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렌부르크 사건에서 하르덴을 고소한 빌헬름 2세의 측근 장군
1907년 하르덴에게 동성애자로 지목되자 베를린 위수 사령관에서 물러나 명예훼손 소송을 냈고, 이 재판들이 오일렌부르크 사건의 중심이 되었다.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노이슈트렐리츠에서 오래된 귀족 몰트케 가문의 백작으로 태어난 프로이센 군인. 1893~1897년 빌헬름 2세의 시종 무관을 지냈고 1904년 소장, 1905년 베를린 위수 사령관이 되었다. 황제를 둘러싼 오일렌부르크의 「리벤베르크 서클」에 속했고, 막시밀리안 하르덴이 그를 동성애자로 지목하자 1907년 사령관에서 물러나 하르덴을 고소했다. 이 재판들이 오일렌부르크 사건의 중심이 되었다. 1923년 브레슬라우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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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1907
독일 국가기관대표
군사·지휘
관련 역사 사건
오일렌부르크 사건
1896년 과부 릴리 폰 크루제네초와 결혼했으나, 아내가 그와 빈 주재 대사 필리프 추 오일렌부르크의 오랜 관계를 알게 되어 1899년 이혼했다. 1906년 그녀가 넘긴 그의 편지들이 하르덴의 공격 근거가 되었다. 하르덴은 황제가 1차 모로코 위기 때 프랑스와의 전쟁을 무릅쓰지 않은 것을 리벤베르크 서클의 영향 탓으로 보고 이들을 거듭 공격했고, 그는 형법 제175조 위반 혐의를 받은 측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르덴이 결투 신청을 거절하자 1907년 6월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10월 첫 재판에서는 감정인 마그누스 히르슈펠트가 그에게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동성애적 기질」이 있다고 증언해 하르덴이 무죄를 받았다. 항소심에서는 히르슈펠트가 증언을 철회하고 오일렌부르크가 선서 증언을 되풀이해 하르덴이 징역 4개월을 받았으나, 1908년 5월 절차상 하자로 파기되었다. 1909년 4월 20일 다시 열린 재판에서 두 사람은 하르덴이 그의 명예를 해치거나 동성애자로 지목할 뜻이 없었다고 함께 밝혔지만, 법원은 하르덴에게 벌금 600마르크를 물렸고 하르덴이 상고를 거두어 판결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