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패전주의
Revolutionary Defeatism
제1차 세계대전 때 레닌이 내세운 전쟁 전술. 반동적 제국주의 전쟁에서 혁명적 계급은 자기 정부의 패배를 바랄 수밖에 없고, 전쟁 중 자기 정부에 맞선 혁명 행동은 그 패배를 돕는 일이 되며, 정부의 군사적 패배가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바꾸는 것을 쉽게 한다는 주장이다. 레닌은 「승리도 패배도 아닌」이라는 구호를 조국 방위론의 변형이라 비판했고, 트로츠키 등 다른 국제주의자들은 이 구호를 사회애국주의의 방법론에 대한 양보라고 반대했다.
상세
1914년: 차르 군주제의 패배가 「더 작은 악」
1914년 9월 레닌이 쓰고 11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언으로 발표된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는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를 기회주의의 붕괴로 규정하고, 현재의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바꾸는 것만이 올바른 프롤레타리아 구호라고 밝혔다. 이 글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에서는 두 교전국 집단 가운데 어느 쪽의 패배가 사회주의에 더 작은 악인지 정할 수 없지만, 러시아의 노동계급과 여러 민족의 근로 대중에게는 가장 반동적이고 야만적인 정부인 차르 군주제의 패배가 더 작은 악이라는 데 의심이 없다고 썼다.
1915년: 「모든 나라에서 자기 정부의 패배를」
1915년 2~3월 베른 회의 결의와 7월의 글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기 정부의 패배」에서 레닌은 논리를 넓혔다. 반동적 전쟁에서 혁명적 계급은 자기 정부의 패배를 바랄 수밖에 없고, 이는 자명한 이치라는 것이다. 전시의 혁명이란 내란이고, 정부 사이의 전쟁을 내란으로 바꾸는 일은 정부의 군사적 패배로 쉬워지며, 거꾸로 그런 전환을 실제로 추구하면 패배를 돕지 않을 수 없다. 레닌은 이것이 다리를 폭파하거나 성공 가망 없는 군수 파업을 조직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레닌은 이 구호를 사회배외주의와 가르는 시금석으로 삼았다. 『사회주의와 전쟁』(1915)은 자기 정부의 승리를 주장하는 사람과 「승리도 패배도 아닌」을 주장하는 사람이 똑같이 사회배외주의의 입장에 선다고 썼다. 「승리도 패배도 아닌」은 「조국 방위」 구호를 바꾸어 말한 것일 뿐이고 결국 성내 평화, 곧 계급투쟁의 포기를 뜻한다는 것이다.
국제주의자들 안의 논쟁
이 구호는 레닌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나셰 슬로보』에서 러시아의 패배를 바라는 것은 「사회애국주의의 정치적 방법론에 대한 쓸데없고 정당화할 수 없는 양보」라고 비판했고, 레닌은 이를 기회주의를 정당화하는 미사여구라고 반박했다. 1915년 치머발트 회의에서도 이 개념은 가장 급진적인 소수 말고는 지지를 얻지 못했고, 회의 선언은 패배 구호를 담지 않았다. 레닌은 1917년 4월 테제에서 혁명적 방위주의를 거부하는 입장을 다시 분명히 했고, 러시아의 패전이 이어지면서 이 생각에 동조하는 사회주의자가 늘었다.
해석의 갈림
역사가 핼 드레이퍼는 1953~1954년의 연구 『레닌의 「혁명적 패전주의」라는 신화』에서 레닌의 패배 구호가 1914~1916년에 네 가지 서로 다른 정식으로 바뀌어 왔고, 1917년에는 버려졌으며, 1924년 지노비예프가 코민테른에서 되살린 뒤 트로츠키주의 운동이 이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아마데오 보르디가의 국제공산당은 제2차 세계대전을 두 제국 사이의 반동적 전쟁으로 보고 혁명적 패전주의를 정책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