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 의장에서 마셜 플랜의 설계자까지, 몰로토프에게 유럽 분열이 소련 탓이라고 응수한 외무장관
1947년 7월 2일 파리 3국 회담 마지막 세션, 몰로토프가 마셜 플랜을 '유럽을 둘로 가르는 음모'라고 비난하자 비도는 '유럽을 분열시키는 것은 바로 소련의 행동'이라고 조용히 응수했고, 이튿날 베빈과 함께 16개국 초청장을 발송했다.
1943년 장 물랭 체포 후 국민저항위원회(CNR) 의장직을 이어받아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이끌었고, 해방 후 기독교민주주의 정당 인민공화운동(MRP)을 창당했다. 외무장관으로서 1947년 파리 3국 회담에서 몰로토프의 '유럽 분열' 비난에 맞서 소련의 행동이야말로 유럽을 가르고 있다고 정면 반박했고, 소련 이탈 후 영국과 함께 서유럽 16개국을 규합해 마셜 플랜 수용을 주도했다. 1946년과 1949년 두 차례 총리를 지냈으며 디엔비엔푸 포위 당시 미국에 원자폭탄 지원을 요청할 만큼 식민지 전쟁에 매달렸다. 알제리 독립에 반대하며 1962년 비밀리에 '제2의 CNR'을 조직했다가 면책특권을 박탈당하고 브라질로 망명, 1968년 사면으로 귀국했으나 영향력은 회복하지 못했다.
경력 연표
- 1899프랑스 알리에주 물랭 출생
- 1925역사·지리 교수자격시험 수석 합격, 교사로 재직하며 기독교민주주의 언론 활동
- 1943–1944국민저항위원회(CNR) 의장, 장 물랭 후임으로 레지스탕스 통합 지도
- 1944–1946드골 임시정부 외무장관, 샌프란시스코 UN 창설회의 프랑스 수석대표
- 1947외무장관, 파리 3국 회담에서 몰로토프와 대치하며 마셜 플랜 수용 주도
- 1946, 1949–1950두 차례 총리(임시정부 주석·제4공화국 수상)
- 1954외무장관, 디엔비엔푸 전투 위기 관리
- 1962–1968알제리 독립 반대로 면책특권 박탈, 브라질 망명, 1968년 사면 귀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