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alismus / nationalisme / национализм · 18세기 말~

민족주의

Nationalism

민족주의는 한 민족의 모든 구성원이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서로 연대하며, 그 민족을 하나의 주권 국가로 묶으려는 사고방식이자 정치 운동이다. 민족과 국가가 일치해야 한다는 원리로도 정의된다. 18세기 말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서 처음 큰 정치적 영향을 미쳤고, 19세기 유럽의 국민국가 형성과 20세기 반식민 독립운동을 거쳐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시민적·종족적, 포용적·배타적 민족주의처럼 갈래가 다양하며, 군주정·사회주의·파시즘 등 서로 다른 체제와 결합해 왔다. 마르크스주의 운동은 민족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논쟁했다.

상세

정의와 말의 유래

독일어 백과사전은 민족주의를 한 민족의 모든 구성원의 동일시와 연대를 추구하고 그 민족을 주권 국가로 묶으려는 사고방식 또는 정치 운동으로 정의한다. 영어권 학계는 흔히 민족과 국가가 일치해야 한다는 정치 원리로 정의한다.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D. 스미스는 1971년 민족주의자들의 공통 신념을 넷으로 정리했다. 인류는 본래 저마다의 민족성을 지닌 민족들로 나뉘고, 사람은 자기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하며, 민족은 자기 국가 안에서만 온전히 발전할 수 있어 민족자결의 권리를 가지고, 모든 정당한 정치권력의 원천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영어 단어 nationalism은 1798년 무렵에 생겼고 1914년 이후 부정적 뜻이 짙어졌다. 일상 정치 언어에서는 이 말이 편협하고 공격적인 민족 의식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연구에서는 민족을 행동의 기준 가치로 삼는 모든 운동을 이렇게 부른다. 러시아어 백과사전은 민족주의가 서로 대립하는 계급 이익과 상관없이 사회의 여러 층을 하나로 묶으려 하며, 자본주의 경제로 넘어가는 시기에 공동의 정치 목표를 위해 주민을 동원할 수 있었다고 적는다.

형성과 확산

민족주의는 근대의 현상으로 본다. 독일어 백과사전에 따르면 민족주의 사상은 18세기 말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서 처음 큰 정치적 영향을 미쳤고, 프랑스 혁명이 퍼뜨린 인민주권 사상은 민주적 측면과 민족적 측면을 함께 지녔다. 독일의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와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이탈리아의 주세페 마치니가 민족 신화 형성의 선구자로 꼽힌다. 헤르더는 1772년 『언어의 기원에 관한 논고』에서 공통 언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1848~1849년 혁명에서는 민족적이면서 민주적인 운동들이 왕정복고 세력에 맞섰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샤를 모라스는 민족을 개인의 유일한 가치로 높이는 ‘통합적 민족주의’라는 말을 만들었고, 이렇게 이해된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유럽 밖에서는 1905년 일본이 러시아를 이긴 일이 중국·튀르키예·페르시아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 쑨원은 1905년 《민보》 발간사에서 민족·민권·민생의 세 주의를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독립을 추구한 식민지 민족들은 식민주의의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민족주의의 원리를 끌어다 썼다. 독일어 백과사전은 민족자결권이 국제법에 자리 잡은 20세기 이후 민족주의가 세계적으로 헤게모니를 쥔 이념이 되었다고 적는다.

갈래와 이론

한스 콘과 존 플라메나츠는 시민적 민족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를 구별했다. 앞의 것은 민족을 주로 정치적으로 정의해 영토의 경계만을 배제 기준으로 삼고, 뒤의 것은 혈통과 출생, 종족성에 기초해 민족을 운명 공동체로 본다. 포용적 민족주의가 사회의 여러 집단을 통합하려 한다면, 배타적 민족주의 곧 쇼비니즘은 다른 민족과의 공격적 구별을 지향하며, 극단에서는 소수자의 추방과 절멸로 이어졌다. 파시즘 연구자 로저 그리핀은 파시즘을 ‘재생적 형태의 포퓰리즘적 초민족주의’로 정의했다. 민족의 기원을 둘러싸고는 세 학파가 있다. 원초론은 민족이 처음부터 있었다고 보지만 오늘날 지지자가 거의 없고, 근대론은 민족과 민족주의가 산업화·도시화·대중교육으로 생겨났다고 보며, 앤서니 스미스의 종족상징론은 신화와 상징, 전통의 역할을 강조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고 그 등장을 인쇄 자본주의와 토착어 인쇄물의 확산에 연결했다. 사회과학자 마이클 빌리그는 국기 사용이나 상품 표시, 국내와 국외를 나눈 보도처럼 일상에서 눈에 띄지 않게 되풀이되는 ‘평범한 민족주의’를 개념화했다. 반식민 민족주의와 좌파 민족주의도 따로 분류된다.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썼지만, 같은 글에서 노동계급이 먼저 자기 나라에서 정치적 지배를 쟁취해 ‘민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사회민주당에서 오토 바우어는 1907년 『민족 문제와 사회민주주의』를 내고 문화 자치를 해법으로 내놓았다. 폴란드 출신의 로자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사회당의 독립 강령에 맞서 독립 폴란드를 노동계급을 국제 계급투쟁에서 떼어 놓는 ‘신기루’라고 보았다. 1913년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는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의 ‘민족문화 자치’를 반박하고, 민족을 언어·영토·경제생활·심리 구조의 공통성 위에 역사적으로 형성된 안정된 공동체로 정의했다. 레닌은 1914년 「민족자결권에 대하여」에서 억압하는 민족과 억압받는 민족을 구별하고 분리 독립의 권리를 인정했다. 소련 공산당이 비러시아 민족의 문화 옹호에 붙인 죄목 ‘부르주아 민족주의’는 별도 항목에서 다루고, 이 항목은 민족주의 일반을 다룬다. 극단주의 연구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결합한 초민족주의를 민족공산주의라 부르며, 차우셰스쿠 치하 루마니아와 북한을 예로 든다.

20세기 민족주의의 여러 갈래

민족주의라는 이름 아래에는 서로 매우 다른 흐름이 있다. 폴란드의 로만 드모프스키가 이끈 민족민주당은 얀 루드비크 포플라프스키가 1890년대에 다듬은 ‘피아스트 구상’, 곧 소수민족 지배를 포함하지 않는 폴란드 민족국가 구상을 이념의 중심에 두었다. 반면 사회주의자 출신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민족자결에 공감한 인물로 레닌과 나란히 언급된다. 쑨원의 삼민주의 가운데 민족주의는 한족 우월을 내려놓고 만주족·몽골족·회족·티베트족과 함께하는 ‘오족공화’ 구상으로 나타났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영문)
  4. fr.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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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zh.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