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 (1981)
Resolution on Certain Questions in the History of Our Party since the Founding of the PRC (1981)
1981년 6월 27일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역사 결의. 1945년, 2021년의 결의와 함께 당의 세 역사결의의 하나다. 문화대혁명을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로 규정하고 그 주된 책임이 마오쩌둥에게 있다고 하면서도 그의 공이 과보다 크다고 결론짓고,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지도 사상으로 지켰다.
상세
덩샤오핑은 1980년 1월 역사 문제 결의를 만들겠다고 밝혔고, 후차오무가 15개월 동안 초안을 맡았다. 덩샤오핑은 마오의 과오만이 아니라 공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초안을 거듭 고치게 했고, 1980년 10월 간부 4천 명의 토론에서는 더 강한 마오 비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6월 26일 화궈펑의 당 주석 사임을 받아들인 전체회의는 이튿날 결의를 채택했다. 결의는 문화대혁명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19. The “cultural revolution”, which lasted from May 1966 to October 1976, was responsible for the most severe setback and the heaviest losses suffered by the Party, the state and the people since the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It was initiated and led by Comrade Mao Zedong.
19. 1966년 5월부터 1976년 10월까지 이어진 「문화대혁명」은 건국 이래 당과 국가와 인민이 겪은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의 원인이었다. 그것은 마오쩌둥 동지가 발동하고 이끌었다.
결의는 문화대혁명을 1969년 제9차 당대회, 1973년 제10차 당대회, 1976년 10월로 나뉘는 세 단계로 정리하고, 린뱌오·장칭 두 「반혁명 집단」의 범죄와 마오의 「오류」를 구분했다. 마오에 대해서는 “공이 일차적이고 과오는 이차적”이라 결론지었는데, 결의에 그대로 적혀 있지 않은 「공칠과삼」이 그 취지로 굳어졌다. 1957년 반우파 투쟁은 필요했으나 「지나치게 확대」되었다고 했고, 계급투쟁을 중심 고리로 삼지 않은 제8차 당대회의 판단과 11기 3중전회의 노선 전환을 옳다고 했으며, 사회주의의 길·인민민주독재·당의 지도·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네 가지 기본 원칙을 확인했다. 결의 뒤 문화대혁명을 「철저히 부정」하는 3년 운동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