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перёд» · 1909–1913

전진파

Vpered group

1909년 볼셰비키 분파 안에서 레닌 노선과 갈라진 보그다노프 그룹. 이름은 이들이 낸 기관지 『전진(브페료드)』에서 왔다. 두마 의원 소환을 요구하는 소환주의와 최후통첩주의를 옹호했고, 카프리와 볼로냐에 당 학교를 세워 노동자 출신 간부를 길렀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자 문화의 건설을 내세웠다. 보그다노프의 경험일원론 철학을 둘러싼 논쟁과 겹치며 레닌파와 결별했고, 1913년경 와해된 뒤 1917년에 다수가 볼셰비키로 복귀했다.

상세

누가 왜 갈라졌나

1905년 혁명이 패배한 뒤 볼셰비키는 전술 문제로 갈라졌다. 스톨리핀 체제의 두마에 참여할 것인가를 놓고, 레닌은 반동기의 합법 무대도 이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보그다노프 주변의 좌파는 두마 참여가 혁명 정당을 부식시킨다며 의원 소환(소환주의) 또는 의원단에 대한 최후통첩(최후통첩주의)을 요구했다. 1909년 6월 볼셰비키 확대 편집국 회의는 보그다노프를 분파에서 제명했고, 그와 루나차르스키, 고리키 등이 같은 해 말 『전진』 그룹을 결성했다. 보그다노프는 당시 레닌에 버금가는 볼셰비키의 이론가이자 재정 관리자였으므로, 이 분열은 지도부의 분열이었다.

무엇을 주장했나

전진파를 단순한 전술 분파로 보기는 어렵다. 첫째, 철학 논쟁이 있었다. 보그다노프는 마흐의 인식론을 수용한 경험일원론을 발전시켰고,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으로 이를 유물론의 포기라고 공격했다. 둘째, 문화 강령이 있었다. 전진파는 정치권력 장악에 앞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과학과 예술, 곧 독자적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카프리(1909)와 볼로냐(1910~11)의 당 학교에서 노동자 활동가들에게 이를 가르쳤다. 이 발상은 혁명 후 프롤레트쿨트 운동으로 이어졌고, 보그다노프의 조직 이론은 텍톨로지로 체계화되었다.

어떻게 되었나

그룹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교 운영과 망명 정치의 소모전 속에 보그다노프 자신이 1911년경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고, 그룹은 1913년경 사실상 와해되었다. 1917년 혁명이 터지자 루나차르스키를 비롯한 다수가 볼셰비키로 복귀해 소비에트 정권의 문화·교육 부문을 맡았다. 소련 공식 사학은 전진파를 소환주의라는 좌편향으로 정리했지만, 이후의 연구는 이 그룹을 다르게 읽어 왔다. 당내 민주주의와 노동자 자기교육을 강조한 초기 볼셰비즘의 갈래, 그리고 문화를 혁명의 종속 변수가 아니라 독자 과제로 세운 드문 시도였다는 것이다.

관련 인물

출처

  1. Zenovia A. Sochor, Revolution and Culture: The Bogdanov-Lenin Controversy (Cornell University Press, 1988)
  2. Robert C. Williams, The Other Bolsheviks: Lenin and His Critics 1904–1914 (Indiana University Press, 1986)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ists Internet Archive glossary: Vp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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