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용어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변증법, 노동가치론, 잉여가치, 고전파 정치경제학, 공상적 사회주의, 자본 (마르크스), 반뒤링론,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마르크스의 학설은 문명 세계 어디서나 모든 부르주아 과학(관제 과학이든 자유주의 과학이든)의 극심한 적의와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부르주아 과학은 마르크스주의를 일종의 “해로운 종파”로 본다. 다른 태도는 기대할 수도 없다. 계급투쟁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 “공평무사한” 사회과학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관제 과학과 자유주의 과학은 모두 임금노예제를 옹호하고, 마르크스주의는 이 노예제에 무자비한 전쟁을 선포했다. 임금노예제 사회에서 공평무사한 과학을 기대하는 것은, 자본의 이윤을 줄여서라도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에서 공장주들의 공평무사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고 순진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철학의 역사와 사회과학의 역사는, 마르크스주의에는 세계 문명 발전의 큰길에서 비켜나 생겨난 어떤 폐쇄적이고 굳어 버린 학설이라는 의미의 “종파주의”와 닮은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더없이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천재성은 바로 인류의 선진 사상이 이미 제기해 놓은 물음들에 답을 주었다는 데 있다. 그의 학설은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의 가장 위대한 대표자들의 학설을 곧바로, 직접 이어받은 것으로서 생겨났다.

마르크스의 학설은 옳기 때문에 전능하다. 그것은 완전하고 정연하며, 어떠한 미신과도, 어떠한 반동과도, 부르주아적 억압에 대한 어떠한 옹호와도 타협할 수 없는 완결된 세계관을 사람들에게 준다. 그것은 독일 철학, 영국 정치경제학, 프랑스 사회주의라는 모습으로 인류가 19세기에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것의 정당한 계승자다.

마르크스주의의 이 세 가지 원천이자 동시에 세 가지 구성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자.

1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은 유물론이다. 유럽의 근대사 전체에 걸쳐, 특히 온갖 중세의 잡동사니에 맞서, 제도와 사상 속의 농노제에 맞서 결정적인 싸움이 벌어진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물론은 유일하게 일관된 철학, 자연과학의 모든 가르침에 충실하고 미신과 위선 따위에 적대적인 철학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적들은 온 힘을 다해 유물론을 “반박”하고, 허물고, 중상하려 했고, 철학적 관념론의 여러 형태를 옹호했다. 관념론은 언제나 이런저런 방식으로 종교를 옹호하거나 떠받치는 데로 귀착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철학적 유물론을 더없이 단호하게 옹호했고, 이 토대에서 벗어나는 모든 일탈이 깊은 잘못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 그들의 견해는 엥겔스의 저작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반뒤링론』[1]에 가장 분명하고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들은 『공산당 선언』과 마찬가지로 의식 있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곁에 두고 읽는 책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18세기 유물론에 머물지 않고 철학을 앞으로 밀고 나갔다. 그는 독일 고전철학, 특히 헤겔 체계의 성과로 철학을 풍부하게 했는데, 헤겔 체계는 다시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으로 이어졌다. 이 성과들 가운데 주된 것은 변증법, 곧 가장 완전하고 깊으며 일면성에서 벗어난 형태의 발전에 관한 학설, 영원히 발전하는 물질을 우리에게 반영해 주는 인간 지식의 상대성에 관한 학설이다. 자연과학의 최신 발견들, 곧 라듐, 전자, 원소의 변환[2]은 낡고 썩은 관념론으로 “새롭게” 되돌아가는 부르주아 철학자들의 학설과는 반대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훌륭하게 확증했다.

철학적 유물론을 심화하고 발전시키면서 마르크스는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 자연에 대한 인식을 인간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넓혔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은 과학적 사유의 가장 위대한 성취였다. 지금까지 역사와 정치에 대한 견해를 지배하던 혼돈과 자의는, 생산력이 자라면서 사회생활의 한 구조에서 다른, 더 높은 구조가 어떻게 발전해 나오는지, 이를테면 농노제에서 어떻게 자본주의가 자라나는지를 보여 주는, 놀랄 만큼 완결되고 정연한 과학적 이론으로 바뀌었다.

인간의 인식이 인간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자연, 곧 발전하는 물질을 반영하듯이, 인간의 사회적 인식(곧 철학적, 종교적, 정치적 등의 여러 견해와 학설)은 사회의 경제 구조를 반영한다. 정치 제도는 경제적 토대 위에 선 상부구조다. 이를테면 우리는 현대 유럽 국가들의 여러 정치 형태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굳히는 데 봉사하는 것을 본다.

마르크스의 철학은 완성된 철학적 유물론이며, 인류에게, 특히 노동계급에게 위대한 인식의 도구를 주었다.

2

경제 구조가 정치적 상부구조가 솟아오르는 토대라는 것을 인정한 마르크스는 무엇보다 이 경제 구조의 연구에 가장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마르크스의 주저 『자본』은 현대 사회, 곧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구조를 연구하는 데 바쳐져 있다.

마르크스 이전의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나라인 영국에서 형성되었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는 경제 구조를 연구하면서 노동가치론의 기초를 놓았다. 마르크스는 그들의 일을 이어 나갔다. 그는 이 이론을 엄밀하게 근거 짓고 일관되게 발전시켰다. 그는 모든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의 생산에 드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양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물건과 물건의 관계(상품과 상품의 교환)를 보던 곳에서, 마르크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드러냈다. 상품 교환은 시장을 매개로 한 개별 생산자들 사이의 연결을 표현한다. 화폐는 이 연결이 점점 더 긴밀해져 개별 생산자들의 경제생활 전체를 떼어 낼 수 없는 하나의 전체로 묶는다는 것을 뜻한다. 자본은 이 연결이 더 발전한 것을 뜻한다. 인간의 노동력이 상품이 되는 것이다. 임금노동자는 토지, 공장, 노동 도구의 소유자에게 자기 노동력을 판다. 노동자는 노동일의 한 부분을 자신과 가족의 생계비(임금)를 메우는 데 쓰고, 나머지 부분에는 대가 없이 일하여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 곧 이윤의 원천이자 자본가 계급이 가진 부의 원천을 만들어 낸다.

잉여가치론은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주춧돌이다.

노동자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자본은 노동자를 짓누르고, 소경영자들을 몰락시키며 실업자 군대를 만들어 낸다. 공업에서는 대규모 생산의 승리가 바로 눈에 띄지만, 농업에서도 같은 현상이 보인다. 대규모 자본주의 농업의 우위가 커지고, 기계의 사용이 늘며, 농민 경영은 화폐 자본의 올가미에 걸려 낙후한 기술의 압박 아래 쇠퇴하고 몰락한다. 농업에서는 소생산이 쇠퇴하는 형태가 다르지만, 그 쇠퇴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소생산을 쳐부수면서 자본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가장 큰 자본가들의 연합이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만든다. 생산 자체는 점점 더 사회적인 것이 된다. 수십만, 수백만의 노동자가 계획적인 하나의 경제 유기체로 묶인다. 그런데 공동 노동의 생산물은 한 줌의 자본가가 차지한다. 생산의 무정부성, 공황, 시장을 향한 미친 듯한 쟁탈, 대다수 주민의 생존 불안이 커진다.

노동자의 자본에 대한 의존을 키우면서, 자본주의 체제는 결합된 노동의 위대한 힘을 만들어 낸다.

마르크스는 상품 경제의 첫 맹아, 단순한 교환에서부터 그 가장 높은 형태, 곧 대규모 생산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발전을 추적했다.

그리고 오래된 나라든 새로운 나라든 모든 자본주의 나라의 경험은, 해마다 더 많은 노동자에게 마르크스의 이 학설이 옳다는 것을 눈앞에 보여 준다.

자본주의는 온 세계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승리의 문턱일 뿐이다.

3

농노제가 무너지고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가 세상에 나타나자, 이 자유가 근로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새로운 체제를 뜻한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이 억압의 반영이자 그에 대한 항의로서 여러 사회주의 학설이 곧바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초의 사회주의는 공상적 사회주의였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단죄하고, 저주했으며, 그것이 없어지기를 꿈꾸었고, 더 나은 체제를 공상했으며, 부자들에게 착취가 부도덕하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공상적 사회주의는 실제의 출구를 가리킬 수 없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아래 임금노예제의 본질을 설명할 줄도, 그 발전 법칙을 발견할 줄도, 새 사회의 창조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찾을 줄도 몰랐다.

그사이 유럽 어디서나, 특히 프랑스에서 봉건제와 농노제의 몰락에 뒤따른 격렬한 혁명들은, 모든 발전의 토대이자 그 추진력으로서 계급투쟁을 점점 더 뚜렷이 드러냈다.

농노주 계급에 대한 정치적 자유의 승리는 어느 하나도 필사적인 저항 없이 쟁취되지 않았다. 어떤 자본주의 나라도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계급 사이에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을 거치지 않고서 어느 정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대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천재성은, 세계사가 가르치는 결론을 누구보다 먼저 여기서 끌어내고 일관되게 관철할 줄 알았다는 데 있다. 이 결론이 계급투쟁의 학설이다.

사람들은 온갖 도덕적,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문구와 성명과 약속 뒤에서 이런저런 계급의 이해관계를 찾아내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정치에서 언제나 기만과 자기기만의 어리석은 희생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개혁과 개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든 낡은 제도가 아무리 야만스럽고 썩어 보이더라도 이런저런 지배 계급의 힘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언제나 낡은 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우롱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계급들의 저항을 꺾는 데는 단 하나의 수단밖에 없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 자체 안에서, 낡은 것을 쓸어 내고 새것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이룰 수 있는, 그리고 그 사회적 처지로 보아 이루어야만 하는 세력을 찾아내어, 그들을 깨우치고 투쟁을 위해 조직하는 것이다.

오직 마르크스의 철학적 유물론만이, 지금까지 모든 피억압 계급이 빠져 허덕이던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출구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리켜 주었다. 오직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만이 자본주의 체제 전체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처한 실제 처지를 설명해 주었다.

아메리카에서 일본까지, 스웨덴에서 남아프리카까지 온 세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자적인 조직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투쟁을 벌이면서 깨우치고 교육받으며, 부르주아 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나고, 점점 더 굳게 단결하며, 자기 성과의 크기를 재는 법을 배우고, 힘을 단련하며, 막을 수 없이 자라나고 있다.

V. I.

주석

  1. 엥겔스의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6, 단행본 1888)과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1878). 둘 다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견해를 가장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으로 꼽힌다. ↩
  2. 1898년 퀴리 부부의 라듐 발견, 1897년 J. J. 톰슨의 전자 발견, 1902~1903년 러더퍼드와 소디가 밝힌 방사성 원소의 변환. 이 발견들을 근거로 「물질이 사라졌다」는 주장이 돌았고,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9)에서 이를 「물리학적 관념론」이라 부르며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