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빈곤
The Poverty of Philosophy
카를 마르크스가 피에르조제프 프루동의 『경제적 모순의 체계, 또는 빈곤의 철학』(1846)에 답해 프랑스어로 쓰고 1847년 파리와 브뤼셀에서 펴낸 책. 프루동이 헤겔 변증법을 흉내 내어 경제 범주를 영원한 이념의 전개로 다룬다고 비판하며, 범주는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사회적 생산관계의 이론적 표현일 뿐이라고 맞섰다. 마르크스가 자기 생전에 출간한 첫 경제학 저작이며, 그는 1859년 자기 견해의 결정적인 점들이 이 책에서 처음 과학적으로, 비록 논쟁의 형태로나마 제시되었다고 적었다.
상세
왜 프루동에게 답한 책이 중요한가?
1840년대 중반 피에르조제프 프루동은 프랑스 사회주의에서 가장 이름난 이론가였다. 1840년 『소유란 무엇인가』로 “소유는 도둑질이다”라는 말을 남긴 그를 마르크스도 한때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1846년 프루동이 두 권짜리 『경제적 모순의 체계, 또는 빈곤의 철학』을 내자 마르크스는 그 책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로 했다. 제목부터 프루동의 부제를 뒤집은 『철학의 빈곤』이다.
이 책이 중요한 것은 프루동 비판 때문만이 아니다. 『독일 이데올로기』가 서랍 속에 남은 뒤, 마르크스가 새로 얻은 역사관과 경제학을 처음으로 공개 출판한 책이 이것이다. 마르크스는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 “우리 견해의 결정적인 점들은 1847년에 펴낸, 프루동을 겨냥한 내 저작 『철학의 빈곤』에서 비록 논쟁의 형태로나마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제시되었다”고 적었다. 엥겔스도 1885년 『반뒤링론』 제2판 서문에서 두 사람의 세계관이 『철학의 빈곤』과 『공산당 선언』으로 처음 세상에 나왔다고 썼다.
Die entscheidenden Punkte unsrer Ansicht wurden zuerst wissenschaftlich, wenn auch nur polemisch, angedeutet in meiner 1847 herausgegebenen und gegen Proudhon gerichteten Schrift „Misère de la philosophie etc.“
어떻게 쓰였고 어떻게 퍼졌나?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1846년 말 프루동의 책을 읽고, 12월 28일 러시아인 통신원 파벨 안넨코프에게 긴 편지를 보내 이 책의 핵심이 될 생각을 먼저 적었다. 본격적인 집필은 이듬해 1월에 시작해 봄에 끝났다. 독일어 위키백과는 마르크스의 머리말이 1847년 6월 15일 자이고, 7월 24일 파리의 서적상 알베르 프랑크가 출간을 알렸으며, 파리와 브뤼셀에서 800부가 나왔다고 전한다. 프랑스 독자, 그리고 무엇보다 프루동 자신을 겨냥했기에 프랑스어로 썼다.
머리말은 이 책의 어조를 잘 보여 준다. “프루동 씨는 유럽에서 유난히 오해받는 불운을 겪고 있다. 프랑스에서 그는 나쁜 경제학자일 권리가 있다. 훌륭한 독일 철학자로 통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그는 나쁜 철학자일 권리가 있다. 가장 뛰어난 프랑스 경제학자 가운데 하나로 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일인이자 경제학자로서 이 이중의 오류에 항의하고자 했다.”
M. Proudhon a le malheur d’être singulièrement méconnu en Europe. En France, il a le droit d’être mauvais économiste, parce qu’il passe pour être bon philosophe allemand. En Allemagne, il a le droit d’être mauvais philosophe, parce qu’il passe pour être économiste français des plus forts.
책은 처음에 거의 팔리지 않았다. 「파업과 노동자 결사」를 다룬 마지막 절만 1870년대에 여러 노동자 신문에 옮겨 실렸다. 독일어판은 마르크스가 죽은 뒤인 1885년에야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과 카를 카우츠키의 번역, 엥겔스의 서문으로 슈투트가르트에서 나왔다. 엥겔스는 이 서문에서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표절이라 주장한 요한 카를 로트베르투스를 길게 반박했다. 1892년 독일어 제2판, 1900년 첫 영어판이 뒤따랐다.
1장은 프루동의 가치론을 어떻게 비판하나?
1장 「과학적 발견」은 프루동이 자기의 위대한 발견이라 내세운 「구성된 가치」를 다룬다. 프루동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모순을 노동시간으로 「구성된」 가치가 해결하며, 모든 생산물이 그 노동시간대로 교환되면 공정한 사회가 온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데이비드 리카도를 끌어와, 노동시간이 가치를 정한다는 것은 이미 리카도가 지금 사회의 법칙으로 밝힌 것이고 그것을 미래의 평등 공식으로 바꾸어 내놓는 것은 영국의 여러 사회주의자가 먼저 했던 일이라고 반박한다. 노동시간이 가치의 척도가 된다는 것 자체가 기계 아래 노동이 단순하고 똑같아졌다는 근대 공업의 결과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시간이 전부이고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기껏해야 시간의 껍데기다.”
Le temps est tout, l’homme n’est plus rien ; il est tout au plus la carcasse du temps.
2장은 무엇을 말하나: 경제 범주는 역사의 산물이다
2장 「경제학의 형이상학」은 방법을 다룬다. 마르크스는 “영국인은 사람을 모자로 바꾸고, 독일인은 모자를 관념으로 바꾼다”며, 프루동이 리카도의 경제학에 헤겔의 말투를 입혔다고 비꼰다. 프루동은 분업, 기계, 경쟁, 독점, 소유 같은 경제 범주를 이성 속에서 차례로 생겨나는 개념의 계열로 늘어놓고, 각 범주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가려 나쁜 면을 다음 범주로 고치려 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것은 헤겔의 변증법이 아니라 도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안으로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을 내놓는다. “사회적 관계는 생산력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새로운 생산력을 얻으면서 인간은 생산양식을 바꾸고, 생산양식, 곧 생계를 꾸리는 방식을 바꾸면서 모든 사회적 관계를 바꾼다. 손 맷돌은 영주가 있는 사회를, 증기 제분기는 산업자본가가 있는 사회를 너에게 줄 것이다.” 그래서 경제 범주들은 “그것이 표현하는 관계만큼이나 영원하지 않다. 그것들은 역사적이고 일시적인 산물이다.”
Le moulin à bras vous donnera la société avec le suzerain ; le moulin à vapeur, la société avec le capitaliste industriel.
마지막 절은 프루동이 노동자의 파업과 결사를 쓸모없다고 본 것을 반박하며 정치로 끝난다. 노동계급은 발전 과정에서 낡은 시민사회 대신 계급과 계급 대립을 없애는 결사를 세울 것이고, 그때는 본래 의미의 정치권력도 사라진다. 그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대립은 계급과 계급의 투쟁이며, 책은 조르주 상드의 말로 끝난다. “투쟁이냐 죽음이냐, 피 흘리는 싸움이냐 무(無)냐. 문제는 어김없이 이렇게 제기된다.”
이 책은 계보에서 어디에 서 있나?
『철학의 빈곤』은 두 방향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다듬은 역사관을 경제학 비판으로 옮기는 길로, 생산력과 생산관계, 범주의 역사성이라는 생각은 1859년 서문과 『자본론』으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운동 안의 갈라짐이다. 이 책으로 마르크스와 프루동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끊어졌고, 엥겔스의 서문 표현대로 둘 사이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었다. 이 대립은 뒷날 제1인터내셔널에서 프루동주의자, 그리고 바쿠닌과의 싸움으로 되살아난다. 마르크스는 1865년 프루동이 죽은 뒤 『사회민주주의자』에 실은 글에서 다시 그를 평가했고, 이 글은 뒤의 판본들에 부록으로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