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현상학
The Phenomenology of Spirit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 1807년 『학문의 체계』 제1부로 펴낸 첫 주저. 가장 소박한 감각적 확신에서 출발한 의식이 자기의식·이성·정신·종교를 거쳐 절대지에 이르기까지 겪는 경험의 단계를 차례로 서술하며, 진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스스로 전개되어 완성되는 주체이자 전체로 파악한다. 자기의식 장의 「주인과 노예」 대목은 노동하는 노예가 오히려 참된 자립성에 이른다는 논리로 뒷날의 사회 이론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마르크스는 1844년 수고에서 이 책을 헤겔 철학의 “참된 탄생지이자 비밀”이라 부르고, 인간의 자기 산출을 노동의 과정으로 파악한 업적과 그 노동을 정신적 노동으로만 본 한계를 함께 짚었다.
상세
왜 관념론의 대표작이 마르크스주의의 계보에 들어가나?
『정신현상학』은 마르크스주의 고전이 아니라 독일 관념론의 대표작이다. 그런데도 이 계보도에 자리를 얻는 것은 마르크스가 헤겔과 결판을 지으려 할 때마다 이 책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1844년 파리에서 쓴 원고의 마지막 장 「헤겔 변증법과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헤겔 철학의 참된 탄생지이자 그 비밀이다.”
Man muß beginnen mit der Hegelschen Phänomenologie, der wahren Geburtsstätte und dem Geheimnis der Hegelschen Philosophie.
엥겔스도 1886년의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에서 헤겔 체계를 소개하며 이 책을 맨 앞에 놓았다. 그는 『정신현상학』을 개인의 의식이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하는 과정을 그리되 그것을 인류의 의식이 역사적으로 거쳐 온 단계의 “축약된 재현”으로 파악한 책, 그래서 “정신의 태생학과 고생물학에 견줄 만한” 책이라고 불렀다. 한 사람의 성장과 인류의 역사를 겹쳐 읽는 이 발상, 그리고 의식의 각 형태가 제 안의 모순 때문에 무너지고 다음 형태로 넘어간다는 서술 방식이 흔히 말하는 헤겔 변증법이 처음으로 크게 펼쳐진 무대다.
어떻게 쓰였고 무엇을 다루나?
헤겔은 예나에서 이 책을 썼다. 영어 위키백과는 원고가 1806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예나에 들어오던 무렵 마무리되었다고 전한다. 책은 1807년 밤베르크와 뷔르츠부르크의 괴프하르트 출판사에서 『학문의 체계』 제1부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원래는 자연철학과 정신철학으로 이어질 체계 전체의 입문으로 구상되었고, 앞의 세 부분(의식, 자기의식, 이성)은 뒷날 『철학 백과전서』(1817)에 줄어든 모습으로 들어갔다.
목차는 의식(감각적 확신, 지각, 힘과 지성), 자기의식, 이성, 정신, 종교, 절대지로 이어진다. 의식은 처음에 눈앞의 ‘이것’을 가장 확실한 앎이라고 믿지만, 그것을 말로 붙잡으려는 순간 보편적인 낱말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겪고 지각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각 단계는 스스로 진리라고 내세운 기준으로 자기를 시험하다가 그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이 다음 단계를 낳는다. 정신 장에 이르면 그리스 폴리스의 인륜, 로마의 법적 인격, 근대의 교양과 계몽,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절대적 자유와 공포」까지 실제 역사가 의식의 형태로 등장한다. 종교 장을 지나 마지막 절대지에서 정신은 자기가 마주해 온 모든 대상이 결국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다.
서문의 유명한 문장들은 무슨 뜻인가?
책 앞의 긴 서문(Vorrede)은 헤겔 철학 전체의 방법을 밝히는 글로, 철학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들이 여기 모여 있다. 헤겔은 먼저 식물의 비유로 철학 체계들의 관계를 설명한다. “꽃봉오리는 꽃이 피어나면 사라지고, 봉오리는 꽃에게 반박당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열매가 나타나면 꽃은 식물의 거짓된 존재로 판정된다.” 그러나 이 형태들은 서로 밀어내면서도 유기적 통일의 계기로서 하나하나가 똑같이 필연적이고, 이 필연성이 전체의 생명을 이룬다. 앞선 체계를 틀렸다고 내버리지 말고 진리가 전개되는 단계로 이해하라는 요구다.
Die Knospe verschwindet in dem Hervorbrechen der Blüte, und man könnte sagen, daß jene von dieser widerlegt wird; ebenso wird durch die Frucht die Blüte für ein falsches Dasein der Pflanze erklärt.
이어서 헤겔은 자기 철학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모든 것은 참된 것을 실체로서가 아니라 똑같이 주체로서 파악하고 표현하는 데 달려 있다.” 신을 하나의 실체로 보는 스피노자식 사고에서는 자기의식이 그 실체 속에 가라앉아 버린다. 헤겔에게 진리는 스스로 움직이고, 자기를 둘로 나누었다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쓴다. “참된 것은 전체다. 그러나 전체는 자기 전개를 통해 스스로를 완성하는 본질일 뿐이다.” 절대자는 처음부터 완성된 채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결과”이며, 끝에 가서야 참으로 그것인 바가 된다.
Das Wahre ist das Ganze. Das Ganze aber ist nur das durch seine Entwicklung sich vollendende Wesen.
같은 서문에서 헤겔은 모든 구별을 지워 버린 절대자를 두고 “흔히 말하듯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이라고 비꼬았다. 이 말은 예나에서 함께 잡지를 내던 동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의 동일철학을 겨냥한 것으로 읽혔고, 영어 위키백과의 설명대로 『정신현상학』은 헤겔이 셸링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갈라선 책이 되었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왜 유명한가?
자기의식 장의 첫 절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 지배와 예속」은 흔히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 불린다. 자기의식은 다른 자기의식에게 인정받을 때에만 참으로 자기의식이 된다. 두 자기의식은 인정을 얻으려 목숨을 건 싸움에 나서고, 죽음이 두려워 물러선 쪽이 노예가, 이긴 쪽이 주인이 된다. 그러나 주인이 받는 인정은 자기가 대등하게 인정하지 않는 노예에게서 오는 것이라 공허하다. 주인은 노예가 손질한 사물을 누리기만 한다.
반전은 노동에서 일어난다. 헤겔은 주인에 대한 공포가 “지혜의 시작”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자기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고 한 뒤 이렇게 잇는다. “그러나 노동을 통해 의식은 자기 자신에게 이른다.” 주인의 향유는 대상을 없애 버리는 순간의 만족이라 금세 사라지지만, “노동은 억제된 욕망이며 붙잡아 둔 사라짐이다. 다시 말해 노동은 형성한다.” 노동하는 의식은 자기가 빚어낸 사물에서 자기 자신의 자립적 존재를 본다. 그래서 헤겔은 “자립적 의식의 진리는 노예의 의식”이라고 결론짓는다.
Die Arbeit hingegen ist gehemmte Begierde, aufgehaltenes Verschwinden, oder sie bildet.
이 대목은 본래 계급투쟁론이 아니라 자기의식과 인정의 논리다. 그런데도 노동이 인간을 만든다는 생각, 지배하는 쪽이 아니라 일하는 쪽이 다음 단계를 쥔다는 생각 때문에 뒷날 마르크스주의 독해의 단골 재료가 되었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이 장이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사회의 계급 관계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었다고 적는다. 20세기에는 알렉상드르 코제브와 장 이폴리트의 프랑스 해석, 그리고 소외 문제를 파고든 죄르지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이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무엇을 받고 무엇을 버렸나?
1844년 원고에서 마르크스는 이 책의 위대함을 이렇게 요약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그 최종 결과, 곧 움직이고 낳는 원리인 부정성의 변증법에서 위대한 점은, 첫째로 헤겔이 인간의 자기 산출을 하나의 과정으로, 대상화를 탈대상화로, 외화로, 그리고 이 외화의 지양으로 파악한다는 것, 따라서 그가 노동의 본질을 파악하고 대상적 인간, 현실적이기에 참된 인간을 그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Das Große an der Hegelschen Phänomenologie und ihrem Endresultate – der Dialektik der Negativität als dem bewegenden und erzeugenden Prinzip – ist also einmal, daß Hegel die Selbsterzeugung des Menschen als einen Prozeß faßt, die Vergegenständlichung als Entgegenständlichung, als Entäußerung und als Aufhebung dieser Entäußerung; daß er also das Wesen der Arbeit faßt.
그러나 마르크스는 곧바로 한계를 짚는다. 헤겔은 “근대 국민경제학자의 관점”에 서서 노동의 긍정적 측면만 보고 부정적 측면은 보지 않으며, “헤겔이 알고 인정하는 유일한 노동은 추상적인 정신적 노동”이다.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자기의식이 주체가 되므로 소외를 지양하는 일도 세계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의식이 대상을 다시 자기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일로 끝난다. 마르크스는 헤겔에게서 과정과 부정성의 변증법, 그리고 노동이 인간을 만든다는 통찰을 가져오고, 그 주체를 정신에서 사회 속에서 노동하는 현실의 인간으로 바꾸었다. 이 작업은 같은 해의 『경제학-철학 수고』와 이듬해의 『신성가족』으로 이어지고, 그 갈래는 「변증법」과 「소외」 항목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