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éconstruction · 1967–현재

해체 (데리다)

Deconstruction (Derrida)

자크 데리다가 1967년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등에서 펼친 텍스트 읽기의 실천. 서양 철학의 이항 대립(말/글, 정신/몸, 남성/여성)이 대등한 짝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는 “폭력적 위계”임을 드러내고, 그 위계를 뒤집은 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새 개념으로 대립 자체를 흔든다. 말은 하이데거의 ‘해체’(Destruktion)를 옮긴 것이며, 니체가 중요한 원천이다. 데리다는 이를 방법이나 비판이 아니라고 했고, 기계적 응용인 ‘해체주의’와 구별했다.

상세

왜 ‘해체’는 철학 바깥까지 퍼졌나?

해체는 20세기 후반 인문학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가장 많이 오해된 말 가운데 하나다. 문학 비평과 법학, 인류학, 역사학,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심지어 건축(해체주의 건축)까지 이 말을 빌렸다. 일상어에서는 ‘무엇이든 부숴 버린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데리다가 말한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매우 꼼꼼한 읽기다. 한 텍스트가 스스로 내세우는 의미와 그 텍스트의 구조가 실제로 하는 일 사이의 어긋남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말은 데리다가 마르틴 하이데거의 ‘해체’(Destruktion)를 프랑스어로 옮기며 썼다. 하이데거에게 그것은 전통이 한 개념에 덧씌운 범주와 역사를 걷어 내며 그 개념을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데리다는 이를 텍스트 읽기에 적용했다. 그는 1967년 한 해에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을 내며 해체의 주요 생각을 펼쳤다.

해체는 무엇을 하나?

데리다에 따르면 서양 형이상학은 의미가 어딘가에 온전히 ‘현전’한다고 믿어 왔다.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각이 그대로 담기고, 글은 그 말을 옮겨 적은 2차적이고 위험한 보조물이라는 식이다. 그는 이런 믿음을 ‘현전의 형이상학’, ‘로고스 중심주의’라고 불렀다. 소쉬르를 따라 기호의 의미가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서 나온다면, 의미는 결코 한자리에 온전히 있지 않고 끝없이 다른 기호로 미뤄진다. 데리다는 ‘다르다’와 ‘미루다’를 겹친 신조어 ‘차연’(différance)으로 이를 표현했다.

1972년 대담집 『입장들』에서 데리다는 해체의 절차를 이렇게 설명했다. 고전적 철학의 대립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대등한 짝의 평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폭력적 위계다. “두 항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가치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등) 지배하며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대립을 해체한다는 것은 먼저, 어느 순간에, 위계를 뒤집는 것이다.”

Un des deux termes commande l'autre (axiologiquement, logiquement, etc.), occupe la hauteur. Déconstruire l'opposition, c'est d'abord, à un moment donné, renverser la hiérarchie.

그는 이 뒤집기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대립을 넘어서려 하면 “이전의 대립에 아무런 손잡이도 남기지 않은 채 너무 빨리 중립화로 넘어가, 실제로는 이전의 장을 그대로 둔 채 거기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모든 수단을 잃는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단순히 뒤집기만 하면 같은 위계가 거꾸로 되풀이될 뿐이므로, 해체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결정 불가능한 것들’(차연, 대리보충, 파르마콘 등)을 새로 내세워 대립의 체계 자체를 흔든다.

C'est donc passer trop vite, sans garder aucune prise sur l'opposition antérieure, à une neutralisation qui, pratiquement, laisserait le champ antérieur en l'état, se priverait de tout moyen d'y intervenir effectivement.

‘텍스트 바깥은 없다’는 무슨 뜻인가?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의 루소론에 나오는 “텍스트 바깥은 없다”(il n'y a pas de hors-texte)는 해체를 둘러싼 오해의 상징이 되었다. 이 문장은 흔히 ‘텍스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로 잘못 옮겨져, 데리다가 말 말고는 세계가 없다고 주장한 것처럼 읽혔다. 데리다 자신은 이것이 맥락을 피할 수 없다는 뜻, 곧 어떤 의미도 다른 기호와 맥락의 그물 바깥에서 순수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해체는 헤겔의 변증법과도 다르다. 영어판 위키백과의 정리대로, 데리다의 주요 관심 가운데 하나는 대립을 모순으로 환원해 종합으로 해소하려는 헤겔 변증법으로 무너지지 않는 것이었다. 20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코제브와 이폴리트의 헤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모순의 변증법,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모두 헤겔의 강한 영향 아래 있었고, 데리다는 대립이 원래의 모순에서 자유로운 종합으로 해소될 수 없다고 보았다.

니체는 해체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나?

데리다는 해체의 동기를 크게 니체에게서 얻었다. 정적인 형태보다 언어의 유동성을 강조하고, 진리를 굳어 버린 은유로 보며, 모든 가치에서 그것을 내세운 힘과 관점을 읽어 내는 니체의 방식은 해체 읽기의 본보기였다. 데리다는 1972년 스리지 학술대회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 『에프롱: 니체의 문체들』(1978)에서 니체 텍스트의 다의성 자체를 주제로 삼았다. 하이데거가 니체를 형이상학의 완성자로 읽은 데 맞서, 데리다는 니체를 하나의 진리로 모을 수 없는 복수의 문체로 읽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폴 드 만, 제프리 하트먼, J. 힐리스 밀러 등 ‘예일 학파’가 해체를 문학 비평의 방법으로 퍼뜨렸다. 독일어판 위키백과의 지적대로 데리다는 해체를 교조적인 ‘해체주의’와 비판적으로 구별했다. 그러나 대학 안에서 해체는 종종 텍스트의 모든 의미를 무한히 미끄러뜨리는 기법으로 굳어졌다.

마르크스주의는 해체를 어떻게 보았나?

데리다는 때때로 해체를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정신의 급진화’라고 불렀다. 그는 『입장들』에서 자기 작업을 관념론 비판으로 볼 수 있다며, 그 비판을 수행하는 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어떤 것도 자신에게 망설임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련 붕괴 뒤 ‘역사의 종말’이 선언되던 1993년에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영역 1994)을 내어, 마르크스의 유산은 죽지 않고 유령처럼 되돌아온다고 주장하고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불의를 고발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의 영어 번역자 가야트리 스피박은 데리다의 마르크스 이해를 비판했고, 테리 이글턴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과장된 문체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해체가 모든 대립과 토대를 흔드는 만큼 계급과 생산양식 같은 개념까지 녹여 버려 정치적 실천의 근거를 잃게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쪽의 오랜 의심이다. 위르겐 하버마스도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에서 데리다가 합리적 담론에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슬라보이 지젝처럼 해체를 이데올로기 비판에 끌어온 이론가들도 있다. 해체는 이렇게 니체에서 출발해 마르크스주의와 맞서고 또 섞인 20세기 후반 사상의 한 갈래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Jacques Derrida, Positions, Paris: Minuit, 1972
  3. de.wikipedia.org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