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알렉세예비치 프레오브라젠스키

Евгений Алексеевич Преображенский
소련 러시아 1886–1937 ✕ 처형

신경제정책 논쟁의 이론가

빅토르 세르주의 회고: "회의 중에 언제든 쓰러져 잠들 것 같았지만, 두뇌는 여전히 맑고 통계치로 가득 차 있었다."

볼셰비키 경제 이론가이자 부하린과 함께 『공산주의 ABC』(1919)를 집필한 선전가로, 당 중앙위원회 서기를 지내며 초기 소비에트 국가 건설에 참여했다. 1923년 '46인 선언'의 발기인이자 좌익 반대파의 핵심 논객으로서, 『새로운 경제학』(1926)에서 농민 부문의 잉여를 공업화 자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원시축적'론을 정식화해 신경제정책 논쟁을 이끌었다. 1929년 스탈린 노선으로 복귀했으나 곧 집단화 폭력에 반대하며 다시 지하 조직을 결성했고, 1937년 처형됐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새로운 경제학』과 사회주의적 원시축적론

프레오브라젠스키는 1926년 출간한 『새로운 경제학』에서 소비에트 경제를 계획적 사회주의 생산과 시장의 자생적 힘이 공존하는 혼합체로 분석하며, 자신의 핵심 이론인 '사회주의적 원시축적' 개념을 정식화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적 원시축적에서 착안한 이 개념은,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적 포위 속에서 공업화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농민·수공업 등 전(前)사회주의적 경제 부문으로부터 잉여를 체계적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시장의 가치법칙에 대항하는 '두 개의 조절자' 중 하나로 이 원시축적 법칙을 설정했으며, 구체적 수단으로 부농 중과세, 공산품 가격을 높이고 농산물 가격을 낮추는 '가격 가위', 그리고 통화 팽창을 제시했다. 리코프는 "농촌을 공업의 젖소로만 본다"고 비판했고, 부하린 역시 균형 성장론으로 맞섰다. 그러나 이 이론은 좌익 반대파의 경제 강령으로 채택되어, 신경제정책을 '일격에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잠식'해 들어가는 전략적 틀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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