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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인물 296명

마리펠리 페레스-스타블

Marifeli Pérez-Stable
학술·연구 쿠바(출처 표기) 쿠바 출신 1949–

쿠바 혁명을 연구한 쿠바계 미국 사회학자

1977년 12월 로우르데스 카살과 함께 안토니오 마세오 여단을 이끌고 쿠바를 방문했다. 55명이 참여한 이 방문은 쿠바계 이민자들과 쿠바 정부의 1978년 대화를 앞서는 것이었다.

마리펠리 페레스-스타블은 1949년 태어난 쿠바 출신 사회학자·역사가로, 11세 때 가족과 함께 쿠바를 떠났다.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에서 1985년 사회학 박사, 플로리다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쿠바 혁명: 기원, 과정, 유산』(옥스퍼드대 출판부, 초판 1993)의 저자이며 이 책의 시대 구분이 이 사전의 역사 서술에서 인용된다.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대학교 사회학 교수(현 명예교수)를 지냈고 2004~2009년 미주 대화의 민주적 거버넌스 담당 부회장을 맡았다. 쿠바인이라는 출신 표기는 출처에 따른 것으로, 미국 시민권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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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1988뉴욕주립대 올드웨스트베리 캠퍼스 정치·경제·사회 프로그램 강사, 조교수
  • 1985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사회학 박사 학위 취득
  • 2004–2009미주 대화 민주적 거버넌스 담당 부회장
  • 2004–2011마이애미 헤럴드 라틴아메리카 격주 칼럼 연재

마크 해리슨

Mark Harrison
학술·연구 영국 영국인 1949–

네프 실패에 관한 3유형론으로 소련 경제사 해석의 틀을 세운 영국의 경제사가

네프는 왜 실패했는가? 나는 이 물음에 답하는 세 가지 방식을 구별하고자 한다: 합리적 포기, 비합리적·정치적 결정, 제약된 선택.

마크 해리슨은 케임브리지에서 경제학을, 옥스퍼드에서 현대사를 공부한 영국의 경제사가로, 1975년부터 워릭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가르치며 소련 경제사를 연구해 왔다. 1980년 논문 「네프는 왜 실패했는가」에서 네프 폐기를 합리적 포기, 비합리적·정치적 결정, 제약된 선택의 세 입장으로 정리해 이후 네프사 서술의 분석틀을 제공했다. 그의 연구는 전시 경제, 국가 비밀, 강제의 경제학으로 확장되었으며, 1996년 『전쟁의 회계』로 영국 슬라브·동유럽학회 앨릭 노브 상을, 2023년 『비밀의 리바이어던』으로 소비에트 체제의 정보 통제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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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워릭대학교 경제학과 임시강사
  • 1975워릭대학교 경제학과 강사
  • 1985워릭대학교 경제학과 선임강사
  • 1993워릭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Reader)
  • 1998워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2004후버연구소 저명 초빙 연구원
  • 2019워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영국 학사원 회원(2020)

조너선 브렌트

Jonathan Brent
학술·연구 미국 미국 1949–

스탈린의 마지막 음모를 기록한 미국의 역사가이자 출판인

「'굴라그'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20세기 최대의 재앙이다.」

미국 출판인·역사가로, 1991년 예일대 출판부에서 냉전 후 공개된 소련 아카이브 자료를 서방에 선보인 『공산주의 연대기』 시리즈를 창설했다. 2003년 블라디미르 나우모프와 공저한 『스탈린의 마지막 범죄』는 이전까지 폐쇄됐던 KGB 및 대통령 문서고 자료를 바탕으로 의사들의 음모 사건을 전면 재구성했으며, 스탈린이 유대인 인구의 대규모 강제 이주와 새로운 대숙청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논제를 제시했다. 2009년부터 YIVO 유대인 연구소의 소장으로서 동유럽 유대인 문서유산 보존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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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1991노스웨스턴 대학 출판부 편집장 겸 국장
  • 1981문예지 《Formations》 창간
  • 1991–2009예일대 출판부 편집국장 겸 부국장, 『공산주의 연대기』 시리즈 창설
  • 2003『스탈린의 마지막 범죄』 출간
  • 2004–바드 칼리지 역사·문학 객원교수
  • 2008『스탈린 아카이브의 내부』 출간
  • 2009–YIVO 유대인 연구소 소장 겸 CEO

파벨 루슬라노비치 팔라젠코

Павел Русланович Палажченко
학술·연구 러시아 러시아인 1949–

정상회담의 언어를 조율한 통역자

그는 통역을 ‘두 언어 사이의 실을 찾아 잇는 일’이라고 회고했다.

파벨 팔라젠코는 냉전 말기 소련 외교의 핵심 대화 현장을 기록한 통역자이자 저술가다. 그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의 영어 통역을 맡아 제네바, 레이캬비크, 몰타 등 미소 정상회담에 참여했다. 회고록은 정상들의 발언뿐 아니라 군축 협상과 신뢰 형성이 작동한 실무 현장을 보여 주며, 평화로운 냉전 종식에 대한 소련 측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후 고르바초프 재단에서 국제관계와 언론 업무를 맡으며 통역과 정치 분석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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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1972모리스 토레즈 모스크바 외국어교육대학에서 통번역을 공부함
  • 1972–1974유엔 통역자 과정 수료 뒤 대학에서 통역과 강의를 함
  • 1974–1979유엔 사무국 러시아어 통역부에서 근무
  • 1980–1985소련 외무부 통역부와 미국·캐나다 부서에서 근무
  • 1985–1991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의 영어 수석 통역관, 미소 정상회담에 참여
  • 1991소련 대통령실에서 근무
  • 1992–현재고르바초프 재단 국제관계·언론 업무 책임자 및 분석가
  • 1997《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와 보낸 나의 세월》 출간

루스템 마흐무토비치 누레예프

Рустем Махмутович Нуреев
학술·연구 러시아 러시아 (타타르계) 1950–2023 ○ 사망

코시긴 개혁 50년 논쟁을 한 권의 표제로 수렴한 제도경제학자

1977년 그가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심사받았을 때, 심사 기관인 CPSU 중앙위 산하 사회과학아카데미는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라는 요지의 평가서를 제출했다.

모스크바 태생 타타르계 제도경제학자로, MSU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치며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관한 논쟁적 박사논문으로 주목받았다. 1993년 쿠즈미노프와 함께 고등경제대학(ВШЭ) 설립에 참여해 초대 경제학과장과 초대 부총장을 지냈고, 러시아 제도경제학파의 핵심 구축자로 자리잡았다. 2017년 출간된 집단 논문집 『놓친 기회인가, 마지막 안전판인가?』의 책임편집자로서, 코시긴 개혁을 둘러싼 역사학계의 양극화된 평가를 표제 하나로 응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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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MSU 경제학부 우등 졸업
  • 1975–1993MSU 경제학부 정치경제학 강좌 부교수
  • 1993–1996ВШЭ 초대 부총장 겸 경제이론학과장
  • 1997–2013ВШЭ 정교수, 제도경제학 및 경제분석 학과장
  • 2013–2017러시아 정부 금융대학 경제이론 학과장
  • 2017『놓친 기회인가, 마지막 안전판인가?』 책임편집

J. 아치 게티

J. Arch Getty
학술·연구 미국 미국인 1950–2025 ○ 자연사

소련 정치사의 revisionist 역사가

그는 기록보관소를 자신이 설명해야 할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연구하는 실험실에 비유했다.

J. 아치 게티는 소련 정치사와 스탈린 시대를 연구한 미국의 역사가로, UCLA에서 러시아·소련사 연구와 교육을 이끌었다. 1985년 저서 『대숙청의 기원』에서 스탈린 체제를 단일한 중앙 통제의 산물로 보지 않고, 취약한 당 조직과 지역의 자율성, 지도부 내부의 갈등이 정책 형성에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 접근은 흐루쇼프의 비밀연설과 스탈린주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서방 수정주의의 중요한 한 축이 되었지만, 테러에 대한 스탈린과 당 지도부의 책임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소련 기록보관소 개방 뒤에는 동료들과 함께 억압의 규모와 국가 폭력을 새 자료로 재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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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펜실베이니아대학교 학사
  • 1979보스턴 칼리지 박사
  • 1985–1986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역사학 교수, 올해의 우수 교육자
  • 1985『대숙청의 기원』 출간
  • 1993『스탈린주의 테러』 공동 편집, 중앙당 문서고 연구 안내서 공동 편찬
  • 1999올레크 나우모프와 『테러로 가는 길』 공동 저술
  • 2015–2016UCLA 제119회 교수 연구 강연자
  • 2024『스탈린주의에 대한 성찰』 공동 편집

마이클 돕스

Michael Dobbs
학술·연구 미국 영국 1950–

냉전의 위기를 기록한 사료 기반 저널리스트

그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정상회담의 신화가 아니라 우발적 사건들이 겹친 시간대별 위기로 다시 펼쳐 보였다.

마이클 돕스는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로, 냉전 종식과 국제분쟁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의 동유럽·파리·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일하며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그 국제적 결과를 기록했다. 『자정 1분 전』은 미국·소련·쿠바 자료를 대조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시간대별로 재구성하고, 핵전쟁의 위험이 기존 통념보다 훨씬 컸음을 보여 주었다. 그의 작업은 정상 지도자들의 대결이라는 서사를 넘어 현장 지휘관과 우발적 사건이 위기를 어떻게 증폭했는지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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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출생
  • 1972요크 대학교 경제학·경제사 학사
  • 1974–1975로이터 로마 특파원
  • 1977–1980벨그라드 주재 특별특파원, 티토 사망 등 취재
  • 1980–1981워싱턴 포스트 동유럽 지국장,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 취재
  • 1982–1986워싱턴 포스트 파리 지국장
  • 1988–1993워싱턴 포스트 모스크바 지국장
  • 2008『자정 1분 전』 출간

블라디미르 콘토로비치

Владимир Конторович
학술·연구 미국 우크라이나 1950–

부분 개혁이 계획체계를 파괴할 뿐이라고 본 경제사학자

고르바초프의 경제학자들」을 분석한 글들에는 '사기꾼'이나 '무식한 자'라는 말이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소련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경제학자로, 노보시비르스크 대학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수학했다. 1988년 논문 「1965년 소련 경제개혁의 교훈」에서 코시긴 개혁에 대한 중앙 부처와 고스플란의 저항이 단순한 관료적 이기심이 아니라, 부분적 시장 개혁이 중앙계획 체계를 파괴하면서도 작동 가능한 대안은 내놓지 못한다는 합리적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엘먼과 함께 『소련 경제체제의 파괴』를 편집했으며, 이 체제 비양립성 테제는 소련 개혁 실패를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의 중심 논거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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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노보시비르스크 대학 경제학 디플로마
  • 1985펜실베이니아 대학 경제학 박사
  • 1984–2002계획경제연구소(Command Economies Research, Inc.) 설립·대표, 미 국방부·CIA 계약 연구 수행
  • 1987–해버포드 칼리지 경제학과 조교수→부교수→정교수
  • 1988「1965년 소련 경제개혁의 교훈」 발표 (Soviet Studies)
  • 1992/1998마이클 엘먼과 『소련 경제체제의 붕괴』·『소련 경제체제의 파괴』 공동 편집
  • 2008『뉴 팔그레이브 경제학 사전』 '소련 경제개혁' 항목 집필

빅토르 이만토비치 알크스니스

Виктор Имантович Алкснис
학술·연구 소련 → 러시아 라트비아계 1950–2025 ○ 뇌졸중

의회 표결을 헌정 쿠데타로 몰고 간 소유즈파의 지도자

1991년 6월 17일, 회의의 마지막 연사로 나선 알크스니스는 신연방조약이 위헌이며 파블로프 내각을 지지해야 한다고 의원들에게 호소했다. '내각은 소련을 위해, 이 국가의 보존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트비아계 소련 공군 대령으로, 소련 인민대표대회에서 가장 노골적인 강경파였다. 소유즈파 공동의장으로서 계엄령을 요구하고 고르바초프의 퇴진을 촉구했으며, 1991년 6월 17일에는 파블로프 총리의 비상권한 결의안을 즉각 표결에 부치자고 밀어붙여 '헌정 쿠데타 기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하원의원을 두 차례 지냈고, 1993년 옐친에 맞서 의회를 방어하다 진압경찰에 구타당했으며, 끝까지 타협 없는 소비에트 애국자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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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1992소련 공군 복무 (발트 군관구 공군본부 선임공병감독관)
  • 1989–1991소련 인민대표 (리가 제294선거구)
  • 1990–1991라트비아 SSR 최고회의 의원
  • 1990–1991소유즈파 공동의장
  • 2000–2007러시아 국가두마 의원 (제3·4기)
  • 2013–2015모스크바주 투치코보 도시정착지 장

선즈화

沈志华
학술·연구 중국 중국 1950–

냉전 문서로 중소관계를 다시 읽은 역사가

1995년 개인 재산 백여만 위안을 들여 러시아 해제 문서를 사들여, 중국 냉전사 연구의 토대가 된 아카이브를 학자들에게 무상으로 열었다.

선즈화는 중국 냉전사와 소련사, 중소관계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이며 화둥사범대학 냉전국제사연구센터를 이끌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해제 문서를 직접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련 문서집을 편찬해 중국 냉전사 연구의 자료 기반을 넓혔다. 그의 연구는 중소분열을 국가이익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관계가 교차한 과정으로 분석하며, 중국의 선택을 이념적 연대만으로 설명하는 공식 서술에 질문을 던졌다. 한국전쟁과 중소동맹에 관한 저술은 중국과 소련, 조선 사이의 상호 계산을 추적해 중국 학계의 냉전 해석을 국제적으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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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베이징에서 출생
  • 1971–1978스징산 발전소 노동자·선전 부문 간부
  • 1978–1982중국사회과학원 세계사 연구생
  • 1983–1984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수감, 조기 석방
  • 1993–2002동방역사연구센터 설립·소련 역사档案 편찬
  • 2004–현재화둥사범대학 종신교수·냉전국제사연구센터 주임

얀 파우어

Jan Pauer
학술·연구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인 1950–

탱크와 기억의 전쟁 사이에서 프라하의 봄을 해석한 역사가

그 나라의 점령, 1968년 8월의 믿기 어려운 그 연대의 경험, 그것은 누구나 겪을 수 없는 아주 드문 역사적 순간들에 속하고, 그것을 경험한 것은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얀 파우어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목격하고 이듬해 서독으로 이주한 체코 출신 역사가다. 1995년 바르샤바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다룬 표준적 저작 『프라하 1968』을 출간했으며, 브레멘대학 동유럽연구소에서 체코슬로바키아 현대사를 연구했다. 2011년 ENRS 기고문에서 그는 침공이 '시민사회 반대운동의 시작이자 개혁공산주의의 역사적 종말'이었다고 평가하며, 프라하의 봄이 소련의 탱크와 탈냉전기 체코의 기억 정치에 의해 두 번 묻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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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서독으로 이주
  • 1990–1993체코 정부의 1967~1971년 역사연구위원회 위원
  • 1993–브레멘대학 동유럽연구소 연구원
  • 1995『프라하 1968: 바르샤바조약군의 진입』 출간
  • 2017『자율성을 위한 투쟁: 중동부 유럽의 반체제 담론』 공동 편집

블라디미르 티스머네아누

Vladimir Tismăneanu
학술·연구 미국 루마니아 1951–

망명한 루마니아계 미국 정치학자, 1989년 혁명 연구의 권위자

1990년 6월 부쿠레슈티에서 광부들이 반정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고, 이를 '가장 조잡하고 역겨운 형태의 야만성'에 대한 통찰을 준 경험이라고 기록했다.

루마니아 공산당 엘리트 가정에서 태어나 1981년 망명한 정치학자로, 스탈린주의와 동유럽 공산 체제의 몰락을 비교정치학적 시각에서 분석해 왔다. 2003년 『모든 계절을 위한 스탈린주의』로 루마니아 공산주의사의 결정적 종합을 제시했고, 2006년 루마니아 대통령 직속 공산독재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공산주의 과거사 청산 보고서를 이끌었다. 1989년 혁명의 원인·의미·결과를 다룬 2009년 논문은 혁명 이후 민족 갈등과 권위주의적 반동에도 불구하고 그 '관대한 메시지'는 훼손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1989년 연구의 기준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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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1981부쿠레슈티 표준건축설계연구소 사회학자
  • 1983–1990필라델피아 외교정책연구소(FPRI) 연구원
  • 1985–1990펜실베이니아대학교 강사
  • 1990–메릴랜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 1998–2004『East European Politics and Societies』 편집장
  • 2006루마니아 공산독재연구 대통령위원회 위원장
  • 2009「1989년 혁명: 원인, 의미, 결과」 『Contemporary European History』 발표

달릴라 카브리타 마테우스

Dalila Cabrita Mateus
학술·연구 포르투갈 포르투갈 1952–2014

「앙골라의 숙청」으로 1977년 5월 진압을 연구한 포르투갈 역사가

2014년 10월 30일 리스본에서 죽었다. 남편이자 공동 저자인 알바루 마테우스는 그보다 한 해 앞선 2013년 8월에 죽었다.

포르투갈의 역사가. 비아나두카스텔루 태생으로 1952년에 나 2014년 10월 30일 리스본에서 죽었다. 포르투갈 식민지와 식민지 전쟁, 정치경찰을 연구했고 박사 논문을 『식민지 전쟁 속의 PIDE/DGS 1961-1974』(2004)로 펴냈다. 남편이자 공동 저자인 알바루 마테우스와 함께 앙골라·모잠비크 관련 저작을 냈으며, 1977년 5월 27일을 다룬 『앙골라의 숙청』(2007)에서 아고스티뉴 네투에게 니투 알베스 지지자 학살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옛 정치범들을 면담한 녹음과 기록은 토레 두 톰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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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2포르투갈 비아나두카스텔루에서 태어나다
  • 2004박사 연구를 『식민지 전쟁 속의 PIDE/DGS 1961-1974』로 출간하다
  • 2007알바루 마테우스와 함께 『앙골라의 숙청』을 내다
  • 201410월 30일 리스본에서 죽다

데이비드 마플스

David Marples
학술·연구 영국 영국계 1952–

체르노빌과 동유럽 현대사를 잇는 역사가

사고 40년 뒤 회고에서 그는 '어떤 의미에서 체르노빌이 글라스노스트를 만들었다'고 썼다.

데이비드 마플스는 캐나다의 역사학자로 앨버타대학교에서 벨라루스·러시아·우크라이나의 현대사와 정치를 연구했다. 그는 체르노빌의 사회·정치적 영향을 일찍부터 분석했으며, 사고 직후 출간된 『Chernobyl and Nuclear Power in the USSR』와 후속 연구로 핵에너지 정책, 안전, 주민과 국가의 대응을 함께 조명했다. 이후 연구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민족사, 기근, 소비에트 붕괴로 확장되었고, 체르노빌이 소련 해체에 미친 영향은 중요하지만 단일 원인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신중한 평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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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런던대학교 학사
  • 1980앨버타대학교 역사학 석사
  • 1985셰필드대학교 경제·사회사 박사
  • 1987『Chernobyl and Nuclear Power in the USSR』 출간
  • 1988『The Social Impact of the Chernobyl Disaster』 출간
  • 1991『Ukraine Under Perestroika』 출간
  • 2004–2014앨버타대학교 우크라이나현대사 스타시우크 프로그램 책임자
  • 2010–2015북미 벨라루스학회 회장

배리 아이켄그린

Barry Eichengreen
학술·연구 미국 미국 1952–

국제통화 질서를 역사로 분석한 경제학자

마셜 플랜을 원조 사업이 아니라 전후 유럽의 경제 질서를 바꾼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읽었다.

배리 아이켄그린은 국제통화·금융 체제의 역사를 현재의 정책 문제와 연결해 분석해 온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경제사가다. 그는 금본위제가 대공황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킨 구조를 밝히며, 통화 제도와 국가 정책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마셜 플랜 연구에서는 원조액 자체보다 원조에 붙은 조건이 서유럽의 전후 혼합경제를 시장과 무역 중심으로 재편한 효과에 주목했다. 이 연구는 경제 재건에서 자금과 제도적 조건의 관계를 묻는 논쟁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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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크루즈 학사
  • 1986예일 대학교 경제학 박사
  • 1987–현재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경제학·정치학 교수
  • 1991J. 브래드퍼드 디롱과 「마셜 플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 공동 집필
  • 1992『황금의 족쇄』 출간
  • 1997–1998국제통화기금 선임 정책자문관
  • 2010–2011경제사학회 회장

베른트 위르겐 피셔

Bernd Jürgen Fischer
학술·연구 미국(미확인) 독일(미확인) 1952–

발칸사 연구자, 《전시의 알바니아》로 알바니아 전시기를 유럽 역사서술에 올린 역사가

《전시의 알바니아》는 점령기를 분열과 내부 대립,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집권으로 이어진 권력 투쟁으로 다시 그렸고, 전쟁이 알바니아를 한 고립에서 다른 고립으로 밀어넣었다고 결론지었다.

발칸사·알바니아사 연구자로 1952년 1월 27일 출생했다. 1982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인디애나-퍼듀대학교 포트웨인 캠퍼스 역사학 교수와 역사학과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알바니아 과학원 외국인 회원이다. 국적과 출신 배경은 확인되지 않았다. 《조그 왕과 알바니아의 안정 투쟁》(1984), 《전시의 알바니아 1939–1945》(1999), 《발칸의 강자들》(2006)을 썼고 슈반트너-지버스와 《알바니아 정체성》(2002), 올리버 옌스 슈미트와 《알바니아 약사》(2022)를 함께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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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에서 박사 학위 취득
  • 1984《조그 왕과 알바니아의 안정 투쟁》 출간
  • 1999《전시의 알바니아 1939–1945》 출간, 이탈리아·독일·영국·미국 자료를 활용
  • 2002슈반트너-지버스와 《알바니아 정체성》 공동 편집
  • 2006《발칸의 강자들》 출간, 알바니아 과학원 회원으로 선출
  • 2022올리버 옌스 슈미트와 《알바니아 약사》 공저

이고르 니콜라예비치 그랴진

Igor Nikolayevich Gräzin
학술·연구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인 1952–

법의 언어로 소련의 공식 서사를 흔든 에스토니아 법학자

야코블레프 위원회에서 그는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법적으로 무효였다고 주장했다.

이고르 그랴진은 에스토니아의 법학자이자 정치가로, 법철학과 법이론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1989년 소련 인민대회에 진출한 그는 야코블레프 위원회에서 비밀 의정서와 발트 국가 병합의 법적 의미를 검토한 에스토니아 측 법률가였다. 그의 활동은 학술적 법률 논증을 소비에트 해체기의 주권과 역사 기억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에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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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2타르투에서 출생
  • 1975타르투 국립대학교 법학부 졸업
  • 1979–1987소련 국가·법 연구기관에서 법학 연구와 박사학위 취득
  • 1988–1989에스토니아 과학아카데미 철학·사회학·법학 연구소 법률부문 책임자
  • 1989–1991소련 인민대회 대의원, 야코블레프 위원회 위원
  • 1990–2000미국 노터데임대학교 법학 교수·연구자
  • 2005–2018에스토니아 리기코구 의원
  • 2018–2019유럽의회 의원

프랜시스 요시히로 후쿠야마

Francis Yoshihiro Fukuyama
학술·연구 미국 미국계 일본인 1952–

1989년의 승리를 자유민주주의의 종착점으로 읽은 학자

그는 1989년 이렇게 썼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단지 냉전의 종식이 아니라 역사의 종말일 수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국제정치 연구자로, 국가·제도·정치 질서의 형성을 비교해 왔다. 1989년 논문 「역사의 종말?」은 냉전 종식과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인류의 이념적 진화가 도달한 지점으로 해석하며 1989년의 의미를 둘러싼 가장 유명한 논쟁의 한 축을 만들었다. 1992년 저서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에서 이 주장을 확장했지만, 이후에는 국가 역량과 법치, 책임성을 강조하며 초기 명제의 단순한 낙관론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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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코넬대학교 고전학 학사
  • 1979–1981하버드대학교 정치학 박사 과정 및 박사학위
  • 1979–1989랜드연구소 정치학 부서 연구원
  • 1981–1982미 국무부 정책기획참모
  • 1989「역사의 종말?」 발표, 『내셔널 인터레스트』
  • 1992『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 출간
  • 2001–2010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정치경제 교수
  • 2010–현재스탠퍼드대학교 프리먼 스폴리 국제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가오화

高华
학술·연구 중국 중국 1954–2011 ○ 간암

『붉은 태양은 어떻게 떠올랐나』로 옌안 정풍운동을 해부한 난징대학의 역사가

그의 『붉은 태양은 어떻게 떠올랐나』(2000)는 당 문서와 회고록으로 옌안 정풍운동을 재구성해, 마오가 개인적 권위를 공고히 하고 이후 당의 방식을 확립한 과정으로 다루었다.

난징 출신으로 문화대혁명기 아버지가 「우파」로 박해받는 것을 보며 자랐고, 난징대학에서 중국 현대사를 가르쳤다. 2000년 홍콩에서 낸 『붉은 태양은 어떻게 떠올랐나 — 옌안 정풍운동의 전말』은 공개된 문헌만으로 1942~1945년 정풍운동을 재구성해, 마오가 사상 개조와 심사·「구조 운동」을 통해 당의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하고 이후 정치운동의 틀을 만든 과정을 보여주었다. 대륙에서 출판이 금지되었으나 널리 읽혔으며, 그는 2011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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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2011난징대학 역사학 교수

겐나디 바실리예비치 코스티르첸코

Геннадий Васильевич Костырченко
학술·연구 러시아 러시아인 1954–

스탈린 시대 국가 반유대주의를 기록으로 실증한 역사가

스탈린의 유대인 추방은 로흐네스의 괴물과 같은 것이 되었다: 많은 이가 봤다고 하나 단 하나의 확실한 증거도 제시된 적 없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스탈린 시대 연구자로, 소련 국가 반유대주의의 기록을 발굴해 학계의 표준을 세웠다. 그의 저서 『붉은 파라오의 포로』(1994)와 『스탈린의 비밀 정책: 권력과 반유대주의』(2001)는 의사들의 음모와 반세계주의 캠페인을 포함한 스탈린 말기 유대인 탄압의 전모를 기록으로 실증한 기념비적 작업이다. 2003년 '데포르타치야: 미스티피카치야' 논문에서 스탈린이 유대인 대량 추방을 계획했다는 통설에 대해 '로흐네스의 괴물과 같다'고 비판하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 입장은 브렌트·나우모프의 『스탈린의 마지막 범죄』와 대비되는 대표적 학설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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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항공산업 인민위원회에 관한 후보자 학위논문 심사 통과
  • 1994『붉은 파라오의 포로』 출간
  • 2001『스탈린의 비밀 정책: 권력과 반유대주의』 출간 (2003년 개정판)
  • 2003러시아 유대인공동체연맹 '올해의 인물 5762' 선정
  • 2008박사학위 논문 심사 통과: 소련 정치 지도부와 유대계 인텔리겐치야(1936–1953)
  • 2015『스탈린의 비밀 정책』 신판(전2권, 1,176쪽) 출간
  • 현재러시아과학원 러시아사연구소 수석연구원

마크 N. 카츠

Mark N. Katz
학술·연구 미국 미국 1954–

철군 뒤의 전쟁을 다시 읽은 국제정치학자

소련군이 떠나면 나지불라 정권도 곧 무너지리라는 예측과 달리, 그는 그 정권이 철군 후 3년 넘게 버텼다고 짚었다.

마크 N. 카츠는 러시아 정치와 외교정책, 혁명, 테러와의 전쟁을 연구한 미국 국제정치학자다.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소련과 러시아의 제3세계 정책 및 혁명 운동의 국제적 차원을 가르치고 저술했다. 201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분석하며, 소련군 철수 뒤에도 소련의 군사·경제 원조가 나지불라 정권을 3년 넘게 지탱했고 철군이 곧 붕괴를 뜻하지 않았다고 논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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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국제관계학 학사
  • 1978존스 홉킨스 대학교 고등국제학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 1982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정치학 박사
  • 1982미 국무부 소련 문제 분석관
  • 1988조지 메이슨 대학교 정부·정치학 조교수
  • 1998조지 메이슨 대학교 정부·정치학 정교수
  • 2011「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에서 얻는 교훈」 발표
  • 2024조지 메이슨 대학교 명예교수로 퇴직

마크 베이신저

Mark R. Beissinger
학술·연구 미국 미국 1954–

소련 붕괴가 구조적 필연이 아니라 사건의 파도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정치학자

「민족주의는 행동의 원인일 뿐 아니라 행동의 산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고 베이신저는 말했다. 사건이 구조를 반영할 뿐 아니라 구조 자체를 재구성한다는 뜻이다.

미국 비교정치학자로, 소련 민족주의 동원과 국가 붕괴의 관계를 사건 데이터로 실증한 연구자이다. 2002년 저서 『Nationalist Mobilization and the Collapse of the Soviet State』에서 소련 해체가 구조적 필연이 아니라, 한 공화국의 민족운동이 다른 공화국으로 확산되는 '조수(tidal)' 효과로 사건들이 누적되며 초래되었다고 주장했다. 선리(Ronald Suny)의 구조적 설명과 대비되는 이 입장은, 민족운동의 전염성과 사건의 우발성이 제도의 제약을 압도할 수 있다고 보며 이후 색깔혁명 연구로도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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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듀크대학교 정치학 학사 (magna cum laude)
  • 1982하버드대학교 정치학 박사
  • 1982–1987하버드대학교 조교수
  • 1988–2006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정치학 교수
  • 2001–2004위스콘신대학교 정치학과장
  • 2006–프린스턴대학교 헨리 W. 퍼트넘 정치학 석좌교수
  • 2007슬라브·동유럽·유라시아학회(ASEEES) 회장
  • 2022『The Revolutionary City』 출간

앙리 루소

Henry Rousso
학술·연구 프랑스 프랑스계 1954–

비시와 전쟁 기억의 역사를 다시 쓴 역사가

2017년 휴스턴 공항에서, 점령기 기억을 연구해 온 이 역사가는 강연 수당을 문제 삼은 미 국경 당국에 10시간 구금되며 강제송환 직전까지 갔다.

앙리 루소는 제2차 세계대전기 프랑스와 비시 체제, 그리고 그 기억의 변화를 연구한 프랑스 역사가다. 이집트에서 태어난 유대계 가정이 수에즈 위기 뒤 프랑스로 이주한 경험은 그의 역사적 관심과도 맞닿아 있다. 대표작 《비시 증후군》은 해방 이후 프랑스 사회가 협력과 책임을 망각하거나 재구성해 온 과정을 분석했으며, 그는 레지스탕스의 규모와 국민적 단결을 과장하는 기억의 신화를 ‘레지스탕시알리슴’이라 불렀다. 그의 작업은 역사적 사실과 집단기억, 현재의 정치적 사용을 구별하면서도 서로의 관계를 추적하는 현대사 연구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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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1979생클루 고등사범학교 학생
  • 1977역사학 아그레가시옹 취득
  • 1981–현재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자
  • 1988–1990파리 정치대학 강사
  • 1994–2005현대사연구소 소장
  • 2001–2010파리 낭테르대학교 교수
  • 2019–현재테러 역사 국립박물관 설립준비위원회 위원장

줄리언 잭슨

Julian Jackson
학술·연구 영국 영국인 1954–

프랑스 현대사의 정치적 갈등을 해명한 역사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그를 "20세기 프랑스사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 한 명"이라 평했다.

줄리언 잭슨은 20세기 프랑스사를 중심으로 연구한 영국 역사가로, 프랑스 대공황과 인민전선에서 점령과 드골주의까지 정치적 선택의 조건과 결과를 추적했다. 『프랑스 인민전선』은 개혁과 재무장, 민주주의 방어와 대중운동의 관계를 정치·사회·문화의 차원에서 분석해 이 시기를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의 기준점이 되었다. 이후 그는 1940년 프랑스의 패배와 독일 점령, 전후 동성애 정치, 1968년 5월을 다루며 현대 프랑스사의 범위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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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영국에서 출생
  • 1982케임브리지 대학교 박사 취득
  • 1985『프랑스 대공황의 정치』 출간
  • 1988『프랑스 인민전선』 출간
  • 2001『프랑스: 암흑의 시대』 출간
  • 2003퀸메리 런던대학교 역사학과 합류
  • 2018드골 전기로 더프 쿠퍼상 수상
  • 2023페탱 연구서로 더프 쿠퍼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