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사회주의
Socialism in One Country
세계혁명의 지원 없이도 소련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는 노선. 1924년 말 스탈린이 정식화하고 부하린이 이론적으로 뒷받침했으며, 연속혁명론과의 대결 속에서 당의 공식 교리가 되었다.
상세
정식화
일국사회주의 노선은 1924년 말에 정식화되었다. 스탈린은 같은 해 4월 「레닌주의의 기초」에서는 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가 사회주의를 최종적으로 완성할 수 없다는 종래의 서술을 유지했으나, 연말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에서 입장을 수정해 소련이 자력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하린이 이 노선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고, 1925년 제14차 당대회 이후 당의 공식 방침이 되었다.
이 전환의 배경은 국제 정세였다. 1923년 독일 혁명의 실패로 서구에서의 혁명 전망이 멀어지자, 국제적 지원을 전제하지 않는 발전 전략이 요구되었다. 일국사회주의는 이 상황에 대한 응답이면서, 동시에 국내 건설에 집중하려는 당 관료층의 정치적 요구에 부합했다.
논쟁의 구조
반대 측의 논거는 두 층이었다. 하나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문헌 해석 문제로, 사회주의의 최종 승리가 국제적 규모에서만 가능하다는 서술이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논거로, 후진적 농업국이 고립 상태에서 기술과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스탈린 측은 소련의 규모와 자원, 그리고 노동계급 권력이라는 정치적 조건이 자립적 건설을 가능하게 한다고 답했다. 이 논쟁은 곧 문헌 해석의 문제를 넘어 정치적 충성의 시험이 되었고, 연속혁명론은 소련의 건설 가능성을 부정하는 패배주의로 규정되었다.
귀결
일국사회주의는 이후 소련 정책의 여러 방향을 정당화하는 틀이 되었다. 급속 공업화와 집단화는 자립적 경제 기반의 구축으로 설명되었고, 코민테른의 활동은 소련 국가 이익의 방어에 종속되었으며, 1943년 코민테른 해산도 이 논리의 연장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노선은 다른 나라의 공산주의 운동에도 영향을 남겼다. 사회주의 건설이 일국 단위로 가능하다는 명제는 이후 각국 공산당이 자국의 조건에 근거한 독자적 노선을 주장하는 근거로도 사용되었고, 유고슬라비아와 중국, 북한의 자립 노선 담론이 그 예로 다루어진다. 주체사상 역시 이 계열의 극단적 형태로 논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