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합작
KMT–CCP united front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공동의 적에 맞서 맺은 두 차례의 제휴. 제1차(1924~1927)는 코민테른의 주선으로 공산당원이 개인 자격으로 국민당에 가입해 군벌 타도의 북벌을 함께 수행하다 1927년 장제스의 4·12 정변과 우한 정부의 분공으로 깨졌다. 제2차(1937~1945)는 시안 사변 뒤 항일을 위해 성립해 홍군이 국민혁명군 팔로군·신4군으로 개편되었으나, 1941년 완난 사변 이후 사실상 대립 관계로 돌아갔다.
상세
제1차 합작은 1923년 쑨원-요페 공동선언과 1924년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형식을 갖추었다. 코민테른은 중국의 부르주아 민족혁명을 지원한다는 판단 아래 공산당에 「당내 합작」을 지시했고, 소련 고문 보로딘이 국민당을 재편했으며 황푸군관학교가 세워졌다. 공산당은 이 시기에 노동자·농민 운동을 크게 확장했다.
1926년 북벌이 진행되며 국민당 내부의 좌우 대립과 농민운동을 둘러싼 갈등이 커졌고, 스탈린은 합작 유지를 고집한 반면 트로츠키는 공산당의 독자 노선을 주장했다. 1927년 4월 상하이의 반공 정변과 7월 우한 정부의 분공으로 합작은 무너졌고, 공산당은 무장 봉기와 농촌 근거지로 방향을 바꿨다.
제2차 합작은 「항일 민족통일전선」의 이름으로 성립했다. 공산당은 소비에트 정부와 토지 몰수를 중단하는 대신 산간닝 변구와 군대의 독자성을 유지했고, 통일전선 아래 근거지를 크게 넓혔다. 1941년 신4군 사건 이후 두 당은 서로를 견제하며 항일전쟁을 치렀고, 1945년 일본 항복 뒤 마셜의 중재도 내전을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