Секретный дополнительный протокол · 1939–1941

비밀의정서

Secret Protocol (Molotov–Ribbentrop)

상위 항목 독소불가침조약

193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과 함께 서명되었으나 공개되지 않은 부속 비밀 의정서. 히틀러와 스탈린이 동유럽을 독일과 소련의 '이익권역'으로 분할하여, 폴란드를 나레프-비스와-산강 선을 따라 나누고 핀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를 소련 권역으로, 리투아니아를 독일 권역으로 배정했으며, 베사라비아에 대한 소련의 이권을 독일이 확인했다. 소련은 이 의정서의 존재를 반세기 가까이 부정했으나, 1989년 인민대의원대회에서 야코블레프 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공식 인정·규탄했고, 1992년 소련 원본이 러시아 대통령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되어 공개되었다.

상세

의정서 자체에는 무엇이 적혔나

전문은 짧았다. 네 개 조항이 전부였고, 그 가운데 실질은 세 조항에 담겼다. 첫째, 발트 3국(핀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지역의 영토·정치적 재편이 있을 경우 리투아니아 북쪽 경계가 독일과 소련의 이익권역 경계가 되며,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빌나) 지역에 대한 이해는 양측이 인정한다. 둘째, 폴란드 영토의 재편이 있을 경우 양측의 이익권역은 나레프·비스와·산 강을 잇는 선으로 대략 나뉘고, 독립 폴란드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렇다면 그 경계는 어떻게 그을지는 이후의 정치 발전 과정에서 정해지되 양국 정부가 우호적 합의로 결정한다. 셋째, 동남유럽과 관련해 소련 측은 베사라비아에 대한 자국의 이해를 환기하고 독일 측은 이 지역에 대한 완전한 정치적 무관심을 선언한다. 마지막 조항은 이 의정서를 양측의 엄격한 비밀로 취급한다는 규정이었다. 조문은 폴란드나 발트 국가들의 의사를 묻지 않았고, 그 국가들은 서명의 자리에 없었다.

비밀은 어떻게 지켜졌고, 어떻게 드러났나

조약 본문은 서명 직후 공표되었지만 의정서는 스탈린의 개인 금고에 들어갔고 뒤에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고로 옮겨졌다. 그런데 내용은 거의 즉시 새어 나갔다. 8월 24일 아침 독일 외교관 한스 폰 헤르바르트가 미국 외교관 찰스 볼렌에게 의정서 전문을 알렸다. 독일 측 원본은 1944년 3월 베를린 폭격 중 소실되었고, 미세필름 사본이 독일 외무부 문서고에 남아 1945년 5월 영국군에 넘어갔다. 공개적으로 거론된 것은 1946년 뉘른베르크 재판이었는데, 리벤트로프가 이를 언급했고 헤스의 변호인 자이들(자이델)이 타자본을 낭독하려다 자료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후 자이들은 미국 지방지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에 문서를 실었으나 거의 주목받지 못했고, 널리 알려진 것은 1948년 미국 국무부가 펴낸 자료집 나치-소비에트 관계 1939-1941을 통해서였다. 이 자료집은 냉전 초기의 정치적 용도로도 읽혔고, 소련은 1948년 반격서 파시스트 역사 날조자들을 내며 의정서의 존재를 부인했다. 몰로토프는 죽을 때까지 부인했고, 흐루쇼프는 1960년대 후반에 구술한 회고록에서 폴란드·발트 지역에 관한 비공개 조항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소련이 공식 입장을 바꾼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기였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의 압력 속에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가 이끄는 특별위원회가 조사했고, 1989년 12월 24일 인민대의원대회는 위원회의 결론을 청취한 뒤 의정서를 공식 인정하고 규탄하며 서명 시점부터 법적 효력이 없다고 선언했다. 사본들에 대한 필적·사진 기술·어휘 감정과 이후 사건 전개와의 일치에 근거한 판단이었고, 이때 독일 미세필름 사본을 바탕으로 소련 안에서 처음으로 전문이 공개되었다. 소련 원본은 스탈린의 금고에서 중앙위 총무부를 거쳐 러시아 대통령문서보관소 특별보관 제34호 꾸러미에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1992년 10월 역사가(전 소련군 장교) 드미트리 볼코고노프에 의해 그 꾸러미가 확인되면서 언론에 공개되었고, 학술 출판은 1993년 신문과 최신사 잡지 1호에서 이루어졌다. 2019년 6월에는 역사적 기억 재단이 소련 원본과 의정서를 다시 공개했다.

어떤 문서로 남았나

의정서는 정식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최고소비에트도 독일 제국의회도 그 내용을 알지 못했고, 다른 나라와 체결한 조약의 효력을 인정하던 소련의 관행과도 맞지 않았다. 러시아 쪽 연구자 프로닌은 제3국 영토를 다룬 만큼 법적으로 부당하다고 보고, 똑같이 재판관할 밖의 영역을 다룬 뮌헨 협정과 비교하기도 한다. 1989년 인민대의원대회는 협상이 당과 정부, 최고소비에트를 배제한 채 스탈린과 몰로토프에 의해 비밀리에 진행되었음을 지적하고, 서명 결정이 실질적으로 개인 권력의 행위였다고 규정했다. 그 한편에서 의정서는 유럽 기억 정치의 기준점이 되었고, 발트 국가들은 이 의정서에 근거한 1940년 병합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독립을 정당화했다. 영토 조항은 유효하지 않지만 그 정치적 후과는 지금도 유럽을 규정한다.

원문

독소 불가침조약과 비밀 추가의정서, 그리고 1989년의 평가불가침조약에 대한 비밀 추가의정서 (1939년 8월 23일)

독일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간의 불가침 조약 서명 시, 아래 서명한 양측의 전권대표들은 동유럽에서 쌍방 이해관계의 범위를 획정하는 문제를 엄격히 비밀리에 논의하였다. 이 논의는 다음과 같은 결과에 이르렀다.

1. 발트 국가들(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구성 지역들에 대한 영토·정치적 재편이 발생할 경우, 리투아니아의 북쪽 국경은 곧 독일과 소련의 이해권 범위의 경계가 된다. 이때 빌노(빌뉴스) 지역에 관한 리투아니아의 이권은 양측에 의해 승인된다.

2. 폴란드 국가 구성 지역들에 대한 영토·정치적 재편이 발생할 경우, 독일과 소련의 이해권 범위의 경계는 대략 나레프(Нарева) 강, 비스와(Висла) 강, 산(Сана) 강의 선을 따를 것이다.

독립된 폴란드 국가의 보존이 쌍방의 이해에 비추어 바람직한지의 여부와 이 국가의 경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의 문제는, 오직 앞으로의 정치적 발전 과정에서만 최종적으로 밝혀질 수 있다.

어떠한 경우든 양측 정부는 이 문제를 우호적 상호 합의에 따라 해결할 것이다.

3. 유럽 남동부와 관련하여, 소련 측은 베사라비아에 대한 소련의 이해를 강조한다. 독일 측은 이 지역들에 대한 자신의 완전한 정치적 무관심을 언명한다.

4. 본 의정서는 양측에 의해 엄격한 비밀로 유지된다.

소련 정부의 위임에 따라 V. 몰로토프독일 정부를 대표하여 I. 리벤트로프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overview of the pact, its secret protocol, spheres of influence, and historical consequences
  2. 위키백과 (러시아어) detailed article on the secret protocol: Stalin's initiative, contents, denial, 1989 Yakovlev Commission, 1992 discovery of Soviet original
  3. sourcebooks.fordham.edu full text of the Treaty of Non-Aggression and the Secret Additional Protocol (Fordham University Internet Modern History Sourcebook)
  4. sourcebooks.fordham.edu
  5. 위키백과 (러시아어)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