레닌그라드 강연을 바탕으로 한 「청년과 ‘물 한 잔’ 이론」에서 부르주아의 방탕과 「허무주의적」 성욕관 대신 진지하고 절제된 사랑을 요구했다.

1924년 아론 잘킨트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12가지 성 계율」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1926~1929년 이론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1929년이 볼셰비키 성혁명과 물 한 잔 이론의 끝으로 꼽히지만, 1935년 음란물 처벌법을 그 공식적 끝으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 1930년대의 이상적 소련 여성은 직장과 가정의 의무를 함께 짊어지는 존재가 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러시아어)
  5.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