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도
Collective Leadership
집단지도(러시아어로 '콜렉티브노예 루코보츠트보')란 당국가의 지도 기관들이 권력을 나누어 행사하고, 서기장 같은 단일 직책자는 그 안에서 '동등한 자 중의 첫째'(primus inter pares)에 머무는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실천은 선언과 어긋났다. 흐루쇼프는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판한 뒤 스스로 전제적으로 통치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브레즈네프 아래에서는 집단성이 관료적 과두제로 굳어졌다.
상세
정의와 기원
집단지도는 당국가의 지도 기관들이 권력을 공유하고, 서기장이나 당 의장 같은 단일 직책자가 그 기구 안에서 '동등한 자 중의 첫째'로만 기능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소련에서는 1953년 3월 스탈린 사망 뒤 권력이 정치국·중앙위원회·각료회의로 분산되고 서기장과 각료회의 의장의 권한이 의도적으로 제한되면서 이 원칙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26일 베리야 체포 직후 집단지도는 '우리 당의 최고 원칙'으로 선포되었다.
규약과 제도
당 규약 제27조는 '당 지도의 최고 원칙은 집단지도이며, 이는 당 조직의 정상적 활동과 간부의 올바른 교육,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성과 주도성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라고 규정하고, 개인숭배와 당내 민주주의 위반은 용납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조항은 22차 당대회(1961)가 승인한 판본에서 성립해 23차(1966), 24차(1971) 대회의 부분 수정을 거쳤고, 이후 27차(1986)·28차(1990) 대회까지 개정된 규약에 남았다. 규약 제19조가 당 조직 구성의 지도 원칙으로 민주적 중앙집권제를 규정한 바로 뒤에 이 조항이 놓였다. 아래로부터 선출된 지도 기관, 보고 책임, 엄격한 규율과 소수에 대한 다수의 복종이라는 원칙 위에서 집단지도가 작동했다는 뜻이다.
탈스탈린화와 숙청의 종식
집단지도의 사상적 기원은 탈스탈린화, 곧 20차 당대회였다. 1956년 흐루쇼프의 비밀연설은 '개인의 숭배'와 '당의 집단적 지도 원칙의 위반이 끼친 거대한 해악'을 규탄하고 집단지도를 '레닌주의적 당 지도 원칙'과 연결시켰다. 제도화된 집단지도는 정치적 패배가 곧 죽음을 뜻하던 스탈린식 관행을 끝냈다.
이 원칙의 작동을 보여준 검증 사례가 1957년 6월 반당 그룹 사건이다. 흐루쇼프 축출을 시도한 주석단 다수파는 지도부 문제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소수파의 주장에 밀려 실패했고, 6월 29일 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으로 당·정부 요직에서 축출되었으며, 1961년에는 몰로토프·말렌코프·카가노비치·셰필로프가 당에서 제명되었다. 인물이 아니라 집단적 기구가 지도부 문제를 결정한 사례로 기록된다.
1964년의 역설
집단지도는 흐루쇼프 자신의 몰락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1964년 10월 그를 축출한 전원회의에서 수슬로프가 제시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집단지도 위반이었고, 중앙위원회는 한 사람이 서기장과 각료회의 의장을 겸직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후 집단지도는 '레닌주의적 당생활 규범'으로의 복귀라는 이름으로 소련 언론에서 찬양되었다. 뒤를 이은 브레즈네프(제1서기)와 코시긴(각료회의 의장), 그리고 수슬로프·키릴렌코·미코얀(1965년 포드고르니로 교체)은 뚜렷한 단일 지도자가 없는 '브레즈네프-코시긴' 지도부를 구성했다.
브레즈네프 시대: 집단성에서 과두제로
1970년대에 들어 브레즈네프는 집단지도 내에서 우위를 축적해 이른바 '서기장 비서국'을 만들고 1977년 포드고르니를 축출했다. 그럼에도 집단지도는 안드로포프(1982~1984)와 체르넨코(1984~1985) 아래에서 형식적으로 계속되었고, 1986년 이후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1인 지배로의 회귀가 아니라 지도부 내부의 공개적 이견과 분파주의를 낳았다.
구별되는 개념과 다른 나라의 사례
집단지도는 1인 지배와 개인숭배에 대립하는 개념이며, 레닌주의 교의에서는 당내 민주주의를 통한 집단적 지도로 실현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다만 이 용어가 소련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마오쩌둥 사후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의 1970년대 후반 개혁 이후 합의의 규범 아래 집단지도가 이야기되었고, 장쩌민은 스스로를 '동등한 자 중의 첫째'로 자리매김했다. 베트남에서는 레주언 아래에서 집단지도가 서기장직의 권한을 정치국 상임위원회로 분산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도 단일 통치자는 남겨 두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좌파 녹색·사회주의 정당들도 사회주의적 이상에 따라 집단지도를 실천한다. 독일 녹색당(동맹 90/녹색당)은 연방집행부를 동등한 두 명의 대변인으로 나누고, 스코틀랜드 녹색당은 2004년 남녀 공동대표 체제로 이를 시작했다.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과 성평등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평가와 논쟁
서기장은 웨스트민스터 체제의 총리에 비견되기도 했다. 정치국 회의에서 주요 중재자 역할을 하되 정치국의 합의를 유지하는 동안에만 직위에 남을 수 있었고, 집단지도가 중앙위원회·정치국·각료회의가 지도적 인물 없이 완전히 대등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리처드 뢰벤탈은 소련을 '포스트전체주의적 권위주의' 또는 '권위주의적 관료제 과두제'로 규정했는데, 이념상으로는 여전히 전능한 국가이면서도 실제로는 억압의 규모를 상당히 줄이고 공적 생활에서 더 많은 다원성을 허용한 체제라는 평가였다. 제1세계 관찰자 다수는 권위주의 국가에서의 집단지도가 '본질적으로 작동 불가능'하며 언젠가는 1인 지배에 굴복한다고 보았고, 다른 분석가들은 '과두제'와 '제한적 개인 지배' 사이의 교대라는 시각을 제시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mprehensive article on the concept, its institutionalisation after Stalin's death, Khrushchev's proclamation of it as 'the supreme principle of our Party,' the 1964 ouster, Brezhnev-era collectivity, and later developments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CPSU Rules (1977), Article 27: 'The supreme principle of Party leadership is collective leadership, which is an absolute requisite for the normal functioning of Party organisations'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1969 Soviet party textbook with chapter 'Supreme Principle of Party Leadership: Collective Leadership from Bottom to Top,' elaborating the Leninist doctrinal basis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article covering the Soviet section: post-Stalin distribution of powers, Khrushchev's hypocrisy charge, Brezhnev reinforcement, and Gorbachev-era fragm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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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 ru.wikisour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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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