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 세묘노비치 모스칼렌코

Кирилл Семёнович Москаленко
소련 우크라이나 1902–1985 ○ 자연사

베리야를 직접 체포한 원수, 부하를 '인민의 적'이라 외친 사령관

1953년 6월 26일, 크렘린. 모스칼렌코는 주코프 등 장군들과 함께 권총을 품고 각료회의장에 들어섰다. 흐루쇼프의 신호에 베리야에게 다가가 "당신은 체포되었소"라고 선언했다. 스탈린 이후 최대 권력자를 한마디로 끝장낸 순간이었다.

우크라이나 농민 출신 포병 장교로, 스탈린그라드에서 제1전차군, 쿠르스크에서 제40군을 지휘했고 드네프르 도하로 첫 영웅 칭호를 받았다. 1953년 6월 흐루쇼프의 지시로 크렘린에 권총을 밀반입해 라브렌티 베리야를 직접 체포함으로써 탈스탈린 권력 투쟁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었다. 이후 전략로켓군 총사령관으로 소련 핵전력을 지휘했으나, 부하에게 '인민의 적'이라 폭언하는 불같은 성격으로 두려움을 샀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7년 주코프 규탄

1957년 6월 반당 그룹 사건에서 게오르기 주코프는 흐루쇼프 편에 서서 몰로토프-말렌코프-카가노비치 그룹을 분쇄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 보상으로 당 중앙위원회 간부회의 정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뒤인 10월, 흐루쇼프는 주코프가 군대 내 당 정치기관을 약화시키고 '보나파르트주의적' 야심을 품었다고 판단하여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10월 총회에서 모스칼렌코는 가장 공격적인 규탄자 중 하나였다. 주코프가 군대를 장악해 권력을 찬탈하려 한다고 열정적으로 비난하자, 주코프는 회의장에서 이렇게 받아쳤다. "네가 나를 뭐라고 비난하는 거냐? 네 자신이 내게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뭘 보고만 있습니까? 권력을 직접 손에 쥐십시오, 쥐라고요! '" 모스칼렌코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흐루쇼프는 회고록에서 "주코프를 공격하는 모스칼렌코의 맹렬함에 소름이 끼쳤다"고 적었다.

모스칼렌코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1953년에는 주코프와 함께 베리야 체포에 나섰고, 4년 뒤에는 주코프를 짓밟는 데 앞장섰으며,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인 1962년에는 자신도 전략로켓군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다. 흐루쇼프는 모스칼렌코를 가리켜 "제3의 모스칼렌코는 기회주의자이며, 원칙도 없고 비논리적인 인간"이라고 평했다. 주코프는 1999년 러시아 대통령 직속 정치탄압 희생자 재활위원회의 결정으로 모든 혐의가 공식적으로 벗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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