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일리치 브레즈네프

Леонид Ильич Брежнев
소련 러시아 1906–1982 ○ 자연사

흔들지 않는 것을 통치로 삼은 사람

1979년 10월 7일, 동독 30주년 기념식. 브레즈네프가 호네커와 나눈 '사회주의 형제의 키스'는 베를린 장벽의 가장 유명한 벽화가 되었다.

흐루쇼프를 밀어낸 「안정」의 얼굴. 프라하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고, 국내에서는 아무것도 흔들지 않았다: 간부들은 종신이 되었고, 문제들은 이월되었다. 말년의 훈장 수집벽과 노쇠는 농담의 소재가 되었지만, 그 18년의 청구서는 후임들에게 넘어갔다. 그의 장례식은 정체(застой) 그 자체의 장례식으로 기억된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79년 크리스마스 이브 — 아프가니스탄 침공 결정

1979년 12월 12일, 브레즈네프의 크렘린 사무실에서 소수의 정치국원들이 모였다. 의제는 하나였다: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낼 것인가?

KGB 의장 안드로포프와 외무장관 그로미코가 브레즈네프를 설득했다: 아민 정권은 불안정하며 CIA가 개입하고 있다. 소련군 개입은 신속히 끝날 수 있다. 브레즈네프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12월 24일, 소련군 수송기가 카불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12월 27일에는 특수부대가 대통령궁을 습격해 아민을 살해했다.

브레즈네프는 이것이 단기 '국제적 의무' 이행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소련의 베트남이 되었다: 10년 전쟁, 150만 아프간인 사망, 1만 5천 소련군 전사, 그리고 소련의 도덕적·재정적 파탄. 브레즈네프가 죽은 지 7년 후, 소련군은 철수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큰 결정은 제국의 임종을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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