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세묘노비치 아바쿠모프

Виктор Семёнович Абакумов
소련 러시아 1908–1954 ✕ 처형

스메르시를 지휘하고 MGB를 통치한 스탈린의 보안 수장

1950년, 저명한 과학자 리나 시테른을 심문하며 "이 늙은 창녀야!"라고 고함치자, 시테른은 "장관께서 학자에게 말하는 태도가 그렇습니까"라고 답했다.

스탈린 시대 말기 국가보안을 총괄한 실력자로, 14세에 적군 입대 후 OGPU·굴라그를 거쳐 대숙청에서 살아남았고, 전시 방첩 기구 스메르시 총국장으로 발탁되어 스탈린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 종전 후 MGB 장관으로서 레닌그라드 사건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 탄압을 설계·집행하며 베리야를 견제하는 스탈린의 핵심 카드로 군림했다. 그러나 1951년 부하의 밀고로 '의사들 음모' 은폐 혐의로 체포되어 자신이 구축한 체제에 삼켜졌고, 스탈린 사후 레닌그라드 사건 조작 혐의로 재판받아 1954년 총살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스메르시와 전시 방첩 (1943–1946)

1943년 4월 스탈린은 군 방첩을 총괄하는 스메르시(СМЕРШ, '간첩에게 죽음을')를 창설하고 아바쿠모프를 2급 국가보안위원 계급으로 그 총국장에 임명했다. 스메르시는 국방인민위원회 소속이었지만, 아바쿠모프는 베리야가 아닌 스탈린에게 직접 보고하는 독자적 채널을 가졌다. 그의 지휘 아래 스메르시는 독소전쟁 후반부의 전장 방첩, 독일군 포로 심문, 소련으로 송환되는 전쟁포로와 강제노동자에 대한 정치적 심사(필트라치야)를 관장했다. 스탈린그라드·코카서스 전역 이후 진격하는 적군 내부의 배신자·탈영병 색출, 후방 교란 공작 적발, 그리고 점령 지역에서의 나치 협력자 체포가 주요 임무였다. 전쟁 말기에는 베를린으로 진입하는 소련군과 함께 움직이며 히틀러 자살 현장 확인, 나치 문서 확보, 그리고 독일 과학자·기술자들의 소련 이송 작전까지 관여했다. 스탈린은 그에게 수보로프 훈장 1급, 쿠투조프 훈장 1급 등을 수여하며 신임을 표시했고, 전후 MGB 장관 승진의 토대가 되었다.

MGB 장관과 몰락 (1946–1954)

1946년 5월 스탈린은 아바쿠모프를 MGB(국가보안부) 장관에 임명했다. 표면상으로는 베리야의 감독 아래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스탈린은 아바쿠모프를 통해 베리야의 권력을 견제했다. MGB 장관으로서 그가 처음 착수한 대규모 작전은 1949년 '레닌그라드 사건'이었다: 정치국보즈네센스키와 쿠즈네초프를 포함한 레닌그라드 당 간부들이 러시아 공화국 분리주의 음모 혐의로 체포·처형되었다. 이어 스탈린의 반유대주의 캠페인을 집행해 유대인 반파시스트 위원회를 해체하고, 솔로몬 로조프스키(구 볼셰비키)와 리나 시테른(저명한 과학자) 등 저명 유대인들을 체포·고문했다. 1951년 3월, 부하 류민이 유대인 의사 에팅게르의 사망을 빌미로 아바쿠모프가 '의사들 음모'를 은폐한다고 스탈린에게 밀고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아바쿠모프는 7월 12일 체포, 3개월간 빙점의 독방에서 고문자 류민에게 심문받았다. 1953년 3월 스탈린 사망 후에도 석방되지 못했고, 베리야가 오히려 미호엘스 암살 지시와 몰로토프 부인 사건 조작 등 혐의를 추가했다. 결국 1954년 12월 레닌그라드 사건 조작의 주범으로 6일간의 재판 끝에 사형 선고, 12월 19일 총살되었다. 향년 4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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