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이오아니스 메탁사스

Ιωάννης Μεταξάς
그리스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그리스 그리스인 1871–1941 ○ 자연사

왕정과 반공을 앞세운 8월 4일 독재자

“그렇다면 전쟁이다.”

그리스의 군인 출신 정치가로, 왕정과 반의회주의를 결합한 권위주의적 국가 질서를 추구했다. 1936년 국왕 게오르기오스 2세의 지지로 의회를 정지하고 8월 4일 체제를 세워 정당과 파업을 금지하고 좌파를 탄압했다. 동시에 국가 개입과 청년 조직을 통해 사회를 동원하려 했으며, 그의 체제는 파시즘과 권위주의적 보수 독재의 성격을 함께 지닌 것으로 논쟁되어 왔다. 1940년 이탈리아의 최후통첩을 거부해 전쟁을 이끌었지만, 1941년 독일 침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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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0그리스 육군 공병 소위
  • 1899–1903베를린 전쟁대학 유학
  • 1910–1912육군장관 겸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의 부관
  • 1912–1913발칸 전쟁 작전참모 및 런던 회의 군사고문
  • 1922–1936자유사상당 창당 및 국회의원
  • 1926–1928알렉산드로스 자이미스 내각 교통장관
  • 1932–1933파나기스 찰다리스 내무장관
  • 1936–1941그리스 총리, 8월 4일 체제 지도자

알렉산드로스 파파고스

Αλέξανδρος Παπάγος

알바니아 전선에 승부를 건 그리스 육군 원수

독일군이 북부 국경을 침공했을 때도 그리스군 주력은 알바니아 전선에 묶여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파파고스는 그리스 왕정과 메탁사스 독재체제에 충성한 직업군인이자 제2차 세계대전기 그리스 육군 지휘관이었다. 그는 1940년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방면 침공을 저지하고 반격을 조정했지만, 독일의 개입이 임박한 뒤에도 주력을 알바니아 전선에 남겨 메탁사스 방어선의 방어를 어렵게 했다. 점령기에 저항조직을 만들었다가 체포되어 강제수용되었고, 전후에는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휘한 뒤 총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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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6그리스 육군 기병 소위로 임관
  • 1935–1936군사장관, 육군 총감
  • 1936–1940육군 총참모장, 메탁사스 체제의 군사 기반 강화
  • 1940–1941그리스 육군 총사령관, 알바니아 전선과 메탁사스 방어선 작전 지휘
  • 1943–1945점령기 저항조직 군사계층 결성, 독일군에 체포되어 수감
  • 1949–1951내전기 정부군 총사령관, 공산군에 대한 최종 공세 지휘
  • 1952–1955그리스 총리

알렉산드로스 코리지스

Αλέξανδρος Κορυζής
그리스 국가기관 그리스 그리스인 1885–1941 ✕ 자살

침공 속에서 영국 원조를 받아들인 그리스 총리

1941년 4월 6일 독일의 침공이 시작되자 그는 영국군 철수를 요구한 독일의 통첩을 거부했다.

알렉산드로스 코리지스는 법률가·경제학자이자 은행가로, 국가 재정과 농업 신용 제도의 조직에 관여했다. 그는 이오아니스 메탁사스의 권위주의 정권에서 관료와 장관을 지냈지만, 정당 정치인이라기보다 행정가로 총리가 되었다. 1941년 1월 메탁사스 사망 뒤 영국군 지원을 받아들이며 독일의 침공에 맞선 정부를 이끌었고, 그 선택은 그리스의 전쟁 수행을 연합국과 결부시켰다. 독일군이 진격하던 4월 18일 자살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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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3그리스국립은행 입행
  • 1915은행 농업신용 부문 조직에 참여
  • 1919–1920스미르나 그리스 고등판무관부 경제고문, 국립은행 지점 설립
  • 1925–1928자치 건포도 기구 초대 의장
  • 1928–1933그리스국립은행 부총재
  • 1936–1939국가위생·구호부 장관
  • 1939–1941그리스국립은행 총재
  • 1941그리스 총리, 외무·국방 관련 장관 겸임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Γεώργιος Παπανδρέου

해방과 내전의 경계에 선 자유주의 정치가

카세르타 협정에서 그는 해방 뒤에도 영국군 사령관 스코비에게 군사 지휘권을 맡기는 구상에 동의했다.

그리스의 자유주의 정치가로, 군주제에 반대하면서도 공산주의 운동과는 대립한 사회개혁 지향의 인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망명정부를 이끌며 레바논 회의와 카세르타 협정을 통해 저항 세력의 정부 참여와 군 통합의 틀을 마련했다. 1944년 귀국 뒤 국민통합정부의 수상으로 국가 통치권을 세우려 했지만, 영국의 군사적 개입과 EAM·비EAM 세력의 충돌 속에서 그 구상은 데켐브리아나와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후 중앙연합을 창당해 민주주의를 옹호했으며 1967년 군사 쿠데타 뒤 가택연금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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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베니젤로스의 반군 정부에 합류해 반군주제 운동을 조직했다.
  • 1923내무장관
  • 1930–1932교육장관, 난민 아동을 위한 학교 확충을 추진했다.
  • 1935그리스 민주사회당 창당
  • 1944–1945망명정부 및 국민통합정부 수상, 레바논·카세르타 합의를 대표했다.
  • 1950–1952부수상
  • 1961–1965중앙연합 지도자, 1963년과 1964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 1967–1968군사정권 아래 가택연금

게오르기오스 2세

Γεώργιος Βʹ

왕정 복고와 메탁사스 정권의 후견인

1936년 8월 4일, 게오르기오스 2세는 메탁사스가 의회를 중단하고 독재체제를 세우는 데 왕의 승인을 보탰다.

게오르기오스 2세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 왕정의 복고와 유지를 추구한 그리스 국왕이었다. 1935년 왕위에 돌아온 뒤 이오아니스 메탁사스의 집권과 1936년 8월 4일 독재체제를 승인해 왕권과 군부 권위주의를 결합했다. 그는 영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며 이탈리아와 독일의 침공에 맞섰지만, 전쟁 중 망명 정부를 이끌고 해방 뒤에도 왕정 복귀를 추진해 저항운동 세력과 충돌하는 정치적 유산을 남겼다. 1946년 왕위에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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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2–1924그리스 국왕, 첫 재위
  • 1935왕정 복고 뒤 국왕으로 복귀
  • 1936–1941메탁사스 정권 아래 국가원수
  • 1940–1941그리스군 최고지휘권 행사, 추축국 침공에 대응
  • 1941–1944런던 중심의 망명 정부와 연계된 국왕
  • 1944–1946해방 뒤 귀환 문제를 둘러싼 국왕, 섭정에 동의
  • 1946–1947국왕으로 복귀, 사망할 때까지 재위

조지 시안토스

Γιώργης Σιάντος
그리스 공산당 공산주의 그리스 그리스계 아로마니아인 1890–1947 ○ 자연사

저항운동의 승리와 협상의 패배를 함께 짊어진 KKE 지도자

그를 '영국의 요원'으로 여긴 자하리아디스는 1946년 '어떤 경우에도 시안토스를 내 뒤에 남겨두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해외 탈출을 미뤘다.

담배 노동자 출신의 노동운동가 조지 시안토스는 그리스 공산당(KKE)의 핵심 지도자로 성장했다. 독일 점령기에 니콜라오스 자하리아디스가 다하우로 이송되자 당의 직무대행 서기를 맡아 KKE와 민족해방전선(EAM), 그리스 인민해방군(ELAS)의 저항을 이끌었다. 그는 1944년 12월 무장충돌에서 EAM군을 지휘했고, 무장부대 해산에 반대하면서도 결국 협상 노선을 택했다. 1945년 바르키자 협정에서 EAM 대표단을 이끌고 서명했지만, 협정의 무장해제 조항은 뒤이은 백색 테러와 새로운 내전 국면 속에서 EAM의 정치적 패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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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카르디차 담배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
  • 1922그리스 담배노동자연맹 서기장, SEKE 가입
  • 1927KKE 중앙위원회·정치국 위원
  • 1936팔라ï코 메토포 전선 소속 트리칼라 국회의원
  • 1941KKE 직무대행 서기장, 점령기 당 지도
  • 1944PEEA 내무·식량 담당 서기, 12월 무장충돌에서 EAM군 지휘
  • 1945KKE·EAM 바르키자 협상 대표단 단장, 협정 서명

나폴레온 제르바스

Ναπολέων Ζέρβας
반혁명 세력 그리스 그리스인 1891–1957

점령기 저항과 반공 정치 사이의 군인 지도자

1942년 11월, 그는 영국 공작대와 ELAS의 아리스 벨루히오티스 부대가 합류한 고르고포타모스 작전에 자기 병력을 투입했다.

그리스 육군 장교 출신인 나폴레온 제르바스는 1941년 국민공화그리스동맹(EDES)을 세우고 점령에 맞선 비공산주의 저항을 이끌었다. 그는 1942년 고르고포타모스 철교 폭파작전에서 영국 특수작전집행부, ELAS와 협력했지만, 곧 영국의 지원과 공산주의 세력과의 대립을 중시하며 공화주의에서 왕정 지지로 선회했다. 해방 뒤에는 우익 정치인과 공공질서 행정가로 활동하며 저항운동의 군사적 권위를 내전기의 국가 탄압과 결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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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1914지원병으로 입대해 발칸전쟁에 참전하고 하사관학교를 졸업했다.
  • 1916–1920국방운동에 가담해 마케도니아 전선에서 복무하고 소령으로 진급했다.
  • 1925–1926판갈로스 정권 아래 아테네 수비대 사령관과 공화국수비대 대대장을 지냈다.
  • 1941베니젤로스파 장교들과 국민공화그리스동맹(EDES)을 창립했다.
  • 1942–1944EOEA를 조직해 에피루스에서 무장 저항을 지휘하고 고르고포타모스 작전에 참여했다.
  • 1946–1947국회의원이 되어 막시모스 내각에서 무임소 장관과 공공질서 장관을 맡았다.
  • 1950–1951소포클리스 베니젤로스 내각에서 공공사업 장관을 지냈다.

알렉산드로스 스볼로스

Αλέξανδρος Σβώλος
비볼셰비키 사회주의자 그리스 그리스계 아로마니아인 1892–1956 ○ 자연사

민중주권을 설계한 사회주의 헌법학자

1944년 레바논 회의에서 그는 저항운동이 세운 해방 지역의 대표성을 전국 정부 구상에 반영하려 했다.

알렉산드로스 스볼로스는 노동권과 민주적 헌정 질서를 연구한 그리스의 헌법학자이자 사회주의 정치인이었다. 추축국 점령기에 민족해방정치위원회 의장으로서 해방 지역의 행정과 민중 대표 제도 구상을 이끌었고, 레바논 회의에서 저항운동과 망명정부의 연합을 모색했다. 해방 뒤에는 국민통합정부의 재무장관으로 경제 재건을 추진했으나, 좌파 장관들과 함께 사임하며 저항군 해산에 반대했다. 그는 반공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독자적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고, 그 긴장은 전후 그리스 정치에서 그의 영향력과 고립을 함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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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아테네대학교 헌법학 박사 취득, 강의 시작
  • 1917–1920국가경제부 노동·사회정책국장
  • 1929–1946아테네대학교 헌법학 교수
  • 1941–1943마케도니아·트라키아 위원회 의장
  • 1944.04–09민족해방정치위원회 의장, 외무·교육·종교·국민계몽 담당 서기
  • 1944.09–12국민통합정부 재무장관
  • 1945–1953사회당·인민민주주의동맹 의장
  • 1950테살로니키 선출 국회의원
  • 1956테살로니키 선출 국회의원

콘스탄티노스 마니아다키스

Κωνσταντίνος Μανιαδάκης
그리스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그리스 그리스계 1893–1972 ○ 자연사

독재정권의 공안기구 설계자

경찰은 1940년 가짜 KKE 지도부와 위조 《리조스파스티스》를 내세워 당원들을 혼란에 빠뜨리려 했다.

그리스 육군 장교 출신인 콘스탄티노스 마니아다키스는 이오아니스 메탁사스의 4·8월 독재에서 공안과 반공 탄압을 조직한 핵심 관료였다. 그는 아시팔리아의 정보망과 고문, 섬 강제추방을 결합해 그리스 공산당(KKE)의 공개 활동과 지도부를 무력화했다. 1940년에는 경찰이 통제하는 가짜 KKE 지도부와 위조된 《리조스파스티스》를 만들어 당원들을 혼란시키려 했다. 해방 뒤에도 반공주의를 정치 자산으로 삼아 의원이 되었고, 독재 시기의 책임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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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육군사관학교 졸업, 공병 소위
  • 1919–1922소아시아 원정 참전
  • 1923레오나르도풀로스·가르갈리디스 운동 참여로 전역
  • 1929중령으로 군을 사임
  • 1936–1941메탁사스 정권 공안차관, 국가보안 체계 조직
  • 1941코리시스·추데로스 정부의 공안차관 및 내무장관
  • 1941–1949아르헨티나 주재 그리스 공관 감독관
  • 1950–1964우익 정당 소속 국회의원
그리스 인민해방군 공산주의 그리스 그리스계 1905–1945 ✕ 자살

점령에 맞선 민중전쟁의 조직가

1942년 도므니스타에서 그는 소수의 산악 유격대를 이끌고 ELAS의 출현을 선언했다.

본명 아타나시오스 클라라스인 아리스 벨루히오티스는 그리스 공산당 활동가로서 점령기 그리스의 민족해방전선 EAM과 그 군사조직 ELAS를 연결한 핵심 조직가였다. 그는 1942년 루멜리 산악지대에서 소수의 유격대를 꾸려 ELAS의 초기 기반을 세웠고, 규율과 대중정치를 결합해 저항을 전국적 힘으로 키웠다. 고르고포타모스 교량 폭파 같은 연합작전은 점령에 맞선 무장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지만, EAM-ELAS의 우세는 다른 저항세력 및 영국과의 충돌도 심화시켰다. 바르키자 협정 뒤 무장해제를 거부한 그는 당 지도부와 결별하고 1945년 고립된 채 죽었으며, 이후 그리스 공산주의 운동에서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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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년대좌익·반군국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그리스 공산당에 가입
  • 1930년대 초공산주의 신문 《리조스파스티스》 편집진으로 활동
  • 1936–1941메타자스 독재 아래 투옥과 강제 전향 선언을 겪음
  • 1942.01KKE의 파견으로 루멜리에서 유격전 준비를 시작
  • 1942.06도므니스타에서 ELAS의 창설과 산악 유격대 활동을 공개
  • 1942.11고르고포타모스 교량 폭파작전에 참여
  • 1944.10해방 뒤 중부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에서 ELAS 작전을 지휘
  • 1945바르키자 협정 뒤 무장투쟁을 계속하다 전사

아포스톨로스 산타스

Απόστολος Σάντας
그리스 그리스인 1922–2011 ○ 자연사

아크로폴리스에서 점령의 상징을 끌어내린 저항가

1941년 5월 30일 밤, 산타스와 마놀리스 글레조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나치 깃발을 끌어내렸다.

아포스톨로스 산타스는 제2차 세계대전기 그리스의 저항운동가로, 마놀리스 글레조스와 함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나치 깃발을 철거한 일로 기억된다. 두 학생의 행동은 점령에 맞선 초기 공개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독일 당국은 그들에게 궐석 사형을 선고했다. 산타스는 이후 EAM과 ELAS에 참여해 무장투쟁을 벌였지만, 해방 뒤에는 좌파라는 이유로 이카리아와 마크로니소스 등지에 유배되었다. 그는 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가 1962년 그리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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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1마놀리스 글레조스와 함께 아크로폴리스의 나치 깃발을 철거했다.
  • 1942민족해방전선(EAM)에 참여했다.
  • 1943그리스 인민해방군(ELAS)에 참여해 중부 그리스에서 추축국에 맞서 싸웠다.
  • 1944해방 뒤 법학 공부를 마쳤다.
  • 1946–1948좌파적 신념 때문에 이카리아, 프시탈레이아, 마크로니소스로 유배되었다.
  • 1948–1962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로 탈출해 정치적 망명을 얻었다.
  • 1962–2011그리스로 돌아와 아테네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