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반대파
New Opposition
1925년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스탈린 지도부에 맞서 결성한 소련공산당 내 반대파. 지노비예프의 기반인 레닌그라드 당 조직에 의지해 레닌그라드 반대파라고도 불린다. 일국사회주의론과 네프의 부농 유화 노선을 비판했고, 크룹스카야와 소콜니코프가 가세했다. 1925년 12월 제14차 당대회에서 표결로 완패한 뒤 레닌그라드 조직이 해체 수준으로 재편되었고, 이듬해 좌익반대파와 손잡아 통합반대파를 이뤘다.
상세
어제의 동맹자는 왜 돌아섰나
레닌 사후의 당은 트로츠키를 봉쇄하기 위한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스탈린의 삼두체제가 이끌었다. 좌익반대파가 1923~24년의 논쟁에서 패배하자 삼두체제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고, 1925년에 걸쳐 동맹은 안에서부터 갈라졌다.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하린이 다듬고 스탈린이 채택한 일국사회주의론이다. 지노비예프는 이것이 국제혁명 없이 사회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레닌주의의 수정이라고 공격했다. 다른 하나는 네프 아래 농촌 정책으로, '부유해지라'는 부하린의 구호가 상징하는 부농 유화 노선을 반대파는 자본주의 부활의 길이라고 보았다. 권력의 축이 서기국으로 쏠리는 데 대한 위기감도 그 밑에 깔려 있었다.
제14차 당대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925년 12월 제14차 당대회에서 지노비예프는 관례를 깨고 중앙위원회 보고에 맞서는 부보고를 했다. 크룹스카야와 소콜니코프가 반대파 편에 섰고, 카메네프는 대회장에서 스탈린 개인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데 반대한다고 정면으로 말했다. 그러나 표결은 압도적이었다. 대의원 구성 자체가 서기국이 관리하는 지방 조직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반대파가 기댈 곳은 지노비예프가 장악한 레닌그라드 조직뿐이었고, 대회 직후 키로프가 파견되어 그 조직을 몇 달 만에 재편했다. 당내 기반을 잃은 신반대파는 1926년 봄 어제의 적이던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와 결합해 통합반대파가 되었다.
무엇을 보여 주는가
신반대파의 일화는 1920년대 당내 투쟁의 역학을 압축한다. 강령 대립처럼 보이는 싸움의 승패가 실제로는 당 기구의 장악, 곧 대의원을 만들어 내는 서기국의 인사권에서 갈렸다는 점이다. 소련 공식 사학은 신반대파를 트로츠키주의로 미끄러진 분파주의로 기록했다. 이후의 연구는 이 반대파가 제기한 쟁점 자체는 진지한 것이었다고 보면서도,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불과 2년 전 트로츠키를 상대로 같은 기구적 방법을 썼다는 점을 함께 지적한다. 참가자들의 결말은 알려진 대로다.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1936년 최초의 모스크바 재판에서 처형되었고, 소콜니코프도 숙청을 피하지 못했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E. H. Carr, Socialism in One Country 1924–1926, vol. 2 (Macmillan, 1959)
- Robert V. Daniels, The Conscience of the Revolution: Communist Opposition in Soviet Russia (Harvard University Press, 1960)
- Isaac Deutscher, The Prophet Unarmed: Trotsky 1921–1929 (Oxford University Press,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