Материализм и эмпириокритицизм. Критические заметки об одной реакционной философии · 1908.02–1909.05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Materialism and Empirio-criticism

레닌이 1908년 2~10월 제네바와 런던에서 쓰고 1909년 5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일린’이라는 필명으로 낸 철학 저작. 부제는 「한 반동 철학에 대한 비판적 노트」다. 마흐와 아베나리우스의 경험비판론을 끌어와 마르크스주의를 ‘보완’하려던 보그다노프·바자로프·루나차르스키 등 러시아 마흐주의자들을 관념론으로의 후퇴라고 공격하고, 물질을 “감각에서 독립해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로 정의했다. 소련에서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교재가 되었다.

상세

왜 혁명가 레닌이 인식론 책을 썼나?

1908년, 1905년 혁명의 패배로 망명해 있던 레닌은 갑자기 철학책을 쓰는 데 몇 달을 바쳤다. 겉보기에는 감각과 물질, 인식의 관계를 따지는 추상적인 논쟁이지만, 레닌에게 이것은 당의 진로가 걸린 문제였다. 볼셰비키의 이론가이자 지도부의 일원이던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와 그 동료들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당대의 최신 과학철학으로 바꾸려 했고, 같은 사람들이 두마 의원 소환을 요구하는 소환주의와 건신주의를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첫 판 서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자이고자 하는 일련의 저술가들이 올해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맞서 진짜 원정에 나섰다.” 반년이 안 되는 사이 바자로프·보그다노프·루나차르스키·베르만·겔폰드·유시케비치·수보로프의 논문집 『마르크스주의 철학 개요』(1908)를 비롯해 변증법적 유물론을 공격하는 책 네 권이 나왔다는 것이다.

Целый ряд писателей, желающих быть марксистами, предприняли у нас в текущем году настоящий поход против философии марксизма.

책은 특히 보그다노프의 세 권짜리 『경험일원론』(1904~1906)에 대한 대응이었다. 레닌은 대부분을 제네바에서 쓰고, 한 달 동안 런던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최신 철학·자연과학 자료를 찾아 읽었다. 1909년 5월 모스크바의 즈베노 출판사에서 ‘블라디미르 일린’이라는 필명으로 나왔고, 차르 검열을 피하려 일부 표현을 고쳤다.

레닌은 무엇을 주장했나?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와 스위스 철학자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의 경험비판론은 세계를 감각 요소들의 복합으로 보고, 감각 너머의 ‘물자체’나 물질을 형이상학적 가정이라며 물리쳤다. 러시아 마흐주의자들은 이것이 낡은 유물론보다 과학적이라고 보았다. 레닌은 이것이 18세기 버클리 주교의 주관적 관념론을 새 용어로 되풀이한 것일 뿐이며, 끝까지 밀고 가면 자기 감각밖에 없다는 유아론에 이른다고 반박했다. 엥겔스가 말한 대로 철학의 근본 문제는 물질과 의식 가운데 무엇이 먼저냐는 것이고, 마흐주의는 그 물음에서 관념론 쪽에 서면서 중립인 척한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레닌이 내놓은 것이 유명한 물질의 정의다. “물질은 인간에게 감각으로 주어지고, 우리의 감각에 의해 복사되고 사진 찍히고 반영되면서도 감각과 독립해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가리키는 철학적 범주다.” 이른바 반영론이다. 레닌은 이 정의가 물리학의 특정 학설에 묶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당시 전자와 방사능의 발견으로 ‘물질이 사라졌다’는 말이 돌았지만, 레닌은 사라진 것은 물질에 대한 우리 지식의 한계일 뿐이며, 이를 관념론의 근거로 삼는 것을 ‘물리학적 관념론’이라고 불렀다. 철학적 유물론이 인정해야 할 물질의 유일한 ‘성질’은 의식 바깥에 객관적 실재로 있다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Материя есть философская категория для обозначения объективной реальности, которая дана человеку в ощущениях его, которая копируется, фотографируется, отображается нашими ощущениями, существуя независимо от них.

마지막 장은 경험비판론과 사적 유물론을 다루며, 철학에도 당파가 있다는 이른바 당파성의 원칙을 내세웠다. 레닌에게 관념론과 유물론의 싸움은 결국 사회 속 계급들의 이해관계와 이어져 있었고, 마흐주의자들의 철학은 종교적 신앙(신앙주의)에 길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반동기의 정치와 맞닿아 있었다.

건신주의와 니체 수용과는 어떻게 이어지나?

이 책은 같은 해의 건신주의 논쟁과 떼어 읽기 어렵다. 루나차르스키와 바자로프는 마흐의 인식론과 포이어바흐의 인류 종교, 니체의 가치 창조 사상을 엮어 사회주의를 새 종교로 만들려 했고, 레닌은 그 철학적 바탕을 이 책에서 공격했다. 1909년 6월 볼셰비키 지도부는 보그다노프를 분파에서 밀어냈고, 이듬해 보그다노프는 레닌이 철학을 이데올로기로 축소했다고 반박하는 글을 냈다. 그러니 이 책은 니체와 마흐의 영향 아래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쓰려 한 러시아 지식인들에 대한 레닌의 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떻게 읽혀 왔나?

혁명 뒤 이 책은 1920년 러시아어로 다시 나왔고, 소련의 모든 고등교육기관에서 필수 과목이 되었으며,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의 고전이 되었다. 다만 레닌은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볼 수 없었다. 이 원고는 30년 동안 독일 사회민주당 문서고에 있다가 1925년에야 소련에서 출간되었다. 레닌 자신도 1914~1915년 헤겔의 『논리학』을 다시 읽으며 남긴 『철학 노트』에서 변증법을 훨씬 깊이 다루었기 때문에, 반영론 중심의 이 책과 『철학 노트』의 관계는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었다.

비판도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나왔다. 네덜란드의 천문학자이자 평의회 공산주의자 안톤 파네쿡은 1938년 ‘존 하퍼’라는 필명으로 낸 『철학자 레닌』에서 레닌이 마흐와 아베나리우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카를 코르슈는 레닌이 러시아의 후진성 때문에 물질과 정신을 경직되게 나누는 시각에 머물렀고, 그 결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놓쳤다고 보았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도 이 책에 대한 글을 남겼다. 반대로 루이 알튀세르는 1968년 강연 「레닌과 철학」에서 철학 안의 당파적 개입이라는 레닌의 발상을 높이 평가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ru.wikisource.org
  2. ru.wikisource.org
  3. 위키백과 (러시아어)
  4. de.wikipedia.org
  5.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