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华苏维埃共和国 · 1931.11.07–1937.09.22

중화소비에트공화국

Chinese Soviet Republic

1931년 11월 7일 장시 루이진의 제1차 전국 소비에트 대표대회가 선포한 중국공산당의 국가. 장시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서로 떨어진 농촌 근거지들을 묶었고, 마오쩌둥이 중앙집행위원회 주석과 인민위원회 주석을 겸했다. 1933년 전성기에 약 7만 제곱킬로미터에서 340만 명이 넘는 인구를 다스렸으나, 1934년 제5차 포위토벌로 장시를 잃고 대장정 뒤 산베이에서 명맥을 이었다. 1937년 9월 22일 제2차 국공합작 속에 해산되어 산간닝 변구가 되었다.

상세

1928년 중공 제6차 대회가 농촌 간부들에게 소비에트 정부를 조직하라고 지시한 뒤 1929년부터 각지에 소비에트가 생겼다. 장시·푸젠 경계의 중앙 근거지 말고도 어위완, 훙후, 민저간, 하이루펑, 산시·간쑤 등이 있었으나 서로 연결되지 않았고, 통신이 나빠 두 번째로 큰 어위완 소비에트는 1931년 대회에 대표조차 보내지 못했다. 공화국은 자체 은행과 화폐, 세무국을 두고 학교와 법원을 운영했으며, 정규군은 1930년대 초 14만 명을 넘었다.

가장 중요한 정책은 토지 분배였다. 마오의 「농촌 계급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1933)가 계급 구분의 기준을 정했고, 혼인법은 중매혼에 맞서 자유 혼인을 보호했으며, 1934년에는 헌법대강이 제정되었다. 동시에 반AB단 숙청과 푸톈 사변, 근거지 상실을 앞둔 대량 처형과 노역 동원 같은 폭력이 있었다. 1931~1936년 장시 소비에트 15개 현의 인구는 약 70만 명 줄었는데, 그 원인을 소비에트 정권과 국민당의 토벌·봉쇄로 나누는 문제는 다투어진다.

정치적으로 공화국은 상하이의 당 중앙과 근거지의 관계가 뒤바뀐 무대였다. 1932년 닝두 회의에서 마오가 군권을 잃고, 1933년 보구의 임시 중앙과 코민테른 고문 오토 브라운이 루이진에 와서 실권을 쥐었다. 제5차 포위토벌의 보루 전술 앞에서 그들의 진지전이 실패하자 1934년 10월 홍군은 대장정에 나섰고, 공화국은 바오안·옌안에서 이름을 이어 가다 1937년 해산되었다. 마오는 국가 수반으로서 근거지 행정과 농민 조직의 경험을 쌓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