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окрет несврстаних · 1956년–현재

비동맹 운동

Non-Aligned Movement

냉전기 강대국 블록 어느 쪽에도 공식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국가들의 국제 운동. 창립자들은 이를 중립이나 중립주의가 아니라 평화를 향한 적극적·능동적·건설적 정책으로 규정했으며, 1954년 12월 22일 네루-티토 공동성명은 그들의 노선이 "중립"이나 "중립주의", 즉 수동성이 아니라고 밝혔다. 1950년 유엔에서 인도와 유고슬라비아가 한국전쟁을 둘러싼 다자 동맹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처음 이 용어를 썼고, 1955년 반둥 회의의 원칙을 이어 1956년 브리유니 선언으로 창립, 1961년 베오그라드에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티토, 네루, 나세르, 은크루마, 수카르노가 주도했다.

상세

창립 과정

비동맹 운동은 한국전쟁 이후 세계가 빠르게 양극화되는 데 맞서 일부 국가들이 균형추를 세우려 한 데서 비롯했고, 1955년 반둥 회의에서 합의된 원칙을 바탕으로 삼았다. 1960년 9월 30일 티토, 나세르, 수카르노, 네루, 은크루마는 유엔 총회 의장에게 〈5인의 제안〉을 보냈고, 1956년 7월 19일 티토·네루·나세르가 서명한 브리유니 선언은 "평화는 분리로는 이룰 수 없고, 전 지구적 집단안보와 자유의 확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상태의 종식에 대한 열망으로만 이룰 수 있다"고 선언했다. 브리유니에서 세 지도자가 만난 회담은 '제3세계의 얄타'라 불렸다. 1961년 9월 1~6일 베오그라드 회의에는 25개국이 참가하고 볼리비아·브라질·에콰도르 3개국이 옵서버로 참석했으며, 그해 초 카이로에서 준비회의가 열렸다. '비동맹 운동'이라는 표현 자체는 1976년 제5차 회의에서 처음 등장한다.

베오그라드의 성과와 한계

베오그라드에서 참가국들은 강대국이 지배하는 군사·이념 블록에 가입하지 않을 것, 국가 간 평등, 자결권, 무력 사용 회피를 공통 기반으로 삼아 냉전 블록과 핵 위협에 맞선 제3세계의 응답을 내놓았고, 미국과 소련 대통령에게 긴장 완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로 했다. 동시에 회의는 소련이 개막 첫날 핵실험을 재개하면서 약화됐고, 소련과 중국의 티베트·동유럽 관련 행동을 규탄하지 못했다.

조직 발전과 균열

회원국들은 1970년 루사카에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 강대국 군사동맹·조약 불참, 외국 영토 내 군사기지 반대를 목표로 추가했다. 1996년 카르타헤나 방법론 문서는 조직 운영의 기본을 정했고, 정상회의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의장국을 순환한다. 1979년 아바나 회의는 카스트로 아래에서 쿠바의 위신이 정점에 이르렀으나, 같은 해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이 운동을 분열시켰다. 유엔에서 비동맹 회원국들은 소련을 규탄하는 결의에 56대 9, 기권 26으로 찬성했지만 쿠바는 반대표를 던졌고 비동맹 진영의 지도력과 명성을 잃었다. 1975년에는 회원국들이 아랍 국가들과 소련 블록의 지지 속에 시온주의를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 및 인종차별과 동일시하는 유엔 총회 결의 3379호를 추진했는데, 이는 구속력 없는 선언적 조치였다.

내부 분열과 자율성

유고슬라비아는 1979년 정상회의 장소를 아바나에서 옮기자는 요구를 거부해 쿠바 의장국 반대 목소리를 가라앉혔고, 인도와 함께 아바나 회의 최종 선언의 편향된 초안에 맞서 수정을 관철했다. 1989년 베오그라드 회의에는 쿠바·이란·이라크가 불참했고 보다 등거리적인 최종 문서가 채택됐다. 이는 운동이 블록의 부속물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내부적으로 논쟁적인 조직이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인도와 파키스탄, 이란과 이라크처럼 회원국 사이의 심각한 분쟁을 막지 못했고, 거부권 앞에서 다자 개혁이 실질적 권력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널리 존재한다.

냉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해체(1991~1992)로 1992년 뉴욕 각료회의에서 그 회원 자격이 정지됐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크로아티아·몬테네그로·세르비아는 옵서버 지위를 유지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코스타리카의 가입 신청은 1995년과 1998년에 거부됐고, 몰타와 키프로스는 2004년 유럽연합 가입으로 회원 자격을 상실했으며, 아제르바이잔과 피지는 2011년에 가입했다.

구분과 현황

비동맹 운동은 개발도상국의 유엔 기반 연합인 77그룹과 구별된다. 77그룹은 1964년 6월 15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77개 비동맹 국가들이 발표한 〈77개국 공동선언〉으로 창설됐고 오늘날 134개 회원국을 두며, 중국은 이를 지지하지만 회원으로 간주하지 않아 성명은 'G77과 중국' 명의로 나온다. 비동맹 운동은 77그룹이 UNCTAD의 일부로 등장한 틀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유럽의 중립·비동맹 국가(NN) 그룹은 NATO에도 바르샤바 조약에도 속하지 않은 유럽 국가들, 즉 중립국 오스트리아·핀란드·스웨덴·스위스와 비동맹국 유고슬라비아·키프로스·몰타의 비공식 협력체로, 헬싱키 협정의 성과를 지키고 평화·군축·강대국 자제를 주장하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안에서 활동했고 유고슬라비아는 1977년 베오그라드에서 두 번째 CSCE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오늘날 비동맹 운동은 회원국 120개국, 옵서버 18개국, 국제기구 10개로 구성되며 유엔 회원국의 약 3분의 2, 세계 인구의 55%를 포괄한다. 의장국은 정상회의마다 교체되어 16차 테헤란(2012), 17차 베네수엘라(2016), 18차 바쿠(2019), 19차 우간다 캄팔라(2024년 1월)로 이어졌다. 운동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혁을 주장하며 이사회를 가장 왜곡되고 비민주적이며 재편이 필요한 요소로 본다. 푸에르토리코(1961년부터)와 서사하라(1973년부터)의 자결 논의를 지지해 왔고, 2003년 이라크 침공 등 미국 대외정책의 여러 측면을 비판했다. 1970년대~1980년대 초에는 신국제경제질서(NIEO)와 신국제정보통신질서(NWICO)를 위한 운동을 벌였고, 1975년 결성된 비동맹 통신사 연합은 2005년 비동맹 뉴스네트워크로 전환됐으며, 1995년 카르타헤나 회의 후 자카르타에 비동맹 남남기술협력센터가 설립돼 인도네시아의 자발적 분담금으로 운영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founding, principles, membership, history, and the Bandung-Belgrade continuity
  2. globalsouthstudies.org 1961 Belgrade Conference as first summit, the 'Third World's Yalta,' detailed analysis of founding leaders' aims
  3. fikerinstitute.org NAM origins, Tito's pivotal role after the Soviet-Yugoslav split, Nasser-Tito connection, and the Bandung-to-Belgrade traje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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