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유대인 추방은 로흐네스의 괴물과 같은 것이 되었다: 많은 이가 봤다고 하나 단 하나의 확실한 증거도 제시된 적 없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스탈린 시대 연구자로, 소련 국가 반유대주의의 기록을 발굴해 학계의 표준을 세웠다. 그의 저서 『붉은 파라오의 포로』(1994)와 『스탈린의 비밀 정책: 권력과 반유대주의』(2001)는 의사들의 음모와 반세계주의 캠페인을 포함한 스탈린 말기 유대인 탄압의 전모를 기록으로 실증한 기념비적 작업이다. 2003년 '데포르타치야: 미스티피카치야' 논문에서 스탈린이 유대인 대량 추방을 계획했다는 통설에 대해 '로흐네스의 괴물과 같다'고 비판하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 입장은 브렌트·나우모프의 『스탈린의 마지막 범죄』와 대비되는 대표적 학설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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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항공산업 인민위원회에 관한 후보자 학위논문 심사 통과
1994『붉은 파라오의 포로』 출간
2001『스탈린의 비밀 정책: 권력과 반유대주의』 출간 (2003년 개정판)
2003러시아 유대인공동체연맹 '올해의 인물 5762' 선정
2008박사학위 논문 심사 통과: 소련 정치 지도부와 유대계 인텔리겐치야(1936–1953)
소련군이 떠나면 나지불라 정권도 곧 무너지리라는 예측과 달리, 그는 그 정권이 철군 후 3년 넘게 버텼다고 짚었다.
마크 N. 카츠는 러시아 정치와 외교정책, 혁명, 테러와의 전쟁을 연구한 미국 국제정치학자다.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소련과 러시아의 제3세계 정책 및 혁명 운동의 국제적 차원을 가르치고 저술했다. 201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분석하며, 소련군 철수 뒤에도 소련의 군사·경제 원조가 나지불라 정권을 3년 넘게 지탱했고 철군이 곧 붕괴를 뜻하지 않았다고 논증했다.
「민족주의는 행동의 원인일 뿐 아니라 행동의 산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고 베이신저는 말했다. 사건이 구조를 반영할 뿐 아니라 구조 자체를 재구성한다는 뜻이다.
미국 비교정치학자로, 소련 민족주의 동원과 국가 붕괴의 관계를 사건 데이터로 실증한 연구자이다. 2002년 저서 『Nationalist Mobilization and the Collapse of the Soviet State』에서 소련 해체가 구조적 필연이 아니라, 한 공화국의 민족운동이 다른 공화국으로 확산되는 '조수(tidal)' 효과로 사건들이 누적되며 초래되었다고 주장했다. 선리(Ronald Suny)의 구조적 설명과 대비되는 이 입장은, 민족운동의 전염성과 사건의 우발성이 제도의 제약을 압도할 수 있다고 보며 이후 색깔혁명 연구로도 확장되었다.
2017년 휴스턴 공항에서, 점령기 기억을 연구해 온 이 역사가는 강연 수당을 문제 삼은 미 국경 당국에 10시간 구금되며 강제송환 직전까지 갔다.
앙리 루소는 제2차 세계대전기 프랑스와 비시 체제, 그리고 그 기억의 변화를 연구한 프랑스 역사가다. 이집트에서 태어난 유대계 가정이 수에즈 위기 뒤 프랑스로 이주한 경험은 그의 역사적 관심과도 맞닿아 있다. 대표작 《비시 증후군》은 해방 이후 프랑스 사회가 협력과 책임을 망각하거나 재구성해 온 과정을 분석했으며, 그는 레지스탕스의 규모와 국민적 단결을 과장하는 기억의 신화를 ‘레지스탕시알리슴’이라 불렀다. 그의 작업은 역사적 사실과 집단기억, 현재의 정치적 사용을 구별하면서도 서로의 관계를 추적하는 현대사 연구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그를 "20세기 프랑스사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 한 명"이라 평했다.
줄리언 잭슨은 20세기 프랑스사를 중심으로 연구한 영국 역사가로, 프랑스 대공황과 인민전선에서 점령과 드골주의까지 정치적 선택의 조건과 결과를 추적했다. 『프랑스 인민전선』은 개혁과 재무장, 민주주의 방어와 대중운동의 관계를 정치·사회·문화의 차원에서 분석해 이 시기를 둘러싼 역사학적 논쟁의 기준점이 되었다. 이후 그는 1940년 프랑스의 패배와 독일 점령, 전후 동성애 정치, 1968년 5월을 다루며 현대 프랑스사의 범위를 넓혔다.
켐프는 『베를린 1961』에서 체크포인트 찰리 전차 대치 때 루시어스 클레이 장군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한 말을 기록했다: "우리가 신경 쓰는 건 우리의 신경이 아니라 워싱턴에 계신 여러분의 신경입니다."
프레더릭 켐프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저자로, 독일계 이민자 가정의 배경과 유럽 특파원 경험을 바탕으로 냉전의 정치와 대서양 관계를 다뤘다. 그의 대표작 『베를린 1961』은 새로 공개된 미국·소련·독일 문서와 인터뷰를 엮어 베를린 장벽 건설과 1961년 10월 체크포인트 찰리의 전차 대치를 재구성했다. 이 책은 케네디의 위기 대응을 약함으로 해석하고 흐루쇼프의 선택을 제약 조건 속에 놓았으며, 그 비대칭적 논지는 독립 서평에서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해체』에서 워커는 소비에트 연방의 완전한 붕괴를 정작 바란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주권'의 의미를 둘러싼 혼란이 붕괴를 앞당긴 '전쟁의 안개'였다고 분석한다.
에드워드 W. 워커는 미국의 정치학자로 소련과 탈소련 공간의 민족정치, 연방제, 분리주의를 연구했다. 그는 버클리에서 소련·유라시아 연구 프로그램을 이끌며 공산주의 체제와 탈공산주의 정치의 연결을 분석했다. 대표작 Dissolution은 소비에트 연방제가 민족공화국을 통합하는 동시에 주권의 언어와 제도를 제공했으며, 중앙 통제가 약화되자 그 틀이 분리를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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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하버드대학교 학사
1986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석사
1992컬럼비아대학교 정치학 박사
1997『소수자, 물라, 근대성』 편집
1998–1999후버연구소 내셔널 펠로
2003『해체: 주권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출간
2000년대–2017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정치학과 부교수 겸 유라시아·동유럽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
1989년 혁명을 목격하고 '개혁혁명(refolution)' 개념으로 평화적 체제 전환을 규정한 영국 역사가
프라하의 한 지하 술집에서 바츨라프 하벨을 만난 1989년 11월 23일, 하벨이 체제 전환의 속도에 놀라워하자 응수했다: '폴란드에서는 10년, 헝가리에서는 10개월, 동독에서는 10주 걸렸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10일이면 되지 않을까요?'
옥스퍼드대 유럽학 교수이자 《가디언》 칼럼니스트로, 중동부 유럽의 현대사와 1989년 공산 체제의 붕괴를 현장에서 추적해온 영국 역사가다. 1989년 바르샤바·부다페스트·베를린·프라하를 종횡하며 시민혁명을 목격하고 《마법의 랜턴》(1990)에 기록했으며, 개혁(reform)과 혁명(revolution)의 합성어인 '개혁혁명(refolution)' 개념을 제안해 평화적 체제 전환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했다. 조지 케넌이 '현재의 역사가'라 부른 뒤로도 40년 가까이 유럽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글쓰기를 이어왔으며, 2017년 샤를마뉴상을 비롯한 수상 경력은 그의 저작이 학계와 정책 결정 현장을 동시에 움직여왔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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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파업을 서방 언론 최초로 보도, 레흐 바웬사를 만남
1986–1987우드로 윌슨 국제학술센터 펠로
1989바르샤바·부다페스트·베를린·프라하에서 1989년 혁명 목격, 《마법의 랜턴》(1990) 집필
그는 2009년 홀로도모르를 조직한 공산 지도자들의 기념비를 없애지 말고, 곁에 '이 인물은 홀로도모르의 창시자'라 새긴 검은 명판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바실 마로치코는 1920~1930년대 우크라이나 농촌과 홀로도모르를 연구해 온 우크라이나 역사학자다. 그의 연구는 기근을 추상적 재난이 아니라 곡물 징발과 농촌 통제를 결합한 국가 정책의 결과로 분석한다. 그는 흑색명부가 우크라이나 SSR 405개 구역 중 252개를 포괄했다는 계산을 제시하며, 식량 박탈과 행정적 격리가 농민 사회를 어떻게 압박했는지 보여 주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 붕괴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핵심 요인이었다」는 주장으로 그는 이 분야의 표준 인과 틀을 세웠다.
라파엘 레우베니는 이스라엘 출신의 국제정치경제학자로, 인디애나대학교 공공환경대학 교수이다. 1999년 아심 프라카시와 공동 집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소련의 붕괴」는 소련-아프간 전쟁이 인식 효과, 군사 효과, 정당성 효과, 글라스노스트 효과라는 네 가지 경로를 통해 소련 해체를 촉발했음을 논증하여 이 분야의 표준적 인과 메커니즘 틀로 자리 잡았다. 그의 연구는 경제 세계화, 기후 이주, 자연자원과 전쟁의 관계, 문명 붕괴 모델링 등으로 확장되었다.
그의 연구에서 1956년 혁명은 냉전을 끝낸 돌파구가 아니라 냉전의 교착을 굳힌 세계정치의 사건이었다.
베케시 처버는 헝가리 현대사와 냉전 국제정치를 연구한 역사가로, 1956년 혁명을 국내 사건에 가두지 않고 세계정치의 교차점에서 분석했다. 그의 연구는 혁명이 냉전의 균형을 무너뜨렸다기보다 그 교착을 굳히는 국제적 조건과 선택을 추적한다. 그는 문서 편찬과 다중 기록보관소 연구를 통해 헝가리의 경험을 동유럽 사회주의권과 세계 냉전사의 연결 속에 놓았다.
하버드대학교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 석좌교수이자 우크라이나 연구소 소장을 지낸 역사학자로, 동유럽과 냉전의 지성사·국제사를 연구해 왔다. 2018년 『체르노빌: 비극의 역사』로 베일리 기퍼드상을 수상했으며, 이 책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글라스노스트를 촉발하고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의 기반을 형성해 소련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제국』, 『유럽의 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통해 소련 해체와 동유럽 민족 정체성의 역사적 기원을 재해석하며 현대 동슬라브 역사서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로 자리 잡았다.
그는 소련 붕괴의 원인을 이렇게 압축했다: '완벽한 폭풍과 무능한 선장.' 소련은 피할 수 없는 몰락이 아니라 고르바초프의 실기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출신의 냉전사학자로, 모스크바국립대학 역사학부와 소련 과학아카데미 미국·캐나다연구소에서 수학했으며, 1985년 동 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 국가안보아카이브 연구원을 거쳐 템플대학 교수를 지냈고, 2013년부터 런던정경대학(LSE) 국제사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출간한 《Collapse: The Fall of the Soviet Union》에서 소련 붕괴는 필연이 아니었으며 고르바초프의 개혁 실패가 '완벽한 폭풍과 무능한 선장'의 결과였다고 주장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 책으로 2022년 컨딜 역사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야로프의 연구는 봉쇄를 견딘 사람들을 영웅과 가해자의 이분법이 아니라 선택과 생존의 기록으로 읽게 했다.
세르게이 야로프는 러시아 20세기 사회사와 노동자 정치의식을 연구한 역사가로, 봉쇄 레닌그라드의 일상과 도덕적 선택을 핵심 주제로 삼았다. 그는 영웅적 저항이나 행정적 동원만으로 봉쇄사회를 설명하지 않고, 굶주림 속 연대와 순응, 생존 전략이 얽힌 경험을 사료로 복원했다. 『봉쇄 윤리』와 『봉쇄 레닌그라드의 일상생활』은 재난 속 인간 행위의 모순을 공적 기억의 중심으로 끌어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서방과의 경쟁에서 분명히 패배했지만, 무기력하게 안정적이었고 상당 기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소련사 연구의 구조적·제도적 전환을 이끈 미국의 역사가로, 스탈린주의를 하나의 '문명'으로 분석한 『마그니토고르스크』(1995)와 3권작 스탈린 평전으로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피한 아마겟돈』(2001)에서 그는 소련이 1985년까지도 '무기력하게 안정적'이었으며, 체제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고르바초프의 개혁 시도 자체였다고 주장해 소련 붕괴 논쟁의 핵심 축을 재편했다. 프린스턴대에서 33년간 러시아·유라시아 연구를 이끌었고,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혁명을 추상적 사회 세력의 행진이 아니라 복잡한 개인들의 비극으로 쓰려 했다고 말했다.
오를란도 파이지스는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사회를 사회사와 개인의 경험을 함께 엮어 해석한 영국 역사학자다. 대표작 『인민의 비극』은 1891년부터 1924년까지를 다루며 1917년의 우연성과 대중의 행위, 볼셰비키 권력의 형성을 하나의 서사로 묶었다. 그의 해석은 수정주의적 사회사와 전체주의 학파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평가되지만, 혁명과 폭력의 관계를 비관적으로 읽는다는 비판도 받았다. 『속삭이는 자들』에서는 구술 증언과 가족 기록으로 스탈린 시대의 사적 삶을 복원했다.
『스탈린: 한 지도자의 생애』 결론에서 흘레브뉴크는 "러시아 사회의 상당 부분이 스탈린식 과거에서 현재의 처방을 찾는다"고 진단했다.
올레크 흘레브뉴크는 소련 스탈린 시대의 정치사와 굴라크를 연구한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기록문서 편집자다. 국가기록원 자료와 당·정부 문서를 바탕으로 대숙청을 지역의 자발적 폭발이 아니라 중앙의 결정과 집행 체계가 작동한 사건으로 해명했다. 그의 연구는 스탈린의 지시와 통제가 테러의 방향과 규모를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문서가 남기지 않는 동기와 과정을 신중하게 구분한다. 그는 학술서와 사료집을 통해 러시아 사회의 스탈린 신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왔다.
스페인 내전은 어떤 의미에서 불이 꺼지기 전의 전쟁이었다. 권력 행위자들이 다르게 행동했다면 유럽과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었던 전쟁.
리버풀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영국의 현대 유럽사 학자로, 왕립할러웨이 런던대학의 현대유럽사 명예교수이다. 2002년에 출간한 『전쟁 속의 스페인 공화국』은 스페인 내전 연구의 표준 저작으로 자리 잡았고, 2005년 『스페인 내전: 아주 짧은 입문』은 5만 부 이상 팔리며 다섯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녀의 연구는 서방 열강의 불개입 정책에 버려진 민주 공화국의 비극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스페인 내전을 유럽 파시즘에 맞선 최초의 국제적 전장이자 냉전적 해석 이전의 마지막 반파시즘 전쟁으로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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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1990년대University of Southampton에서 연구·강의
1995Jo Labanyi와 『Spanish Cultural Studies』 공동 편집 (Oxford University Press)
2002『The Spanish Republic at War』 출간 (Cambridge University Press)
아나톨 리벤은 영국의 기자·저술가·정책 분석가로, 현장 취재와 역사적 맥락을 결합해 국가와 민족주의의 문제를 다뤘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발트 지역에 상주한 《타임스》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 회복의 격동을 취재했고, 그 경험을 《발트 혁명》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발트 사회의 계급 구조와 민족적 긴장, 독립 이후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갈림길을 함께 분석했다. 리벤은 민족 정체성의 복원이 배타적 민족주의와 충돌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무조건적 시민권 부여와 국가들의 조건부 시민권 사이의 긴장을 단순한 도식으로 환원하지 않았다.
그는 스탈린의 최선의 행동은 '1941년 10월 모스크바를 떠나지 않은 것' 하나뿐이라 말한다.
모스크바에서 역사 교사와 학교 운영자로 일하며 대숙청기 국가보안기관을 연구해 온 역사가다. NKVD 지도부 내부 투쟁을 다룬 첫 연구(2006)에 이어 『「피의 난쟁이」 대 인민의 수령: 예조프의 음모』(2009)와 『스탈린과 NKVD』(2013)를 펴냈고, 대테러의 집행을 지역별 통계 편차와 예브도키모프의 '북캅카스파' 같은 체키스트 집단의 인맥 분석으로 재구성한다. 이 서가에 실린 두 연구서의 저자다.
반세기 동안 넓게 흔들리던 겨울전쟁 손실 기록을 그는 이름별 데이터베이스로 다시 세어, 전사자 13만 8천여 명과 핀란드군 대비 5배가 넘는 손실 비를 밝혀냈다.
유리 킬린은 카렐리야와 소련의 대외·군사정책을 연구해 온 페트로자보츠크의 역사학자다. 그는 겨울전쟁에서 국가가 남긴 손실 기록을 비판적으로 대조하는 연구를 이끌었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사업은 전사자 집계 문제를 다시 공론화했다. 2012년 그가 제시한 소련군 전사자 13만 8,533명은 이 전쟁의 인명 손실을 둘러싼 주요 수정안으로 자리 잡았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런던 SOAS를 거쳐 홍콩대학 교수로 있다. 2010년 『마오의 대기근』은 2000년대에 열린 중국 지방 당안관 자료를 이용해 대약진 운동 시기 최소 4,500만 명이 굶주림·폭력·과로로 죽었다고 추산하고, 기근이 자연재해나 계획 착오가 아니라 국가 폭력의 결과였다고 주장해 새뮤얼 존슨상을 받았다. 이어 『해방의 비극』(1949~1957)과 『문화대혁명』(1962~1976)으로 3부작을 완성했다. 그의 수치와 해석은 학계에서 논쟁의 대상이며, 다른 연구자들은 사망자 수를 1,500만~3,600만으로 추정한다.
숙청 명단이 봉쇄기에 쿠즈네초프가 발탁한 간부들과 겹친다는 점을 들어, 그는 「이것은 '레닌그라드' 사건이 아니라 '쿠즈네초프' 사건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키릴 볼돕스키는 소련 후기와 현대 러시아의 정치사를 연구하는 러시아 역사학자다. 그는 레닌그라드 사건 전후의 당 apparatus와 봉쇄의 역사를 함께 다루며, 공개된 기록이 밝혀 주는 것과 여전히 남은 공백을 구분한다. 그의 연구는 이 사건을 단순한 숙청의 서사가 아니라 당 권력, 지역 통치, 기억의 충돌로 읽게 한다.
소련에서 나온 15개국은 1917년에는 대체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소련이 국가를 민족 원칙에 따라 조직한 결과였다.
소비에트 민족정책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캐나다 출신 역사학자. 2001년 저서 『긍정적 차별의 제국』에서 초기 소련을 민족을 억압한 '민족의 감옥'이 아니라 세계 최초로 소수민족 우대 정책을 체계적으로 시행한 '긍정적 차별의 제국'으로 재규정하며 리처드 파이프스의 전통적 해석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로서 소련사, 스탈린주의, 민족·제국 연구를 가르치며 우크라이나 연구소(HURI)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