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군사평의회의 젊은 반대파
1927년 11월 7일 혁명 10주년, 크렘린 맞은편 자택에서 레닌·트로츠키·지노비예프의 초상화와 '레닌의 유언을 이행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스탈린 지지자들이 난입해 파괴했고, 거리에서 구타당해 체포되었으나 그날 탈출했다.
라트비아 출신의 볼셰비키 혁명가·경제가. 열네 살에 입당하여 1917년 24세로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레닌의 핀란드 은신 시기 핵심 협력자였고, 10월혁명 당시 핀란드 주둔군을 페트로그라드로 수송했다. 내전기에는 동부·남부·서부·캅카스 전선의 혁명군사평의회 위원과 붉은군대 정치총국장을 지냈다. 좌익 반대파의 주요 지도자로 1927년 11월 마지막 공개 시위를 주도했고, 1930년 트로츠키주의 결별 선언 후 복권되었으나 이반 스미르노프의 지하 조직에 계속 가담했다. 1937년 1월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 1917–1921혁명·내전기 당과 군사 지도부
- 1923–1927좌익 반대파 활동
- 1937체포와 처형
관련 역사 사건
좌익 반대파와 1927년 11월 시위
레닌 사후 당내 투쟁에서 스밀가는 트로츠키를 지지하며 좌익 반대파의 핵심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의 서명은 반대파의 모든 주요 문서와 선언에 실렸다. 1927년 10월 중앙위원회에서 축출된 후, 11월 7일 혁명 10주년 기념일에 좌익 반대파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마지막 공개 시위를 감행했다. 스밀가는 시위대를 맞이하며 발코니에서 연설했고, 이후 '당 총노선' 지지자들에게 구타당했다. 그해 말 OGPU 특별회의에서 4년 유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미누신스크로 추방되었다(당초 정치국이 지정한 유형지는 콜파셰보였으나 스탈린에게 탄원하여 변경된 것이다). 1,500명이 송별에 모였고 트로츠키가 연설했다. 당 밖 생활을 견디지 못한 스밀가는 1930년 벨로보로도프, 라데크, 프레오브라젠스키와 함께 트로츠키주의와 결별을 선언했다. 곧 당에 복권되어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나, 이반 스미르노프의 지하 반대파 조직에 비밀리에 계속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