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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민족 정책의 변천
소련 민족 정책의 변천
1914년 민족자결권 정식화에서 1991년 연방 해체까지, 소련이 민족 문제를 다룬 방식
1920
1930
1940
1950
1960
1970
1980
1990
영토·제도
언어·간부
공식 담론
탄압
스탈린이 민족을 언어·영토·경제생활·심리 구조의 공통성으로 정의하고 문화적 민족 자치를 비판한 볼셰비키 민족 이론의 출발점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1913
레닌이 로자 룩셈부르크에 답하여 자결권을 분리와 민족국가 형성의 권리로 정식화
「민족자결권에
대하여」
1914
레닌이 분리의 자유로 정의하고 볼셰비키 강령의 핵심으로 삼았다
민족자결권
1896–1917
평등, 분리에 이르는 자결, 민족적 특권 폐지를 국가 정책으로 선포
「러시아 여러 인민의
권리 선언」
1917.11
공화국을 러시아에 편입하려는 스탈린 안을 레닌이 반대해 대등한 연방으로 정리되었다
자치화 논쟁
1922
소련 결성과 탈퇴권
조항
1922.12
제12차 당대회의 규정이 뒤이은 우대 정책의 근거가 되었다
대러시아 국수주의를
주된 위험으로
1923
행정과 교육의 현지어 전환, 민족 간부 충원, 민족 구역 설치
코레니자치야
1923–1933
가장 크게 진행된 지역판으로, 학교와 출판의 대다수가 우크라이나어로 옮겨졌다
우크라이나화
1923–1933
투르키스탄을 민족별 공화국으로 나눠 오늘의 국경선을 만들었다
중앙아시아 민족 획정
1924–1936
형식은 민족적,
내용은 사회주의적
1925–1930
문자가 없던 언어에 문자를 만들고 아랍 문자권을 라틴 문자로 옮겼다
라틴 문자화
1926–1932
카자흐에서 토착 엘리트 제거와 강제 정주가 대기근으로 이어졌다
소(小) 10월
1925–1933
초기에 소비에트 정권과 협력했던 무슬림 개혁 지식인들이 민족주의 혐의로 제거되었다
자디드 운동 해체
1929–1938
곡물 징발을 다룬 같은 결정이 쿠반의 우크라이나화를 폐지하고 공화국 안의 정책도 축소했다
우크라이나화 중단
결정
1932.12
우크라이나 문화계와 당 간부가 대상이 되었고 흐빌료비와 스크립니크가 자살했다
「부르주아 민족주의」
숙청
1933–1934
러시아 제국의 군사적 과거와 역사 인물이 조국의 방어자로 복권되었다
소비에트 애국주의
1934–1991
연방 구성 공화국이 11개로 재편되고 탈퇴권 조항이 유지되었다
1936년 헌법:
공화국 재편
1936
평등을 유지한 채 위계를 도입한 가족 비유
맏형 러시아 인민론
1936–1980년대
민족 학교의 러시아어 교육이 의무화되고 라틴 문자 언어들이 키릴로 다시 바뀌었다
러시아어 필수화와
키릴 전환
1938–1940
국경 너머와 연고를 가진 디아스포라 민족을 겨냥해 24만여 명이 총살되었다
민족 작전
1937–1938
재판 없이 민족 전체를 옮긴 첫 전면 사례로, 17만여 명이 중앙아시아로 이송되었다
고려인 강제이주
1937
볼가 독일인, 카라차이, 칼미크, 체첸·잉구시, 발카르, 크림 타타르, 메스헤티야 튀르크
전시 민족 강제이주
1941–1944
이주된 민족의 자치 단위가 해체되고 지명까지 지도에서 지워졌다
자치공화국 폐지
1943–1944
스탈린이 러시아 인민을 소련의 모든 민족 가운데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 불렀다
러시아 인민을 위한
축배
1945.05
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 해체
1948–1952
뿌리 없는 세계주의
비판
1946–1953
스탈린 사망 한 달 뒤 조작으로 공표되고 사건이 종결되었다
의사들의 음모
1952–1953
체첸·잉구시·카라차이·발카르·칼미크는 돌아갔으나 크림 타타르와 메스헤티야 튀르크, 볼가 독일인은 제외되었다
자치공화국 복원과
부분 귀환
1956–1957
민족들이 융합해 새로운 역사적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규정
소비에트 인민
1961–1991
1972년 1월 우크라이나 지식인이 대거 검거되고 5월 제1서기 셸레스트가 물러났다. 그의 『우크라이나 우리의 소비에트』(1970)가 민족의 과거를 미화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셸레스트 해임
1972–1973
공화국 언어의 법적 지위는 유지되었으나 진학과 승진에서 러시아어의 실질 가치가 커졌다
러시아어, 민족 간
교류의 언어
1961–1980년대
1979년 타슈켄트 회의가 유치원부터의 러시아어 확대를 권고하고 1983년 결정이 러시아어 교사 가산 수당과 분반을 도입한 한편, 1978년 트빌리시 시위는 조지아어의 국가어 지위를 지켜냈다
민족어 교육 논쟁
1978–1983
전문에 소비에트 인민을 명시하면서도 연방제와 탈퇴권은 그대로 두었다
1977년 헌법
1977
공화국들이 자기 언어를 국가어로 정하면서 연방 언어 질서가 무너졌다
공화국 언어법
1988–1990
공화국들이 근거로 든 것은 소련 헌법 자신의 탈퇴권 조항이었다
주권 선언과 연방
해체
1988–1991
비밀의정서가 무효로 선언되자 발트의 이탈은 '분리'가 아니라 '회복'이 되었고, 다른 공화국들의 선례가 되었다
발트 독립운동: 병합
무효의 법리
1987–1991
민족정책의 마지막 교리 전환: 위로부터 부여된 연방을 아래로부터의 계약으로 다시 세우려 했다
신연방조약 구상:
주권국가들의 연방
1991
계승 · 분화 · 합류
영향
대립
소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