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두체제
Triumvirate (ruling troika)
3두체제(트로이카)는 레닌 투병기인 1922년부터 스탈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세 사람이 이룬 비공식 지도 연합을 가리킨다. 정치국 안건을 사전에 조율해 트로츠키를 고립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고, 레닌의 유언 공개를 막은 것도 이 연합이었다. 1925년 스탈린이 부하린 쪽으로 기울면서 해체되었고,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신반대파로 돌아섰다.
상세
형성
1922년 5월 레닌이 첫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당 지도부의 무게중심이 흔들렸다. 같은 해 4월 서기장이 된 스탈린은 당 기구와 인사권을 쥐었고, 코민테른 의장이자 페트로그라드 당 조직을 이끌던 지노비예프, 모스크바 소비에트 의장으로 레닌 부재 시 정치국을 주재하던 카메네프가 그와 손을 잡았다. 세 사람을 묶은 것은 강령이 아니라 공통의 경계 대상, 곧 붉은 군대를 만든 트로츠키였다.
작동 방식
세 사람은 정치국 회의에 앞서 따로 만나 안건과 표결을 조율했고, 서기국의 임명권으로 지방 조직에 자기 사람을 심었다. 1923년 가을 트로츠키와 46인 선언이 당내 관료화를 비판하자, 3두체제는 이를 분파주의로 규정해 반격했다. 1924년 5월 제13차 당대회를 앞두고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는 스탈린을 서기장에서 해임하라는 레닌의 유언을 대회에서 낭독하지 않도록 이끌었다. 지노비예프의 「스탈린 동지는 우려를 불식했다」는 발언이 그 장면이다. 이어진 「문학적 토론」에서 세 사람은 트로츠키의 『10월의 교훈』을 집중 공격했다.
해체와 결말
트로츠키가 밀려나자 연합의 존재 이유도 사라졌다. 1925년 스탈린이 부하린의 신경제정책 노선과 손을 잡으면서 지노비예프, 카메네프는 신반대파를 결성해 제14차 당대회에서 패배했고, 1926년에는 어제의 적 트로츠키와 통합반대파를 이루었으나 역시 분쇄되었다. 두 사람은 1936년 첫 모스크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3두체제는 결과적으로 스탈린 단독 권력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한 셈이다.
낱말의 용법
트로이카는 본래 세 마리 말이 끄는 러시아 마차를 가리키는 말로, 소련 정치에서는 3인 지도 연합을 이르는 관용어가 되었다. 스탈린 사후의 말렌코프·베리야·몰로토프, 브레즈네프 말기에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결정한 안드로포프·우스티노프·그로미코 3인 협의체에도 같은 말이 쓰였다. 대숙청기에 약식 사형 판결을 내린 NKVD 트로이카는 이름만 같은 별개의 처형 기구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the 1922–25 Stalin–Zinoviev–Kamenev bloc, the suppression of Lenin's Testament at the 13th Congress, the break of 1925
- 위키백과 (영문) Kamenev's role chairing the Politburo during Lenin's illness and in the triumvirate against Trotsky
- 위키백과 (러시아어) 지노비예프 항목의 트로이카 시기 서술과 「우려 불식」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