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맹을 선택한 유고슬라비아의 파르티잔 지도자
1948년 코민포름 결별은 소련권 바깥의 사회주의 국가가 독자 노선을 택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파르티잔 투쟁을 이끌고 전후 유고슬라비아를 건설했다. 1948년 스탈린과 결별한 뒤에도 사회주의 연방을 이끌며 비동맹 노선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경력 연표
- 1941–1945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과 민족해방투쟁 지도
- 1945–1980유고슬라비아 연방 지도자
- 1948스탈린·코민포름과 결별
관련 역사 사건
비동맹운동의 창설
비동맹운동(NAM)의 뿌리는 1956년 7월 19일 브리유니 섬에서 티토,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가 서명한 '공동 반블록 정책에 관한 브리유니 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티토는 아프리카·아시아 신생 독립국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하며 탈식민지 연대를 구축했다. 1961년 9월 1일부터 6일까지 베오그라드에서 제1차 비동맹 정상회의가 개최되었고, 티토는 초대 사무총장(1961~1964)으로 선출되었다. 회의에는 25개국 정상이 참석했으며, 티토·네루·나세르 외에도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등이 공동 창설자로 참여했다. 베오그라드 회의는 냉전 양극 체제에 대한 직접적 대응으로, 강대국 군사동맹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이 집단적 자결권과 평화공존을 내세우며 국제 정치의 '제3의 길'을 제도화한 계기였다. 티토는 비동맹운동을 단순한 중립이 아니라 적극적 평화공존의 장으로 이끌며 1970년대까지 운동의 중심축으로 활동했고, 그가 사망한 1980년까지 유고슬라비아는 비동맹 외교의 구심점 역할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