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영상 속에서 일리야는 전차 앞에 서서 군인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잖아!'
모스크바건축대학 출신의 건축가이자 시인으로, 그의 시는 사후 옙투셴코의 《세기의 시절》에 실렸다.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차이콥스키 터널에서 BMP 536호에 불이 붙은 뒤 병사들이 후퇴할 때 돌진했다가 머리에 총을 맞아 숨졌다. 사후 소비에트연방영웅이 되었고, 그의 유대식 장례식은 랍비와 정교회 성직자가 함께 집전한 최초의 공적 종교의례로서 신생 러시아의 다민족 상징이 되었다.
숙청 명단이 봉쇄기에 쿠즈네초프가 발탁한 간부들과 겹친다는 점을 들어, 그는 「이것은 '레닌그라드' 사건이 아니라 '쿠즈네초프' 사건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키릴 볼돕스키는 소련 후기와 현대 러시아의 정치사를 연구하는 러시아 역사학자다. 그는 레닌그라드 사건 전후의 당 apparatus와 봉쇄의 역사를 함께 다루며, 공개된 기록이 밝혀 주는 것과 여전히 남은 공백을 구분한다. 그의 연구는 이 사건을 단순한 숙청의 서사가 아니라 당 권력, 지역 통치, 기억의 충돌로 읽게 한다.
소련에서 나온 15개국은 1917년에는 대체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소련이 국가를 민족 원칙에 따라 조직한 결과였다.
소비에트 민족정책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캐나다 출신 역사학자. 2001년 저서 『긍정적 차별의 제국』에서 초기 소련을 민족을 억압한 '민족의 감옥'이 아니라 세계 최초로 소수민족 우대 정책을 체계적으로 시행한 '긍정적 차별의 제국'으로 재규정하며 리처드 파이프스의 전통적 해석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로서 소련사, 스탈린주의, 민족·제국 연구를 가르치며 우크라이나 연구소(HURI) 소장을 맡고 있다.
동독이 소련을 압박해 베를린 장벽을 세우게 한 구도를 그녀는 한마디로 압축했다. "꼬리가 개를 흔들었다."
호프 M. 해리슨은 독일과 러시아, 냉전의 국제정치를 연구한 미국의 역사가다. 대표작은 동독과 소련의 관계를 동독 자료와 소련 자료로 재구성한 《소련을 장벽으로 몰아붙이기》다. 그녀는 1961년 국경 폐쇄를 흐루쇼프의 일방적 결정으로만 보던 강대국 중심 서술에 이의를 제기하며, 발터 울브리히트가 동독의 경제·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려 소련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고 논증했다. 이 해석은 작은 사회주의 국가의 행위와 동맹 내부의 긴장이 냉전의 고위정치를 형성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앤 애플바움은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권위주의, 시민사회를 연구해 온 미국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다. 『굴라크』는 수용소 체계를 혁명기부터 해체기까지 архив 자료와 증언으로 재구성해 2004년 퓰리처 일반 논픽션상을 받았다. 『철의 장막』과 『붉은 기근』에서는 전후 동유럽의 소비에트화와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다루며, 제20차 당대회의 탈스탈린화가 해방과 통제의 재편을 동시에 낳았다고 해석한다.
그는 스탈린의 죽음 곁에 있던 베리야를 독살설의 증거와 함께 검토하며, 궁정의 사적 장면을 역사적 쟁점으로 바꾸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로, 권력자의 사적 세계와 정치적 폭력을 함께 그리는 역사 서술로 알려졌다. 『붉은 차르의 궁정』은 스탈린의 통치와 측근들을 새 문서와 회고 자료로 재구성했으며, 스탈린 말년의 베리야와 독살설을 둘러싼 증언을 검토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이후 『젊은 스탈린』, 『예루살렘』, 『로마노프 왕조』 등으로 시야를 넓혀 혁명과 제국, 왕조의 장기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그는 2021년 인터뷰에서 소련 해체가 ‘반노멘클라투라 혁명’의 결과가 아니라 그 혁명의 불완전성과 일관성 결여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알렉산드르 블라들레노비치 슈빈은 1965년 7월 18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러시아의 역사가이자 좌파 사회운동에 참여한 공공 지식인이다. 1989년 모스크바 국립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1984∼1985년에는 공군에서 복무했으며, 1992년부터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세계사연구소에서 일하면서 2000년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국립 인문대학, 2007년부터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 교수를 겸했다. 사회주의 사상과 혁명, 아나키즘 운동, 소련사와 20세기 국제관계를 연구하며 약 25권의 단행본을 냈고, 1997∼1998년에는 보리스 네므초프 부총리 보좌관을 지냈다.
피지코프는 제22차 당대회 결의에서 반당 그룹에 대한 언급이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보다 거의 네 배 많았다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르 블라디미로비치 피지코프는 1965년 11월 27일 모스크바주 라멘스코예에서 태어나 2019년 9월 16~17일 밤 모스크바에서 폐색전증으로 사망한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국가 관료다. 1998년 후보 학위, 1999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3~2004년 러시아 연방 교육부 차관을 지녔다. 말년에는 17세기 교회 분열과 구신도 연구로 널리 알려졌는데, 구신도가 혁명과 소비에트 체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구신도계 안에서도 평가가 갈렸다. 타타르-몽골 지배 부정 같은 음모론적 문명사 구상으로도 논란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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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모스크바주 교육대학 역사학부 졸업
1989년부터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당사 부문 연구원
19981953~1964년 소련 사회의 사회정치 발전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19991950~1960년대 소련 사회의 정치개혁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2000러시아 연방 통신정보부 장관 보좌관
2000–2003러시아 연방 정부 의장 보좌관
2003.6.5–2004.6.18러시아 연방 교육부 차관으로 교육의 질 관리와 기관 국가인가를 담당
중동부 유럽의 권위주의적 쇼비니즘의 뿌리는 정치이론이 아니라 정치심리학에 있다, 1989년 이후 '모방 명령'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 말이다.
불가리아의 정치학자이자 소피아 자유전략센터 이사장. 1989년 이후 동유럽 정치를 '모방의 시대'로 규정하고, 서구를 따라야 한다는 탈냉전의 명령이 오히려 민족주의적 반발과 일리버럴 전환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스티븐 홈스와 함께 쓴 『빛의 실패』(2019)는 이 '모방 명령' 논제를 정치심리학으로 전개하여, 동유럽 포퓰리즘의 뿌리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문화적 굴욕감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외교협의회 창립 이사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탈공산주의 30년의 유산 논쟁에서 독창적 분석 틀을 제공한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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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불가리아 루코비트 출생
1990년대소피아 자유전략센터(CLS) 설립·이사장
2004–2006국제발칸위원회 사무총장
2005–2011《포린 폴리시》 불가리아판 편집장
2007유럽외교협의회(ECFR) 창립 이사
2013『불신을 믿으며: 지도자를 믿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TED Books)
우크라이나·러시아·벨라루스의 기록보관소를 10년간 뒤져 핵 경관 연구를 다시 쓴 MIT의 과학·환경사학자. 『플루토피아』(2013)로 핸퍼드와 마야크의 플루토늄 재앙을 폭로해 러시아·미국·환경사 분야 최고상을 휩쓸었고, 내셔널 북 크리틱스 서클 최종후보작 『생존 매뉴얼』(2019)에서는 IAEA와 체르노빌 포럼이 오염 식품을 통한 내부피폭 경로를 배제해 수만 명의 사망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 비판은 국제적 합의에 대한 중심적 역사학적 도전이 되었으며, 냉전기 핵 기관들이 저선량 방사선의 과학 자체를 형성해왔다는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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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메릴랜드대 볼티모어카운티 캠퍼스(UMBC) 교수 부임
2004『장소 없는 전기』 출간, 미국역사학회 조지 루이스 비어상 수상
2013『플루토피아』 출간, 러시아·미국·환경사 분야 최고 학술상 석권
2015『디스토피아에서 온 소식』 출간, 구겐하임·카네기 펠로십 수상
2018MIT 과학기술사회학과 교수 부임
2019『생존 매뉴얼』 출간, 내셔널 북 크리틱스 서클상 최종후보 및 ASEEES 젤닉상·슐먼상 수상
스탈린의 스페인에서의 위치를 약점이 아니라 강점에 기반한 것으로 접근해온 것이 이 주제 문헌의 기본적 오류라고 그는 논했다.
오리건 번스 출신. 위스콘신대학-매디슨에서 스탠리 G. 페인의 지도 아래 200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스탈린과 스페인 내전』(Columbia University Press)을 출간하여, 기밀해제된 소련 문서를 바탕으로 스탈린의 작전 X가 '엄청난 야심에도 불구하고 작전상 실패'였음을 논증했다. 벨파스트 퀸스대학에서 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가르치며 전간기 유럽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1991년 8월 모스크바 터널에서 그가 지휘한 장갑차 행렬과 시위대의 충돌로 세 명이 사망했다.
세르게이 수로비킨은 소련 말기 장교로 출발해 러시아군 최고위 지휘관으로 올라선 군인이다. 1991년 8월 쿠데타 때 타만 사단 BMP 대대를 이끌고 모스크바 터널에 진입했으며, 충돌로 시위대 세 명이 사망한 뒤 구금됐지만 상부 명령을 따랐다는 이유로 기소가 취하됐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체첸, 시리아에서 지휘했고,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군사적 성과와 민간인 피해를 함께 낳은 강경한 작전 방식으로 알려졌다. 그의 경력은 소비에트 국가의 명령 체계가 해체 뒤 러시아의 군사국가적 권력으로 이어지는 한 경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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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옴스크 고등 제병지휘학교 졸업, 타만 근위 자동차화소총사단 소대·중대 지휘관
1989–1991아프가니스탄 복무, 타만 사단 제1자동차화소총대대장
19918월 쿠데타 때 모스크바 투입 BMP 대대 지휘, 터널 충돌 뒤 구금 및 기소 취하
러시아의 우주 담당 관리들조차 시디키를 전 세계에서 소련 우주사 기록을 직접 연구하는 몇 안 되는 학자 가운데 하나로 인정했다.
다카 출생의 방글라데시계 미국인 역사가 시디키는, 소련 붕괴 후 개방된 기록물을 처음으로 체계 분석하여 소련 우주사 연구를 독립된 학문 분야로 정립했다. 2000년 NASA가 출간한 『Challenge to Apollo』는 소련 유인우주계획의 결정적 기록사로서 『월스트리트저널』 선정 '우주탐사 최고의 책 5선'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표준문헌으로 남아 있다. 2010년 『The Red Rockets' Glare』로 19세기 러시아 우주적 상상력의 문화사까지 영역을 넓혔고, 현재는 굴라그와 과학기술의 접점을 다룬 저작을 준비하며 포덤대학 교수로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소비에트 러시아는 선진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으며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창조적 파괴가 부재했기 때문에 1970년대에 이르러 힘이 빠지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아르메니아계 가정에서 태어나 MIT 경제학 교수가 된 다론 아제모을루는, 국가 간 번영 격차의 제도적 기원을 규명한 공로로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도경제학의 대표적 학자다. 로빈슨과 함께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에서 소련 계획경제 아래 가격은 실물 가치와 유리되어 혁신을 평가할 수 없고, 상여금이 총임금기금에 연동되어 기업이 자동화를 기피하게 되므로 코시긴 개혁은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의 연구는 포용적 제도 없이 지속적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는 통찰로 발전경제학과 정치경제학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제정 러시아의 민족지학자들이 볼셰비키 국가의 영토 구획과 인구 범주화를 실질적으로 설계했다는 연속성 테제로, 탈소비에트 시대 소련 민족 연구의 지형을 재편했다.
미국의 러시아·소련사 연구자로, 위스콘신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2005년 저서 『제국들의 민족지』에서 전직 제정 민족지학자들이 볼셰비키에 제공한 지식이 소련의 영토 경계와 민족 정책을 형성했으며, 소련은 제국의 민족지 관행을 단절하지 않고 계승했다는 연속성 테제를 제출했다. 이 저서는 허버트 백스터 애덤스 상을 수상하며 테리 마틴의 『차별적 조치의 제국』이 내세운 소비에트 민족 정책의 참신함 테제와 대비되는, 소련 민족 연구의 양대 해석 축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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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Princeton University 역사학 박사
1998–현재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사학과 교수
2005『Empire of Nations: Ethnographic Knowledge and the Making of the Soviet Union』 출간 (Herbert Baxter Adams Prize, Wayne S. Vucinich Prize 수상)
2020『Soviet Judgment at Nuremberg: A New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After World War II』 출간
BMP 장갑차의 관측창에 방수포를 씌우려고 뛰어올랐다. 사수가 포탑을 돌려 떨어뜨렸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 달려가 장갑차에 올라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공수부대 하사로 제대 후 모스크바에서 지게차 기사로 일했다. 1991년 8월 21일 새벽, 루츠코이의 '아프간 동지들' 호소를 듣고 백악관 방어선에 합류했으며 차이콥스키 터널에서 BMP 장갑차의 관측창을 막으려다 깔려 사망, 쿠데타 유일의 세 희생자 중 한 명이 되었고 사후 소비에트연방영웅과 '자유 러시아 수호자' 메달 1호를 받았다.
1998년 BBC 루안다 특파원으로 앙골라 내전을 취재한 경험이 훗날 1977년 5월 27일 사건을 파고드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 런던 태생의 기자·작가다. 런던대학교 SOAS에서 아프리카 정치·역사를 공부했고, 1996년부터 2007년까지 BBC 월드서비스 기자로 앙골라·코트디부아르·말리·가나 등지에서 활동했다. 1998년부터 BBC 루안다 특파원으로 앙골라 내전을 취재한 것이 훗날 1977년 5월 27일 사건 조사의 계기가 되었다. 2014년 『인민의 이름으로: 앙골라의 잊힌 학살』을 펴냈는데, 이 사건에 관한 기록보관소·공식 문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인터뷰를 중심으로 서술했고, 학술 역사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자기 의문까지 드러내는 연구 과정의 기록으로 썼다. 이후 회고록과 소설을 발표하고 로열할러웨이에서 창작을 가르쳤다.
애덤 히긴보섬은 1968년 잉글랜드 서머싯에서 태어난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다. 런던의 잡지와 신문에서 출발해 「더 페이스」 편집장과 「선데이 텔레그래프 매거진」 미국 특파원을 지냈고, 「뉴요커」, 「와이어드」, 「뉴욕 타임스」 등에 기고했다. 대표작 「체르노빌의 한밤중」은 십여 년에 걸친 수백 시간의 인터뷰와 서한, 미출간 회고록, 비밀 해제 문건을 토대로 선전과 비밀주의, 신화가 참사를 어떻게 가렸는지 밝힌다. 이 책으로 2020년 윌리엄 E. 콜비상과 앤드루 카네기 논픽션 우수상을 받았고, 2024년에는 「챌린저」로 커커스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 논픽션상을 받았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스스로는 역사가보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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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더 페이스」 편집장
1990년대–2000년대「선데이 텔레그래프 매거진」 미국 특파원
2000년대–현재「뉴요커」, 「와이어드」, 「뉴욕 타임스 매거진」 기고 작가
2019「체르노빌의 한밤중」 출간
2020앤드루 카네기 논픽션상 및 윌리엄 E. 콜비상 수상
2024「챌린저」 출간
2024「챌린저」로 커커스상 및 전미도서비평가협회 논픽션상 수상, 2025년 카네기 논픽션상 최종 후보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이 된 의사이자 보건경제학자로, 의학적 증거와 공공정책·인구 건강의 관계를 연구했다. 정부 프로그램과 경제 조건, 의생명 혁신이 건강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 분석했다. 2013년 고르바초프 반알코올 운동 연구에서는 자본주의 이행만이 아니라 운동의 종결이 1990년대 초 러시아 사망률 위기의 큰 몫을 설명한다고 주장해 탈소비에트 평가의 쟁점을 바꾸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방역 제한과 과학 권위를 둘러싼 논쟁적 공적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브랜든버거는 2004년 논문에서 레닌그라드 사건의 배후에 '러시아 공산당 창당' 루머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고 주장해, 정치적 파벌 투쟁으로 보는 기존 해석에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추가했다.
버지니아 리치먼드대학 러시아·소련사 교수. 스탈린 시대 선전·이데올로기와 러시아 민족 정체성의 형성을 연구하며, 『국가 볼셰비즘』(2002)에서 스탈린의 루소중심적 동원 선전이 의도치 않게 근대 러시아 민족 정체성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집필 중인 『스탈린의 후계자 후보들 숙청』은 레닌그라드 사건(1949~1952)에 관한 20여 년의 연구로, 파벌 투쟁·스탈린의 레닌그라드 불신·후견-의뢰 네트워크의 자초라는 세 해석 학파를 정리하면서도 결정적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카이브가 여전히 폐쇄적이라고 본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뒤 동유럽을 여행한 경험은 그녀가 체제전환의 희망과 비용을 함께 연구하게 한 전환점이었다.
크리스틴 고드시는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동유럽 연구자로, 사회주의와 체제전환이 평범한 사람들, 특히 여성의 삶에 남긴 흔적을 민족지학으로 연구했다. 불가리아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사회주의의 성과와 체제전환기의 상실을 함께 살피며, 반공 승리 서사가 지워 온 물질적 경험을 복원했다. 미첼 오렌스타인과 함께 쓴 『충격의 재고』는 1989년 혁명 이후 동유럽의 경제·사회 지표를 비교해 전환의 이익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었음을 분석했다. 그의 작업은 사회주의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 전환의 결과를 경험 자료와 주민의 목소리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스탈린화의 기억 정치를 연구한 역사가로서, 스탈린 사후 권력 투쟁을 풍자한 아르만도 이아누치의 영화 「스탈린의 죽음」(2017)에 역사 자문을 맡았다.
폴리 존스는 러시아·소비에트 문화와 권위주의 사회의 기억 정치를 연구하는 영국 역사가다. 그녀의 연구는 1956년 비밀 연설 이후 탈스탈린화가 당국의 개혁만이 아니라 작가와 시민들이 검열과 공식 기억을 협상한 과정이었음을 보여 준다. 대표 저서와 편저는 흐루쇼프 시대의 문화·사회 변화, 스탈린주의 과거의 신화와 기억, 해빙기의 이상과 실제 반응 사이의 긴장을 분석한다.
페로비치는 새로 개방된 동구권 문서에서 티토의 발칸 영토 야망(특히 알바니아 문제)이 1948년 모스크바와의 결별을 촉발했으며,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 노선'은 사후 정당화된 신화였음을 입증했다.
스위스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로, 취리히 대학교 동유럽사 교수 겸 동유럽학 센터(CEES) 소장이다. 2007년 《냉전연구》에 발표한 「티토-스탈린 결별: 새로운 증거에 비추어 본 재평가」에서, 기존의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 노선'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티토의 발칸 영토 야망(특히 알바니아 병합 시도)이 분열의 실질적 원인이었음을 구소련권 문서로 입증했다. 북캅카스사, 소련 에너지 외교사 등에서도 주목할 저작을 남겼으며, 『코카서스 분석 다이제스트』 등 온라인 학술지를 창간·편집하며 동유럽 연구의 대중적 확산에도 기여했다.
고향 마르키우카에 정착한 러시아 이주민 401가구 가운데 329가구가 1년 안에 돌아갔다는 자료를 들어, 그 정착이 오늘날 돈바스 분리주의의 뿌리라는 통설을 근거 없는 신화라고 반박했다.
헤나디 예피멘코는 20세기 전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정치·사회사를 연구한 우크라이나 역사가다. 그는 홀로도모르 이후 농촌 재정착을 두 차례 파동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국가가 곡물 생산 기반을 회복하려 경제적으로 추진한 정책과 이주민의 대규모 귀환을 함께 밝혔다. 그의 연구는 인구 이동을 민족 구성의 단순한 변화로 과장하지 않고, 기근 뒤 농촌의 노동력과 국가 통치가 맞물린 문제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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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994루한스크 국립 교육기관 역사학부에서 수학
1993–1997마르키우카 중등학교 역사 교사
1997–2000우크라이나 역사연구소 대학원
2001「1932~1938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연방공산당의 민족·문화 정책」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2000–현재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역사연구소 20~30년대 우크라이나사 부문 연구원
2013「기근 이후 시기 이주와 추방」에서 1933~1934년 재정착의 지역별 자료를 체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