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안토노프-옵세옌코

Владими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Антонов-Овсеенко
소련 러시아 1883–1938 ✕ 처형

겨울궁전을 접수한 10월 봉기 지휘관, 21년 뒤 스탈린에게 총살되다

사형장으로 향하며 동료들에게 외투와 구두를 벗어 건넸다. 「안토노프-옵세옌코는 볼셰비키였고 끝까지 볼셰비키로 남았다고 전해 달라.」 21년 전 겨울궁전에서 임시정부를 체포했던 사나이였다.

체르니고프 귀족 가문 출신으로 사관학교를 중퇴하고 혁명운동에 투신했다. 1917년 10월 군사혁명위원회 비서로서 겨울궁전 습격을 지휘하고 임시정부 각료들을 직접 체포하여 10월 혁명의 상징적 순간을 완성했다. 내전기 우크라이나 전선 사령관을 지냈고, 1921년 탐보프 농민봉기 진압에서 유독가스 사용을 위협하기도 했다. 1923년 정치총국장으로 트로츠키를 옹호하다 좌천되어 체코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폴란드 전권대표와 러시아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스페인 내전 중 바르셀로나 총영사로 파견되었다가 1937년 소환·체포, 1938년 2월 총살. 1956년 복권.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17년 11월 8일 새벽, 임시정부를 체포하다

블라디미르 안토노프-옵세옌코는 차르 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사관학교를 나왔으나, 자신을 위해 준비된 장교의 길 대신 혁명을 택했다. 1905–1906년 군대 반란을 조직하다 사형을 선고받고 탈출한 그는 오랜 망명 끝에 1917년 귀국해 볼셰비키에 합류했고,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의 서기가 되었다.

1917년 11월 7일 밤(구력 10월 25일) 그는 포드보이스키와 함께 겨울궁전에 대한 최종 작전을 지휘했고, 이튿날 새벽 2시가 지나 궁전 안 소회의실로 들어서서 「군사혁명위원회의 이름으로 임시정부 각료 전원을 체포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격앙한 병사들로부터 각료들을 보호하며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로 호송했다.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 기록한 이 장면과 함께 그의 이름은 10월의 역사에 새겨졌다.

바르셀로나의 소련 총영사, 1936–1937

내전기에 안토노프-옵세옌코는 남부 전선과 우크라이나에서 소비에트 군대를 지휘했고, 1921년에는 탐보프 농민 봉기 진압을 총괄하는 전권위원회를 이끌었다. 이는 내전기 혁명 권력이 마주한 가장 어두운 과제에 속했다. 1920년대에 그는 적군 정치국의 수장을 지내다 1923년 트로츠키의 좌익 반대파를 지지해 해임되었고,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주재 외교관으로 일했다.

1936년 8월 스페인 내전이 격화되자 그는 바르셀로나 주재 소련 총영사로 부임했다. 카탈루냐 정부와 소련의 군사 원조를 조율하고 전선으로 가는 물자를 챙기던 그는 카탈루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련인이었다. 1937년 소환된 그는 러시아공화국 사법인민위원에 임명되었으나 몇 주 뒤인 10월 체포되었고, 1938년 2월 10일 총살되었다. 아들 안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안토노프-옵세옌코는 볼셰비키였고 마지막 날까지 볼셰비키로 남았다고 전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1956년 명예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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