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공동 창시자, 『마르크스주의와 철학』으로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맞선 독일 철학자
“이런 교수들이 몇 명만 더 나와 이론을 뽑아내면 우리는 끝장이다.” — 1924년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서 지노비예프가 코르슈와 루카치를 겨냥해
루카치와 함께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놓은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혁명적 실천가. 『마르크스주의와 철학』(1923)에서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유물사관을 적용해 헤겔 변증법의 혁명적 회복을 주장했고, 이는 코민테른의 맹렬한 비판을 불렀다. 1923년 튀링겐 노동자 정부의 법무장관, KPD 제국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좌파 반대파로 당에서 축출되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 학자로 활동하며 브레히트·벤야민·프랑크푸르트학파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경력 연표
- 1906–1910뮌헨·제네바·베를린에서 법학·철학 수학, 예나 대학 법학 박사
- 1912–1914런던에서 법률 연구, 페이비언협회 가입
- 1914–1918독일군 복무 — 무기 소지 거부, 두 차례 철십자 훈장 수여
- 1917독립사회민주당(USPD) 입당, 군인평의회 대표
- 1920USPD 좌파와 함께 KPD 합류, 예나 대학 강사
- 1923.3『마르크스주의와 철학』 출간 — 코민테른의 격렬한 비판 대상이 됨
- 1923.10–11튀링겐 노동자 정부 법무장관 — 제국군의 진압으로 27일 만에 붕괴
- 1924–1928KPD 제국의회 의원, 코민테른 제5차 대회 참석
- 1926.4KPD에서 축출 — 당내 좌파 반대파 '결연한 좌파(Entschiedene Linke)' 결성
- 1933제국의회 방화 사건 당일 독일 탈출 — 덴마크·영국 경유
- 1936–1961미국 망명 — 툴레인 대학,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 연구, 브레히트에 마르크스주의 강의
- 1938『카를 마르크스』 출간 —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깊은 영향
- 1950「오늘날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열 가지 테제」— 정통 마르크스주의와의 결별 선언
『마르크스주의와 철학』과 헤겔 변증법의 회복
1923년에 출간된 『마르크스주의와 철학』은 코르슈의 대표작으로,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과 함께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코르슈는 이 책에서 유물사관을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적용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어떻게 그 자신의 역사적 조건과의 관계를 망각하게 되었는지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제2인터내셔널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카우츠키, 메링 등)은 마르크스주의를 '순수 과학'으로 취급하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헤겔 관념론 철학으로부터 구출해낸 변증법적 원리를 사실상 폐기해버렸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철학과 무관하다고 주장했고, 바로 이 점에서 부르주아 철학 교수들과 의견이 일치했다. 코르슈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현실적 표현'이며,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이야말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생명임을 주장한다. 나아가 '역사적 특수화의 원리'(모든 사회적 범주를 특정한 역사적 시대의 구체적 형식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방법론)는 코르슈 이론의 핵심으로, 이후 『카를 마르크스』(1938)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사를 철학사의 일부로 재통합하려 한 급진적 시도였으며, 1924년 코민테른 제5차 대회에서 지노비예프의 공개 비난을 촉발했다. 1930년 제2판에서 코르슈는 레닌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추가함으로써 공산당 정통과의 결별을 확정지었다. 이 저작은 프랑크푸르트학파, 브레히트, 벤야민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1960년대 신좌파에 의해 재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