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지 않는 것을 통치로 삼은 사람
1979년 10월 7일, 동독 30주년 기념식. 브레즈네프가 호네커와 나눈 '사회주의 형제의 키스'는 베를린 장벽의 가장 유명한 벽화가 되었다.
흐루쇼프를 밀어낸 「안정」의 얼굴. 프라하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고, 국내에서는 아무것도 흔들지 않았다: 간부들은 종신이 되었고, 문제들은 이월되었다. 말년의 훈장 수집벽과 노쇠는 농담의 소재가 되었지만, 그 18년의 청구서는 후임들에게 넘어갔다. 그의 장례식은 정체(застой) 그 자체의 장례식으로 기억된다.
경력 연표
- 1950–52몰다비아 당 제1서기
- 1954–56카자흐스탄에서 처녀지 개간 지휘
- 1964.10흐루쇼프 해임을 주도하고 제1서기로
- 1968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브레즈네프 독트린
- 1972–79데탕트: SALT I·II, 헬싱키 협정
- 1977신헌법 제정, 국가원수 겸임
- 1979아프가니스탄 침공 승인
관련 역사 사건
- 1941–1945대조국전쟁정치장교로 제18군 등에서 복무, 소장으로 종전
- 1957반당 그룹 사건흐루쇼프 측근흐루쇼프의 지지 세력으로 사건 이후 승진했다.
- 1957–1965소련 우주 계획당 감독자1950년대 후반 당 중앙위원회 서기로 방위·우주 산업을 감독하며 초기 발사들을 지원했다.
- 1965–1970코시긴 개혁개혁을 제한정치적 위험을 경계하며 개혁의 범위를 좁혔다.
- 1968프라하의 봄개입을 결정개혁을 진영 이탈로 규정하고 브레즈네프 독트린으로 침공을 정당화했다.
- 1969–1979데탕트와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와 데탕트의 소련 측 당사자핵전쟁 방지 협정의 최초 초안을 제안한 쪽이었다. 1973년 워싱턴 답방에서 닉슨과 이 협정과 SALT II 기본원칙에 서명했다.
- 1975헬싱키 협정소련 지도부의 추진 주체국경 불가침 원칙의 문서화를 목표로 1970년대 내내 유럽안보회의 개최를 밀어붙였고, 1972년 디폴리 예비협의와 1973년 헬싱키 외상회의 개시를 이끌어냈다.
- 1979–1989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침공 결정병약한 지도부의 정점에서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승인했다.
- 19831983년의 위기RYaN 작전을 개시한 서기장1981년 5월 KGB 간부 회의에서 미국이 핵 선제공격을 준비 중이라고 선언하며 사상 최대 평시 정보작전 RYaN을 지시했다.
1979년 크리스마스 이브 — 아프가니스탄 침공 결정
1979년 12월 12일, 브레즈네프의 크렘린 사무실에서 소수의 정치국원들이 모였다. 의제는 하나였다: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낼 것인가?
KGB 의장 안드로포프와 외무장관 그로미코가 브레즈네프를 설득했다: 아민 정권은 불안정하며 CIA가 개입하고 있다. 소련군 개입은 신속히 끝날 수 있다. 브레즈네프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12월 24일, 소련군 수송기가 카불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12월 27일에는 특수부대가 대통령궁을 습격해 아민을 살해했다.
브레즈네프는 이것이 단기 '국제적 의무' 이행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소련의 베트남이 되었다: 10년 전쟁, 150만 아프간인 사망, 1만 5천 소련군 전사, 그리고 소련의 도덕적·재정적 파탄. 브레즈네프가 죽은 지 7년 후, 소련군은 철수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큰 결정은 제국의 임종을 앞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