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
Great Break
1929년 스탈린이 「대전환의 해」라는 글에서 선언한, 네프의 시장 메커니즘을 폐기하고 강제 집단화와 초고속 공업화로 전환한 소련 경제정책의 급진적 방향 전환이다. 곡물 조달 위기와 전쟁 위협 인식 속에서 추진되었으며, 농민의 광범위한 저항과 1932~1933년 기근을 초래했지만 소련을 농업국에서 산업 강국으로 재편한 1·2차 5개년 계획의 이념적 출발점이기도 했다.
상세
선언
대전환이라는 표현은 1929년 11월 7일 프라우다에 실린 스탈린의 논설 「대전환의 해」에서 나왔다. 이 글은 지난 한 해를 노동생산성, 공업 건설, 농업의 집단화에서 결정적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로 규정하고, 농민이 자발적으로 집단농장에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언은 사후적 정당화의 성격이 강했다. 1928년 초 곡물 위기에서 이미 비상 조치가 발동되어 있었고, 1929년 4월 제16차 당협의회는 1차 5개년계획의 최대 변형을 채택했으며, 같은 해 11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전면적 집단화를 확정했다. 논설은 이 결정들에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내용
전환은 네 방향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첫째, 전면적 집단화와 쿨라크 청산이 농촌의 사회 구조를 재편했다. 둘째, 1차 5개년계획의 목표가 반복적으로 상향되어 중공업 투자가 소비를 압축하는 수준까지 확대되었다. 셋째, 부르주아 전문가에 대한 공격이 제도화되어 1928년 샤흐티 재판과 1930년 산업당 재판이 기술 간부를 사보타주 혐의로 처벌했다. 넷째, 학문과 문화가 재편되어 경제학과 철학, 농학에서 이전 세대의 학파들이 정치적 편향으로 규정되고 제거되었다.
이 국면에서 만들어진 비판 용어들이 그 재편의 지도를 보여준다. 멘셰비키화하는 관념론, 차야노프시치나, 콘드라티예프시치나는 각각 철학, 농업경제학, 경기순환론에서 제거된 학파를 지목한 이름이었다.
결과
경제적 결과는 양면적이었다. 1930년대에 걸쳐 야금과 기계, 발전 부문에서 대규모 생산 능력이 새로 만들어졌고, 소련은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이행했다. 동시에 1932년과 1933년의 대기근이 발생했고, 실질 임금과 도시 소비는 1920년대 말 수준 아래로 떨어졌으며, 노동 규율 법령이 이동과 결근을 형사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정치적 결과는 더 오래 남았다. 대전환은 당내 논쟁을 종결시키는 방식으로 수행되었고, 우익반대파의 축출과 함께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공간 자체가 닫혔다. 1930년대 중반의 대숙청은 이 시기에 형성된 통치 방식 위에서 진행되었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Stalin's 1929 article title, definition, policy scope, peasant resistance data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definition, NEP abandonment, collectivization/industrialization details, war scare context, David Marples period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