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國民黨 (國民黨, KMT) · 1894–현재

중국국민당

Kuomintang

쑨원이 1894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세운 흥중회를 기원으로 하고, 1919년 10월 10일 상하이에서 지금 이름으로 재편된 중국의 민족주의 정당. 삼민주의를 지도 이념으로 삼아 1928년부터 1949년까지 중화민국의 유일 집권당이었고, 국공내전에서 진 뒤 타이완으로 옮겨 1987년까지 계엄 아래 일당 통치를 했다. 지금은 타이완의 주요 정당이다.

상세

쑨원은 1894년 11월 24일 호놀룰루에서 흥중회를 세웠고, 1905년 8월 20일 도쿄에서 다른 반청 단체와 합쳐 청조 타도와 공화국 수립을 내건 중국동맹회를 만들었다. 신해혁명으로 1912년 1월 1일 중화민국이 세워졌지만, 군사력이 없던 쑨원은 임시 대총통 자리를 위안스카이에게 넘겼다. 1912년 8월 25일 베이징 후광회관에서 동맹회와 다섯 개 소정당이 합쳐 국민당을 결성했고, 쑨원이 이사장, 황싱이 부이사장이 되었다. 국민당은 1912년 12월 첫 국회 선거에서 압승했으나 1913년 쑹자오런이 상하이에서 암살되었고, 위안스카이를 겨냥한 2차 혁명이 실패한 뒤 11월 위안스카이가 국민당을 해산했다. 쑨원은 1914년 7월 8일 도쿄에서 중화혁명당을 세웠지만, 자신에 대한 개인적 충성 서약을 요구해 황싱 등 옛 동지들이 참여를 거부했다. 1919년 10월 10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당은 중국국민당으로 재편되었고, 1920년 본부를 광저우에 두었다.

서방의 승인을 얻지 못한 국민당은 1923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들였다. 코민테른 요원 미하일 보로딘 등 소련 고문들은 당을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을 본뜬 레닌주의 조직으로 재편했고, 공산당원들은 당적을 유지한 채 국민당에 들어와 제1차 국공합작을 이루었다. 1924년 1월 광저우에서 열린 제1차 전국대표대회는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를 채택했다. 1925년 쑨원이 죽은 뒤 실권은 황푸군관학교 교장 장제스에게 넘어갔고, 장제스는 1926년 7월 6일 당 지도권을 잡고 북벌에 나섰다. 1927년 4월 12일 상하이 학살로 공산당을 축출하면서 국공내전이 시작되었다. 국민혁명군은 1928년 베이징을 점령했고, 국민당은 수도를 난징으로 옮겨 「훈정」이라는 이름의 일당 통치를 시작했다.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뒤에도 장제스는 공산당 토벌을 앞세웠고, 1934년 장시의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은 무너졌다. 1936년 시안 사건으로 장제스는 공산당과 제2차 국공합작을 맺었고 이듬해 중일전쟁이 일어났지만, 이 동맹은 1941년 신사군 사건으로 끝났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 1946년 전면적인 내전이 벌어졌다. 국민당 정부는 초인플레이션을 막지 못했고, 1948년 8월 발행한 금원권은 열 달 만에 가치를 잃었다. 1949년 말 국민당은 국보와 군인·피란민 200만 명을 데리고 타이완으로 물러났고, 대륙에 남은 일부 당원은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를 세웠다.

타이완에서는 1947년 2·28 사건 뒤 「백색 테러」로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1949년부터 1987년까지 계엄 아래 일당 통치가 이어졌다. 1970년대에 유엔 의석과 많은 나라의 외교 승인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내주었다. 1980년대 말 장징궈가 계엄과 야당 금지를 풀었고, 리덩후이는 민주화를 이어 1996년 첫 총통 직선에서 재선되었다. 2000년 총통 선거 패배로 72년에 걸친 국민당 총통 시대가 끝났고, 2008년 마잉주가 정권을 되찾았으나 2016년 다시 졌다. 2024년 선거에서 입법원 제1당이 되었으며, 중화민국을 중국의 유일한 대표로 보는 입장에서 「92 공식」을 받아들이고 현상 유지를 주장한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zh.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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