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yar Forradalmi Munkás-Paraszt Kormány · 1956.11.04–1972

헝가리 혁명 노농 정부

Hungarian Revolutionary Worker-Peasant Government

1956년 11월 4일 소련군의 두 번째 개입과 함께 카다르 야노시를 총리로 세워진 헝가리 정부와, 그 뒤 1972년까지 헝가리 정부가 쓴 공식 명칭. 너지 임레 정부의 약점과 운동에 끼어든 반혁명 분자들 때문에 사회주의의 성과가 위태로워졌다는 이유로 수립을 선언했다. 첫 카다르 정부는 1956년 11월 7일 취임해 1958년 1월까지 이어졌고, 혁명을 진압하고 공산당 권력을 되살리는 일을 맡았다.

상세

수립

정부 명단은 11월 3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 회의에서 흐루쇼프가 모스크바로 불려 온 헝가리 지도자들, 그 가운데 너지 정부를 대신할 사람으로 고른 카다르 야노시 앞에서 읽었다. 정부는 솔노크에서 꾸려졌다고 해서 「솔노크 정부」라고도 불린다. 11월 4일 새벽 5시 5분, 정체를 밝히지 않은 우즈고로드(웅바르) 방송이 먼저 소식을 전했다. 뮌니히 페렌츠가 자신과 카다르, 어프로 언털, 코서 이슈트반이 11월 1일부터 너지 정부와 관계를 끊었다는 공개서한을 읽었고, 카다르가 새 정부 명단을 읽었다.

호소와 강령

「헝가리 인민에게 보내는 호소」는 10월 23일에 시작된 대중운동이 라코시 일파의 범죄를 바로잡고 민족 독립과 주권을 지키려는 고귀한 목적을 가졌으나, 너지 정부의 약점과 운동에 파고든 반혁명 분자의 영향 때문에 사회주의 성과와 인민 국가, 노농 권력을 위태롭게 했다고 주장했다. 내각은 카다르(총리), 뮌니히(부총리 겸 군·치안 장관), 머로샨 죄르지(국무장관), 호르바트 임레(외무), 코서(재무), 어프로(공업), 되게이 임레(농업), 로너이 샨도르(상업)로 이루어졌고, 나머지 자리는 법질서가 회복된 뒤 인민 민주주의에 충실한 다른 정당 인사와 무소속 인사로 채운다고 했다. 머로샨, 되게이, 로너이는 방송을 듣고서야 자기가 장관이 된 것을 알았다고 전해진다. 함께 낸 15개조 강령은 운동의 요구 일부를 받아들이면서 소련군의 도움으로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했다.

그 뒤

정부 성원은 11월 7일 의사당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정부는 대부다페스트 중앙노동자평의회 같은 노동자평의회와 협상하는 한편 그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평의회를 해산했으며, 혁명 참가자에 대한 보복을 이끌었다. 첫 카다르 정부는 1958년 1월 28일까지 이어졌다. 「헝가리 혁명 노농 정부」라는 이름은 그 뒤에도 헝가리 인민공화국 정부의 공식 명칭으로 남았다가, 1972년 헌법 개정으로 「각료회의」로 돌아갔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hu.wikipedia.org
  2. hu.wikipedia.org
  3. mek.oszk.hu
  4. hu.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