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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과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서신 (1948)

인물이오시프 스탈린,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요시프 브로즈 티토, 에드바르드 카르델리, 밀로반 질라스, 알렉산다르 란코비치, 보리스 키드리치, 안드리야 헤브란그, 스레텐 주요비치, 블라디미르 벨레비트, 블라디미르 바카리치, 파벨 유딘, 레프 트로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니콜라이 부하린, 블라디미르 레닌, 스베토자르 부크마노비치, 코차 포포비치 용어코민포름, 코민포름 1948년 부쿠레슈티 회의,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동맹, 소련 공산당, 티토주의, 인민민주주의 사건티토-스탈린 결별 학습사회주의의 분기 2부 · 5장 사회주의 나라는 자기 길을 갈 수 있을까?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편지 (1948년 3월 27일)

비밀

티토 동지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다른 위원들에게

3월 18일과 20일 자 귀하들의 답신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귀하들의 답이 진실하지 않으며, 따라서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고 봅니다.

1. 가가리노프 문제는 해소된 것으로 보아도 좋습니다. 귀하들이 가가리노프에 대한 어떤 비난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이 일이 가가리노프 동지에 대한 중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1].

크루티코프 동지가 했다는 발언, 곧 소련 정부가 올해 무역 협상을 거부했다는 말은 사실과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크루티코프 동지는 자기가 했다는 그 말을 단호히 부인합니다[2].

2. 군사 고문 철수 문제에 관한 우리 정보의 출처는 군사부 기관들의 진술과 고문들 자신의 보고입니다. 알려져 있듯이 우리 군사 고문들은 유고슬라비아 정부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유고슬라비아에 파견되었고, 그것도 유고슬라비아 정부가 요청한 것보다 훨씬 적은 수가 배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소련 정부에게는 자국 고문들을 유고슬라비아에 떠맡길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 코체 포포비치[3]를 비롯한 유고슬라비아 군 지도자들은 소련 군사 고문의 수를 60퍼센트 줄여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저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이들은 소련 군사 고문들이 유고슬라비아에 너무 비싸게 먹힌다고 했고, 다른 이들은 유고슬라비아 군대가 소련군의 경험을 익힐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소련군의 교범이 틀에 박힌 판박이여서 유고슬라비아 군대에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했고, 끝으로 어떤 이들은 소련 군사 고문들이 아무 쓸모도 없으면서 공짜로 봉급을 받는다고 노골적으로 빗대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에 비추어 보면,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어느 회의에서 소련 장교들이 도덕적으로 영국군 장교들보다 못하다고 한 질라스의 잘 알려진 발언, 소련군을 모욕하는 그 발언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4]. 게다가 알려져 있듯이 질라스의 이 반소 발언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다른 위원들에게서 아무 반박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유고슬라비아 군 지도자들은 소련 정부와 우호적으로 합의해 소련 군사 고문 문제를 풀기는커녕, 소련 군사 고문들을 깎아내리고 소련군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데 몰두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소련 군사 고문들 주위에 비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 않을 수 없었음은 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 정부가 자국 군사 고문들을 유고슬라비아에 그대로 두는 데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소련군의 신용을 떨어뜨리려는 이런 시도들을 막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된 사태에 책임이 있습니다.

3. 소련 민간 전문가 철수 문제에 관한 우리 정보의 출처는 주로 베오그라드 주재 소련 대사 라브렌티예프의 보고와 전문가들 자신의 진술입니다. 스르젠티치가 무역대표 레베데프에게, 소련 사람들은 경제 자료를 얻으려면 더 위로, 곧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유고슬라비아 정부에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라는 귀하들의 진술은 전혀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다음은 3월 9일 자 라브렌티예프의 보고입니다[5].

“경제평의회에서 키드리치를 보좌하는 스르젠티치가 무역대표 레베데프에게, 국가 기관과 기관들이 누구에게든 어떤 경제 자료도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정부 결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앞서 합의한 바가 있었는데도 레베데프에게 해당 자료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일의 통제는 국가보안 기관에 맡겨져 있다. 스르젠티치는 또 키드리치가 이 일에 관해 직접 레베데프와 이야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라브렌티예프의 보고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스르젠티치가 중앙위원회나 유고슬라비아 정부에서 경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제 정보든 중앙위원회나 정부에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그런 일을 위해서는 유고슬라비아의 정상적인 경제 기관들이 있고, 소련 사람들은 전에도 거기서 필요한 경제 정보를 받아 왔습니다.

라브렌티예프의 보고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둘째, 귀하들이 쓴 것과는 정반대의 사실, 곧 유고슬라비아에 있는 소련 대표들이 유고슬라비아 보안 기관의 통제와 감시 아래 놓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련 대표들을 미행하는 이런 관행은 부르주아 나라들에서나, 그것도 모든 나라에서가 아니라 일부 나라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을 짚어 두는 것도 쓸데없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 보안 기관은 소련 정부의 대표들뿐 아니라 코민포름 기관에 나가 있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대표 유딘 동지까지 미행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하겠습니다[6].

자국 민간 전문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런 체제 아래에서 소련 정부가 그들을 유고슬라비아에 계속 두는 데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보다시피 여기서도 이렇게 된 사태의 책임은 유고슬라비아 정부에 있습니다.

이것이 소련 정부가 유고슬라비아에서 자국의 군사·민간 전문가들을 철수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4. 귀하들은 편지에서 소련의 불만을 사고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다른 사실들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실들은 실제로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민간·군사 고문의 철수와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를 귀하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우리가 알기로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적 동지들 사이에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이 변질되고 있다”, “소련에는 대국 배타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소련은 유고슬라비아를 경제적으로 장악하려 한다”, “코민포름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이 다른 당들을 장악하는 수단이다” 따위의 반소 발언이 돌고 있습니다. 이런 반소 발언은 대개 “소련의 사회주의는 더는 혁명적이지 않다”, 유고슬라비아만이 “혁명적 사회주의”의 진정한 담지자라는 좌익적 문구로 가려집니다[7]. 물론 질라스, 부크마노비치, 키드리치, 란코비치 같은 미심쩍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 관한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발언들이 유고슬라비아의 많은 지도적 인사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돌고 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것이 당연히 반소적 분위기를 만들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과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을 포함한 어느 공산당에게나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을 비판할 권리가 있음을 무조건 인정합니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게 다른 어느 공산당이든 비판할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비판이 공개적이고 정직할 것을 요구하지, 비판받는 쪽이 비판에 답할 기회를 빼앗긴 채 이루어지는 막후의 중상적 비판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고슬라비아 인사들의 비판은 공개적이고 정직한 것이 아니라 막후에서 이루어지는 정직하지 못한 비판이며, 동시에 표리부동한 성격을 띱니다. 그들은 뒤에서는 자기들의 “비판”으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신용을 떨어뜨리면서, 공식적으로는 바리새인처럼 그 당을 칭찬하고 하늘 높이 치켜세우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런 비판은 중상으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신용을 떨어뜨리려는 시도로, 소비에트 체제를 깎아내리려는 시도로 바뀝니다.

우리는 유고슬라비아의 당원 대중이 이런 반소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자기들에게 낯설고 적대적인 것으로 여겨 분개하며 물리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때문에 앞서 말한 유고슬라비아 인사들이 이 비판을 몰래, 막후에서, 대중의 등 뒤에서 하려 애쓴다고 생각합니다.

트로츠키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 전쟁을 선포하려 했을 때 그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을 변질, 민족적 편협성, 대국 배타주의로 비난하는 데서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물론 그는 이 모든 것을 세계 혁명에 관한 좌익적 문구로 가렸습니다. 그러나 알려져 있듯이 트로츠키 자신이 변절자였고, 그 뒤 정체가 드러나자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과 소련의 철천지원수들의 진영으로 공공연히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트로츠키의 정치 경력이 충분히 교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우리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현재 상태가 걱정스럽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집권당이면서도 아직 완전히 합법화되지 않고 여전히 반합법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이상한 인상을 줍니다. 당 기관의 결정은 대개 신문에 발표되지 않습니다. 당 회의에 관한 보고도 발표되지 않습니다[8].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생활에서는 당내 민주주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당 중앙위원회는 대부분 선출된 것이 아니라 보선된 것입니다. 당 안에 비판과 자기비판이 없거나 거의 없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간부를 담당하는 당 중앙위원회 서기가 국가보안부 장관이라는 사실입니다[9]. 다시 말해 당 간부들이 사실상 국가보안부 장관의 감시 아래 맡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르면 당은 국가보안부를 포함한 나라의 모든 국가 기관을 통제해야 하는데, 유고슬라비아에서는 그 반대가 됩니다. 사실상 국가보안부가 당을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당원 대중의 자발적 활동이 마땅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공산당 조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볼셰비키적이라고 볼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서는 계급투쟁 정책의 기풍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자본주의 요소의 성장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당 지도부는 자본주의 요소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베른슈타인, 폴마르, 부하린에게서 빌려 온, 자본주의 요소가 평화롭게 사회주의로 자라 들어간다는 썩은 기회주의 이론에 마취되어 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에 따르면 당은 나라의 기본적인 지도 세력으로 여겨지며, 자기의 특별한 강령을 가지고 무당파 대중 속에 녹아들지 않습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반대로 인민전선을 사실상의 기본 지도 세력으로 여기고, 당을 인민전선 속에 녹여 버리려 합니다. 티토 동지는 유고슬라비아 인민전선 제2차 대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고슬라비아의 공산당은 인민전선의 강령과 다른 어떤 강령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공산당은 다른 강령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전선의 강령이 곧 공산당의 강령이다.”[10]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당에 관한 이 이상한 이론을 새로운 이론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40년 전에 멘셰비키의 한 부분이 마르크스주의 당을 무당파 노동자 대중 조직 속에 녹여 앞의 것을 뒤의 것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했고, 멘셰비키의 다른 한 부분은 마르크스주의 당을 무당파 노동자·농민 근로 대중 조직 속에 녹여 앞의 것을 뒤의 것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알려져 있듯이 레닌은 당시 이 멘셰비키들을 악질 기회주의자이자 당의 청산주의자로 규정했습니다.

셋째. 우리는 영국 간첩 벨레비트가 왜 여전히 외무부 제1차관으로 유고슬라비아 외무 기구에 남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11]. 유고슬라비아 동지들은 벨레비트가 영국 간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소련 정부의 대표들도 벨레비트를 간첩으로 여긴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벨레비트는 유고슬라비아 외무부 제1차관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바로 영국의 간첩으로서 벨레비트를 이용할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알려져 있듯이 부르주아 정부들은 자기들이 비위를 맞추고 싶은 제국주의 열강의 간첩을 정부 안에 두는 것을 전혀 문제없다고 여기며, 그렇게 해서 스스로를 그 열강의 통제 아래 두는 데 동의합니다. 우리는 이런 관행이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떻든 소련 정부는 유고슬라비아 정부와의 서신을 영국 간첩의 통제 아래 둘 수 없습니다. 벨레비트가 여전히 유고슬라비아 외무 지도부에 남아 있는 한, 소련 정부는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고 여기며, 유고슬라비아 외무 기구를 통해서는 유고슬라비아 정부와 솔직한 서신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상이 소련 정부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불만을 사고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사실들입니다.

이 사실들은 이미 말했듯이 군사·민간 전문가 철수 문제와는 관련이 없지만, 두 나라의 관계 악화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48년 3월 27일, 모스크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위임에 따라
V. 몰로토프
I. 스탈린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스탈린 동지와 몰로토프 동지에게 보낸 답신 (1948년 4월 13일, 발췌)

1948년 3월 27일 자 귀하들의 편지에 답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편지의 어조와 내용에 몹시 놀랐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편지가 그런 내용, 곧 여러 문제에 관한 그런 비난과 입장을 담게 된 원인이 우리 형편을 충분히 알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로서는 귀하들의 결론을, 소련 정부가 자기 기관들에게서 부정확하고 편향된 정보를 받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 기관들은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람들, 곧 잘 알려진 반당 분자들이나 여러 불평분자들에게서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중앙위원 S. 주요비치와 A. 헤브란그가 일부 지도적 인사들이 했다는 발언에 관해서나 우리 당 전반에 관해서나 유고슬라비아에 있는 소련 대표들에게 부정확하고 중상적인 정보를 준 주범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확인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부정확하고 중상적인 정보로 자기들의 반당 활동, 그리고 훨씬 전부터 드러난, 지도부와 당 전체의 단결을 깨뜨리려는 경향과 시도를 감추려 했습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온 정보는 객관적일 수도, 선의일 수도, 정확할 수도 없으며, 대개 특정한 목적을 가집니다. 이 경우 그 정보의 목적은 우리 당 지도부, 곧 새 유고슬라비아에 해를 끼치고, 그렇지 않아도 힘든 나라 건설 작업을 더 어렵게 만들고, 5개년 계획을, 그리고 그로써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왜 소련 대표부가 지금까지 그런 정보를 우리나라의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확인하려 하지 않았는지, 곧 그런 정보에 관해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나 정부에 해명을 구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정보를 주는 것을 반당 활동이자 반국가 활동으로 봅니다. 그것은 우리 두 나라의 관계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사회주의의 나라 소련을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그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나라를 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나라 역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으며, 이 경우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인민공화국이고, 그 나라를 위해 가장 선진적인 사람들 수십만 명이 쓰러졌습니다. 우리는 소련에서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압니다.

우리가 특히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카르델리, 질라스, 바카리치가 우리 당과 정부의 대표로 모스크바에 있었을 때 이 모든 것이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12]. 귀하들의 편지에서 보듯이, 귀하들의 정부는 우리 대표단이 모스크바에 가기 전부터 앞서 말한 정보와 그 비슷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때 군사·민간 전문가들에 대한 처우 문제든 다른 문제든 우리 대표단 앞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3월 27일 자 귀하들의 편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반소 비판, 곧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 대한 비판이 행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비판이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지도적 인사들 사이에서 행해진다고 합니다. 나아가 이 비판이 대중, 당원들의 등 뒤에서 행해지며, 정직하지 못하고 막후에서 이루어지는 위선적인 비판이라는 따위의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질라스, 부크마노비치, 키드리치, 란코비치의 이름을 들고 “그 밖의 사람들”이라고 덧붙입니다. 결국 우리 당에게 어려웠던 수많은 상황에서 검증된, 새 유고슬라비아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 몇 사람의 이름을 든 것입니다.

그런 무거운 비난을 하면서 그 비난의 출처를 밝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 기이한 것은 우리 지도적 인사들이 했다는 발언을 지난날 트로츠키의 발언과 견주는 일입니다. 편지에는 몇 가지 발언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이 변질되고 있다”, “소련은 유고슬라비아를 경제적으로 정복하려 한다”, “소련에는 대국 배타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코민포름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이 다른 당들을 정복하는 수단이다”라는 말입니다. 또 “이런 반소 발언은 대개 ‘소련의 사회주의는 더는 혁명적이지 않다’, 유고슬라비아만이 ‘혁명적 사회주의’의 진정한 담지자라는 좌익적 문구로 가려진다…”라고 합니다.

그들은 바로 1941년에 소련을 깊이 믿으며 파시스트 침략자들에 맞서 봉기를 조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로 봉기한 유고슬라비아 여러 민족의 선두에서 손에 총을 들고 가장 어려운 조건 속에서 소련 편에 서서 싸운 사람들이며, 유일하게 진실한 동맹자로서 가장 암담한 날들에도 소련의 승리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소비에트 체제를, 사회주의를 믿었고 오늘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소비에트 체제를 끌어내리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신념을, 자기 과거를 배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이런저런 정보가 아니라 그들의 오랜 혁명 활동에 근거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중 앞에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을 “하늘 높이” 치켜세운다고 해서, 편지에 씌어 있듯이 그들을 표리부동한 자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끔찍하고 모욕적인 일입니다. 편지는 더 나아가 “우리는 유고슬라비아의 당원 대중이 이런 반소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자기들에게 낯설고 적대적인 것으로 여겨 분개하며 물리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정이 편지에 그려진 그대로라면 우리도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때문에 앞서 말한 유고슬라비아 지도자들이 이 비판을 몰래, 막후에서, 대중의 등 뒤에서 하려 애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중에게 숨길 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련이나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 대한 그런 비판도, 그 비슷한 비판도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도부를 대중과 맞세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옳지 않은 까닭은, 오늘의 유고슬라비아 지도자들과 대중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쟁 전 반인민적 체제에 맞선 투쟁으로, 위대한 해방전쟁 동안의 투쟁으로, 그리고 오늘날 나라를 건설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엄청난 노동의 노력으로 떼려야 뗄 수 없이 맺어져 있습니다.

많은 소련 사람들은 유고슬라비아의 광범한 인민 대중이 소련에 품은 공감이 저절로,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어떤 전통 덕분에 생겼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소련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의 새 유고슬라비아 지도자들, 무엇보다 편지에서 그토록 무겁게 비난받는 바로 그 사람들이 당과 인민 대중 속에 끈질기게 심어 온 것입니다. 오늘의 유고슬라비아 지도자들은 전쟁 훨씬 전부터 수고도 희생도 아끼지 않고 대중 앞에서 소련에 관한 진실을 끈질기게 밝히며 유고슬라비아 대중에게 사회주의의 나라에 대한 사랑을 심어 온 사람들입니다…

귀하들의 편지가 건드린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내부 생활 문제에 관해서는, 귀하들이 완전히 부정확한 정보와 잘못된 그림을 받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당에 대한 그 평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다수가 보선된 위원이라는 편지의 주장과 달리, 사정은 이렇습니다. “1940년 12월 깊은 비합법 상태에서 열렸고,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대의원 110명이 참석했으며, 코민테른의 결정에 따라 대회의 모든 권한을 가졌던 제5차 당 협의회에서 위원 31명과 후보위원 10명으로 이루어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선출되었다. 그 가운데 중앙위원 10명과 후보위원 6명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1940년에 선출된 정치국원 7명 가운데 5명이 살아남아 오늘도 일하고 있다. 정치국은 베오그라드에 있는 중앙위원들을 회의에 부른다. 중앙위원회에 보선된 새 위원은 모두 7명뿐이며, 그것도 후보위원과 당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들 가운데서 뽑혔다. 끝으로 전쟁 중에 두 위원이 중앙위원회에서 제명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협의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 19명과 보선된 위원 7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따라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26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정은 이러하며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당 대회를 열지 않는다는 지적에 관해서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이미 1년 전부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회가 단지 시위의 성격만 띠는 것이 아니라 당의 규약과 강령을 채택하는 대회가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강령은 나중에 인민전선도 자기 대회에서 기본적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편지는 우리 당에 민주주의가 없다고 주장합니까? 혹시 라브렌티예프의 정보를 근거로 한 것입니까? 그는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얻습니까? 우리는 그가 대사로서 누구에게든 우리 당의 활동에 관한 보고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그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 정보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서 계급투쟁 정책이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농촌과 도시에서 자본주의 요소가 강해지고 있다는 따위의 정보는 완전히 부정확합니다. 10월 혁명 이후 지구상 어디에서도 유고슬라비아에서처럼 철저하고 일관된 사회 변혁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온 세계가 아는데, 그런 판단은 어디서 나옵니까? 그것은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당과 관련해 베른슈타인, 폴마르, 부하린과 썩은 기회주의를 거론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당에 대한 그런 부정확한 말과 모욕에 선을 긋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지는 이어서 유고슬라비아 인민전선 제2차 대회에서 한 티토 동지의 보고를 거론하며, 그 보고에서 짧은 구절 하나를 떼어 내어 40년 전 멘셰비키가 사회민주당을 묽혀 버리려 한 시도와 견줍니다…[13]

둘째, 유고슬라비아 인민전선은 그 질에서, 들어오려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아들이는 다른 몇몇 공산당과 대등할 뿐 아니라, 조직성과 활동성에서는 더 낫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인민전선은 오늘날 회원이 약 700만 명에 이르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셋째,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인민전선에서 지도권을 완전히 확보하고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인민전선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편지가 말하듯 당이 인민전선 속에 녹아 버릴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인민전선을 통해 자기 강령을 차근차근 실현하며, 인민전선은 그 강령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동시에 자기 강령으로 여깁니다. 티토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는 다른 강령이 없다고 말한 근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 관해 이렇게 씌어 있는 것이 유감이며, 우리는 몇몇 나라에서 몇몇 공산당이 활동 형태뿐 아니라 당명까지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불가리아와 폴란드가 그렇고, 그것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 나라들에서는 당들이 그 길을 가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안으로 단단히 조직되어 주위에 인민전선의 수백만 대중을 강하게 묶어 세우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을 선두에 둔 인민전선이라는 결합이 가장 올바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다른 당들에게는, 그들이 자기 나라의 주어진 새 조건에 맞춘 활동 형태와 조직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도, 대중 속에 녹아 버릴 것이라는 비난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당은 편지가 말하듯 반합법 상태가 아니라 완전히 합법적이며, 유고슬라비아의 모든 사람에게 지도 세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오늘까지 우리 당이 이룬 공적과 성과를 부정할 수 있다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소련의 많은 지도적 인사들뿐 아니라 스탈린 동지 자신에게서도 여러 차례 그런 인정을 받은 것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고슬라비아의 사회 변혁에 다른 나라들의 혁명적 발전에 유익하게 쓰일 수 있고 이미 쓰이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 많다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역할을, 소련의 사회 체제를 그늘에 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소비에트 체제를 배우고 본보기로 삼습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얼마간 다른 형태로 건설하고 있다는 데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단계에서, 해방전쟁 뒤에 생겨난 국제 정세에 비추어 우리나라에 있는 특수한 조건 아래서,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데 가장 알맞은 활동 형태를 적용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길이 소련이 걸어온 길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지어내려고가 아니라, 삶이 날마다 그것을 우리에게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벨레비트에 관해, 그리고 그가 왜 아직도 외무부에 있느냐는 물음에 관해서는 사정이 이렇습니다. 카르델리와 질라스는 언젠가 몰로토프 동지에게 벨레비트에게 우리로서는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아무런 구체적 증거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그 문제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우리는 혐의만으로 사람을 내치고 망가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벨레비트 문제에서 서둘러서는 안 됩니까? 첫째, 벨레비트는 1939년부터 당원이며, 그 전에도 당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귀하들 쪽에 불만스러운 점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불만스러운 이유가 여럿 있다고 솔직히 말해야겠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요? 그 이유를 이 편지에서 다 들 수는 없지만 몇 가지는 들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소련 정보기관들이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나라인 우리나라에서 우리 시민들을 자기 정보기관에 포섭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나라의 이익에 반하는 일로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지도적 인사들과 국가보안 기관이 이에 항의하고 우리가 그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알렸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장교들이 포섭되고, 여러 지도 간부들이 포섭되며, 새 유고슬라비아에 적대적인 자들이 포섭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소련 정보기관의 일부 기관들이 우리 당원들을 포섭하면서 우리 지도자들을 의심하게 만들고 그들의 권위를 허물며 그들을 무능하고 수상쩍은 사람으로 그린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소련 정보기관이 유고슬라비아에 자기 조직망을 만드는 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외국 자본주의 분자들과 나라 안의 계급의 적과 싸우기 위한 국가보안 기관과 정보기관이 있으며, 소련 정보기관들이 그 방면에서 어떤 정보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필요할 때마다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왔습니다…

소련과 유고슬라비아가 되도록 긴밀히 결합하는 데 사활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절대적인 상호 신뢰가 필요하며, 그것 없이는 우리 두 나라 사이에 지속적이고 굳건한 관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소련 사람들, 무엇보다 지도자들은 새 유고슬라비아가 지금의 지도부 아래서 흔들림 없이 사회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아가, 소련이 오늘의 유고슬라비아에서, 지금의 지도부 아래서, 가장 충실한 벗이자 동맹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 가혹한 시련이 닥치면 소련 인민들과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준비가 된 벗이자 동맹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소련이 파괴된 나라를 복구하느라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나라를 건설하고 5개년 계획을 실현하는 데 소련 인민들에게 물질적 손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소련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봅니다. 새 유고슬라비아가 되도록 강해지는 것이 소련의 이익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고슬라비아는 자본주의 세계와 가슴을 맞대고 서 있으며, 그 세계는 유고슬라비아의 평화로운 발전뿐 아니라 다른 인민민주주의 나라들의 발전, 나아가 소련의 발전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상 말한 모든 것에 근거해,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귀하들이 편지에서 우리 당과 그 지도자들의 활동에 내린 평가를 정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생겨서는 안 되었을 심각한 오해가 있으며, 우리 당들이 봉사하는 대의를 위해 그 오해를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깊이 확신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바람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 대한 우리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동지적이고 형제적인 충성심의 순수함에 대해 어떤 의심과 불신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길잡이가 될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설에 대해 그 당에 언제까지나 감사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위대한 본보기가 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소련, 우리 인민들에게 준 도움을 우리가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소련에 대한 충성심의 순수함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 오해를 두 중앙위원회가 현지에서, 곧 이곳 우리나라에서 서로 모든 면에서 해명하는 길로만 해소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위원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을 보내 줄 것을 제안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모든 문제를 철저히 검토할 수 있는 온갖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스탈린 동지와 몰로토프 동지에게 보낸 편지 (1948년 5월 17일)

1948년 5월 4일 자 귀하들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 편지 역시 우리에게 얼마나 무거운 인상을 남겼는지는 쓸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 편지는 우리에 대한 모든 비난이 잘못된 정보의 결과라는 것을 사실을 들어서까지 증명하려 한 우리의 모든 노력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원칙 문제에 관한 비판을 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서 우리는 너무나 불평등한 처지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지금 이 문제를 코민포름 앞에서 해결하는 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홉 당은 이미 우리에게 미리 알리지도 않은 채 귀하들의 첫 편지를 받았고 결의를 통해 자기 입장을 정했습니다. 귀하들의 편지 내용은 개별 당들의 내부 문제로 남지 않고 허용된 범위 밖으로까지 퍼졌으며, 그 결과 오늘날 체코슬로바키아나 헝가리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우리 당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프라하에서 우리 의회 대표단이 겪은 일이 그러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나라에 가져온 결과는 매우 무겁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우리에 대한 비난이 부당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방식으로 풀고자 합니다. 곧 우리는 끈질기게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소련에 충실하며,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학설에 충실할 것입니다. 과거가 이미 보여 주었듯이, 미래는 우리가 귀하들에게 약속하는 것을 이루어 내리라는 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정보국 회의에 보낸 성명 (1948년 6월 20일)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상황에 관한 토의”를 위해 이미 모인 정보국 회의에 대표를 보내라는 초청을 받고,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정보국 회의에 다음과 같이 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언제나 정보국의 활동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중앙위원회는 이번 정보국 회의에 대표를 보낼 수 없습니다. 회의의 의사일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통보된 의사일정의 내용을 이루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사이의 이견 문제는 처음부터 이번 정보국 회의에 이르기까지 그 해결 방식이 잘못 설정되었다고 보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우리 중앙위원회에 보낸 첫 편지부터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같은 어조로 답할 수 있는 동지적 비판의 정신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라, 거칠고 부당한 고발의 형식으로 씌어졌습니다. 그 고발은 사실이 아니므로, 우리는 우리 당과 국가에 해를 끼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 형제 공산당에 대한 비난을,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일방적인 정보나 따로 떼어 낸 인용문에 근거하게 하고,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전쟁 뒤에도 그토록 큰 시험을 거쳐 온 우리 당의 활동 전체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게 하지 않는 것을 깊이 잘못된 일로 봅니다.

3.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비난 가운데 몇 가지는 분명히 반당 분자들의 정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당은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전쟁 뒤에도 그들과 싸워 왔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안에 남은, 지난날 분파 활동의 이런 잘 알려진 찌꺼기들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지지를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봅니다.

4. 정보국 회원 당들의 지도부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비난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아무 설명도 구하지 않은 채 서면 성명으로 우리 당을 규탄했으며, 첫 편지에 대한 우리 답신의 논거를 고려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자기 당의 넓은 범위에서, 심지어 공개적으로 우리나라에 해가 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5.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자기 첫 편지에 대한 우리 답신의 논거를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답신에 대한 답장에서도 그 뒤에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 대해 갈수록 더 무겁고 전혀 근거 없는 비난을 내놓았습니다. 그런 태도가 우리에게 평등한 바탕 위에서의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모든 사실 때문에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견을 정보국에 내놓는 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견이 풀리기는커녕 깊어지기만 하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대표를 유고슬라비아로 보내 논란이 되는 문제들을 현지에서 함께 조사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우리가 보기에 유일하게 올바른 이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우리 답신을 받기도 전에 이미 이견을 정보국의 다른 당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곧 우리에게 보낸 편지의 본문을 우리에게 보낸 바로 그때 그들에게도 보냈고, 이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당을 뺀 모든 당의 지도부가 편지로 우리 당에 대한 자기들의 판단을 우리에게 알려 왔습니다.

이런 처사는 정보국이 기반으로 삼는 합의와 자발성의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금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유고슬라비아 현지에서 직접 만나 논란이 되는 문제들을 함께 검토하는 것만이 지금의 이견을 푸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견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쪽에서 이런 형태를 띠게 된 데 깊은 유감을 표하며,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와 정보국 모두에게, 이견을 풀기 위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직접 만나야 한다는 우리 의견에 동의해 줄 것을, 그리고 우리의 동의 없는 그런 토의가 잘못이라는 것을 헤아려 우리 당의 상황에 관한 토의를 의사일정에서 빼 줄 것을 다시 호소합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형제 공산당들에게 인사를 보내며, 어떤 이견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및 다른 공산당들과의 연대와 가장 긴밀한 협력이라는 자기 정책에 계속 충실한 것을 막지 못하리라고 선언합니다.

정보국 결의에 대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성명 (1948년 6월 29일, 발췌)

… 앞서 말한 정보국 결의의 발표에 즈음하여,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결의의 비판은 부정확하고 근거 없는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국외와 국내에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나라 안 대중과 국제 노동운동 속에 혼란을 일으키며,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단결과 그 지도적 역할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올해 4월 13일 자 편지에서 제안한 대로 현지에서 자기 주장을 확인하기를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거부했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기이하다.

2. 결의는 단 하나의 증거도 들지 않고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부가 소련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소련 군사 전문가들이 무시당했고 민간 전문가들이 보안 기관의 미행을 받았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이 철수할 때까지 소련의 어느 대표도 이 문제에 관해 유고슬라비아 대표들에게 한 번도 주의를 환기한 적이 없다. 소련 대표들 가운데 누군가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미행을 당했다는 주장, 그것도 유딘 동지가 그랬다는 주장은 완전한 거짓이다. 이 주장, 특히 유딘 동지에 관한 주장은 오로지 다른 당들 앞에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과 그 지도부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히려 옳은 것은 4월 13일 자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내놓은 주장이다. 그 주장은 해방 이후 오늘까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원들이 자기 당 조직에 한 여러 진술과 우리나라의 다른 시민들의 진술에 근거한 것으로, 소련 정보·보안 기관들이 그들을 포섭했다는 것이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공산주의자가 집권당이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나라에 대한 그런 태도가 용납될 수 없으며, 유고슬라비아 연방인민공화국 시민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와 당의 지도부를 약화시키고 그 밑동을 파는 것이라고 보았고 지금도 그렇게 본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유고슬라비아의 소련에 대한 관계가 오로지 신뢰와 진실성 위에 서야 한다고 보았고 지금도 그렇게 보며, 이 원칙을 지켜 온 유고슬라비아 국가 기관들은 유고슬라비아에 있는 소련 시민들을 미행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통제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3. 결의는 계급투쟁 수행에 관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정책, 특히 농촌 정책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레닌의 잘 알려진 명제들을 든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농촌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제한하는 정책에서 바로 그런 레닌의 명제들을 지침으로 삼고 있음을 강조한다. 결의의 작성자들이 수고를 했더라면 발표된 당 문서와 논설에서 그것을 읽고 그 정책이 실제로 어떻게 수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의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비난은 사실상 열린 문을 두드리는 것일 뿐이며, 객관적으로는 도시와 농촌의 반동적·자본주의적 요소를 북돋우고 지지하는 결과,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의 객관적 어려움, 특히 공급의 어려움이 마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그 정책 탓인 것처럼 주민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투쟁의 서로 다른 시기에서 뜯어낸 개별 인용문이나 따로 떼어 낸, 그것도 왜곡된 개별 사실에 근거해 자기 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방법으로서 용납될 수 없다고 본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정책을, 다른 당들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당의 실천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곧 당이 나라의 사회주의적 변혁을 위한 투쟁에서 성과를 거두는가 거두지 못하는가, 전체적으로 자본주의 요소가 약해지는가 강해지는가, 국민경제의 사회주의 부문이 약해지는가 강해지는가를 보아야 한다.

4.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지도적 인사들이 쿨라크 당의 길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청산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는 주장, 당 안에 민주주의가 없다는 주장, 당 안에서 군대식 지도 방법이 배양되고 있다는 주장, 당 안에서 “당원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가 짓밟히고, 당내의 잘못에 대한 아주 가벼운 비판에도 가혹한 탄압으로 답한다”는 따위의 주장을 깊은 분노로써 물리치지 않을 수 없다. 수천 번의 전투에서 두려움 없이 죽음과 마주했던 당원들이 사람에게도 공산주의자에게도 걸맞지 않은 상태를 당 안에서 참고 견딜 수 있겠는가? 당 안에서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따위의 주장은 우리 당의 모든 당원에 대한 끔찍한 모욕이며, 당의 영웅적이고 영광스러운 과거와 나라의 복구와 건설을 위한 오늘의 영웅적 투쟁에 대한 모독이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일부 당 조직에서 아직 선거가 실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당 안에 민주주의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거쳐 온 전쟁 시기와 격동의 전후 발전이 남긴 흔적이며, 다른 당들에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에도 한때 있었던 일이다.

당이 인민전선 속에서 흩어져 버리고 있다, 지도적 인사들이 쿨라크 당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는 주장으로 말하자면, 그 주장은 객관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지도 아래 단일한 조직인 인민전선 속에 이루어진 근로 대중의 동맹을 깨뜨리고, 당을 근로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데로 이끈다. 그 주장의 뿌리는 앞서 말한 것 말고도, 유고슬라비아에서 당과 인민전선의 관계를, 유고슬라비아 인민전선의 본질을, 그리고 그 안에서 노동자계급의 지도적 역할이 실현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 문제에서도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꾸며 낸 주장에서 출발하며, 그 주장을 상대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책임 있는 누구도 부정한 적이 없는 레닌주의의 잘 알려진 명제들을 들어 논쟁한다. 그러나 사실들, 그리고 전쟁 내내와 전쟁 뒤에 공산주의자들뿐 아니라 인민전선 안의 비공산주의자들도 한 수많은 진술이 말해 주는 것은 이렇다. 첫째, 인민전선 안에서 지도 세력은 공산당이다. 둘째, 공산당은 인민전선 속에서 흩어지지 않으며, 반대로 당이 인민전선 기본 대중을 사상적·정치적으로 끌어올려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자기 정책의 정신으로 교육한다. 셋째, 유고슬라비아 인민전선은 실천에서 사회주의를 위해 싸운다. 결의가 말하듯 “잡다한 정치 집단”, 곧 부르주아 정당, 쿨라크, 상인, 소공장주 따위가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또는 인민전선이 공산당과 다른 정당들의 연합이거나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협정의 한 형태라면 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넷째, 당이 인민전선에게서 강령을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민전선이 공산당에게서 기본 방향과 강령을 받는다. 인민전선 안에서 공산당이 하는 지도적 역할에 비추어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와 함께, 인민전선 대중을 사상적·정치적으로 더욱 결속시키고, 당의 정치 활동을 인민전선의 활동과 결합하고, 인민전선이 모든 방면에서 활동하게 하는 것이 당의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끝으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그 위원의 다수가 보선된 것이 아니라 선출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계산하면서 제5차 전국 협의회에서 따로 선출된 정치국원들을 셈에 넣지 않았다. 그러므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한 편지에서 언급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위원 22명에 정치국원 7명을 더해야 한다[14]. 전쟁에서 위원 열 명을 잃은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그 자리에 주로 중앙위원 후보 가운데서 동지 일곱 명을 보선했다고 해서 그것을 탓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비합법 상태라는 주장을 우스꽝스럽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물리치며, 그 주장 역시 무엇보다 특정한 조건과 특정한 시기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활동 형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본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활동 형태는 우리 당의 오랜 혁명적 실천의 구체적 조건에서 자라났고, 그 실천 속에서 올바르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당이 대중의 신뢰를 얻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5.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공산당 안에 튀르크식 체제가 지배하고 있다는 비난,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지도자들이 중앙위원회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을 당에 숨기고 “헤브란그 동지와 주요비치 동지를 처분한 진짜 이유”를 당과 인민에게 숨겼다는 비난을 품위 없는 것으로 물리친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스스로 그 편지들을 공개하기 전에는 공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넓은 활동가층 전체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편지의 내용을 알고 있고, 당원 전체가 헤브란그와 주요비치 사건을 알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정보국 회원 당들의 대표들이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아무 자료도 요구하지 않은 채 어떻게 헤브란그와 주요비치를 감쌀 수 있었는지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37년 코민테른의 결정에 따라 고르키치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제명된 주요비치[15], 우스타샤 경찰 앞에서 배신적 태도를 보이고 그 일로 당을 속였던 헤브란그 같은 사람들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안에서 분파 활동을 하며 당을 깨뜨리려 하고 유고슬라비아의 건설과 공업화 속도를 해악적으로 방해한 그런 사람들을 왜 감싸는지 의아하게 여긴다. 이것이 분파주의와 배신자들과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을 겨냥한 파괴 활동에 대한 지지가 아니겠는가? 이와 관련해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헤브란그와 주요비치에 관한 자료를 부록으로 공개한다.

6.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최근 유고슬라비아 지도자들이 크게 서둘러, 그것도 선동적인 이유에서 소공업과 소상업의 국유화 조치를 내렸다는 주장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물리친다. 그 조치는 사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상대로 앞서 말한 비난을 하기 여섯 달 전에 이미 준비되어 있었으며, 사회주의 부문이 강해지고 발전한 결과다…

7.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독립을 지키는 투쟁에서 유고슬라비아에 인민민주주의 나라들과 소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는 아무도 없다고 단언한다. 현실과의 모든 연결을 잃어버린 사람들만이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와 함께, 그 도움을 주고 협력하는 일이 중앙위원회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인민민주주의 나라들과 소련에도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그 도움이 유고슬라비아의 대내·대외 정책과 결부되어야지, 결코 중앙위원회가 근거 없고 거짓에 바탕을 둔 비난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사실과 결부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유고슬라비아 지도자들이 제국주의자들에게 양보하고 유고슬라비아의 독립을 두고 그들과 흥정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주장은 완전히 지어낸 것이며, 새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가장 무거운 중상에 속한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몇몇 인민민주주의 나라에서 당과 국가 기관들이 아무 까닭 없이 유고슬라비아 인민들과 그 국가와 국가 대표들을 모욕하고, 앞서 말한 협력을 약화시키며 유고슬라비아와의 관계를 망치는 행동을 잇따라 저질렀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앞으로 그런 행동에 대해 침묵할 의무가 없다고 본다.

8.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자기 탓이 아닌 오류에 관해 토의하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공산주의 전선의 단결을 조금이라도 해쳤다고 보지 않는다. 그 전선의 단결은 지어내고 꾸며 낸 오류와 중상을 인정하는 데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한 당의 정책이 실제로 국제주의적이냐 아니냐 하는 사실에 바탕을 둔다. 그런데 정보국이 자기를 세운 원칙, 곧 결론을 받아들이는 데서 각 당의 자발성을 규정한 원칙을 깨뜨렸다는 사실을 말없이 지나칠 수는 없다. 정보국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저지르지도 않은 오류를 인정하라고 강요할 뿐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원들에게 당 안에서 반란을 일으키라고, 당의 단결을 깨뜨리라고 호소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어낸 이야기와 비동지적 태도를 바탕으로, 상호 신뢰 없이 자기 정책이 토의되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런 바탕은 원칙적이지 않으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오직 그런 의미에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자기가 토의에서 평등하지 않으며 그런 바탕 위의 토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았다. 나아가 이와 관련해,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민족주의의 입장으로 넘어갔다는 비난을 단호히 물리친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대내·대외 정책 전체로, 특히 인민해방전쟁 동안의 투쟁과 유고슬라비아 민족 문제의 올바른 해결로 그와 정반대임을 증명했다.

앞서 말한 부당한 비난들로 우리 당과 우리 노동자계급과 근로 대중, 유고슬라비아 여러 민족 전체와 그들의 헌신적이고 영웅적인 투쟁에 역사상 가장 큰 불의가 가해졌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적대적인 선전이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와 다른 민주주의 나라들을 중상하려고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대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비난을 이용하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그런 모든 현상에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자기의 어떤 행동으로도 그것을 불러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당원들에게 당의 노선을 실현하고 당의 단결을 더욱 굳히기 위한 투쟁에서 대열을 다지라고 호소하며, 노동자계급과 인민전선에 모인 다른 근로 대중에게 우리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하는 일을 더욱 끈질기게 계속하라고 호소한다. 그것만이 앞서 말한 비난이 모두 부당하다는 것을 실천으로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자 방법이다.

주석

  1. 옮긴이: 알바니아 주재 소련 대리대사 A. N. 가가리노프. 1948년 2월 말 티라나에서 열린 소련군 창건 30주년 리셉션에서 그가 티토에 관해 한 언행을 두고 유고슬라비아 쪽이 문제를 제기했다. ↩
  2. 옮긴이: 소련 대외무역부 제1차관 A. D. 크루티코프. 1948년 초 모스크바에서 유고슬라비아 대표들과 경제 관계를 협상했다. ↩
  3. 옮긴이: 원문의 표기는 「코체(Коче)」이며, 유고슬라비아군 총참모장 코차 포포비치(Koča Popović)를 가리킨다. ↩
  4. 옮긴이: 이 발언은 소련 군사 고문과는 관계가 없으며 1944년 10월 중앙위원회 회의가 아니라 티토가 소집한 회의에서 나왔다. 유고슬라비아 쪽이 붉은 군대 일부 장병의 약탈과 폭행을 막아 달라고 소련 군사사절단장 코르네예프에게 요구한 자리에서, 질라스가 적들이 붉은 군대 병사들의 행동을 영국 장교들과 견주고 있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기비안스키의 공간본 주석에 따름). ↩
  5. 옮긴이: 라브렌티예프는 유고슬라비아 주재 소련 대사 아나톨리 라브렌티예프, 스르젠티치는 유고슬라비아 경제평의회 부의장 V. 스르젠티치, 레베데프는 베오그라드 주재 소련 무역대표다. 경제평의회 의장은 보리스 키드리치였다. ↩
  6. 옮긴이: 파벨 유딘. 베오그라드에 본부를 둔 코민포름 기관지 『항구적 평화를 위하여, 인민민주주의를 위하여!』의 편집을 맡고 있었다. ↩
  7. 옮긴이: 기비안스키에 따르면 이 인용들은 1948년 3월 1일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해 주요비치가 라브렌티예프 대사에게 넘긴 정보에서 나왔다. 다음 문장에 이름이 오른 네 사람은 모두 이 회의의 발언자였다. ↩
  8. 옮긴이: 전후 몇 해 동안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사실상 집권당이면서도 당원 신분을 비밀로 하고 당 기관의 소재와 활동을 공표하지 않았으며, 당 회의와 대회도 알리지 않고 열었다. ↩
  9. 옮긴이: 알렉산다르 란코비치. 중앙위원회 조직·간부 담당 서기이자 내무부 장관으로 국가보안국을 지휘했다. ↩
  10. 옮긴이: 1947년 9월 27일 인민전선 제2차 대회 보고의 부정확한 인용이다. 티토의 원래 말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인민전선 밖에 다른 어떤 강령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공산당은 다른 강령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전선의 강령이 곧 공산당의 강령이다”였고, 같은 보고에서 그는 공산당이 인민전선 안에서 지도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
  11. 옮긴이: 블라디미르 벨레비트. 전시 파르티잔과 연합군 사이의 연락을 맡았고, 이때 외무부 제1차관이었다. ↩
  12. 옮긴이: 1948년 2월 카르델리, 질라스, 바카리치가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과 소련·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 회담(2월 10일)에 참석한 일을 말한다. ↩
  13. 옮긴이: 다음 문단이 「둘째」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자료집 편자가 생략한 부분에 「첫째」로 시작하는 논점이 있었다. ↩
  14. 옮긴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5월 4일 편지를 가리킨다. ↩
  15. 옮긴이: 밀란 고르키치. 1932~1937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서기장이었고, 1937년 모스크바에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 뒤 티토가 당의 지도를 맡았다. ↩