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묘역 1번 초소를 세운 혁명 군인
1928년 6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트로츠키에게 보낸 편지: "고백서를 쓰느니 차라리 사지를 찢기는 편을 택하겠다. 나 홀로 남는다 해도 쓰지 않을 것이다."
1903년 입당한 볼셰비키로, 1905년 모스크바 무장봉기와 1917년 10월 모스크바 군사혁명위원회 지도부에 참여했으며, 혁명 직후 초대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내전기에는 동부전선과 제12군 혁명군사평의회 위원으로 활약했고, 1924년 레닌 묘역의 1번 초소를 창설했다. 1923년 46인 성명에 서명하며 반대파에 합류했고, 1927년 제15차 당대회에서 당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연설을 한 후 제명·유배되었다. 1936년 체포되어 1937년 제2차 모스크바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되었으며, 1986년 사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903–1907볼셰비키 입당, 1905년 모스크바 무장봉기 참여
- 1917.10–1917.11모스크바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무장봉기 지도
- 1917.11–1919.02초대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 (군사위원)
- 1919동부전선 및 제12군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 1921–1924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 재임, 1번 초소 창설
- 1925–1927중앙통제위원회 위원, 티미랴제프 농업아카데미 총장
- 1927제15차 당대회 연설 후 제명, 시베리아 유형
- 1936–1937체포, 제2차 모스크바 재판과 처형
관련 역사 사건
제15차 당대회 연설과 좌익 반대파 활동
무랄로프는 1923년 10월 당내 민주주의의 쇠퇴와 관료주의화를 비판한 〈46인 성명〉에 서명하며 좌익 반대파에 합류했다. 동료들이 반대파에서 떠나라고 권하자 그는 "나는 트로츠키가 아니라 볼셰비키 노병들을 지지한다. 스탈린은 레닌주의자답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로츠키는 회고록에서 무랄로프를 "공포를 모르는 혁명전쟁의 원수…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온과 확신을 발산했다"고 기록했다.
1927년 12월 제15차 당대회에서 무랄로프는 좌익 반대파를 대표해 발언대에 섰으나, "그만 내려와라!"라는 고함과 야유로 연설이 중단되었다. 그는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에 대해 우리 당 역사상 전례 없는 조치들이 취해졌다"며 "노련한 당원들이 체임벌린의 앞잡이로 몰리고 있다"고 항변했다. 대회는 그를 당에서 제명했다. 제명 직후 라콥스키와 함께 낸 성명에서 그는 "우리의 견해를 포기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그 견해가 틀렸다고 확신할 때에만 의무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당과 노동계급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1928년 6월 트로츠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랄로프는 "고백서를 쓰느니 차라리 사지를 찢기는 편을 택하겠다"고 썼다. 1930년에는 라콥스키 등과 함께 중앙위원회에 강제 집단화를 비판하는 성명을 제출하여, "완전 집단화라는 구호 자체가 사회주의로부터의 가장 기괴한 일탈"이며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기본적 원칙들과 레닌의 경고들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년간 견해 철회를 거부해온 무랄로프는 1936년 1월 마지못해 당 복귀를 청원했으나, 3개월 만에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