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없는 민족
Nonhistoric peoples
엥겔스가 1848~1849년 「신라인 신문」에서 체코인·크로아티아인·세르비아인·루마니아인 등 반혁명 편에 선 작은 민족들을 가리켜 쓴 개념. 강한 이웃에게 밀려난 옛 민족의 잔재로서 반혁명의 「광신적 기수」가 된다고 보았고, 「민족 찌꺼기(Völkerabfälle)」라는 표현까지 썼다. 헤겔에게서 빌려 온 이 개념은 마르크스주의 민족 문제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상세
엥겔스는 스코틀랜드의 게일인, 프랑스의 브르타뉴인, 스페인의 바스크인을 예로 들면서 1848~1849년 헝가리 혁명에 맞선 보이보디나의 세르비아인 봉기를 겨냥했다. 그는 크로아티아군과 프라하의 반혁명 부대가 빈 10월 봉기 진압을 도운 경험에 비추어, 다음 세계 전쟁이 반동적 계급과 왕조뿐 아니라 「반동적 인민 전체」를 지상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며 「그것 또한 진보」라고 썼다. 같은 시기 그는 코슈트를 「당통과 카르노를 한 몸에 지닌」 혁명가로 칭송했다.
카를 카우츠키는 1915년, 그 뒤 체코인과 남슬라브인의 발전이 이 견해를 실천으로 반박했다고 썼다. 로만 로스돌스키는 1929년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1964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역사 없는」 민족들의 문제』를 펴내, 이 개념이 헤겔에게서 왔으며 독일계 시민과 폴란드·헝가리 귀족에게 억압받던 슬라브 농민의 계급 모순을 놓쳤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67년 무렵부터 억압하는 민족과 억압받는 민족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한편 조지 왓슨은 이 표현을 「인종 쓰레기」로 옮겨 히틀러가 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까지 주장했는데, 이데올로기적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