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nseits von Gut und Böse. Vorspiel einer Philosophie der Zukunft · 1886

선악의 저편

Beyond Good and Evil

프리드리히 니체가 1886년 자비로 펴낸 책으로, 부제는 “미래 철학의 서곡”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생각을 시적 비유 대신 논쟁적인 아포리즘으로 풀어, 진리를 향한 의지와 선악의 대립을 당연시한 과거 철학자들의 독단을 공격하고 모든 생명의 근본 충동을 권력의지로 설명한다. 오늘날 유럽의 도덕을 “무리 동물의 도덕”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을 기독교 도덕의 상속자로 규정하고,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을 구분하는 제260절을 담고 있다.

상세

왜 “선악의 저편”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거의 읽히지 않자, 니체는 같은 생각을 비유와 노래가 아닌 날카로운 산문으로 다시 써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온 『선악의 저편』은 니체의 후기 철학, 곧 도덕 비판과 근대 비판을 가장 압축해서 보여 주는 책이다. 제목은 도덕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선과 악을 절대적으로 맞서는 두 가치로 보는 사고방식 자체,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철학의 체계들을 의심하라는 뜻이다. 영어 위키백과가 전하듯 니체는 이미 제2절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정반대라는 믿음을 형이상학자들의 근본 신앙이라 부르며 문제 삼는다.

1885년 6월 실스마리아에서 쓴 서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진리가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떤가?” 니체는 독단적인 철학자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서툴게 진리에 다가갔기 때문에 진리를 얻지 못했으리라고 빈정대며, 지금까지 가장 나쁜 오류는 플라톤이 고안한 “순수 정신”과 “선 자체”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오류에 맞선 싸움을 이렇게 요약한다. “기독교는 ‘민중’을 위한 플라톤주의다.”

denn Christenthum ist Platonismus für’s „Volk“

니체가 보기에 플라톤과 기독교에 맞선 수천 년의 싸움은 유럽 정신에 팽팽한 활시위 같은 긴장을 만들었고, 이제 그 활로 가장 먼 과녁을 겨눌 수 있다. 이 과녁을 겨누는 사람이 그가 “자유정신”이자 “훌륭한 유럽인”이라 부른 미래의 철학자들이다. 그래서 부제가 “미래 철학의 서곡”이다.

어떻게 나왔고 어떻게 짜였나?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책은 1886년 라이프치히의 C. G. 나우만 출판사에서 니체 자신의 비용으로 처음 나왔다. 앞의 책들이 거의 팔리지 않아 출판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책은 짧은 서문, 번호를 붙인 296개 절, 그리고 맺음 시 「높은 산에서」로 이루어지고, 본문은 아홉 장으로 나뉜다.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자유정신, 종교적인 것, 잠언과 간주곡, 도덕의 자연사, 우리 학자들, 우리의 덕, 민족과 조국, 고귀한 것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다음 해의 『도덕의 계보』와 짝을 이룬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의 표지 뒷면에 그 책이 최근에 낸 『선악의 저편』을 보충하고 분명히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두 책은 국내에서도 흔히 한 권으로 묶여 번역되었다.

무엇을 주장하나?

제1장은 철학자들이 객관적 진리를 찾는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도 모르는 회고록, 곧 자기 충동과 도덕적 편견을 정당화하는 글을 써 왔다고 고발한다. 니체는 왜 우리는 진리를 원하고 비진리를 원하지 않는가를 묻고, 진리가 겉모습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도 하나의 도덕적 편견일 뿐이라고 말한다. 모든 인식은 특정한 관점에서의 해석이라는 이 생각은 별도 항목 관점주의에서 다룬다.

그 대신 니체는 하나의 가설을 내놓는다. 우리의 충동 생활 전체를 하나의 근본 형태, 곧 권력의지의 전개로 설명할 수 있다면, 세계를 안에서 본 모습은 “권력의지이고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제36절).

sie wäre eben „Wille zur Macht“ und nichts ausserdem.

제4장의 짧은 잠언들 가운데 제146절은 니체의 문장 가운데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의 하나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싸움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오래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네 안을 들여다본다.”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제5장 「도덕의 자연사」에서 니체는 오늘날 유럽의 도덕은 “무리 동물의 도덕”이며 여러 가능한 도덕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도 스스로를 도덕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고 말한다(제202절). 마지막 제9장 「고귀한 것이란 무엇인가」의 제260절은 지금까지 지상을 지배한 여러 도덕을 살펴보니 두 가지 기본 유형이 드러났다며,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이 있다”고 선언한다.

Es giebt Herren-Moral und Sklaven-Moral

주인 도덕에서 “좋음”은 자기를 긍정하는 고귀한 자의 자기 규정이고 “나쁨”은 비천한 것을 가리키는 데 그친다. 노예 도덕은 반대로 강자를 “악”으로 규정하는 데서 출발해, 동정과 겸손과 근면을 덕으로 만든다. 이 구분은 다음 해 『도덕의 계보』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되며, 개념 자체는 별도 항목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에서 설명한다.

니체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어떻게 보았나?

『선악의 저편』은 니체의 책 가운데 정치적 발언이 가장 노골적인 책이다. 제202절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도움으로 무리 동물의 도덕이 정치와 사회 제도에까지 나타나게 되었다며 이렇게 쓴다. “민주주의 운동은 기독교 운동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die demokratische Bewegung macht die Erbschaft der christlichen.

같은 절에서 그는 이 흐름이 너무 느리다며 짖어 대는 “아나키스트 개들”을 조롱하고, 제203절에서는 “사회주의 얼간이와 천박한 자들”이 꿈꾸는 “미래의 인간”, 곧 “자유로운 사회”의 인간을 인간의 완전한 무리 동물화이자 “평등한 권리와 요구를 가진 난쟁이 동물”로의 퇴화라고 부른다. 제259절은 더 나아간다. 사회주의자들이 “착취적 성격”이 사라진 미래 사회를 말하지만 그것은 모든 유기적 기능을 그만둔 생명을 발명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며, 니체는 이렇게 쓴다. “‘착취’는 타락하거나 불완전하거나 원시적인 사회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체의 본질에 속한다.”

Die „Ausbeutung“ gehört nicht einer verderbten oder unvollkommnen und primitiven Gesellschaft an: sie gehört in’s Wesen des Lebendigen

이와 함께 니체는 유럽의 소국 분립과 민족주의를 비웃으며 “다음 세기는 지구 지배를 둘러싼 싸움, 곧 위대한 정치의 강제를 가져온다”(제208절)고 예언했다. 그는 같은 책 제8장에서 당대 독일의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선동도 경멸했는데, 이 대목은 뒷날 니체를 나치의 선구자로 꾸민 이들이 외면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떻게 응답했나?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쪽에서 니체 비판이 시작된 곳이다. 독일어 위키백과의 니체 수용사 항목에 따르면, 사회주의 역사가 프란츠 메링은 1891년 『선악의 저편』을 “자본주의의 철학이자 시”라고 부르며 니체가 착취하는 대자본에 월계관을 씌운다고 비판했다. 메링이 보기에 탐욕과 지배욕 같은 “악한” 성질이 역사 발전의 지렛대가 되었다는 니체의 발견은 이미 헤겔에게 있었다. 그러나 니체는 거기서 도덕이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져 있다는 결론을 끌어내지 않고, 주인이 노예를 억누르는 것을 자연법칙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제259절의 착취론은 착취를 특정한 생산관계의 산물로 보는 마르크스의 분석과 정면으로 맞선다. 마르크스에게 착취는 역사적으로 생겨났고 폐지될 수 있는 관계이지만, 니체에게 그것은 생명 자체의 기능이다.

게오르크 루카치는 『이성의 파괴』(1954)에서 이 대립을 더 체계적으로 다루어, 니체의 철학을 사회주의에 맞서 제국주의 시대 부르주아지의 세계관을 신화의 형식으로 옹호한 “간접적 변호론”이라 불렀다. 반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니체를 계몽의 귀결을 끝까지 밀고 나가 그것이 뒤집히는 지점을 드러낸 사상가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197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는 자크 데리다가 『에프롱: 니체의 문체들』(1978)에서 서문의 “진리가 여자라면”이라는 구절을 실마리로 니체의 글쓰기를 해체적으로 읽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de.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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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nietzschesour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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